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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반점’ ‘우주 복집’ ‘우주 PC방’ ….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온통 ‘우주’ 천지다. 눈앞의 풍광은 쪽빛 바다가 잔잔히 일렁이는 남해안의 전형적 어촌. 하지만 이곳에선 ‘우주’가 일상어가 돼 있었다. 바로 한국 최초 우주기지 나로우주센터를 품은 외나로도다.

고속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려도 서울에서 7시간이 걸리는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 취재진이 방문한 때는 지난 5월 27일. 센터 정문에서부터 삼엄한 출입통제가 시작됐다. “방문하겠다고 사전에 협의했어도 확인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정문을 지키는 보안 요원의 어투에서는 국가 중요 시설임을 느끼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묻어났다.

한국, 10번째 스페이스 클럽 국가 도전

7월 말, 우리나라는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 호를 쏘아 올리며 세계 10번째 ‘스페이스 클럽’ 국가에 도전한다. 스페이스 클럽은 위성을 자력으로 궤도에 올린 국가들을 뜻한다. 그동안 한국은 공장에서 좋은 제품(위성)을 만들어도 이를 운송할 수 있는 교통수단(로켓)이 없었지만 나로 호 덕분에 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됐다.

사실 우리가 로켓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3년 과학관측로켓 1호인 ‘KSR-I’ 발사에 성공한 뒤 KSR-II(1998년), KSR-III(2002년)을 잇따라 쏘아 올렸다. 하지만 본격적인 발사체 연구는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에 따라 KSLV-1(나로 호의 옛이름) 프로젝트가 출범한 2002년부터 진행됐다. 우주개발 선진국인 러시아와 협력하게 된 시기도 이때부터다.

나로 호를 발사하기 위한 기지인 나로우주센터는 지난 6월 11일 준공식을 치렀다. 507만m2 부지와 그 주변에 발사통제동, 추적레이더동, 광학장비동 등 총 13개 시설이 세워졌다. 나로우주센터를 열면서 한국은 자체 발사장을 보유한 세계 13번째 국가가 됐다.

취재진이 방문한 날에는 높이 33m, 지름 2.9m에 이르는, 나로 호와 똑같이 생긴 기체(機體)가 발사대에 세워져 있었다. 우주로 진짜 날아갈 로켓은 통상적으로 발사 2일 전쯤 발사대에 세운다. 발사장 인근에서 각종 장비를 점검하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오범석 책임연구원은 “이 로켓은 나로 호와 똑같이 생긴 ‘지상인증시험용 기체’(GTV)”라고 설명했다.

GTV는 한 마디로 나로 호의 쌍둥이다. 엔진은 탑재되지 않았지만 실제 우주로 발사될 나로 호와 겉모습에서 부품까지 똑같다. 우주를 향해 날아갈 실제 로켓은 6월 19일 1단이 러시아에서 국내로 들여왔다.

GTV를 만든 이유는 뭘까. 실제 우주로 날아갈 로켓으로 이것저것 시험을 해보기가 쉽지 않아서다. GTV에서 하는 주된 시험은 액체 연료를 주입했다가 회수하는 작업. 노하우를 쌓기 위해서는 실제로 우주로 날아갈 로켓인 ‘비행모델’(FM)이 들어오기 전에 최대한 여러 차례 시험을 했다. 액체 로켓인 1단 GTV가 나로 호 발사에 일찌감치 앞서 지난해 8월 도입된 이유다.

연료와 산화제를 넣었다 빼는 시험을 하는 이유는 뭘까. 로켓 엔진은 산소가 없는 우주 공간을 날아가기 때문에 연료(등유의 일종인 케로신)를 태울 산화제(액체 산소)를 기체 안에 넣고 있어야 한다. 산화제를 기체 안에 넣고 있다는 사실은 대기 중 산소를 빨아들여 연료를 태우는 제트 엔진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오 연구원은 “산화제는 조금씩 기화한다”며 “발사 직전까지 일정 압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산화제를 넣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연료와 산화제는 로켓이 서 있는 발사대 지하에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따로 공급된다. 연료와 산화제가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섞이면 폭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밀한 안전설비가 설치돼 있다. 발사대 지하에는 통신을 지속하고 온도를 유지하는 장비도 갖춰져 있다. 어머니의 뱃속과 같은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나로 호라는 옥동자가 무사히 태어나게끔 돌보는 게 발사대 지하 장비들의 역할이다.

