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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부쩍 감소

불법복제의 근원지로까지 불리던 용산의 조립업체에서는 요즘 소비자들의 정품사용을 적극 권하고 있다.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에 대한 강력한 단속의 효과로 컴퓨터사용자들의 정품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필요한 물건을 쓰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했던 국내 소프트웨어계에 올들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컴퓨터 사용자들이 소프트웨어를 돈주고 사기 시작한 것이다. 한 회사의 경우 91년 소프트웨어 전시회(SEK) 기간중 1백만원에도 못미치던 매출이 92년에는 2천만원대로, 올해에는 5천만원으로 늘어났고 일부 품목중에는 없어서 못판 것도 있다. 이처럼 단순 수치를 기준으로 따져봐도 시장규모가 50배나 커졌다.

올해 판매된 정품 소프트웨어를 기준으로 업계가 추산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어림잡아 8백억원 정도. 이중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구매자는 업무용 사용자인 기업체이지만 순수 개인 사용자들도 확연히 늘어났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물론 PC 개인 소유자중 한번이라도 정품을 사본 경험이 있는, 3-5% 정도로 추산되는 정품 사용자의 비율에 업계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외국의 예처럼 개인 사용자중 정품 사용자가 10% 되는 것을 고비로 본다면 앞으로 2-3년간 올해 추세가 계속될 때의 가능성을 높이 사는 것이다.

변화된 모습은 용산으로 대표되는 조립상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직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서비스 명목으로 복사해주던 관행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공공연히 행해지지는 않고 있으며, 되도록이면 정품을 사서 사용할 것을 소비자들에게 권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도스와 같은 운영체제의 번들(bundle)웨어나 몇몇 프로그램을 함께 묶은 팩(pack)웨어의 구입도 활발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로터스사의 국내 총판인 소프트라인의 경우 작년 한햇동안 50억원에도 못미치던 매출이 올해에는 매달 9억원을 상회, 연말까지는 무난히 1백1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올해 상반기에 약 35억원의 매출을 올린 한글과 컴퓨터사는 하반기에 '한글'2.1의 매출 호조로 연말까지 1백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컴퓨터 관련 시장을 크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부분으로 나누어볼 때 그동안 7:3 비율로 하드웨어 부분의 규모가 컸으나 이같은 신장세가 계속된다면 소프트웨어 부분이 차지하는 전체 비율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자발적이 아니라 단속 때문에

그렇다면 이같은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제 값주고 안심하고 쓰겠다'는 사용자들의 인식전환과 함께 미국의 무역보복을 겁낸 정부의 단속을 꼽고 있다. 물론 강조점을 두는 곳은 소비자의 자발성이 아닌 '단속'이다.

올초 미국의 사무용 소프트웨어 연맹(BSA, Business Software Alliance)은 우리나라를 지적재산권 분야의 우선협상 대상국으로 지정하도록 미 통상대표부에 건의했다. BSA는 알더스 애플 오토데스크 볼랜드 로터스 마이크로소프트 노벨 워드퍼펙 고 등 미국에 근거한 9개의 대형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이 모여 지난 88년 창립한 이익단체. BSA측은 작년 한햇동안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소프트웨어중 적어도 82% 이상을 불법복제본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BSA의 건의에 앞서 '불법 복제 왕국'이란 오명을 가진 우리나라는 작년 우선협상 대상국의 이전 단계인 우선감시대상국으로 지정된 바 있어 본격적인 보복을 당하기 직전 상태였다. 우선협상 대상국에 지정되면 자동적으로 슈퍼 301조가 발동되며 6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그 결과에 따라 무역보복 조치가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리 손을 써 지난 2월부터 용산상가와 디자인 학원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불법복제 단속에 들어갔다. 단속결과 2월부터 두달 사이에 50여명이 입건됐고, 디자인학원을 주 대상으로 한 8월의 단속에서는 3백여개의 불법 소프트웨어를 적발하고 7개 학원의 대표자들을 불구속 입건했다.

그동안 국내 사용자들은 국내 개발품이 아닌 외국 제품을 복제해 쓰는 것에 대해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왔던 것이 사실. 오히려 '외국으로 지불될 돈을 막았다'는 식으로 불법복제 행위를 합리화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는 조금만 더 따져보면 매우 위험 천만한 생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널리 불법복제해 쓰고 있는 제품들은 대개 우리보다 수십 수백 배의 개발력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인데, 여기에 익숙해져 눈만 높아진 사용자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나온 그만 못한 국내 소프트웨어를 돈주고 살리 없기 때문이다.

