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전자 현미경으로 은하를 관찰할 수 있을까요? 천체 망원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모든 자연 현상은 다양한 규모의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일어나며,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하는 것이 과학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범위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적절한 크기로 나눠 관찰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연구하려는 자연 현상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의 ‘규모(scale)’에 따라 측정 도구와 연구방법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은하를 관찰하기 위해서 전자현미경이 아닌 천체망원경을, 세포의 내부 구조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천체망원경이 아닌 전자현미경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처럼 규모에 맞는 측정 도구를 활용해야만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이렇게 얻은 다양한 규모의 변수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분석해 보다 적합한 원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대표하는 것들
자연 현상의 규모를 크게 둘로 나눈다면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크기’입니다. 거시세계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상대적으로 큰 물체나 현상의 규모로 동물, 식물, 암석, 행성, 태양계, 은하 등이 해당합니다. 반면 미시세계는 원자 수준의 아주 작은 물체나 현상의 규모를 뜻하며 원자핵, 원자, 분자, 이온 등이 여기 속합니다.
그렇다면 크기를 기준으로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구분할 때 그 경계가 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사실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약 1μm 정도가 그 기준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1μm보다 작은 물체의 경우, 가시광선을 이용한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시광선의 파장 범위는 약 380~700nm(0.38~0.7μm) 정도이므로, 광학현미경의 해상도는 약 200nm가 한계입니다. 따라서 1μm 크기의 물체들은 광학현미경을 통해 명확한 구조를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1μm 이하의 물체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전자현미경이나 원자힘현미경 등을 사용해야합니다. 따라서 관찰 도구가 달라지는 ‘약 1μm 정도의 크기’가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크기만으로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나누지는 않습니다. 각 규모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을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중 어떤 법칙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나 암석, 동물과 식물 등 거시세계에 해당하는 물체들의 운동이나 위치는 고전역학을 이용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양자적 특징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각 물체들의 위치가 정해져 있으며, 그 물체들의 운동을 고전역학에 따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원자나 분자 등 미시세계에 해당하는 물체들에서는 양자론적 특징이 더 크게 나타나고, 이런 물체들의 위치나 운동을 설명할 때는 양자역학을 적용하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김태영 쌤의 통합과학,
이것만은 꼭!
자연을 시공간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적절한 측정 도구와 단위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규모의 자연 현상을 구분하고,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 물체의 크기 차이를 탐구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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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기준 | 거시세계 | 미시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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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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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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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법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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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구분할까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구분하는 기준이 여러 가지고, 각 기준은 명확하게 약속되지 않아 둘을 구분하기 어려운 영역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는 미시세계에 속할까요, 거시세계에 속할까요?
바이러스의 크기는 약 20~300nm 정도로, 광학현미경으로 관찰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크기를 기준으로 본다면 바이러스는 미시세계에 당합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위치는 명확합니다. 전자처럼 어디 있을지 모르는 확률 구름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세포막에 붙거나 세포 내 특정 위치에 존재합니다. 게다가 바이러스에는 터널 효과나 양자 중첩과 같은 양자적 특성이 관찰되지 않으며, 고전 물리로 설명되는 운동을 합니다. 따라서 양자역학보다 고전역학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바이러스는 거시세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적혈구와 같은 세포 역시 기준에 따라 미시세계로 구분되기도 하고, 거시세계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크기가 대략 6~8μm 정도인 적혈구는 육안으로는 관찰하기 힘들지만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일부 교과서의 설명처럼 인간의 감각으로 관찰하거나 측정 가능 한 것을 거시세계로 구분한다면, 적혈구는 미시세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가시광선 파장 또는 1μm보다 더 작은 것을 미 시세계로 본다면, 적혈구는 거시세계에 속한다고 해야 합니다. 크기를 기준으로 구분하더라도 경계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적혈구는 미 시세계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고 거시세계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구분이 모호한데 우리는 왜 자연 현상을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로 구분해야 할까요? 물론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로 구분하기 애매한 중간 영역이 있지만, 중간 영역에 속하는 물체 중에는 미시적인 크기인데 거시적 행동을 하는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나 거시적인 크기이면서 미시적 특징을 드러내는 초전도체 같은 물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측정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며, 규모에 대한 감각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명확하지 않더라도 복잡하고 다양한 자연 현상을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로 구분해 보는 것은 이런 감각을 기르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자연 현상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을 나노 스케일, 마이크로 스케일, 천문학적 스케일 등 다양한 수준의 규모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는 것까지 이해한다면, 왜 ‘규모’에 대한 설명으로 통합과학을 시작하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