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데이는 전류의 유도작용과 전기분해의 법칙을 발견했고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개념을 수학적으로 이론화했다. 맥스웰은 오늘날 '전자'라고 불리는 작은 입자의 존재도 가정했는데…
대학시절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과학기술을 창조하는 사람과 그것을 누리는 사람은 다르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도 이 말은 여전히 옳다고 생각한다. 몇 세대에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을 발견했거나 기술적 제품을 발명한 사람을 위대한 과학기술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19세기의 위대한 과학자 중에서 전기와 관련된 인물 두사람을 선택한다면 패러데이(Faraday, 1791~1867)와 맥스웰(Maxwell, 1831~1879)을 들 수 있다. 이 두사람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패러데이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13세부터 책을 제본하는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적은 봉급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구를 구입하여 실험을 했으며, 유명한 과학자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과학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마침내 데이비(Davy, 1778~1829)의 배려로 22세에 왕립연구소의 실험실 조수가 되었으며, 25세에 처음으로 생석회분석에 관한 논문을 썼다.
반면 맥스웰은 스코틀랜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14세에 이미 계란형곡선의 작도법을 고안하여 에딘버러왕립학회에 투고했으며, 24세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원이 되었고, 29세에는 킹스칼리지의 물리학교수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패러데이는 실험화학상의 연구에 종사하여 양적인 연구보다는 질적인 연구에 뛰어났으며, 맥스웰은 기계적 모델을 이용하여 전자장을 수학적으로 이론화할 수 있었다. 이들 두 거인의 과학적 업적을 살펴 19세기 전자기학의 모습을 그려 본다.
전류의 유도작용 발견한 패러데이
1820년에 에르스테드(Oersted, 1777~1851)가 전류의 자기효과를 발견하자 유럽의 다른 학자들처럼 패러데이도 전류가 다른 전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패러데이는 우선 정전기가 정전유도를, 자석이 자기유도를, 전류가 전기유도를 일으키고 있음에 주목하고 전류의 변화에 따른 전류의 유도를 구하려고 노력했다. 구리선에 실을 감아 절연하고, 이것을 나무막대나 철고리에 감아 두개의 코일을 만들고 볼타의 전지와 검류계를 사용하여 많은 실험을 했다.
패러데이는 자신이 만든 코일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7년동안이나 실험을 한 후에야 비로소 전류의 유도작용을 발견했다. 결국 패러데이는 전지와 코일을 접속하거나 끊을 때 검류계가 약하게 흔들렸으며, 접속할 때 검류계가 흔들리는 방향과 끊을 때 흔들리는 방향이 서로 반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의 다른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패러데이도 계속 흐르고 있는 전류에 의한 전류의 유도작용을 구했기 때문에 검류계가 순간적으로 약하게 흔들리는 현상 속에 전류의 유도작용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진리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실천적 재능이 뛰어났던 패러데이였기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전자유도 현상이 사실상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이러한 판단이 패러데이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다.
그는 전류의 전자유도 현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 한쪽 코일을 흐르는 전류가 변할 때, 다른 쪽 코일에 전류가 유도된다. ② 한쪽 코일에 정상적으로 전류가 흐르도록 한 후 두개의 코일을 상대적으로 운동시켜도 다른 코일에 전류가 유도된다. ③ 자석을 코일에 대하여 움직여도 코일에 전류가 유도된다.
빛은 전자파?
전기분해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하여 전기화학의 기초를 다졌던 데이비와 함께 10년 이상을 연구한 패러데이는 1833년에 '액체가 응고하면 전류가 통하지 않게 된다'는 법칙을 발견했다. 이어서 이듬해(1834년)에는 유명한 전기분해의 법칙(전류의 분해작용은 전기량에 비례하며 전해질의 농도나 전극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는다)을 공표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패러데이는 전해질이 고체로 될 때 (정전)유도가 발생하는 현상에 주목하여, 유도와 매질의 입자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매질을 통해 유도가 어떻게 전달되는가를 탐구했다. 패러데이는 유도작용이 서로 가까이 접하고 있는 입자와 관계하며, 그들이 계속 이어져 있기 때문에 힘이 멀리 떨어진 곳까지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정전)유도의 힘이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전기력선'을 창안해냈고, 힘을 전달하는 '역선'(line of force)이라는 개념도 처음 사용하였다.
한걸음 더 나아가 패러데이는 빛도 근본적으로 전기나 자기와 같은 역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맥스웰이 빛은 전자파라고 예언하기 이전에 이미 패러레이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패러데이는 빛이 강한 자장 속을 지날 때 편광면이 회전한다는 '패러데이 효과'를 1845년에 발견했기 때문에 자기의 영향을 받는 빛도 역선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러한 역선을 수학적으로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세기나 크기로 나타낼 수 없다면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었으므로, 패러데이는 역관(tube of force)이라는 또다른 개념을 창안하였다. 오늘날에는 이것을 속(flux)이라고 부르는데, 광속 자속 전속 등이 이것의 좋은 예다. 그는 역선이 역관을 통과하며 역관에서의 역선밀도가 그 점에서의 자기유도(또는 정전유도)의 크기라고 했다.
