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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DNA 검사는 정말 만능 열쇠일까?

죽음, 그 후 8

테이블에 반듯이 누워있는 시체. 서랍에서 족히 10cm는 돼 보이는 주사 바늘을 꺼내 주사기에 연결한 뒤 손가락으로 시체의 쇄골 사이를 꾹꾹 눌러본다. 주사 바늘이 뼈에 걸리지 않고 심장 위쪽에 있는 대동맥까지 닿을 수 있는 길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대동맥에서 채취한 피는 DNA 검사를 위해 일부는 영하 20°C의 냉동고에, 일부는 실온 보관 창고에 보관한다. 시체 농장에 들어오는 모든 시체는 이렇게 DNA 정보를 남긴다.

요즘 세상에 DNA를 안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해결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던 사건이 머리카락이나 혈흔, 침, 심지어 손톱 밑에 낀 작은 피부 조직에서 찾은 DNA 정보 하나로 반전을 맞는 사건이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과학수사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이젠 변사자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보게 되면 열에 아홉은 ‘DNA 검사를 해보면 누군지 알겠지’라며, 오히려 시체로부터 DNA를 검출하지 못하거나 신원을 밝히지 못하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어떤 증거물에서라도 DNA는 항상 검출할 수 있고, DNA 증거만 있다면 범죄 사건은 항상 해결할 수 있는 걸까. 이번 화에서는 범죄수사에서 DNA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또 우리의 기대만큼 DNA가 만능열쇠인지 살펴본다.


강력한 신원 확인 도구, 상염색체 DNA
 


우리 몸엔 30조 개가 넘는 세포가 있다. 세포는 핵과 세포질로 이뤄져 있는데, 핵과 세포질 속의 미토콘드리아에 DNA가 들어있다. 각각 핵 DNA, 미토콘드리아 DNA(mtDNA)라고 부른다. 이 둘 모두 신원 확인98을 하는 데 중요한 도구다. ‘모든 사람의 DNA는 다 다르다’는 말에서 의미하는 DNA는 핵 DNA이다. 그 중에서도 성염색체 한 쌍을 제외한 22쌍의 상염색체다. 상염색체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각각 절반씩 받는다. 이론상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면 동일한 상염색체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침이나 혈액, 머리카락 등 본인이 생전에 남긴 DNA 시료와 시체의 DNA를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상염색체 DNA는 무엇보다 강력한 신원확인 도구가 된다.

하지만 본인의 DNA를 구하는 게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면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이런 경우 유가족과의 DNA 일치율을 파악해 신원 확인 과정에 활용한다. 상염색체 DNA를 부모에게서 절반씩 물려받는다는 건 다시 말해 부모-자식 관계가 성립되려면 둘 사이에 상염색체 DNA 일치율이 50%가 돼야한다는 말이다. 만약 변사자의 DNA와 변사자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의 DNA가 25%만 일치한다면 이 둘은 모자 혹은 모녀 관계라고 할 수 없다.


DNA 일치율 : 전체 염기 서열을 놓고 보면 사람들의 DNA는 대략 99.9% 동일하며 오직 0.1% 정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기사에서 말하는 DNA 일치율은 이 0.1% 안에서 계산한 값이다.


하지만 이것도 언제나 활용하기는 어렵다. 상염색체를 같은 비율로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형제 자매는 모두 부모와 50%씩 상염색체를 공유한다. 따라서 같은 부모의 자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시체로 발견됐다면 부모의 DNA 자료만으로 자녀 한 명 한 명의 신원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부계 혈통은 Y 염색체로, 모계 혈통은 미토콘드리아로

부모가 아닌 친척의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신원 확인이 더더욱 어려워진다. 혈연 관계가 멀어질수록 공유하는 유전자 비율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성염색체를 활용하기도 한다. 성염색체 중 Y 염색체는 아버지에서 아들로만 전해진다. 돌연변이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아들과 아버지의 Y 염색체는 동일해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Y 염색체를 물려받은 큰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사촌 형제들과도 동일한 Y 염색체를 가진다. 다시 말해 동일한 부계 혈통의 남자들은 모두 같은 Y 염색체를 공유한다.

