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능기부’가 주목받고 있다. 기업이나 개인이 갖고 있는 재능이나 지식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다.
재능이라고 해서 특별한 능력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직업 활동에서 얻은 노하우나 기술도 재능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요리사가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개한다거나,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 인생을 고백해 영화학도들에게 힘을 주는 것도 재능기부다.
그렇다면 과학자의 재능은 뭘까. 당연히 풍부한 과학적 지식과 연구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다. 김문제 미국 텍사스주립대 재료과학과 교수는 이런 그의 재능을 기부하기 위해 블로그 ‘나노과학자 김 교수의 미래뉴스’를 개설했다. 그는 이곳에 나노 과학에 관한 콘텐츠를 올려 고국의 청소년들이 나노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있다. 그러다 최근에는 애독자 중 학생 세 명과 교사 한 명을 뽑아 ‘나노원정대’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초청했다. 실제 연구현장에서 더 많은 과학지식을 나눠 주고 싶어서다. 과연 이들은 미국에서 어떤 놀라운 체험을 했을까. 1월 25일부터 3주간 경험한 이들의 ‘10억분의 1m’ 나노 여행을 따라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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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부터 3주간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체험학습을 진행한 나노원정대의 모습.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종민, 이지혜, 김도연, 김문제 교수, 안희진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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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금실험 거쳐 전자현미경 실습
“호주머니 안에 있는 동전들을 꺼내 보세요.”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있는 텍사스주립대의 자연과 학 연구동에서 외국인 조교가 한국 고등학생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한국 동전 서너 개, 미국 25센트 동전 두어 개가 책상 위에 올라왔다. 조교는 안경점에 있는 것과 같은 초음파 진동기와 에탄올로 동전을 여러 번 씻은 뒤 원통형의 기계 안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미세한 진동과 함께 기계가 작동했다.
“여러분의 낡은 동전이 금화로 변신하고 있어요. 이리로 와서 안을 들여다봐요.”
“우아∼.” 유리창 너머로 플라스마 상태의 아르곤 가스가 분홍색 빛을 내뿜으며 금을 분해하기 시작하자 학생들 사이에서 탄성이 나왔다. 분해된 금가루가 눈처럼 흩어지는 모습이 펼쳐졌다. 금가루는 동전 위에 차곡차곡 쌓이며 얇은 막을 형성해 갔다.
“이 실험은 꼭 한 번씩 각자 해봐야 해요.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손으로 만져 기억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 안 해본 사람은 한국으로 못 돌아갈 줄 알아요.” 김 교수가 학생들에게 엄포를 놨다. 그런데 한 학생이 “어, 교수님 저 안 돌아가고 싶은데. 그럼 저 안 할래요.”라며 크게 웃었다. 미국에 온지 이틀 만에 정이 들어버린 학생들이었다.
약 10분 뒤 기계가 멈추고 뚜껑이 열리자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동전을 꺼냈다. 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이 모두 밝지는 않다. 어떤 것은 황금빛으로 반짝였지만 어떤 것은 약간 색깔만 노래졌을 뿐 빛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낡은 동전은 표면의 흠집과 얼룩 사이에 금가루가 끼어 도금이 잘 되지 않았어요. 반도체도 마찬가지 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먼지가 없는 클린룸(clean room)에서 만듭니다. 내일은 실제로 클린룸을 방문해 반도체 장비를 직접 다뤄보도록 합시다.”
김 교수의 얘기가 끝나자 학생들은 ‘와∼’하며 다시 환호성을 터뜨렸다. 단순한 실험으로 원리를 체험한 뒤 응용과정을 살펴보는 김 교수만의 체험교육 방식이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내일 공부할 것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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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교육 통해 과학지식 전파할 것
약속대로 학생들은 다음 날 클린룸을 방문해 반도체의 원료인 실리콘 박막(웨이퍼)에 전자회로 패턴을 새기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웨이퍼 위에 나노가공장비인 ‘집속이온빔’을 이용해 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크기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도연 군(한국과학영재고 2학년)은 “200만 달러(약 22억 원)에 달하는 실험 장치를 직접 다루다니 꿈만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 밖에 수술로봇체험, 주사전자현미경을 이용한 나노 구조 관찰 실습 등의 과정을 공부했다. 모두 한국에서는 일반 고등학생들이 직접 만지고 경험하기 힘든 장비들이다.
