리처드 파인만은 세상 모든 것을 수수께끼로 대했다. 라디오, 원자폭탄, 금고, 컴퓨터의 작동 방식부터, 복잡한 적분, 이성 교제, 사기꾼의 수법, 사람들의 행동 양식, 그리고 자신이 정립한 양자전기역학까지. 파인만은 수수께끼만큼 그 풀이를 좋아했고, 무엇보다 ‘기발한’ ‘자신만의’ 해결을 추구했다.
편집자 주

가벼운 농담 속의 과학적 영감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는 물리학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리처드 파인만이란 이론 물리학자의 소위 “내가 ◯◯◯했던 썰푼다” 모음집에 가깝다.
파인만에 관한 자료는 아주 많다. 그의 전기부터 직접 남긴 물리학 교과서들과 강의 노트, 강의 영상, 인터뷰 영상 등 그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1차 자료에 더해서 수많은 2차, 3차 자료까지 온라인에 넘쳐난다. 그의 에피소드를 다룬 이 책과 유사한 책도 물론 있다.
그래서 2026년에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왜 써야 하는지, 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해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했다. 나도 한때는 거의 맹목적으로 그의 이야기와 물리학에 빠졌던 까닭이다. 지금은 파인만에 대해 양가적 감정(긍정이 우세하다)이 있지만 말이다.
나는 파인만이 특유의 가벼운 어조로 자신의 일화들을 전하는 이 책에서 현재 한국의 독자 즉,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과 과학을 사랑하는 교양인이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무엇인지,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파인만의 경험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글이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에 가득한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에 담긴 과학적 영감과 독자 여러분이 만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현장에서 찾아낸 낙관적 경험주의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에서 파인만은 자신이 퍼즐 풀이를 매우 좋아한다고 말한다. 영문판에선 “puzzle drive”라고 했는데, 다소 직설적으로 옮기면 “수수께끼에 환장한다”는 정도가 되겠다. 이 책엔 파인만이 엉뚱한 농담들을 얼마나 많이 아는지 자랑한 일화도 있다. 하지만 파인만에게 수수께끼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현재 한국의 정서에선 낯설지만 10대 때 파인만은 라디오 수리, 호텔 일용직 등 여러 육체 노동을 하며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경험을 쌓았다. 영민한 지성, 예민한 감수성의 10대에게 이런 경험은, 교과서 너머의 넓은 세상을 보는 훈련이자 생생한 인생 공부였을 것이다. 현장의 난관들을 직접 해결하거나 해결 과정을 관찰한 이런 경험들이 수수께끼는 반드시 풀 수 있다는 긍정적인 활기를 그의 인격에 불어넣은 듯하다. 파인만의 이런 태도는 자기 손으로 삶의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확인하는 것을 중시하는 낙관적 경험주의로 나아간다. 이 낙관적 경험주의는 파인만의 물리학과 삶을 아우른다. 삶도 결국 수수께끼인 까닭이다.
수수께끼 해결꾼으로서 그는 도구 상자(tool box) 접근법을 소개한다. 도구, 즉 원리의 본질을 이해하고 완전히 자기 것으로 내면화하면, 이 도구를 처음 익혔던 상황 밖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파인만이 문제를 해결할 때의 지적인 마음가짐이다. 고등학생 시절에 가우시안 적분을 변형해서 개발한 적분 테크닉, 아인슈타인과 직접 협업했던 동료 물리학자(이 동료의 체면을 배려해 실명을 밝히진 않는다)를 골탕 먹인 파인만의 초보적인 일반상대성이론 문제가 그의 문제 해결 방식, 연구 철학을 잘 보여준다. 파인만은 원리의 본질을 이해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용한 것이다.
원리의 본질로 파고든 창의성
그렇다면 만지거나 볼 수 없는 추상적 개념, 원리를 어떻게 내면화할 수 있을까. 파인만은 개념의 본질을 이해하는 그의 방법을 수학 전공 학생들과의 일화에서 알려준다. 파인만은 추상적인 수학 개념을 처음 들을 때, 자기 내면에 시각적 객체(object)를 연상하고 이 객체에 시각적 특징을 하나씩 부여해가면서 수학 개념들의 연결성과 정합성을 감각적으로 투사했다. 이렇게 내면에 성장시킨 객체에서 다시 수학적 발상을 얻어낸다. 이 방법이 항상 성공한 건 아니었지만, 파인만이 입자의 고전적 경로와 양자적 확률밀도라는 두 개념을 이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따라서 그의 이런 학습법을 고려하면 양자 상태 변화를 독창적으로 기술해 낸 파인만 경로 적분은 파인만식 과학적 실재론과 추상적인 수리물리학 사이의 절묘한 균형으로 보인다.
