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 7일 국제 학술지 ‘Physical Review C’에 게재된 한 논문이 순식간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금(Au). 이 논문은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에서 납(Pb) 원자핵들을 가속 충돌시키는 실험 도중, 납 원자핵이 아주 짧은 순간
금 원자핵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거대 과학의 결정체인 LHC가 인류의 가장 오랜 꿈까지 실현시키는 것일까? LHC의 국제 공동연구에 오랫동안 참여해온 부산대 유인권 교수가 이 특별한 연구의 본질을 분석했다.

양성자가 감춘 연금술의 열쇠
칙칙한 회색 금속인 납을 찬란한 황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기원전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비중의 차이를 깨닫고 금관에 은이 섞였다는 사실을 알아낸 일화도 연금술과 관련이 있을 정도다. 비중은 간단히 말해 단위 부피당 질량이다. 양성자를 82개나 가진 납과 양성자가 47개뿐인 은의 비중은 비슷한데, 양성자가 79개인 금의 비중은 그 두 배나 된다. 얼핏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부피는 최외각 전자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발생한다.
여기서 우리는 원소의 특성에서 전자와 양성자의 역할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거의 모든 현상의 원인은 원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자 때문이지만, 원소는 원자핵에 들어 있는 양성자의 개수로 구분된다. 따라서 주로 전자 구조에 관여하는 화학적 방법으로는 하나의 원소를 다른 원소로 변환시킬 수 없다.
납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의 꿈이 핵물리학이 태동한 20세기에야 실현된 것도, 이런 전자와 양성자의 차이 때문이다.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대부분의 방사성 붕괴는 중성자나 양성자의 수를 변화시킨다. 즉 자연계의 원소 대부분은 방사성 붕괴를 거쳐 그 동위원소나 다른 원소로 변환될 수 있다. 이 핵변환 과정에서 방출되는 엄청난 에너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후 20세기에 연금술의 문을 활짝 연 것도 바로 이 핵종 간 변환의 가능성이다.
2025년 5월, 스위스 제네바 근교의 대형이온충돌기실험(ALICE) 연구팀은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에서 납 원자핵 간의 ‘빗김 충돌’을 이용한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납이 금으로 변환된 과정을 측정했다고 발표했다. 납은 왜, 어떻게 금이 됐을까.

야구장에 떨어진 사금 한 톨
납(원자번호 82)은 안정적인 상태로 지구에 풍부하게 분포한다. 질량수는 208로 천연에서 안정한 동위원소들 중에서 질량수가 가장 크다. 양성자 수(원자번호와 동일)는 82개, 중성자 수는 126개다. 이번 충돌 실험에서 하필 금이 생성된 것은 금 원자핵과 양성자 수 차이가 3개밖에 안 나는 납 원자핵을 이용한 우연의 결과이기도 하다. 양성자 수만큼 전자는 모두 분리한, 순수한 납 원자핵은 로 나타낸다. 원자에서 전자를 분리한 이런 상태를 중이온 혹은 강입자라고 부른다. 중이온은 무거운 원자에서 전자를 분리했다는 말이고, 강입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총칭한다. 모두 ‘무거운 원자핵’이란 뜻이다.
입자가속기는 기본적으로 전기를 띤 입자만 가속시킬 수 있다. 보통의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므로, 가속시키기 전에 원자 속 넓은 공간을 점처럼 떠다니는 전자들을 분리해서 이온화시켜야 한다. 전자를 모두 분리해서 원자의 원자핵만 남기면 가속기의 효율이 최대화된다.
납의 원자핵 두 개를 LHC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광속의 99.999993%)로 가속시켜 서로 충돌시키면, 수많은 종류의 입자들이 튀어나와서 흩어진다. 납 원자핵은 직경이 대략 100조 분의 1m에 불과해서, 충돌 확률이 매우 낮다. 그래서 입자 대부분은 충돌하지 못한 채 가속관에서 계속 가속된다. 이 엇갈린 입자들이 계속 가속하며 충돌하므로, LHC에 설치된 네 개 검출기의 동시 가동이 가능하다.
5월에 발표된 놀라운 결과는 두 개의 납 원자핵이 아주 가깝게, 부딪칠 뻔한 지점을 비껴가면서 발생했다. 원자핵의 양성자와 중성자가 몇 개씩 떨어져 나가 납이 동위원소나 다른 원소로 바뀌는데, 그중 양성자가 3개 떨어진 금(원자번호 79) 원자핵도 있었던 것이다. 납 원자핵에서 중성자는 몇 개 안 떨어진 까닭에 질량수가 매우 불안정한, 금의 방사성 동위원소 원자핵이었다. 납 원자핵의 가속, 충돌에 최적화된 가속관 속에서 금 원자핵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다. 불안정한 금 원자핵은 엄청난 속도로 가속관 곳곳에 충돌하며 여러 개의 양성자와 중성자 및 다른 입자들로 부서졌다. 말 그대로 찰나의 연금술이다.
이 상황을 더 정확히 실감하려면 크기의 척도 자체를 바꿔서 상상해야 한다. 원자를 야구장 크기로 확대하면, 그 중심의 원자핵은 모래알 하나 크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야구장에서 모래알 하나 만한 두 원자핵이 스칠 뻔한 상황에서 연금술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순간을 ALICE 검출기로 납핵-납핵 충돌 지점을 포착해 알아냈다.