이 과정에서 약 20여 명의 석·박사 전문가들이 도움을 줬다. 한국에서 온 과학도들을 위해 기꺼이 김 교수처럼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노원정대에게 특별 수업을 진행하고 고가의 장비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아무리 자원봉사 문화가 발달한 미국이라지만 일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진행하기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이들의 기부는 더욱 뜻 깊었다.
여러 사람의 노력 때문일까. 나노원정대 학생들도 체험학습을 하는 동안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지혜 양(홈스쿨링)은 체험학습을 마치고 “나노종합전시장을 한눈에 둘러본 듯한 기분”이라며 “대학에 가서 바다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이곳을 둘러본 뒤 나노 과학을 접목할 수 있는 쪽으로 생각을 넓히게 됐다”고 말했다.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나노원정대에 지원한 박종민 군(서울 서초고 2학년)은 “이곳의 발전된 연구 환경을 보니 이곳에서 나노 과학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변화에 김 교수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짧게 답했다.
“제가 가장 잘하는 과학을 나눠 줬을 뿐입니다. 저의 재능이 고국 청소년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 주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야 조금씩 결실을 맺는 듯합니다.”
김 교수가 이처럼 과학지식 기부에 열심인 또 다른 이유는 ‘과학으로 좋은 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김 교수의 블로그는 네이버가 운영하는 ‘해피빈 재능기부’ 홈페이지와 연결돼 있다. 김 교수의 과학콘텐츠를 읽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사이버머니 ‘콩’을 기증하면 네이버 측이 소외 청소년 교육에 쓴다.
그가 처음 ‘미래뉴스’ 블로그에 글을 쓴 것은 지난해 10월. 현재 2만 개가 넘는 콩이 모였다. 콩 1개는 100원의 가치가 있으니 4개월 사이에 200만 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인 셈이다. 김 교수는 “과학의 기쁨을 나눠줄 수 있는 블로그 운영과 나노원정대 모집을 앞으로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뜻을 밝혔다.
재능이라고 해서 특별한 능력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직업 활동에서 얻은 노하우나 기술도 재능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요리사가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개한다거나,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 인생을 고백해 영화학도들에게 힘을 주는 것도 재능기부다.
그렇다면 과학자의 재능은 뭘까. 당연히 풍부한 과학적 지식과 연구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다. 김문제 미국 텍사스주립대 재료과학과 교수는 이런 그의 재능을 기부하기 위해 블로그 ‘나노과학자 김 교수의 미래뉴스’를 개설했다. 그는 이곳에 나노 과학에 관한 콘텐츠를 올려 고국의 청소년들이 나노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있다. 그러다 최근에는 애독자 중 학생 세 명과 교사 한 명을 뽑아 ‘나노원정대’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초청했다. 실제 연구현장에서 더 많은 과학지식을 나눠 주고 싶어서다. 과연 이들은 미국에서 어떤 놀라운 체험을 했을까. 1월 25일부터 3주간 경험한 이들의 ‘10억분의 1m’ 나노 여행을 따라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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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부터 3주간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체험학습을 진행한 나노원정대의 모습.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종민, 이지혜, 김도연, 김문제 교수, 안희진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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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금실험 거쳐 전자현미경 실습
“호주머니 안에 있는 동전들을 꺼내 보세요.”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있는 텍사스주립대의 자연과 학 연구동에서 외국인 조교가 한국 고등학생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한국 동전 서너 개, 미국 25센트 동전 두어 개가 책상 위에 올라왔다. 조교는 안경점에 있는 것과 같은 초음파 진동기와 에탄올로 동전을 여러 번 씻은 뒤 원통형의 기계 안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미세한 진동과 함께 기계가 작동했다.
“여러분의 낡은 동전이 금화로 변신하고 있어요. 이리로 와서 안을 들여다봐요.”
“우아∼.” 유리창 너머로 플라스마 상태의 아르곤 가스가 분홍색 빛을 내뿜으며 금을 분해하기 시작하자 학생들 사이에서 탄성이 나왔다. 분해된 금가루가 눈처럼 흩어지는 모습이 펼쳐졌다. 금가루는 동전 위에 차곡차곡 쌓이며 얇은 막을 형성해 갔다.