이 책에선 전문가이든 학생이든 지식의 본질을 놓치고 표면만 보는 태도를 지적한 파인만의 여러 일화도 만날 수 있다. 용어, 즉 이름은 원리나 현상의 요약이자 태그(표식)일 뿐이라고 본 파인만은 용어의 수집과 배열을 공부와 이해라고 착각하는 태도를 용납하지 않았다.
따라서 파인만은 피상적인 지식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을 벌이는 지식인과 정책 입안자들도 통렬히 비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일화는 아니지만, 파인만은 1986년 1월에 발생한 우주왕복선 챌린저 폭발 사고의 조사 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는 최종 조사 보고서에 이 사건이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대한 정치적 압력, NASA의 권위적 조직 문화 등에 따른 인재(人災)라는 점을 밝히는 데 힘썼다.
파인만의 독특한 물리학 연구 방법에 관해 한 가지 덧붙이면, 그는 창의적이고 대담한 발상을 많이 했지만, 자신의 창의성 자체에 도취하진 않았다. 자신의 이론이 어떤 쓸모가 있고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안목과 기준을 유지했다. 머리 겔만과 공동 발표한, 약력에 관한 ‘V 마이너스(-) A 이론’을 정립한 과정에선 자신의 이론을 구체적인 실험 결과와 철저하게 비교, 점검한 학자로서의 신중함도 엿볼 수 있다. 파인만의 창의성은 경험주의적, 실용주의적 태도와 물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의 바람직한 콜라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미국의 사랑을 받은, 솔직한 물리학자
파인만은 당대부터 매우 유명했다. 게다가 호감형 외모, 유머러스한 언변, 나이와 직급에 상관없이 권위를 따지지 않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다. 학계 동료들은 그의 이론에 귀를 기울였고, 군과 정부 관계자들은 자문을 요청했다. 학생들에겐 친근한 교사로서 사랑받았고, 물리학을 잘 모르는 대중들도 양자전기역학 강연을 요청했다. 이렇듯 영향력이 컸기에 만약 그가 원했다면 소위 거물급 인사로 살 수도 있었다. 파인만은 서민 가정 출신의, 유럽 유학파가 아닌 미국에서만 교육받은 세계적 물리학자란 상징성까지 있었다(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물리학계의 주도권은 유럽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셀러브리티’가 되거나 ‘한 자리’ 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자 이 상이 자신을 달라지게 할지 동료들과 농담을 했을 정도다. 명성의 덫을 간파한 그는 대중과 여론의 관심에 취하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 후에도 상대의 지위를 따지지 않고 격의 없이 소통한 그의 면모는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물리학을 하는 사람임을 잊지 않았다. 임종하는 순간까지 물리학을 했고 주변인을 골탕 먹이기 좋아했으며 뭔가를 배웠다.
2026년 한국의 상황에서는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속 파인만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이 책 내내 그는 자신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적 행동과 양식에 매우 무신경하다. 나아가 그런 허위를 꼬집거나 적극적으로 거부하기도 한다. 파인만의 이런 기행이 당대의 동료들도 다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의 반평생에 걸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물리학자 머리 겔만은 파인만이 자신의 신화를 만드는 데 몰두한다고 비판했다(파인만은 겔만을 라이벌보다는 친한 형제처럼 대했다).