초속 15m 이상 바람 불면 발사 연기

나로 호는 어떤 절차를 거쳐 발사될까. 우선 발사 예정일인 7월 30일이 되면 나로우주센터 연구진은 바람의 세기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발사대를 막 떠나는 로켓은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강한 바람을 맞으면 나무가 쓰러지듯 넘어질 수 있다. 속도가 느린 자전거를 강하게 밀치면 옆으로 쓰러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나로 호 규모의 로켓은 바람의 빠르기가 초속 15m를 넘으면 정상적인 발사가 어렵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상엽 책임연구원은 “발사 뒤 5초가 관건”이라며 “발사대를 막 떠나 서서히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이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로 호는 발사 뒤 20여 초 동안 거의 수직으로 상승한다. 900m 상공까지 올라간 뒤 남쪽으로 날기 위해 몸을 기울인다. 발사 3분 35초 뒤에는 2단 로켓 속에 든 위성을 보호하던 일종의 껍데기인 ‘페어링’이 벗겨진다. 이때 고도는 지상 177km. 발사한 지 3분 48초가 지나면 발사체 1단이 분리돼 바다 위에 떨어진다. 1단이 낙하하는 지점은 필리핀 인근의 공해(公海) 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나로우주센터 측의 설명이다.

계속 치솟던 나로 호는 발사 6분 35초 뒤 2단 로켓에 실린 고체 엔진에 불을 붙인다. 2단 로켓을 연소시켜 목표한 궤도에 진입하면 발사 9분 뒤 과학기술위성 2호(STSAT-2)를 분리하면서 임무를 마친다. 발사 성공 여부를 알리는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이지만 2단에서 분리된 과학기술위성이 제 궤도에서 오르면 일단 성공으로 본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고도 302km에 안착한 과학기술위성 2호는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와 13시간 뒤 첫 교신을 한다.



필리핀 해상 선박까지 동원

현재 나로우주센터 연구진은 눈앞에 다가온 발사 시기에 맞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 진행할 첫 작업은 1단과 2단 로켓을 조립하는 일이다. 센터 측은 6월 19일에 들어온, 실제 우주비행에 나설 1단 기체를 이미 기지 안에 있는 2단 로켓과 7월 초쯤 결합할 예정이다.

7월 20일경이 되면 발사를 준비하기 위한 최종 점검 회의를 연다. 발사체, 발사대, 지상 시설 등이 정상적인 성능을 내는지, 안전에 이상이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자리다. 이 회의 결과, 예상되는 기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D데이’를 결정한다. 현재 대외적으로 발표된 발사 예정일은 7월 30일을 전후한 5일간. 후보 날짜 가운데 좀 더 확실한 발사 예정일을 잡는 것이다.

정해진 발사 날짜를 기준으로 2일 전에는 발사체를 발사대로 옮긴다. 1일 전에는 리허설을 진행한다. 리허설은 모의 소방 훈련과 비슷한 개념이다. 실제 화염이나 부상자는 없지만 ‘있다’는 전제 하에 소방관들이 긴급히 고가 사다리를 펴고 소방수를 뿌리는 것처럼, 발사체가 하늘로 실제 올라가지는 않지만 ‘올라간다’는 전제로 연구진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과정이다. 각종 기계를 조작하고 비행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실전처럼 연습한다.

발사 전 과정은 센터의 두뇌 격인 발사통제동에서 제어한다. 발사통제동은 발사지휘센터(MDC), 발사체통제센터(LCC), 비행안전통제센터(FSC)로 역할을 나누어 운영한다.

MDC에서는 수신되는 각종 정보를 분석해 최종 발사 여부를 결정한다. 발사 준비 상황, 주변 기상 정보, 해상과 공중의 안전통제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임무다. LCC는 우주발사체와 위성의 조립, 연료 공급과 같은 발사 준비 작업을 단계별로 확인해 MDC에 보고한다. MDC의 판단을 돕는 정보 제공자 역할이다.

FSC는 우주발사체가 비행을 시작한 직후부터 임무를 끝낼 때까지 비행 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한다. 예정된 비행 경로를 이탈하는 것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비행종단지령장비(FTS)를 가동해 발사체를 원격 폭파한다.

발사통제동이 ‘두뇌’라면 발사체가 정상적으로 비행하는지 관측하는 추적레이더동은 ‘눈’이다. 추적레이더동은 센터와 제주도에 설치돼 있다. 발사체가 공중에 날아오른 직후부터 위성이 분리될 때까지 움직임 하나하나를 꼼꼼히 뒤쫓는다.

나로우주센터 이효근 기술관리팀장은 “발사체가 뜨면 센터와 제주에 있는 추적레이더동 2개소가 동시에 가동된다”며 “발사장과 1600km 이상 멀어진 뒤부터는 필리핀 근처 해상에 있는 해경 선박이 추적 임무를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아무리 성능이 좋은 레이더라도 무한정 발사체를 쫓을 수는 없다. 배가 해안에서 멀어지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듯이 발사체도 장거리를 날면 지구 저편으로 사라져 쫓을 수가 없다. 센터와 제주에 있는 레이더가 한계를 보이는 1600km 지점을 전후해 해경 선박이 추적 임무를 넘겨받는 이유다. 나로 호는 발사장에서 2055km까지 날아가 위성을 분리할 계획이다.

핵심 시설 가운데에는 광학장비동도 있다. 이곳에 설치된 광학추적장비의 핵심은 발사대를 떠나 서서히 올라가는 발사체의 움직임을 초당 500프레임으로 찍을 수 있는 카메라다. 1초 동안 펼쳐지는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 500장의 사진을 찍는다는 뜻이다. 영화가 초당 24프레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성능이다. 이렇게 세밀하게 찍은 비행 자세는 즉각 발사통제동으로 전달돼 분석된다.

