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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인간만이 가진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자연계에는 현대의 정밀과학도 흉내내지 못할만큼 정교한 시계를 찬 생물이 많다.

사람이외의 동물이나 식물들도 시간의 흐름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해서 시간을 감지하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생물은 시간을 알고 있으며 또 알고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생체를 구성하는 세포나 세포를 만들고 있는 단백질과 같은 물질은 신기하게도 시간을 알아내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즉 생물체에는 시계같은 것이 있다는 얘기이다. 식물은 낮과 밤의 상대적 길이를 인식하여 꽃이피고, 잎은 규칙적으로 햇볕을 향해 움직인다. 또 가을을 알아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 새들도 시간을 알아서 아침이면 움직이고 밤이 되면 잠을 잔다. 한편 생물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나 고분자 물질도 시간을 인식한다. 체온, 혈압, 호흡, 맥박, 세포분열, 효소의 활성, 호르몬의 분비까지도 시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생물시계가 존재한다는 증거들

생물의 활동, 대사작용, 광합성, 생식형 등 생물이 가지고 있는 기본 기능은 하루를 주기로하여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이같은 현상을 일주기리듬(daily rhythm)이라고 부른다. 이런 일이 나타나는 까닭은 생물체에 시간을 인식하는 기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바다가에 사는 게를 예로 들어보자. 게의 체색변화와 활동은 하루를 주기로 변한다. 낮에는 조직속에 색소과립으로 있던 것이 외골격에 고루 퍼져 어두운 색을 띤다. 밤이 되면 색소과립들이 다시 뭉쳐 밝은 색으로 보이게 된다. 이 리듬은 24시간을 주기로하여 하나의 정점을 가지는 곡선으로 나타난다. 이에 반해 게의 활동리듬은 복잡하여 3정점을 가지는 곡선으로 나타난다(그림참조).

한편 식물에 있어서도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돌나무과에 속하는 카랑코(Kalanchoe" fed-tschenkoi)라는 식물의 잎속에 포함되어 있는 질산환원효소의 활성도는 24시간을 주기로 하여 일정점을 나타내는 일주기리듬을 갖는다. 카랑코는 신기하게도 늘 낮의 상태를 유지시켜 주거나(광처리), 또는 항상 캄캄하게 빛을 차단하여 주어도(암처리) 질산환원효소의 일주기 리듬은 계속 된다(그림참조). 이런 사실은 생물이 자기 몸속에 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게 한다.

생물의 일주기리듬을 연구하면 또하나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주기리듬을 가진 생물을 실험실에 가져와 빛을 밤낮없이 일정하게 비추어 주고 온도도 일정하게 유지해 주어도 리듬은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실험 결과는 빛과 온도에 의한 밤낮의 주기적 변화가 일주기리듬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아직 일주기리듬의 원인에 관해서는 연구가 극히 미비한 실정이다.

(그림 1) 게의 변색리듬( …선)과 활동리듬(-선)


●―인위적인 조작을 가한 후에는…

모든 생물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생물시계(bioclock)를 가지고 있다. 꿀벌이 외계와 차단된 상태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능력은 생물시계의 가능성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꿀벌은 일정한 빛과 일정한 온도조건하에서 매일같이 지정된 시각, 지정된 먹이장소에 모인다. 현재 이같은 행동을 하는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꿀벌은 시간을 감지하는 어떤 기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어 진다.

생물의 개체에서 일어나는 일주기리듬은 실험실의 일정한 조건하에서 관찰하면 2~3일간 유지되다가 소멸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환경에서도 일생동안 고유의 리듬을 유지하는 생물도 있다. 실험실의 일정한 조건하에서 유지되는 리듬은 정점(頂點)에 다소의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경우 정상리듬보다 약간 짧거나 길게 나타나는데, 변화의 범위는 20%이하이다.

이점에 착안하여 서캐디언(circadian)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여기서 circa는 영어로 about(약)를 뜻하며 dian은 day(하루)라는 의미다. 둘을 합치면 about a day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자연조건하에서 정확히 나타나는 일주기리듬과 실험실이라는 비자연적 조건하에서 조성되는 서캐디언은 서로 다름이 분명해진다. 자연상태에서는 주야의 길이에 따라 주기가 결정되므로 리듬은 정확히 24시간 주기이다. 반면 비자연상태에서는 24시간±알파(α)의 주기를 갖는다. 그러나 서캐디언이 일주기리듬과 같은 뜻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생물의 리듬현상은 명암주기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생물이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하였거나 이식되었을 때, 생물의 리듬은 재빨리 그 지역에 알맞도록 적응된다. 만일 이러한 생물시계가 없었다면 생물은 일생동안 단일지역에서만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림2)키링코의 앞에 나타나는 질산환원효소의 일주일 리듬과 개일리듬


●―온도보다 빛의 영향이 절대적

실험실에서 빛과 온도 등의 환경조건을 일정하게 조절하였을 때 24시간 일주기의 변화를 가져오는 생물리듬을 개일리듬(circardian rhythm)이라고 한다. 개일의 길이는 생물에게 비춰지는 일정한 빛의 강도와 함수관계가 있다. 온도의 높낮이는 식물과 냉혈동물의 개일리듬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나 빛보다는 그 영향력이 약하다.