‘사이언스 북마크’의 1월 추천 도서인 ‘코스모스’의 저자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매우 점잖고 학구적인 인물이었다. 구도자적 과학자, 대중교육가, 사회운동가로서도 모범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 책에 담긴 파인만은 어떨까? 파인만은 고매하지 않다. 자연의 법칙을 탐색하는 고귀한 과학자와는 정반대편에 가깝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코넬대 교수로 부임한 후의 일화들이 특히 곤혹스러웠다. 이 시기 파인만의 이성(異性)에 관한 이야기가 적지 않은데, 내가 학부 시절에 읽을 때는 “미국 사교 문화는 이런가?” 정도로 여겼지만,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다소 민망했다.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파인만이 동료들이 기밀 문서를 보관한 금고를 털거나, 감시의 사각지대를 찾아내 연구소에 출입하는 등의 기행들도 당시의 연구 책임자, 동료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저 웃을 수만은 없었다.
왜 파인만은 이런 행동을 했는가? 왜 이런 일화들을 자랑하듯이 공개했는가? 앞서 이야기했듯 파인만을 평가하려면 당대의 사회상, 미국적 정서와 같이 고려할 요소가 많다. 이에 대해 파인만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무신경하거나 공감 능력이 없어서라기보다 그는 그 자신이 되기에 바빴다. 세간과 동료들의 수근거림,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전혀 무관심했다. 지금까지 파인만이 살아서 이 책의 개정판을 다시 쓰더라도, 파인만은 지금 비판받은 대목들을 전혀 고치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더 솔직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것 같다.
농담으로 감춘 제목의 속뜻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라는 책 제목부터 보면, 파인만의 유쾌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의 기발한 행적들이 가득한 가벼운 책이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런데 저 따옴표가 암시하듯이, 이 제목은 파인만이 직접 들었던 말에서 따왔다. 그것도 미국 프린스턴 대학원에 입학한 파인만이 대학원장인 수학자 루터 아이젠하트의 집에 갔을 때, 아이젠하트 부인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 면담은 촉망받는 대학원생인 파인만이 대학원장이자 저명 학자를 만나는,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였다.
아이젠하트 부인이 파인만에게 전하려던 뉘앙스는 그가 에티켓에 어긋났고 다소 무례하다는 우회적인 질책이었다(“설마, 농담이죠?” 정도의 뜻이겠다). 물론 파인만도 그 뜻을 알아챘다. 파인만은 다른 일화에서 아이젠하트 부인으로부터 이 질책을 한 번 더 듣는다.
이 일화를 보면, 제목에 담긴 반어적 의미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파인만이 자신을 광대 같은 인물로 희화화하며 들려주는 이 일화 속에서 권위, 허위, 가식, 피상적 지식으로 치장한 어리석은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이 제목은 파인만이 독자에게 던지는 암호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2026년에도 유효하다.
사이언스 북마크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일화 중에서 인상적인 일화를 골라보고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정리해보자.
파인만은 이 책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을 자세히 말했지만, 핵분열 연쇄반응과 이 반응을 통제하는 물리학적 방식에 대해선 침묵한다. 기밀 해제된 로스앨러모스 문서 중 파인만이 썼다고 강하게 추정되는 것이 있고, 원자폭탄 개발의 분수령으로 여겨지는 베테-파인만 공식이 들어간, (아마 파인만이 작성한) 기밀 문서도 있다.
파인만이 밝히지 않은 맨해튼 프로젝트에서의 활동들을 보면, 그는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고 치밀하게 판단한 사람이었다. 대가는 말하지 않는 것으로도 교훈을 전달한다.
2. 여러 일화에 등장하는 파인만의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살펴보고, 그가 제안하는 방식을 어떻게 나의 공부에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파인만이 브라질에서 물리학을 강의할 때 학생들과 겪은 ‘편광’의 일화를 보자. 학생들은 편광을 하나의 용어로만 대하고 교실 창문에 반사된 해변가의 햇빛과 연결하지 못한다. 이때도 파인만은 배운 것을 자신의 일상적 경험과 연결하려는 자세와 노력을 강조한다.
3. 이 책에는 파인만의 학문적 슬럼프도 등장한다. 그가 어떻게 슬럼프를 극복했는지 성찰해보자.
미국 코넬대에 부임한 파인만은 강의를 열심히 준비했지만, 물리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이 예전 같지 않음을 확인한다. 이때 그는 학구열, 호기심, 재미를 줄 문제를 찾았다. 바로 프리스비(던지고 받는 원반 장난감)의 진동 문제다. 파인만은 자신이 왜 물리학을 사랑하고, 어떻게 물리학을 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이용한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