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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내가 만난 멸종위기종] 흰발농게, 신도시 방조제 너머 갯벌을 지키다

    글 이창욱 기자 + 디자인 박주현, 이형룡

    “한번 갯벌을 잘 보세요. 저기 조금씩 움직이는 게 보이십니까.”
    갯벌로 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구본주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책임연구원이 기자에게 말한다. 눈을 가늘게 뜨니 뜨거운 볕 아래, 흰색 껍데기가 반짝인다. 자글자글 움직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울 정도다. 단지 매우 작아서 눈에 익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뿐이다. 저기에 멸종위기종 흰발농게가 있다. 
    4월 말, 흰발농게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와 안산시의 갯벌을 돌아봤다.

     

    김종우

     

    흰발농게는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 여러 갯벌에서 산발적으로 발견된다.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추후 서식지가 더 늘 가능성도 있다.

     

    갯벌에 한 발을 디디니, 마치 지구가 아닌 달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온통 거무튀튀한 펄 여기저기에 나 있는 서식굴 때문이리라. 이곳은 경기도 화성시 제부도 입구 연안의 흰발농게 서식지. 삽을 가지고 따라온 서동건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연구원이 뻘 위에 난 서식굴 구멍 모습을 유심히 살피더니, 갯벌을 여러 번 삽으로 퍼낸다. 펄 속으로 팔을 뻗어서 흙을 뒤적이니 게 한 마리가 잡힌다. 이게 흰발농게인가요? “아닙니다. 얘는 그냥 농게(Tubuca arcuata)예요. 요 집게발에 붉은 기가 돌죠?” 과연, 펄을 닦아내고 보니 집게발이 붉은색이다. “농게와 흰발농게는 사는 곳이 미묘하게 다릅니다. 농게가 바다와 더 가까운 끈적한 펄에 산다면, 흰발농게는 해변과 더 가까운 상부갯벌에 살아요.” 상부갯벌은 섬의 해안을 이루는 굵은 자갈과 모래에 뻘이 섞인 갯벌이라 걷기에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KIOST 연구원들은 이번엔 모래톱에 가까운 느낌의 흙을 삽으로 파더니, 다시 손을 뻗는다.


    “여기 흰발농게가 있네요.”


    진흙 덩어리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서 연구원의 검지 위에 조그만 게가 한 마리 올라와 있다. 집게발이 흰색이니 흰발농게가 맞다. 곧 집게발 뒤로 면봉처럼 생긴 두 눈자루가 튀어나와 주변을 둘러본다.


    갑각 너비 겨우 1.4cm, 흰발농게(Austruca lactea)는 검지 두 마디가 안 되는 무척이나 작은 생물이지만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외양을 갖고 있다. 엄청나게 거대한 집게발 때문이다. 농게류 수컷은 자신의 몸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집게발로 유명하다. 두 집게발 중 한쪽이 다른 쪽보다 4~5배까지 커지는데(큰 집게발이 나타나는 빈도는 왼쪽과 오른쪽이 유사하다), 그 무게가 많게는 몸무게의 3분의 2까지 차지한다. 농게의 영어 이름 ‘피들러 크랩(fiddler crab)’은 농게의 이런 외형을 잘 묘사한다. 민속 음악에서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피들(fiddle)이라 부르는데, 자신의 몸보다 더 큰 한쪽 집게발을 달고 있는 모습이 마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사처럼 보여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컷의 큰 집게발은 오히려 생존에 방해가 된다. 농게는 작은 집게로 모래와 흙을 집어 유기물을 섭취한 후 뱉어낸다. 정상적인 크기의 집게발을 두 개 가진 암컷은 먹이 활동에 양 집게발을 쓸 수 있지만, 수컷은 한 집게발만 쓸 수 있다. 먹이가 부족할 때 암컷의 생존확률이 커지는 이유다. 그럼 도대체 흰발농게 수컷은 이 큰 집게발을 어디에 쓸까. 큰 집게발이 암컷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성적이형성(Sexual dimorphism)의 발현이라는 것이 힌트다. “수컷 농게의 큰 집게발은 번식 경쟁에 중요합니다. 같은 수컷과 영역싸움을 할 때나, 암컷 앞에서 유혹하는 구애춤을 출 때 중요하죠.” 서 연구원의 설명이다.


    갯벌 생태 연구는 말 그대로 ‘삽질’의 연속이었다. 제부도 갯벌에는 농게와 흰발농게 말고도 다양한 저서생물이 산다. 흰이빨참갯지렁이 같은 해양보호생물, 칠게, 길게, 가재붙이 같은 우점종 등이다. 썰물 때 이들을 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삽질이다. 금방 갯벌 여기저기에 구덩이 여러 개가 생겨났다. 서 연구원의 이마와 목덜미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러나 이 정도는 고생도 아니라는 게 구 책임연구원의 생각이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갯벌 현장 조사를 하면서 별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썰물에 배가 빠져나가지 못해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밤새도록 밀물을 기다린 경험은 유쾌한 추억일 정도다. 강화도 갯벌에서는 삽시간에 밀물이 몰려와 부표에 매달려 있다 지나가는 어선에 구출된 적도 있다. 그만큼 갯벌은 역동적이고, 때에 따라서는 위험하다.


