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건 소음 테러였다.
9월이라지만 여름 내내 땅 위에 달라붙은 더위는 모아의 동네에서 도무지 몸을 떼지 않았다. 에어컨을 켤 명분은 더 이상 서지 않는데 그렇다고 시원하지도 않고, 구축 아파트의 복도와 베란다 문을 죄 활짝 열어야 바람이 불어 겨우 살 만해지는 나날. 그 맞바람 덕인지, 30년 넘게 무성히 자란 나무들 덕인지, 그저 너른 면적 덕이었는지, 모아네 구축 아파트는 재건축된 옆 단지보다야 일단 시원했다. 특히 모아네 7동은 다른 동들과도 조금 떨어져 세밑천을 내려다보는 위치였다. 더운 세상에서 등을 돌린 양. 하지만 이 소음이(천변의 담배 냄새와 함께) 초가을의 복병이었다.
사람 발소리도, 가구를 끄는 소리도, 악기 소리도 아니었다. 소리는 어김없이 낮은 꾸륵꾸륵으로 시작했다. 가볍게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가 밥솥의 밥 익는 소리 같은 다른 소음에 쉽게 섞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꾸륵꾸륵보다 꿀꿀에 가까운 거대한 합창이 됐고 끼익끼익하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됐다가(장롱을 끄는 소리 같기도 했다) 끄드득 꾸악꾸악하는 이를 가는 소리로 잦아들었다. 정말 이갈이 소리라면 그 입은 아파트를 삼킬 정도의 크기일 것이다. 네 번째 단계에 이르면 그야말로 침대가 아닌 뭔가의 입속에 누운 듯했다. 무언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 타다닥 가벼운 발소리, 날개를 치는 듯한 소리가 뒤를 이었고, 조금 잠이 들라치면 다시 지치지도 않는 꾸륵꾸륵 끼이익 끄드득의 리듬이 모아의 세상을 가득 채웠다. 이상하게 매미 소리까지 평소의 두 배는 크고 깊게 들려서 도무지 잘 수가 없었다.
지난밤에도 모아는 이 소리들 속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총기 난사 예고 때문에, 모아네 세밑고등학교는 1학기에 이어 2학기도 원격 수업 중이었다. 총기 난사는 이제 다른 나라 일이 아니고, 서울에서도 꽤 자주 일어났다. 협박범은 하필 세밑고에서 난사하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 전 학기도 제3 감염병에 따른 휴교였던 까닭에 모아는 대면수업을 받은 기억이 가물가물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원격 수업 소식에 기뻐한 것이 지난주인데, 이제 모아는 차라리 학교에 가고 싶어졌다. 가장 이상한 건 모아보다 훨씬 예민한 엄마가 이 소리에도 잘만 잔다는 사실이었다.
“얘, 왜 이렇게 안 일어난대? 학교 안 간다고 아예 뻗었네, 뻗었어.” 출근 복장에 시원한 향수까지 뿌린 엄마가 모아 방문을 열고 말했다. 모아는 벌써 뜨거운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밤새 시달린 소음에 대해 웅얼댔다.
“새 소리? 꿈꿨니? 무슨 얘기야. 정신 차리고 일어나! 엄마 간다.”
집 안은 어두웠다. 모아는 열린 현관문을 얼떨떨한 채로 쳐다보았다.
모아는 분노의 힘으로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슬리퍼를 끌며 복도에 나온 참이었다. 이미 해는 서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열기는 좀처럼 식을 기미가 없다. 또 애매하게 후덥지근한 밤이 될 것 같았다. 화상 수업을 틀어둔 모니터 앞에서, 반찬을 꺼내다 만 식탁 위에서, 가만히 있어도 정수리에 땀이 맺히는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잔 직후였지만, 잔 것 같지도 않았다. 내내 잠을 방해한 꾸륵꾸륵 끼이익 소리만 아직도 맴돌았다.