“유성 페인트 쓰면 큰일 난다”

이번 발사가 한국을 우주강국에 올려놓는 초석인 만큼 나로우주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들은 어깨가 무겁다. 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과정에서 관련 기술과 발사체 운영 기법을 최대한 배워야 하는 임무가 이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술 협력 대상인 러시아로부터 단순히 로켓만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오범석 연구원은 “러시아가 개발한 부품의 상세한 원리를 우리가 속속들이 넘겨받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연료와 산화제를 알맞은 비율로 섞어 안개처럼 뿜는 ‘인젝터’ 같은 핵심 부품은 특히 그렇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 연구원은 “발사체의 설계, 제작, 발사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한국 연구진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실은 큰 자산이 될 것”이라며 “우주개발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이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나로우주센터 연구진은 러시아 연구진이 친절히 우주 기술의 원리를 가르쳐 줘야 ‘기술 이전’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기술 이전을 위한 공식 절차가 있지만 오히려 같이 어울려 일하며 얻은 내용이 더 큰 효과를 낸다는 설명이었다. “이 사람들은 로켓을 쏠 때 이런 것까지 고려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그게 기술이전이라는 얘기다.

한 예로 한상엽 연구원은 “발사장에는 아무 페인트나 칠하면 안 된다는 러시아 기술진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의아했다”며 “기름이 섞인 페인트에 로켓에 실리는 산화제가 접촉할 경우 불이 붙을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유성 페인트가 아니라 반드시 수성 페인트를 써야 한다는 얘기였다.

러시아는 여러 해 동안 우주 개발에 나섰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가 많다. 때
로는 인명 피해까지 감수했다. 이를 활용해 우주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공정을 표준화해 놓았다. ‘안전한 페인트’도 그 가운데 하나다. 양국 기술진이 한 작업장에서 공존하면서 이 같은 경험을 공유한 것이다. 한국으로선 고도의 우주개발 기술 뒤에 숨은 노하우를 재빨리 흡수할 수 있는 기회였던 셈이다.

나로우주센터 연구진은 나로 호 발사 준비 과정에서 로켓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를 발굴하는 성과도 냈다. 굳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개발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쓰는 제품 가운데 우주선에서도 훌륭히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이 또한 국내에서 발사체를 쏘아 올리기 때문에 거둔 성과다.

연구진은 놀라운 성능을 지닌 국산 단열재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국내 한 기업이 개발해 건축 자재로 흔히 사용된 이 단열재는 ‘영하 10℃에서도 잘 견딘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연구진이 확인한 결과 액체 산소를 보관하는 온도인 영하 180℃에서도 거뜬히 견딜 만큼 성능이 뛰어났다. 앞으로 한국이 더욱 다양한 우주개발 사업을 벌일 때 이를 든든하게 뒷받침할 숨은 진주 하나를 발굴한 셈이다.



우주강국 꿈 이뤄진다

이번 발사 뒤 한국은 러시아에서 도입한 1단 발사체 기술을 국산화한다. 나로 호는 2단만 우리 기술로 만들었지만 앞으론 1단까지 우리가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는 사실상 고체 추진제에 머물러 있던 한국의 로켓 기술이 액체 단계로 본격 진입한다는 의미다.

고체 추진제는 추진력에 변화를 줄 수 없다. 반면 액체 추진제는 추진력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다 재점화도 가능하다. 고체 추진제가 모닥불이라면 액체 추진제는 가스레인지인 셈이다. 추진력도 좋아 우주개발 강국 대부분은 1단 로켓에 반드시 액체 로켓을 쓴다.

한국이 계획에 따라 2018년 국산화한 액체 로켓을 단 한국형 발사체(KSLV-2)를 개발하면 다른 나라의 위성을 대신 올려주는 사업도 할 수 있다. 이는 유럽, 러시아 등에서 이미 선보인 사업모델이다. 특히 국내 위성개발 기업 쎄트렉아이가 보여 준 것처럼 한국 연구진의 수준은 이미 해외에 소형 위성을 수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나로 호를 바탕으로 한 한국형 발사체 개발이 ‘발사체와 위성’이 상호 발전하는 전형적 우주강국의 길을 열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따져 보면 나로 호 발사는 한국 우주개발의 분기점이 될 중요한 사건이다. 그래서인지 나로우주센터 연구진 사이에서는 최근 “자다가 가위에 눌리는 일이 많다”는 토로까지 들린다.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린다는 자부심만큼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이들을 짓누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이 지금 흘리는 땀방울이 모두 가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반드시 해낸다”는 강한 의지가 이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날, 대한민국의 ‘꿈’을 위해 뛰는 이들의 모습에서 머지않아 우주강국으로 도약할 한국의 단초를 발견한다.

200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외나로도=이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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