    “전남 태안 황도 갯벌에서는 밀물이 빠르게 밀어닥치는 바람에 갯벌에 대놓은 차가 바다에 가라앉았어요. 몇 주 후에 같은 갯벌에 다시 찾아가 조사를 하는데, 동네 주민들이 저보고 손짓하면서 나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얼마 전에 거기서 젊은 사람이 차를 빠뜨렸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저였다고 말씀드렸죠.”


    “그래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란 게 있잖아요. 젊었던 시절의 현장 조사가 그립진 않으신가요?” 기자의 질문에 구 책임연구원이 손사래를 쳤다. “아, 전혀 안 그립습니다.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첨단 기술을 도입한 지금이 훨씬 낫습니다.”

     

    멸종위기종, 갯벌 공사 현장을 막아서다

     

    흰발농게 서식지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서는 안산시와 제부도를 잇는 ‘모세의 길’ 보강 공사가 한창이었다. 섬과 육지를 잇는 제부도 진입도로는 바다에 가라앉았다 간조가 되면 모습을 드러내 모세의 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재 당시엔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 길의 높이를 올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멀리서도 덤프트럭들이 흙탕을 튀기며 건설자재를 싣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제부도를 오가는 덤프트럭의 행렬은 개발이라는 기회, 혹은 위협에 상시 노출된 한국 서해 갯벌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상시 변하는 땅,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땅, 그리하여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던 갯벌은 20세기 후반, 개발주의 사회를 거치면서 깎여나가고 건조되고 매립되고 사라졌다. 특히 방조제를 쌓고 물을 빼 땅을 만드는 간척 공사는 갯벌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사라진 갯벌 면적은 약 2107km2로 추산된다. 제주도보다 넓다.


    원래 갯벌이었던 땅이 간척지가 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존재는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생물들이다. 서식지가 파괴되면 이들이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농게류는 전 세계에 100여 종이 넘게 분포하지만, 한국 해변에서는 농게와 흰발농게 두 종만 발견됩니다. 흰발농게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것도 서식지 파괴가 심각하기 때문이에요.” 구 책임연구원이 설명했다. 특히나 흰발농게가 주로 서식하는 상부 조간대 갯벌은 육지와 가까워 개발에 더 취약하다. 개발에 이어지는 스트레스도 흰발농게를 옥죈다. 2024년 인하대 해양동물학연구실은 흰발농게를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저주파 진동에 노출했다. 그 결과 약 120~250Hz 파장대의 저주파에서 흰발농게의 이동 속도가 빨라졌다. 진동을 감지해 빠르게 움직이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가능성도 높아진다. doi: 10.1016/j.marpolbul.2024.116107


    흰발농게를 보전하면서 동시에 개발을 진행하기 위해 흰발농게를 이주시키는 지자체도 있었다. 2019~2020년, 전북 군산시는 선유도해수욕장에 서식하는 도로 공사 예정 구간과 흰발농게 3만 마리의 서식지가 겹치자, 이들을 돼지비계와 바지락 속살 등으로 유인했다. 유인한 흰발농게는 200~300m 떨어진 곳으로 이주시켰다. 이후 2024년, 한 일간지는 군산시의 입을 빌려 선유도해수욕장의 흰발농게 개체 수가 177만 마리로, 2019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발표했다. 군산시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이주였지만 동의하지 않는 시각도 많다.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영향받는 흰발농게의 섬세함을 고려했을 때 이주 후에도 흰발농게가 제대로 살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갯벌 개발이 진행되는 곳에서 비슷한 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2020년에는 인천 영종도 갯벌에서 흰발농게 서식지가 발견됐다. 이곳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영종2지구 개발 사업은 중단됐다. 2025년 4월에는 인천 송도국제도시 개발 사업 중 갯벌에서 흰발농게 서식지가 발견됐다.