소리의 진원지는 508호가 분명했다. 복도로 나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모아는 몇 번 초인종을 울리고 문을 두드렸다. 초인종은 배터리가 다 됐는지 울리지 않았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은퇴하신 선생님 부부가 살다가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이다. 현관문은 꼼짝도 하지 않고, 꾸악꾸악에 가까운 소리만 계속 들렸다. 모아가 문을 두드린 뒤 더 커진 것 같기도 했다. 안에 누가 있더라도 이 소음 때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을 판이다. 모아는 홧김에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문이 그대로 열리고, 안에서 들리던 소리가 밖으로 쏟아지듯 커졌다. 모아는 흠칫 놀라, 자기가 낸 소리도 아닌데 주변을 살폈다. 복도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508호 현관문은 애초에 잠겨 있지 않았다. 방충망은 친 상태이니 분명히 안에 누가 있을 텐데, 아무리 방충망을 흔들어대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방충망 너머의 어둠이 꼼짝하지 않고 모아를 마주 보았다. 쏟아지던 소리도 어느새 고요해졌다.
방충망은 안에서 잠겼는지 잡아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망 한가운데에 큰 구멍이 나 있었다. 만화로 그린 듯이 커다랗고 불규칙한 원형으로 망이 뚫렸고, 그 원의 가장자리도 군데군데 찢기고 올이 뜯겨 나갔다.
모아는 쭈그린 채로 이 구멍을 한참 살폈다. 머리를 구멍에 집어넣은 건 순수한 호기심에서였다. 구멍은 모아의 몸보다 큰 것 같기도 작은 것 같기도 했다. 모아는 한 손으로 현관 가장자리를 짚고 몸을 지탱하며 상체를 디밀었다. 자신감이 생겨서 왼발을 과감히 구멍으로 집어넣었지만 그 덕에 동작이 전부 엉켰다. 이 다음에 팔을 떼야 할지 다리를 하나 더 넣기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침 튀어나온 철사에 걸린 모아의 티셔츠 끝이 방충망을 강하게 잡아당겼고, 거짓말처럼 방충망이 밀렸다. 모아는 방충망도 처음부터 잠겨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구멍 속으로 쿠당탕 쏟아졌다.
엎어진 모아가 조심조심 고개를 들었다. 모아 집과 똑같은 구조의, 리모델링하지 않은 나무 바닥. 현관은 거실과 부엌으로 바로 열려 있고 안방 문도 열려 있었다. 뒤를 돌아본 집과 눈이 마주친 듯한 이상한 느낌. 넘어진 부엌 의자가 굴러다녔고 거실의 커다란 화분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밟고 다녔는지 흙이 온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빛이 들어올 틈도 없이 화분으로 가득 찬 베란다도 이미 엉망이었다.
그리고 어두운 붉은 색이 모아의 시야를 가렸다. 냄새가 쏟아졌다. 비 온 다음 흙냄새와 동물원에서 맡았던 냄새에 오래된 이불 냄새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모아는 자기도 모르게 코끝을 킁킁댔다. 꼬릿한데 싫지는 않은 냄새.
“꾸응.”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아주 가까웠다. 어느새 모아 곁에 다가온 부리가 궁금한 듯이 그를 들여다보았다. 부리가 거의 모아의 뺨을 찍을 정도로 붙었다. 부리 뒤로 까만 단추 같은 눈과 털에 덮인 작은 머리가 보였다. 깊은 붉은색은 그 머리의 빛깔이었다. 아니, 이 머리 너머 베란다 화분들을 기어이 비집고 들어오는 오후 네 시의 색이다. 모아는 눈을 깜빡인다. 모아 눈앞에 부리 달린 머리가 있었는데, 화분으로 가득 찬 베란다도 그대로 보였다. 눈앞의 존재가 투명하기라도 한 것처럼.
더 잘 보려는 듯이 새는 오른쪽 얼굴과 왼쪽 얼굴을 번갈아 들이밀었다. 두 눈이 번갈아 빛나고, 머리와 부리가 모아의 목에 부벼졌다. 이게 무슨 일인지 얼떨떨해진 모아가 바닥에 손을 짚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기 전에, 새가 머리를 푸스스 흔들며 모아의 손과 다리 사이로 치고 들어왔다. 모아는 엉거주춤한 채로 품속의 새를 자기도 모르게 쓰다듬었다.