정품 사용에 의해 얻는 이득은 비단 국가의 정보산업 발전 뿐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한 판매업자는 "돈 주고 사지 않은 프로그램에 애착을 가질 리 없다"며 이른바 '파워유저'가 많지 않은 이유중 하나는 바로 복제본 사용에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국산제품은 '한글'만 고군분투

올해 주로 팔린 소프트웨어들을 살펴보면 게임을 별도로 마이크로소프트 볼랜드 로터스 시멘틱 등 외국 유명사의 제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국산으로는 30만 카피가 팔린 것으로 알려진 슈퍼 베스트셀러 '한글' 정도가 그나마 고군분투했다. 국내 소프트웨어 제작자들 사이에서 검찰의 단속이 결국 "외국 회사 돈벌이만 시켜 주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소프트웨어 판매사의 올해와 같은 매출 향상이 단속에만 기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단속에 의해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유명 외국사들은 단속의 이익을 마치 혼자만 챙긴 것처럼 비춰질까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기 조차 조심스러워하는 입장. 이들은 단속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 이루어진 제품 자체의 품질향상, 즉 한글화 작업이나 버전 업에 의한 고기능화가 크게 구매력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단 써보지 않고 제품의 성능을 믿고 사야하는 소프트웨어의 성격상, 수준이 떨어지는 국산 제품보다 이미 세계 표준이 되다시피 한 외국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영화나 음악처럼 한번 익숙해지면 좀체 다른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리기 어려운 문화 상품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정품사용 부진이 취약한 우리 컴퓨터 산업 분야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특히 최근 몇몇 외국 업체들이 정품 판매 호조와 자사의 상품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복제 방지 장치를 푼 것에 대해 "이후의 시장 장악을 위해 국내 사용자들에게 마약을 먹이는 것과 같다"고 단언하는 프로그래머도 있다.

한편 정본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컴퓨터 업계에 새로 불어온 바람도 적지 않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경쟁 제품 업그레이드(competitive upgrade) 제도의 등장과 통신판매 전문업체들의 영업 본격화. 이 두 가지는 정품 사용자가 어느 수준에 이르지 않고서는 실행이 불가능한 영업 방법이다.

경쟁 업그레이드 제도는 한 회사에서 제작한 소프트웨어가 시장 지배를 위해 다른 회사의 정품 디스켓을 가지고 오면 자사 제품의 가격을 할인해주는 판매 방식으로, 외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판매 방법. 국내에서는 국내사끼리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워드프로세서 제품을 중심으로 이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지난 3월 전국 컴퓨터학원장들이 모여 무단 복제 디스켓의 화영식을 벌였다. 그러나 아직도 불법 복제본 사용자가 더 많은 것이 현실. 정작 이때 태워야 할 것은 '디스켓이 아니라 남의 것이니 그냥 쓰자'는 식의 고약한 심보인지도 모른다.


가격과 고객지원문제 해결돼야

빠른 배송에 의한 시간 절약과 20-30% 할인 혜택을 앞세운 통신판매는 새롭게 떠오른 황금시장. 그동안 영업 실적이 극히 저조하던 2-3개의 통신판매 업체 숫자만도 최근에는 8개 쯤으로 늘어나 이 시장에 대한 관심도를 보여 주고 있다. 올해들어 한 달에 5천만-1억원의 매출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중견 통신판매사인 캡스의 이은호 이사는 "지난 2월의 집중단속 이후 정품 판매에 대한 상당한 기대 심리가 작용했고 실제로도 적중했다"면서 앞으로의 사업 가능성을 진단했다.

정품 사용 확대로 인한 긍정적 요소와 함께 앞으로 해결되야 할 문제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첫째가 고객 지원 서비스의 부재. 이는 정품 사용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으로 연결된다. 특히 외국제품 중에는 판매를 담당한 유통사가 사용상의 문제를 상담할 만한 전문요원(엔지니어)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외국사중 마이크로소프트와 국내사중 한글과 컴퓨터사 정도가 정품 사용자를 대상으로 '제대로 된' 고객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정도.

또 하나 자주 거론 되는 부분은 역시 가격문제. 하드웨어 구입에만도 버거워하는 사용자들 입장에서 수십만원씩 하는 소프트웨어들을 모두 정품으로 구입한다는 것은 지금의 국내 사용자 처지로 볼 때 현실성이 없다는 소비자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즉 적정한 수준으로 가격을 내리면 누가 불법복제해 쓰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판매업자는 "정품 사용이 늘어나는 것이 선행되야 한다"면서 "어떤 프로그램이든 1만 카피만 판매가 보장된다면 가격은 상상못할 만큼 낮아질 수도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밝혔다.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의 가격과 고객지원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는 열쇠는 바로 소비자들에게 있다는 말이다.
 

BSA의 불법 고제 금지 홍보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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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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