생물리듬의 주기길이가 온도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사실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생물리듬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은 화학반응에 의존하며, 화학반응은 온도의 양향을 많이 받는데도.

대개 온도가 10℃ 상승함에 따라 화학반응속도는 2배, 3배 때로는 4배로 증가한다. 그러므로 온도가 10℃ 상승하여 생물리듬의 주기의 길이가 반으로 감소하면, 생물시계의 속도는 적어도 2배 증가해야 한다.

생물리듬에 대한 온도의 증가실험을 한결과를 주목해 보자. 대체로 온도가 높아지면 주기가 짧아져 생물시계속도는 1백~4백%정도 증가한다. 하지만 온도에 따른 변화의 폭이 10%이하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를 온도에 대한 무반응적인 결과로 보고 생물리듬은 비교적 온도독립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다. 즉 주기와 온도사이에는 주목할만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그림 3) 초파리의 생물학적리듬에 대한 온도의 역할

(그림 4) 초파리의 6개처리구에 있어서 고/저온도 사이클의 영향(28℃-12시간을 20℃-12시간으로 변환처리)


●―생물시계냐? 생물온도계냐?

생물시계의 속도가 온도차에 의해 변화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는 생물시계로서 작용 하는 게 아니라 생물온도계로서 작용한다고 보아야 한다. 온도의 변화는 생물시계의 속도변화에 대한 조절의 신호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온도가 생물시계의 속도를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있다. 실험실내에서 다른 환경조건이 일정할 때 식물이나 냉혈동물에 있어서는 온도가 리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좋은 예로 초파리의 우화(羽化)리듬을 들 수 있다.

초파리의 우화(번데기가 날개있는 벌레로 변하는 현상)는 번데기상태의 말기에 일어난다. 자연상태에서는 온도가 서늘하고 공기가 습한 새벽녘에 우화가 일어난다. 초파리의 학문명인 드로소필라(Drosophila)를 풀면 이슬사랑(love of dew)이 되는 것도 초파리가 습기를 좋아하는데서 연유한다. 그렇다면 왜 초파리는 습한 날을 택해 우화를 할까?

어린 초파리의 연약한 날개가 완전히 펴지기도 전에 마른다면 외골격의 압박으로 인해 날개없는 초파리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초파리에겐 축축한 환경이 더없이 중요한 것이다.

초파리의 우화리듬은 생물시계의 조절을 받으며, 일정한 조건에서 초파리의 군집이 존재하도록 한다. 실험적으로 초파리를 28℃―12시간간격에서 20℃―12시간간격으로 온도주기를 변화시켜 배양하였다. 그 결과 우화리듬은 온도주기와 동시에 일어났다(그림참조). 이같은 양상은 온도주기가 정지되고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될 때도 나타났다. 이는 우화리듬이 온도변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생물시계는 세포질에 있다.

생물시계는 생물의 어디에 위치하는 것일까? 생물시계가 세포속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므로 논외로 치고 세포속 중에서도 어느 부위에 있는지 알아보자.

사갓말(Acetabularia)을 재료로하여 매우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다. 사갓말은 놀랍게도 10cm에 이르는 단세포로 된 녹조류다. 아울러 광합성능에 있어서 분명한 진폭의 리듬을 나타내고 있어 실험재료로서 매우 유용하다.

단세포식물인 사갓말은 기부와 줄기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부속에는 세포핵이 포함되어 있는데 핵의 제거는 간단히 기부를 잘라내는 것으로 완료된다. 하지만 이런 처치를 해도 세포는 죽지 않고 수개월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매우 정밀한 기구를 사용하여 핵을 제거해 버린 세포로 4주간 실험하였다. 그 결과 사갓말의 리듬성은 진폭을 잃지 않고 계속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림참조). 핵이 제거된 상태에서도 리듬의 근본적인 특징들이 사갓말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또한 자연적으로 핵이 소실된 성숙한 적혈구 세포내에서도 리듬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적혈구를 산 포스파타제와 아세틸콜린 에스테라제 등의 두가지 효소의 활성도가 일정한 조건하에서 배양하였을 때에도 주기적 리듬성이 확인되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적혈구이기 때문에 의당 핵이 없고 RNA가 없으며 단백질의 합성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결과는 생물시계가 세포핵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포질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림5)일정한 조건하에서 4주간 핵을 제거하고 배야한 사갓말세포의 광합성리듬


●―생물시계가 필요한 이유

생물시계는 일정조건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생물에게는 불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달라진 시간적 환경을 예측하여 생활해 나가는데는 꼭 필요한 것이다. 언제나 어두운 굴 속에서 사는 박쥐들에게 해가 지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굴 밖으로 나와 먹이를 찾아야 한다는 자명종이 되는 것이다.

또한 어둡고 물이 차 있는 굴속에 앉아 있는 게에게 생물시계는 썰물의 시각을 알려준다. 그래서 게가 시기를 놓치지 않고 굴을 나오도록 해 준다. 이와 같이 생물시계는 식물과 동물의 생활에 잘 적용될 뿐만 아니라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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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장남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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