“꾸응.” 동그란 머리의 새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어느새 모아는 혼자가 아니었다. 주변은 온통 새 떼였다. 납작한 세 갈퀴 발에 둥글고 단단한 등과 커다란 머리, 그리고 몸에 붙은 작은 날개들이 모아를 둘러쌌다.
꾸륵꾸륵 낮은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새들이 한 마리씩 돌아가며 “꾸륵”이라고 말했다. 자기 차례가 될 때마다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들처럼 고개를 들었다. 삐융삐융 소리가 어울릴 듯한 동그란 몸통이 내는 소리는 그보다 훨씬 낮았다. 마치 공룡들이 냈을 것만 같은 소리였다.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조용하던 과거에, 지금은 시간 속에 몸을 숨긴 여러 식물들 사이에서 울렸을 소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였다. 어차피 모아가 아는 새보다 모르는 새가 훨씬 많았다. 모아는 비둘기, 참새, 가끔 세밑숲 생태호수에 가서 보는 오리 정도만 익숙했다. 그마저도 참새는 몇 년째 보지 못한 터였다. 이제야 생각해 보면.
모아를 둘러싼 새떼가 각기 꾸륵거리는 동안 나머지 새들은 부엌 찬장 문 앞에서 꾸륵거린다. 특히 한 찬장에 꾸륵 소리가 집중됐다. 모아의 품속에서 꾸응거리던 녀석이 제 머리를 조금 낮춰서 모아의 다리를 밀었다.
찬장 문은 잠겨 있었다. 모아는 주변 서랍을 뒤졌다. 서랍 하나를 열 때마다 까만 눈알들과 날갯짓이 따라왔다. 제일 먼저 들여다보려고 목을 길게 뻗는 새들도 있었다. 모아의 눈에 들어온 어떤 새들은 목이 짧고, 다른 새들은 목을 제법 길게 폈다. 목이 짧은 새들이 오리나 뚱뚱한 비둘기 같다면, 긴 새들은 제법 타조 비슷했다. 몸을 붙이는 새들의 냄새에 코가 먹먹해졌다.
열쇠를 찾아내 찬장 문을 열자, 마대 자루에 모이 같은 것이 가득했다. 모이 자루를 알아본 것과 동시에 새떼가 모아와 찬장 사이 좁은 틈으로 밀려들었다.
“잠깐, 잠깐.” 모아는 저도 모르게 새들에게 사람 말을 했다. 모아 동네에도 캣맘이란 사람들이 있었다. 직장인처럼 보이는 언니와 모아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 한 분이었다. 두 사람이 동네 구석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걸 볼 때마다 알아듣지도 못할 동물에게 왜 말까지 할까, 시니컬한 생각을 했었다. 모아 반 애들도 동물들이 인간 말을 알아듣는 듯한 숏츠는 전부 편집됐거나 AI 영상이라고, 믿는 쪽이 바보라고 했는데 왜 캣맘들이 고양이들에게 말을 거는지 모아는 드디어 알 듯했다.
마대 자루를 힘껏 들어 바닥에 쏟아주려다 모아는 더 좋은 생각을 해냈다. 부엌 여기저기에 쌓인 그릇들에 모이를 퍼 담아 바닥에 곳곳에 나눠줬다.
새들은 그릇을 따라 흩어졌지만 모아가 부엌에서 빠져나갈 길까지 내주지는 않았다. 모아는 어쩔 수 없이 좁은 틈에 쪼그려 앉아 정체 모를 새들이 모이 먹는 모습을 구경했다. 딱딱 쪼는 부리 소리와 가끔 날개 치는 소리만 들렸다. 모아를 며칠 내내 괴롭힌 꾸륵 소리도 이렇게 멈췄다.
배가 차며 새의 동그란 몸과 더 동그란 머리가, 살과 털과 마음으로 가득한 몸이 조금씩 기쁨으로 차올랐다. 모아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린 다리마저 잊을 정도였다.
