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하던 스물 한 살 청년의 삶은 머리를 식히러 간 동물원에서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임정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복원평가연구팀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저서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동물원에서 본 아무르표범은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뭇가지 위에 요염하게 앉아 나를 내려다보던 그 고고한 눈빛을 나는 한동안 잊지 못했다.” 범에 홀린 지 20여 년, 세계를 누비며 동물과 인간의 공존 방법을 연구하는 그를 2025년 11월 21일 충북 청주동물원에서 만났다.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 임정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복원평가연구팀 선임연구원이 2025년 8월 발간한 책의 제목이다. 호랑이가 숲에 살지 않는다면 대체 어디서 사는 것인지 묻기 위해 2025년 11월 21일 임 선임연구원을 만났다. 충북 청주동물원 옆 카페에서 그는 멋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호랑이는 숲에 살지요. 그런데 지금은 원래 살던 숲에서 밀려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아이러니를 내포한 제목입니다.”
‘범’이란 말은 호랑이와 표범을 모두 칭한다. 20여 년 전 동물원에서 표범을 만나 한 눈에 반한 뒤로, 임 선임연구원은 범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있는 보전생물학자다. 보전생물학자란 직업이 낯설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복원하는 데에는 언제나 인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때 보전생물학자의 일은 때론 생물학자로, 때론 인류학자로 모습을 바꾸어 가며 인간과 멸종위기 야생생물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다.
임 선임연구원은 책에서 보전생물학을 “단순히 동물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이 땅에서 동식물과 그 서식지를 함께 지키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진 실천적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때에 따라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응용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동원한다. 사람과 동식물이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이 해결책을 찾는 이들이 보전생물학자다.
국경 없는 보전생물학자의 일터에서 ‘공존’을 배우다
한반도를 누비던 아무르표범은 이제 북한, 중국, 러시아 접경지대에서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아무르표범을 위급(CR) 단계로 분류한다. 절멸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속수무책으로 범과 사랑에 빠져버린 임 선임연구원에게 이 사실은 슬펐다. 아무르표범 보전을 위해 노력하는 학자 중 한국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책임감까지 들었다.
임 선임연구원의 꿈은 어느새 아무르표범을 보전하는 생물학자가 됐다. 그 뒤로 20여 년 간 인도네시아에서 코뿔소와 인간의 공존을, 벨리즈에서는 해양 생물, 중국과 라오스에서는 호랑이와 인간의 공존을 위해 뛰었다. 현재는 아무르표범이 북한, 중국, 러시아 접경지대에서 살아가도록 돕고 있다.
인간과 공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생물이 어디 아무르표범 뿐일까. 2025년 한국 사회엔 곰에 대한 공포가 퍼졌다. 일본에서 곰의 습격으로 인한 사상자가 집계 시작 이후 최다 수치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맞물려 한국의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도 함께 거론되기 시작했다. 곰과 인간이 애당초 공존할 수 있는 생물이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임 선임연구원에게 대형 포유류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물었다. 그가 야생생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 고민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임 선임연구원은 인도 순다르반 국립공원 이야기를 꺼냈다. “인도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고, 실제로 순다르반 국립공원 인근에서는 호랑이에 의한 피해도 보고됩니다. 그런데도 같이 살고 있어요. 뭐가 다른지 궁금해서 인도에서 호랑이 보전 활동을 하는 연구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르다고 했어요. 호랑이는 원래 소를 잡아먹는 큰 동물입니다. 인도에서도 소는 귀한 자산이예요. 그러나 인근 주민들은 호랑이를 탓하지 않습니다. 대신 정부가 호랑이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 예방책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말한대요.”
물론 순다르반과 같은 경우는 드물다. 임 선임연구원은 중국에서, 라오스에서 호랑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수 년간 살을 맞대고 지냈다. 지역 주민들이 호랑이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길, 호랑이와 인간의 접점에서 충돌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활동을 이어갔다.
현실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은 ‘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동물원에 갇혀 있는, 곱게 정제된 이미지의 동물을 떠올리곤 한다. “동물과 제대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호랑이의 경우에도, 야생의 호랑이는 어떻게 사는지, 얼마나 큰지,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런 부분을 알아야 하는 거죠. 이걸 전하기 위해서 중국에서는 마을 부녀회장과 함께 만두를 빚으며 친해지기도 했어요. ‘호랑이는 모르겠지만, 너는 마음에 든다. 네가 신경 쓰는 호랑이를 내가 조금 봐주겠다’는 반응을 얻기 위해서였죠.”
임 선임연구원은 “야생생물을 네다섯 살 아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이 인간의 통제 하에 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야생생물의 각 개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고라니가, 멧돼지가 정확히 몇 마리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너덧 살 아이가 밥상을 엎는다고 아이를 탓하진 않습니다. 왜 그랬는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묻고 고민하죠. 야생생물도 똑같습니다.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어요. 인간도 맑은 공기, 물, 산과 바다를 이용할 때 대가를 지불하지 않잖아요.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생물에게 곁을 줘야 합니다.”
실패하더라도 뻔뻔해지기, 뚜벅뚜벅 나아가기
임 선임연구원을 만난 청주동물원은 그에게 희망이 담긴 장소다. 청주동물원은 서식지외보전기관이다. 서식지 내에서 살기 어려운 야야생생물을 위한 보금자리란 뜻이다. 2026년 중으로 청주동물원엔 영국에서 아무르표범 한 마리가 들어올 계획이다. 한국에서 아무르표범 보전을 위한 도약대가 될 수 있다. 임 선임연구원과 청주동물원을 함께 걸었다. 호랑이사 옆에 마련된 표범사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 설렘이 어려 있었다.
“지금 아무르표범 자체가 너무 귀해서 복원이 가능할 만한 개체군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워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 한반도에 아무르표범을 복원하는 게 꿈입니다. 표범이라 하면 ‘범’이란 인식이 많은데요. 사실 아무르표범의 크기는 들개 정도입니다. 호랑이는 강해요. 그래서 편한 길로 다닙니다. 산의 능선, 기찻길, 그리고 도로를 따라서 걸을 때가 많아요. 상대적으로 작은 아무르표범은 조심스러움이 많은 동물이예요. 러시아에서는 아무르표범이 130여 마리 살지만 아무르표범을 본 지역 주민은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르표범은 산 사면을 따라 숨어다니기 때문이죠. 만약 아무르표범을 복원한다 하더라도, 표범이 사람과 마주칠 확률은 적습니다. 사람이 모르는 새 뒷산을 스윽 지나가는 정도일 겁니다. 물론 복원 자체가 쉽지는 않겠죠.”
임 선임연구원이, 우리가 살아있는 사이에 아무르표범이 다시 한반도의 산을 뛰어다닐 수 있을까. 굳이 어려운 꿈을 찾아 꾼 그다. 책 ‘호랑이는 숲에 살지 않는다’를 보면 그가 세계를 누비며 꿈꾸고, 좌절하고, 희망을 찾고, 이리저리 고군분투한 여정을 함께 따라갈 수 있다. “어머니가 책을 보고 우리 딸이 이렇게 고생하는지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의 농담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 안되는 일에 끊임없이 부딪히던 20여 년의 시간. 임 선임연구원은 “이 시간을 전하고 싶어 책을 썼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좌충우돌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뭘 해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 때, 조금만 더 참고 뚜벅뚜벅 나아가면 결국 작은 성공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 사실 저는 대단한 이타심을 가지고 이 일을 하는 게 아녜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는 이기심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행복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어요.”
임정은 지음
다산초당
320쪽ㅣ2만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