    대도시 바로 옆 갯벌에서 발견되는 흰발농게는 우리가 흰발농게에 관해, 그리고 갯벌에 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보여준다. “아직 흰발농게가 국내 갯벌 어디서 서식하는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새로 발견되는 곳도 많고, 사라지거나 새로 나타나는 등 기존의 분포가 바뀌기도 해요. 많은 농게가 따뜻한 지역을 선호하는데, 기후변화가 흰발농게의 분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소리 소문 없이 갈아엎어졌을 송도 갯벌의 생태적 중요성이 흰발농게 덕분에 그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어찌 보면 흰발농게가 갯벌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죠.” 구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죽음의 호수’로 돌아온 흰발농게

     

    4월 30일 오전 11시, 흰발농게를 찾는 이틀간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인 시화호에 도착했다. 다시 갯벌 장화를 신고 펄밭으로 들어갔다. 어제 하루 갯벌을 걸어다닌 덕분인지, 발바닥을 쫀득하게 감싸는 갯벌의 느낌이 훨씬 편안했다. “이곳에서는 어제와 다른 동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서 연구원이 서로 붙어있는 조그만 숨구멍 두 개를 찾아 펄 바닥을 30cm 정도 파자 껍데기가 거뭇한 가무락조개가 나왔다. 호두 정도 돼 보이는, 꽤 큰 크기다. 저 멀리 물가에는 물새들이 모여있다. 기자와 연구원들이 철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갯벌을 걸어가는 동안, 하늘에서는 새 한 마리가 갑작스러운 침입자들에게 새된 경고 울음을 내며 날아다녔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된 검은머리물떼새다. “분명히 저 뒤편 수풀 어딘가에 둥지가 있을 거예요.” 구 책임연구원이 말했다.


    서해 너머로 보이는 송도신도시의 스카이라인, 끝이 보이지 않는 12.7km 방조제, 세계 최대 규모의 조력발전소와 점점이 이어진 거대한 송전탑이 만든 풍경과 흰발농게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그러나 물이 잠깐 들어오는 상부 갯벌로 올라가면, 해안과 평행하게 이어진 폭 약 3~5m 정도 되는 좁은 지역에 검은 좁쌀만 한 동그란 흙덩어리들이 여기저기 깔린 모습을 볼 수 있다. 흰발농게들이 흙 속의 유기물을 섭취하고 남긴 흔적이다. 지금은 강한 바람 때문에 흰발농게는 흙 속 깊이 숨어버리고 지표에는 흰 소금만 말라붙었지만, 이 동그란 흙덩어리는 이곳에 흰발농게가 산다는 분명한 증거다. 시화호에 사는 흰발농게는 약 30년 전부터 시화호와 주변을 연구해 온 구 책임연구원에게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시화호에 생명이 돌아오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에게 시화호는 새만금과 함께 무분별한 간척 공사와 환경오염을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다. 시화방조제가 지어지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인 시화호의 오염이 너무 심해서 한동안 ‘죽음의 호수’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시화방조제는 경기도 시흥시부터 안산시를 이어주는 12.7km의 방조제다. 1994년 시화방조제가 지어지면서 방조제 내의 바다는 외해와 단절된 호수가 됐다. 원래는 이 해수호에 빗물과 강물이 섞여 담수호가 되면 농업, 공업 용수로 쓰고, 추후 간척으로 땅도 얻으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었다. 계획은 시화호가 걷잡을 수 없이 오염되기 시작하면서 틀어졌다. 주변 공단 지역에서 배출한 폐수가 호수를 오염시켰고, 외부 해수가 유입되지 않자 시화호는 오염된 그 상태로 썩어가기 시작했다. ‘기형어 잡히는 호수’ ‘물고기 수십만 마리 폐사’ 등의 헤드라인이 뉴스를 장식한 것도 이때다.


    “결국 정부는 간척 사업을 중단하고 2001년부터 다시 바닷물을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시화호가 다시 바다와 연결된 해수호가 된 거죠.” 중단된 간척 사업 대신 시화방조제에는 시화호 조력발전소가 지어졌다. 시화호와 서해에서 발생하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조력발전소가 서해의 물을 호수로 유입하면서 시화호의 수질과 갯벌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흰발농게, 검은머리물떼새 같은 멸종위기종도 돌아왔다. 이들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을까. 구 책임연구원은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곳이 출입금지 구역인 게 가장 큰 영향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지락 등 식용으로 쓰이는 일부 자원 생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바로 옆의 대부도 갯벌보다도 이곳 시화호 갯벌에서 훨씬 많이 발견됩니다.”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채취해 가지만 이곳은 관리 지역이라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의 접근이 제한된 곳에서 갯벌 생물들이 번성할 수 있었다는 게 구 책임연구원의 의견이다.


    시화호 갯벌에 돌아온 흰발농게는 갯벌을 인식하는 인간의 관점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하며,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20세기 후반까지 갯벌은 무가치한 땅으로 여겨졌고, 개발되고 간척되어야 할, 즉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제 갯벌을 보는 시각은 달라졌다. 갯벌은 생명다양성의 터전이자, 어민들의 삶터이며, 보존해야 할 대상이다. 여전히 이해충돌이 첨예하고 일어나고 있는 갯벌에서 흰발농게와 인간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신도시 옆에서, 한때 죽음의 호수로 불렸던 곳에서 굴을 파는 흰발농게가 던지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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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 일러스트

      박주현,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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