금 100만분의 1g 제조에 수천억 달러 들어
빅뱅 직후, 최초 우주의 물질 상태를 알려면, 최대한 많은 입자의 통계적 물리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입자충돌 실험에 질량수가 큰 의 납 원자핵을 이용한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많으면 충돌할 때 훨씬 다양한 입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 이 납 원자핵들을 엄청난 속도로 가속시키는 원형 충돌기 LHC는 지름이 약 9km, 둘레가 27km에 달한다.
하지만 LHC에서 충돌보다 훨씬 자주 벌어지는 상황은 따로 있다. 바로 두 개의 납 원자핵이 접촉하지 않고 비껴가는 것이다. 닿을 듯 말 듯 근접한 두 원자핵 사이에선 반발력 같은 엄청난 전자기적 상호작용이 일어나, +82가 양전하의 납 원자핵이 전자기장을 만든다. 광속에 가깝게 움직이는 이 전자기장이 근접한 원자핵의 내부 구조를 흔들어서, 몇 개의 양성자와 중성자를 분리시킨다. 전자기적 해리(EMD) 현상이다.
ALICE 국제 공동연구팀은 이 납 원자핵 간의 EMD 현상을 측정하기 위해, 충돌 지점에서 양쪽으로 약 100m 떨어진 빔 라인 주변의 열량계(ZDC)를 사용했다. 열량계는 입사된 입자의 에너지를 측정한다. 즉 서로 스치듯이 지나친 원자핵에서 분리된 입자들의 에너지를 측정한다. 이 장치로 최소 하나 이상의 중성자와 함께, 양성자 0~3개를 방출시킨 빗김 충돌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 측정할 수 있다. 양성자 82개의 납 원자핵들이 각각 탈륨(원자번호 81), 수은(원자번호 80), 금 원자핵이나 질량수가 다른 납 원자핵으로 몇 개나 변환됐는지 측정했다.
측정 결과, 질량수가 다른 납 원자핵이 약 150개 발생할 때, 탈륨 원자핵이 약 40개, 수은 원자핵이 약 10개, 금 원자핵이 약 6개 생성됐다. 금은 상대적으로 생성 빈도가 낮지만, ALICE 실험에서 납 원자핵이 매초 최대 약 8만 9000개의 금 원자핵으로 변환됐다.
앞서 말했듯 이 금 원자핵들은 질량수가 커서 아주 불안정하기 때문에, 빔 라인 하류 부분의 여러 지점에서 빔 파이프나 주변 장치에 충돌해 단일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다른 입자로 분열된다. 금은 극히 짧은 시간만 존재한다.
빗김 충돌의 빈도로 추정하면 2015~2018년 생성된 금 원자핵은 총 860억 개인데 총 질량은 약 1조분의 29g이다. LHC의 소비 전력은 약 30MW(메가와트・1MW는 100만W)로, 최근 유럽의 전기 요금을 고려하면 금 원자핵 100만분의 1g에 수천억 달러가 든다. LHC는 납 원자핵의 충돌 횟수를 높이기 위해 주기적인 성능 향상을 진행 중이지만, 이 개선 추세를 반영해도 금을 가공 가능한 양만큼 변환하려면 수천억 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현재 추정하는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이다. 결론은, 연금술을 과학적으로 실현하려면 영겁이 필요하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초과학의 세렌디피티
엄청난 양전하를 띤 납 원자핵 두 개가 서로 반대 방향에서 날아와 정면 충돌하는 상황의 발생 빈도는 빗김 충돌보다 훨씬 낮다. 이런 정면 충돌이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수의 다양한 입자가 생성된다. 발생 입자의 수는 두 납 원자핵이 얼마나 정면 충돌했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새로 생성된 여러 입자의 물리량은 충돌 지점 주위에 설치된 검출기의 양자 센서가 측정하는데, 센서 크기는 10만분의 1m에 불과하다. 우리는 빅뱅 직후에 생성된 최초의 기본 입자들이 존재했을 당시의 물질 상태와 우주의 극한 상태를, 이 입자들의 물리량에서 알아가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빅뱅 직후의 물질 상태는 강입자를 형성하기 직전의 입자인 쿼크와 글루온으로 이뤄졌고, 태양 중심 온도의 10만 배인 매우 뜨거운 플라즈마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최초의 물질 상태에 대한 연구는, 현재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들의 형성 과정에 관한 근원적 이해의 핵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과학 연구는 그 진행 과정에서 전혀 의외의 흥미로운 발견이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빗김 충돌을 연구하던 중에 금 원자핵이 생성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찾아낸 이번 논문도 기초과학의 이런 특성을 잘 보여준다. 금 원자핵의 생성은, 광속에 가깝게 가속시킨 납 원자핵 두 개가 직접 닿지는 않고 매우 가깝게 스치는, 빗김 충돌하는 과정에서 두 원자핵의 전자기장이 서로 상대의 양성자, 중성자 몇 개를 분리시키는 EMD 현상의 이론적 모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납 원자핵은 EMD를 일으켜서 금 원자핵으로 변환된 것이다.
앞으로 충돌형가속기의 성능을 고도화하기 위한 핵심 요소인 빔 손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도, 금 변환 메커니즘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LHC의 빔 라인들이 납 원자핵을 가속시키는 빔의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납 원자핵들이 빗김 충돌하는 횟수가 증가하며, 이 원자핵들이 금 원자핵으로 변환되는 양도 증가한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LHC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의미 있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얻은 의외의 소득은 금보단 연구 자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