이 사실은 신원 확인 과정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먼 친척의 DNA 정보를 신원 확인에 활용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큰 장점이다. 실제 전사한 지 오래된 제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 전쟁 전사자의 경우 부모나 형제가 이미 사망하고 사촌이나 5촌의 DNA 시료만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신원을 확인하는 데 Y-DNA의 공이 아주 크다. 반면 동일한 부계 혈통의 남자 시체가 여럿 발견된 경우에는 Y-DNA만으로 각각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어머니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유전자도 있다. 바로 미토콘드리아 DNA(mtDNA)다. 어머니가 같은 자녀들은 모두 같은 mtDNA를 갖는다. 예를 들어 ‘나’(남성)의 여동생이 딸을 낳으면 그 자녀들도 나와 동일한 mtDNA를 공유하지만 나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다. 내 자녀는 아내의 mtDNA를 물려받기 때문이다. 비슷한 mtDNA를 공유하는 집단을 ‘mtDNA 하플로그룹’이라고 한다.

같은 모계 혈통을 가진 사람들은 동일한 mtDNA를 공유하기 때문에 mtDNA 정보만으로 100% 신원 확인을 장담할 수 없다. 실제 미국 백인의 7% 정도는 동일한 mtDNA를 갖고 있다. 만일 변사자가 이런 흔한 mtDNA를 갖고 있다면 신원 확인 도구로 활용하기 어렵다. 이런 특성 때문에 mtDNA를 성(姓)씨에 비교하기도 한다. ‘제갈’ 씨나 ‘돈’ 씨처럼 특이한 성을 갖고 있다면 누군지 특정하는 게 비교적 쉽겠지만, ‘김’ 씨나 ‘박’ 씨라면 이 정보만으로 변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시체는 있는데 DNA가 없다?
 

유가족의 DNA 정보를 확보해도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바로 시체로부터 DNA 정보를 얻지 못할 때다. 대표적으로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을 들 수 있다. 사람이 죽어 부패하는 과정에서 세포 속의 DNA 역시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부서진다. 특히 습기가 많은 환경 등 박테리아 활동이 활발한 환경에서는 DNA가 더 빨리 파손된다. 그 결과 어떤 염기가 어떤 순서대로 배열돼 있었는지 복구가 불가능해진다. 특히 세포 하나에 하나 밖에 없는 핵 DNA는 몇 십 년만 지나도 온전히 복구하기가 어렵다.

시간이 오래 되지 않았더라도 시체가 불에 타면 DNA가 파괴된다. 비행기 추락 사고처럼 대형 화재를 동반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원 확인이 더 어려운 이유다. 몇 년 전 유명 배우의 유골함이 도난당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을 검거해 유골함을 되찾았으나 DNA 검사를 통해 이 유골이 그 배우의 것인지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유골이 화장돼 DNA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뿐만 아니라 화학 약품도 DNA에는 치명적이다. 미국 하와이에 있는 펀치볼 국립묘지 한 켠엔 신원 불명의 한국 전쟁 전사자들이 묻혀 있다. 1990년대에 미국국방성전쟁포로및실종자확인국(DPAA)에선 이들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유해 일부의 DNA 검사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보존 상태가 아주 좋은 뼈에서도 DNA를 확인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한국 전쟁 직후 이들 유해를 송환 받아 감식하는 과정에서 유해 대부분을 포름알데히드에 사흘간 담가놓았고, 포름알데히드가 DNA를 완전히 파괴해 버린 것이다(이전 화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일은 DPAA에서 흉부 엑스선을 이용한 신원 확인 방법을 개발하는 계기가 됐다).

뼈만 남은 유해가 여러 구 뒤섞인 경우도 DNA 검사를 하기 난감한 상황 중 하나다. 신원 확인을 하려면 먼저 한 명 한 명 개체를 구분해야 하는데 모든 뼈에 대해 DNA 검사를 하자면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어른은 206개의 뼈와 32개의 치아를 갖고 있다. 유해가 두 구만 섞여 있어도 최소 500번 이상의 DNA 검사를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모든 뼈에서 DNA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도 없다.

DPAA의 의뢰를 받아 DNA 분석을 진행하는 미군DNA 감식실험실의 2004년 연구에 따르면 성공적으로 mtDNA 결과를 얻은 비율이 뼈에 따라 51%에서 94%까지 다양했다. DNA 검사를 위해선 뼈 일부를 잘라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특히 작은 뼈의 경우, 결과를 얻기 위해 DNA 검사를 반복했다간 DNA 결과를 얻지도 못하고 뼈는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당신 가족의 유해를 찾았지만 돌려드릴 건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유가족은 없다.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비판 속에서도 사람들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범죄 사건 해결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곤 한다. 그만큼 범죄 수사 영역에서 DNA의 역할이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DNA가 답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무턱대고 ‘DNA 검사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학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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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정양승 법의인류학자
  • 에디터

    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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