새들은 점차 편안해졌다. 몇몇은 종종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몇몇은 다시(하지만 전보다 훨씬 더 작게) 꾸륵댔고, 몇몇은 그저 먹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뭔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는 것도 같았다. 타조 같은 새들도 몸통에 몸을 접어 넣고 쉬기 시작했다.
새들의 몸은 더없이 단단하면서도 순간순간 베란다를 파고드는 긴 빛을 완전히 투과시켰고, 유령이나 동굴 벽에 일렁이는 그림자 같기도 했다. 모아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면 단단한 몸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모아는 아직 제 다리 옆에 있는 새들의 머리와 등을 그리고 목을 쓰다듬었다. 새들은 가끔 뒤척일 때를 빼고는 고양이처럼 가만히 있었다. AI 영상에서 본 것처럼.
또 꾸륵거리는 소리 속에서 눈을 떴다. 옆집에 잠깐 다녀왔을 뿐인데 왜 그리 지쳤는지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모아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쓰러진 듯했다.
눈을 뜨니 꿈결에 양동이로 물 끼얹는 소리를 들은 기억만 남았다. 세끝구 세끝동 세끝아파트의 이상한 전통이었다. 저녁까지 더위가 가라앉지 않는 여름이면, 저층 창문을 닫으라는 방송에 이어서 경비 아저씨와 환경미화원, 그리고 동장 같은 사람들이 모여 아파트에 물을 끼얹었다. 엄마는 지나갈 때마다 “아니, 열심히 하시는 건 좋은데 저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나…”라고 되뇌었다.
저녁이 다 되었는데 잔열은 여전히 세상을 감싸고 있었다. 휴대폰에는 오늘 늦으니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 먹으라는 엄마의 문자가 도착했다. 하지만 꾸륵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옆집을 들여다봤지만 안은 고요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모아는 아파트 앞까지 내려가 봤지만 그곳도 아니고, 소리는 더 높은 곳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옥상 문은 꽉 닫혀 있었다. 너무 뻑뻑해서 잠긴 것도 같았지만 모아는 아까의 실수를 되새기며 포기하지 않고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덜컹 열린 문 밖의 옥상은 느닷없이 추웠다. 이 여름 동안 더위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 기억 속에서 찾아온 듯한 추위였다. 지금처럼 덥지 않았던 조금 더 옛날의 세상에서.
빛에 소리가 있을까. 혹 있다면 바람의 소리일 것이다. 포도알처럼 빛이 맺힌 도시의 밤에 검은 바람이 날리는 소리. 귀가 따가울 정도로 바람이 들렸고, 바람 소리에는 사람의 외침이 섞여 있었다.
옥상에 또 하나의 분주한 세상이 펼쳐졌다. 전선이 여기저기 원을 그리며 흩어졌고 사람들이 그 사이를 걸어 다녔다. 처음의 쇼크가 지나가자, 실은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매일 같은 곳에서만 만나다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마주치자 알아보지 못한 것뿐이다. 경비 아저씨부터 매일 7동 앞에서 마주치는 할머니, 눈에 익은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까지. 모아가 제대로 본 것이라면, 엄마가 다니는 요가원의 젊은 요가 선생님도 네모난 상자에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 몸을 숙이고 있었다.
레고로 만든 듯한 기묘하고 낯익은 세상의 주민들은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해 있었다. 흩어진 전선의 끝은 스위치가 많이 달린 상자로 연결됐다. 처음에 모아가 바람 소리라고 생각한 소리의 일부는 상자들에서 들리는 위이잉 소리였다. 상자에서 뻗어 나온 전선 중 얼마간은 한강 밑 농구장을 생각나게 하는 야외용 조명들에 연결됐고, 나머지는 거대한 공업용 선풍기로 연결됐다. 옥상에 가득한 바람의 정체였다.
선풍기는 모아 눈에 보이는 것만 8대였지만 일부만 돌아가고 있었다. 멈춘 선풍기마다 사람들이 붙어서 뭔가를 조작 중이었다. 항상 선반 앞에 조용히 서 있던 세끝약국 약사 아저씨가 자기 키만 한 선풍기 앞에 앉은 채로 땀을 훔쳤다. 아저씨 머리 뒤로는 서울의 반짝이는 어둠이 펼쳐졌다.