자기력을 수학적으로 풀다
오늘날에 와서 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등 수많은 산업기기의 근본 원리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자유도의 법칙은 19세기 과학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패러데이 자신이 전자 유도의 법칙을 수학적인 원리로 설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러데이의 생각에 주목하고 있었던 한 물리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톰슨(Thomson, Sir William, 1824~1907)이었다. 톰슨은 모든 물리현상을 역학적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케임브리지대학의 후배인 맥스웰에게 패러데이의 역선을 수학적으로 나타내도록 제안했다. 톰슨의 제의를 받아 들인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발표한 전기와 자기에 대한 글들을 연구하여 1856년에 제1논문으로 일컬어지는 '패러데이의 역선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패러데이가 창안한 역선의 개념으로 쿨롱의 법칙을 검토한 맥스웰은 두 전하 사이의 힘을 전하와 역선밀도의 곱으로 나타냈다. 또한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생각한 역선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기 편리한 압축되지 않는 유체로 생각했다. 이러한 유체의 속도를 전기력(또는 자기력)의 세기(역선밀도)로 보고, 유체가 흐르는 방향(유선의 방향)을 전기력(또는 자기력)의 방향(역선방향)으로 보았다. 즉 공기중에 플러스(+) 전하와 마이너스(-) 전하가 있다고 할 때, 플러스의 전하로부터 유체가 역관 속을 나와 마이너스의 전하를 향해 흐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패러데이의 역선 개념으로는 그의 전자유도법칙을 수학적으로 나타내기가 쉽지 않았다. 전기력선과 자기력선 사이의 상관관계를 풀지 않으면 전자유도의 법칙을 해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 1논문을 발표한 후 5년 이상이 지난 1861년 맥스웰은 제 2논문으로 불리는 '물리학적 역선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이 글에서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고안한 역관을 돌게 하여 이 과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자력선을 자력관으로 나타냈으며, 가늘고 긴 자력관이 축을 중심으로 축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자력관의 회전속도를 자기력으로 표시했다. 자기력을 수학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작은 회전입자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발견한 전자유도 현상을 회전하는 자력관의 모델로 나타내려고 노력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자력관의 회전방향이었다. 그는 자력관 사이에 입자가 있다고 가정하여 자력관과 함께 돌도록 했다. 서로 이웃하고 있는 자력관이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기 위해서는 자력관 사이에 톱니바퀴 모양의 작은 회전입자(idle gear)를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서로 접하고 있는 자력선이 부드럽게 돌기 위해서는 반대방향으로 돌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합해진 회전 속도와 방향이 상쇄되어 전체적으로 0(제로) 상태가 된다. 따라서 자력관이 원활하게 회전하려면 자력관과 자력관 사이에 톱니바퀴 또는 베어링과 같은 작은 입자를 가정했다.
맥스웰은 이 작은 입자가 전기를 띠고 있으며, 회전하는 자력관의 회전속도를 변화시킬 때 일어나는 작은 입자의 이동을 전류라고 생각했다. 다시말하면 회전하고 있는 자력관의 회전속도(자기력)가 변화하면 전류가 발생한다는 '전자유도의 원리'를 이렇게 설명했던 것이다. 맥스웰이 가정한 이 작은 입자가 오늘날 전류의 흐름을 결정하고 있는 전자임을 맥스웰은 알지 못했다.
전자는 35년후에 톰슨(Thomsom Joseph John, 1856~1940)이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회전하는 자력관의 속도를 변화시키면 전류가 발생한다는 전자유도의 현상이 해명되었다. 그런데 자력관 사이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입자가 다시 자력관의 회전 속도를 변화시켜서 다시 입자를 움직이도록 하여 차례로 전해지면서 공간으로 물결이 퍼지듯 사방으로 퍼져나간다는 생각이 바로 맥스웰의 전자파 개념이다.
맥스웰은 자신의 연구를 진공으로까지 확장시키기 위해 전자유도 법칙을 설명하면서 다루었던 자력관의 회전모델을 버리고, 오로지 전자기의 물리적 현상과 전기장 및 자기장의 동적인 관계만을 수학적으로 나타냈다. 이것이 바로 맥스웰의 제 3논문인 '전자장의 동력학적 이론'이다. 세번째의 논문에서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의 크기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방향은 항상 전달해가는 방향에 수직인 평면 위에서 일어난다고 했으며, 이러한 파를 전자기파(전파)라고 불렀다. 그러데 빛이 편광을 일으키고, 강한 자장에 의해서 편광면이 회전한다는 실험 결과와 결부시켜 맥스웰은 빛이 전자파라고 예언했다.
빛을 전자파라고 한다면 매질은 어떻게 될 것인가, 1873에 발표한 '전기와 자기에 관한 논문'에서 맥스웰은 "에테르(ether)의 관념(idea)을 극복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한계를 잘 인식한 맥스웰은 뒤에 오는 학자들에게 중요한 과제를 남겼던 것이다.
쿨롱의 법칙(Coulomb's law)
1785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쿨롱이 비틀림저울을 사용한 실험을 통해 발견한 법칙. 균일한 매질속에 떨어져 정지하고 있는 두개의 점전하(點電荷)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이 점들을 잇는 직선에 따라 작용하고 그 힘의 크기는 전하의 곱에 비례하며 전하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 자기장속에서도 쿨롱의 법칙은 전기장과 마찬가지로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