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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펑] 유전자 편집 기술의 중심에 선 과학자 '제니퍼 다우드나'

 

2020년 10월 9일 새벽 2시. 노벨화학상 수상 소감을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는 약간의 짜증을 섞으며 답했다. “누가 탔는데요?” 이에 기자는 “아직 모르세요?”라고 다우드나 교수에게 되물었다. 그가 정신을 다잡고 들여다본 핸드폰 화면엔 스웨덴 스톡홀롬에선 온 듯한 수많은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기술을 고안한 공로로 다우드나 교수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 교수와 함께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크리스퍼-캐스9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지 불과 8년 만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이들의 노벨상 수상을 시간문제로 여긴 만큼 수상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수상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드문 경우였다. 하루 앞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 펜로즈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50년 전의 업적으로 수상한 터였다. 


이례적으로 빨리 공로를 인정받은 덕분에 우리는 노벨상을 선사한 기술과 동시대를 살게 됐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전은 질병부터 식량 부족까지 현시대의 수많은 난제를 해결할 강력한 도구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유전자 편집을 둘러싼 논쟁은 윤리나 철학, 법적 논의보다 과학의 발전이 빠를 때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논란을 성찰하게 해준다. 

 

기존의 규칙을 깨고 협력한 과학자들

 

“여기에서 진행되는 모든 연구 결과에 대해 특허 보호를 신청하되,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한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여기 모인 게 아니니까요.”


2020년 3월경 다우드나 교수가 UC버클리 유전체연구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회의 서두에 한 말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은 10억 년 이상 바이러스와 싸워온 박테리아의 바이러스 퇴치 기술로부터 고안됐다. 바이러스에 대항할 전통적이고도 강력한 무기라는 의미다. 크리스퍼 개척자가 대유행을 일으킨 바이러스 퇴치 팀을 이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전 지구적인 위기 앞에서 과학자들이 협력하는 모습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학계의 연구자들 사이에 소통과 협업이 제한돼 있었다. 연구자가 소속된 대학이나 기관에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발견에 대한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역설적이게도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이었다.


다우드나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을 두고 장 펑 미국 MIT-하버드 브로드연구소 교수와 수 년 동안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12년 6월 크리스퍼-캐스9이 원핵세포에서 성공적으로 유전자 편집을 한다는 것을 다우드나 교수와 샤르팡티에 교수가 처음 발표했다. 이후 전 세계 많은 연구 팀들은 크리스퍼-캐스9이 인간 세포에서 작동하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맹렬한 질주를 시작했다. 6개월만에 총 다섯 팀이 성공을 거뒀고 가장 빨랐던 건 장 교수였다. 크리스퍼에 관한 특허는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인 문제다. 지난 2월 4일에도 미국 특허청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이 인간세포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mRNA를 누가 먼저 발명했는지를 두고 한 차례 공방이 있었다.   


한 편에서 이런 전쟁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다우드나 교수와 장 교수는 코로나19 퇴치를 위해 모든 연구 결과를 공유하며 협력했다. 다우드나 교수의 일대기를 다룬 책 ‘코드 브레이커’의 저자 월터 아이작슨은 “코로나19 팬데믹은 과학자들의 가장 큰 동기가 실은 돈도, 명예도 아닌, 자연의 신비를 밝혀내고 그 발견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고 적었다.


이 책은 주인공 다우드나 교수 외에 그를 둘러싼 많은 과학자들의 일생을 다룬다. 다우드나 교수와 경쟁 관계에 있는 장 교수, 노벨상을 함께 수상한 샤르팡티에 교수, 그리고 다우드나 교수의 연구실을 거쳐간 십수 명의 과학자들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전기에 관련한 수많은 과학자가 한 데 담긴 데엔 다우드나 교수의 개인적 경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우드나 교수는 어린 시절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과학자 제임스 왓슨의 책 ‘이중나선’을 보며 과학의 세계에 입문했다.

 

이 책에서 그가 주목한 인물은 왓슨이 아닌 로절린드 프랭클린이었다. 왓슨의 관점으로 쓰인 이 책에서는 프랭클린의 실제 업적이 거의 무시된 채 서술됐다. 하지만 다우드나 교수는 행간에서 일생 처음으로 진지하게 ‘여자도 과학자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는 이 책에 등장한 어느 과학자를 보고 누군가 과학의 세계에 발을 들이길 바라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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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과학동아 정보

  • 박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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