하지만 거대한 선풍기도, 서울 밤의 어둠도,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머리에 비하면 미니어처 같았다. 옥상의 갑판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굽어보는 거대한 머리. 긴 속눈썹이 반쯤 덮은 거대한 눈동자. 역시 거대한 콧구멍. 끝이 갈라진 혀. 긴 주둥이가 살짝 벌어져서 입김이 새어 나왔다. 차가운 수증기 같은 입김이었다.
거대한 머리가 또렷이 보이는데, 그 머리 너머 야경까지 머리를 뚫다시피 고스란히 보여서(말도 안 되지만 정말 그랬다), 거대한 도마뱀 같은 머리에 알알이 도시의 빛이 별자리처럼 새겨졌다. 세끝아파트 단지는 마치 비밀정원처럼 자신보다 훨씬 크고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신축 아파트들의 초록색, 분홍색 옥상 조명이 주변을 환히 비추었다. 그중 하나는 이번 여름만 해도 에어컨이 없는 공간에서 청소하시던 분이 두 분이나 열사병으로 실려 갔다는 사바티엘팰리스였다. 사바티엘팰리스 너머로는 더바이그룹이 투자했다는 40층도 넘는 대단지 주상복합 건물이 한창 올라가는 중이었다.
도마뱀의 둥근 뒤통수는 작은 뿔들이 돋아나 있었다. 혹은 더듬이나 수염인지도 몰랐다. 담쟁이덩굴 같은 것들이 밤하늘을 연처럼 가로지르며 조용히 날렸다.
모아는 손에 휴대폰을 쥔 채, 한 척의 배와 같은 옥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아가씨! 비켜요! 저쪽!”
모아는 자신이 옥상 입구를 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옥상 문으로 거대한 검은 물체가 들어섰다. 세 명의 남자가 좁은 문틈으로 몸과 짐을 구겨 넣었다. 노끈과 박스 조각으로 꽁꽁 싸맨 전자 피아노였다.
땀으로 윗옷이 다 젖은 채였다. 한 사람은 고양이 물그릇을 잊지 않고 놓아 주는 친절한 옆 동 경비 아저씨였다. 다른 사람은 항상 뒷짐을 지고 꼿꼿이 걷는 아저씨(1102호라고 했나, 엄마 말에 따르면 퇴역군인이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모자를 깊이 눌러쓴 모르는 남자였다.
모아는 그들을 피해 물러서다 뭔가 물컹한 걸 밟았다. 콰득과 멀컹 사이의 기분 나쁜 소리였다. 계단이 있는 줄 모르고 발걸음을 내딛을 때와 레고 조각을 밟을 때의 중간 느낌이었다. 지금 밟은 레고가 이례적으로 큰 것이 문제였다.
어딘지 서늘했다. 시선을 느낀 모아가 반쯤 뒤돌아본 채 얼어붙었다.
옥상의 모든 것이 자리를 바꾼 것만 같았다. 긴 주둥이가 천천히 땅에서 떨어졌다. 머리만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높아질지 계속 솟구치던 머리가 옆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리고 발 하나가 움직였다. 옥상 난간에 걸쳤던 작은 앞발이 더듬거리며 옥상 안을 짚었다. 작다고 해도 머리에 비해 작은 것이지 공업용 선풍기만 했다. 그 한 번의 움직임에 선풍기 한 대가 쓰러지고 한 대는 날아갔다.
“머리 숙여!” 누군가 말했고, 피아노를 옮기던 사람들도 짐을 내려놓고 몸을 낮추었다. 발밑에서 무언가 다시 한 번 꿈틀했다. 거대한 머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모아의 시야 끝에 발과 바닥이 간신히 들어왔다. 모아가 밟은 것은 또 하나의 앞발이다. 세 개의 둥근 발톱이 달려 있고, 완전히 투명해서 초록색 옥상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앞발.
모아를 진정시키듯 누군가의 손길이 어깨에 닿았다. 손은 모아의 왼팔을 옆으로 아주 살짝 당겼다.