“이 실험은 꼭 한 번씩 각자 해봐야 해요.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손으로 만져 기억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 안 해본 사람은 한국으로 못 돌아갈 줄 알아요.” 김 교수가 학생들에게 엄포를 놨다. 그런데 한 학생이 “어, 교수님 저 안 돌아가고 싶은데. 그럼 저 안 할래요.”라며 크게 웃었다. 미국에 온지 이틀 만에 정이 들어버린 학생들이었다.
약 10분 뒤 기계가 멈추고 뚜껑이 열리자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동전을 꺼냈다. 하지만 학생들의 표정이 모두 밝지는 않다. 어떤 것은 황금빛으로 반짝였지만 어떤 것은 약간 색깔만 노래졌을 뿐 빛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낡은 동전은 표면의 흠집과 얼룩 사이에 금가루가 끼어 도금이 잘 되지 않았어요. 반도체도 마찬가지 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먼지가 없는 클린룸(clean room)에서 만듭니다. 내일은 실제로 클린룸을 방문해 반도체 장비를 직접 다뤄보도록 합시다.”
김 교수의 얘기가 끝나자 학생들은 ‘와∼’하며 다시 환호성을 터뜨렸다. 단순한 실험으로 원리를 체험한 뒤 응용과정을 살펴보는 김 교수만의 체험교육 방식이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내일 공부할 것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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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교육 통해 과학지식 전파할 것
약속대로 학생들은 다음 날 클린룸을 방문해 반도체의 원료인 실리콘 박막(웨이퍼)에 전자회로 패턴을 새기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웨이퍼 위에 나노가공장비인 ‘집속이온빔’을 이용해 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 크기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도연 군(한국과학영재고 2학년)은 “200만 달러(약 22억 원)에 달하는 실험 장치를 직접 다루다니 꿈만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 밖에 수술로봇체험, 주사전자현미경을 이용한 나노 구조 관찰 실습 등의 과정을 공부했다. 모두 한국에서는 일반 고등학생들이 직접 만지고 경험하기 힘든 장비들이다.
이 과정에서 약 20여 명의 석·박사 전문가들이 도움을 줬다. 한국에서 온 과학도들을 위해 기꺼이 김 교수처럼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노원정대에게 특별 수업을 진행하고 고가의 장비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아무리 자원봉사 문화가 발달한 미국이라지만 일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진행하기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이들의 기부는 더욱 뜻 깊었다.
여러 사람의 노력 때문일까. 나노원정대 학생들도 체험학습을 하는 동안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지혜 양(홈스쿨링)은 체험학습을 마치고 “나노종합전시장을 한눈에 둘러본 듯한 기분”이라며 “대학에 가서 바다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이곳을 둘러본 뒤 나노 과학을 접목할 수 있는 쪽으로 생각을 넓히게 됐다”고 말했다.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나노원정대에 지원한 박종민 군(서울 서초고 2학년)은 “이곳의 발전된 연구 환경을 보니 이곳에서 나노 과학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변화에 김 교수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짧게 답했다.
“제가 가장 잘하는 과학을 나눠 줬을 뿐입니다. 저의 재능이 고국 청소년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 주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야 조금씩 결실을 맺는 듯합니다.”
김 교수가 이처럼 과학지식 기부에 열심인 또 다른 이유는 ‘과학으로 좋은 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김 교수의 블로그는 네이버가 운영하는 ‘해피빈 재능기부’ 홈페이지와 연결돼 있다. 김 교수의 과학콘텐츠를 읽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사이버머니 ‘콩’을 기증하면 네이버 측이 소외 청소년 교육에 쓴다.
그가 처음 ‘미래뉴스’ 블로그에 글을 쓴 것은 지난해 10월. 현재 2만 개가 넘는 콩이 모였다. 콩 1개는 100원의 가치가 있으니 4개월 사이에 200만 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인 셈이다. 김 교수는 “과학의 기쁨을 나눠줄 수 있는 블로그 운영과 나노원정대 모집을 앞으로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