“응. 천천히. 왼발부터. 뒤에 손 짚고.” 모아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손을 왼쪽 뒤로 뻗어 몸을 지탱했다. 도마뱀의 몸은 물컹하고 차가웠다. 흠칫했다.
“괜찮아.” 모아는 팔을 잡은 목소리의 지시를 따랐다. 거대한 도마뱀의 꿈틀거리는 몸에 자신의 무게를 기대고 한 걸음씩 도마뱀의 앞발 아래로 내려왔다. 물 같은 몸은 의외로 단단하고 조금씩 꿈틀댔다. 수영장 소독약 냄새가 났다.
“응. 그렇지, 그렇지. 오케이, 됐다.” 친절한 목소리였다. 어릴 때 다닌 소아과의 할머니 선생님이 떠오르는, 이상하게 차분한 친절함.
“잠깐만.” 어느새 모아의 몸에는 아주 가늘고 투명한 넝쿨 같은 것이 성기게 엉켰다. 모르는 사람은 모아의 몸에서 도마뱀 더듬이를 풀어냈다. 어릴 때 엄마가 코트를 입혀줄 때처럼, 모아는 저도 모르게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눈이 마주쳤다. 머리를 묶은 젊은 남자다. 모아의 또래 같진 않았는데, 또 완전히 아저씨 같지도 않았다.
“읏차. 다 됐다.” 모아가 판단하기 전에 그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모아의 어깨에 붙은 더듬이를 풀어내고는 도마뱀의 거대한 몸을 톡톡 쳤다.
도마뱀은 눈을 몇 번 꿈뻑였다. 그리고 머리를 천천히 내렸다. 옥상 굴뚝 옆 원래 있던 자리, 모아가 밟았던 앞발 위로. 남자가 모아의 옷깃을 조금 더 잡아당겼다.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이번에는 모아의 발이 도마뱀의 턱에 깔렸을 것이다. 거의 동시에 거대한 몸 밑에서 쪼르르 작고 동그란 것이 굴러 나왔다. 아니 달려 나왔다. 낮에 508호에서 본 새였다.
거대한 몸에 달린 다른 앞발은 옥상을 몇 번 더 더듬댔다. 버려진 종이박스 몇 개를 짓밟고 전선에 한 번 움찔하더니 난간에 걸친 제자리로 돌아갔다. 새는 기다린 듯이 도마뱀의 머리와 앞발 사이로 향했다. 거기서 도마뱀의 말랑한 입 부분을 쪼기 시작했다.
머리를 가리고 주변에 엎드렸던 사람들이 하나씩 몸을 일으켰다.
“노아 씨, 괜찮아요?” “요즘 더위 때문인지 이무기들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빛 속에 살고 있을까.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날이 많은데 오늘은 달랐다. 모아는 조금 무서울 정도로 실감했다. 도마뱀, 아니, 이무기의 머리는 옥상의 3분의 1을 차지한 채 가만히 있었다. 짧은 앞발 하나로 팔베개를 하고, 다른 팔로는 난간을 움켜잡았다. 몸의 일부는 옥상 난간을 감았고 나머지 부분은 난간 너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파트 전체를 감고 있다는데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머리도 어둠 속에 반쯤 가려진 채였다. 하지만 눈을 몇 번 깜빡이니 마커펜으로 스케치한 듯한 투명한 윤곽이 드러났다. 이무기의 투명한 머리에 도시의 빛이 죄 흩뿌려졌다. 빌딩 모양대로 별 무늬가 박혔거나, 도로 위로 흐르는 빛들이 이무기의 신경 세포로 빛나는 것 같았다.
옥상 여기저기에 물그릇과 풀 더미들이 있었다. 이무기가 머리를 어디에 대어도 먹기 편하게 놓인 것 같았다. 모아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보이다 말다 하므로 이 풀들도 특별한 ‘투명’ 풀 더미겠지. 모아는 지난 30분간 주워들은 말들로 눈앞의 상황을 꿰맞추는 중이었다.
이무기의 눈이 긴 눈썹 사이에서 가늘게 열리다 조금 닫히기를 거듭했다. 이무기는 주기적으로 얕게 꿈틀댔다.
땀샘이 있는 모아의 몸에도 더운 여름밤이었다. 아래쪽 세상과의 온도 차 탓에 잠시 잊었지만 이 옥상이 객관적으로 시원하지는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옥상에서는 어떤 싸움이 한창이었다. 이무기의 차가운 몸과 서울 밤을 집어삼키려는 무더위, 옥상마저 점령해 세끝아파트 단지에 내려앉으려는 더운 공기에 거대한 선풍기, 에어컨들이 맞서고 있었다.
에어컨과 조명 설치를 마친 사람들이 낮은 조명 아래에 흩어져 있다. 경비 아저씨와 모자 쓴 남자가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었고, 퇴역군인 아저씨는 담배가 그리운 듯이 난간 모퉁이에 기댔다.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는 규칙적으로 물수건을 짜서 이무기 턱에 대 주고, 분무기에 물을 넣어 칙칙 뿌렸다.
물수건은 이무기에 깔릴 뻔하고 혼이 빠진 모아에게 건넨 것과 같았다. 모아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 “407호 친구예요.” “아니, 이 친구도 눈이 있었어?” 같은 말들이 오간 뒤, 옥상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내려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어떻게 올라왔는지 캐묻지도 않았다. 그러려니 하는 듯이. 무슨 수건인지 목에 닿는 촉감이 눈물 날 정도로 섬세했다.
이무기 머리맡에는 아까의 새가 제 머리를 기댔다. 새가 이무기 콧구멍보다 작았다. 둘 곁에 한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부채를 부쳐 주었다. 체감 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지난달에도 매일 7동 앞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였다. 허공에 부채를 부치며 말을 거시는 걸 보고, 엄마는 모아에게 귓속말을 했다. 치매 아니신가 싶으니,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공손히 대하라고. 항상 엄마는 모아에게 인사만은 제대로 하고, 예의는 다른 애들보다 두 배로 갖추라고 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아빠가 없어서 그렇다는 소리 따위 듣지 않으려면 더더욱. 얼마 전 모아가 얼린 물병을 드렸을 때, 할머니는 활짝 웃었다.
하지만 치매는 무슨. 모아는 갑자기 많은 걸 이해한 느낌이 들었다. 이 동네에서 말이 되지 않던 것들. 미신처럼 아파트에 물을 끼얹는 사람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부채질. 오래된 수돗가에 칭칭 감긴 너무 긴 고무 호스. 고양이 것이라기에는 애매한 위치에 놓인 그릇들. 그 이유를.
이무기는 눈을 계속 가늘게 깜빡였다. 미미한 바람이 마음에 들거나 아무 것도 못 느끼겠다는 듯이. 하지만 그 눈동자는 확실히 한 사람을 쫓고 있었다. 옥상을 바쁘게 가로지르며 선풍기와 조명 세팅을 체크하는 사람이었다. 한 팔과 어깨 사이에 휴대폰을 끼고 전화를 거는 중이었다.
“네, 미희 씨. 구룩이랑 치즈가 둘 다 안 보인다고요. 어제부터 이상했다. 흠, 그것도 그렇네.” 친절한 목소리. 그가 걸친 체크무늬 남방이 어두운 바람처럼 날렸다.
그는 이무기 앞을 오갈 때마다 잘 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쓱쓱 이무기의 등을 만졌다. 그 가벼운 손길이 이무기는 어떤 조심스러운 손길보다 맘에 드는 듯했다. 아주 낮은 푸르릉 소리와 함께 수염이 흔들렸다.
전자 피아노도 설치를 마치고 조율 중인 듯했다. 작고 과묵한 약사 아저씨가 피아노 의자에 앉았고, 친절한 사람도 피아노 위에 몸을 기대고 아저씨와 의논했다.
띵. 기계 바람 소리와 진짜 바람 소리가 섞인 옥상에 첫 피아노 음이 울려 퍼지자 세상이 고요해졌다. 친절한 사람도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