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게임 해보신 적 있습니까? 작물을 심고, 수확하고, 파는 게임 말입니다. 대부분의 게임은 솔직히 ‘농장 운영’이라 하기 힘들 정도로 단순합니다. 이런 점이 아쉬웠던 분들께 추천해 드릴 ‘찐 벼농사 게임’이 있습니다. 2020년 발매돼 게임 커뮤니티에서 반향을 일으켰던 ‘천수의 사쿠나히메’입니다.
게임의 배경은 고대의 일본과 유사한 판타지 세계. 주인공 신인 사쿠나는 사고를 쳐서 신들의 나라에서 쫓겨납니다. 외딴섬으로 내려와 오니를 물리치며 땅을 정화하라는 명령을 받았죠. 여기까지만 들으면 몬스터를 잡고 경험치를 쌓는 평범한 롤플레잉 게임 같은데, 문제는 함께 사는 인간들을 먹여 살리려면 직접 벼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겁니다. 주인공이 농사의 능력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랍니다.
벼농사는 게임의 핵심 콘텐츠입니다. 몬스터 잡기도 바쁜데 농사를 지으라니?! 하지만 벼농사는 게임 발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불러일으킨 주역이었습니다. 게이머들이 농사법을 알아내기 위해 농촌진흥청 홈페이지를 뒤지기도 했죠. 그러면 저도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지어보겠습니다.
나는! 벼농사가 이렇게 복잡한지 몰랐다!
우선 모내기부터 시작합시다. 벼의 싹인 모를 논으로 옮겨심는데, 여느 게임처럼 클릭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50개의 모를 손수 클릭해가며 논에 심어야 해요. 모심는 기계인 이앙기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 게임의 배경은 산업혁명 이전이라서눈물). 삐뚤삐뚤하게 모를 심고 나면 벼가 잘 자라도록 관리해줘야 합니다. 병충해가 생기지 않도록 잡초를 뽑고, 해충을 잡아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논에 대는 물의 양도 맞춰줘야 합니다. 물을 얕게 대냐, 깊게 대냐에 따라 나중에 수확하는 쌀의 양은 물론 맛, 향, 윤기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가을이 되면 드디어 추수! 낫으로 익은 벼를 베어내고 짚단을 말린 후, 벼 이삭에서 낟알을 떨어내는 탈곡을 합니다. 탈곡해서 나온 낟알은 절구에 찧어 껍질을 벗기는 도정도 해야 하죠. 쌀을 얼마나 빻느냐에 따라 현미부터 도정을 거의 완벽하게 한 백미 사이의 쌀을 고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플레이어가 직접 합니다. 화살표를 누르고 마우스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이죠. 게임 배경이 현대였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고생 끝에 첫 농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추운 겨울, 밥을 지어 가족들과 나눠 먹으니 기분이 이렇게 따뜻할 수가 없습니다. 농사를 잘 지은 만큼 사쿠나의 능력치도 올라서, 다음 해 사냥에 도움을 주지요. 게임에서 몬스터 사냥만큼 벼농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농사의 만족감을 알려주는 게임, 사쿠나히메
기자에게 이 게임을 추천한 정대호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교수는 “농사가 잘됐을 때의 만족감을 잘 표현한 수작”이라는 감상을 밝혔습니다. 덧붙여 게임에 나오는 수많은 농업 관련 요소가 실제로 미질(쌀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도 설명했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쌀의 앞면에는 ‘쌀 등급 기준’이 적혀있습니다. 손상이 없는 쌀인 완전미의 함유율을 의미하는데, 부서지거나 금이 간 쌀알이 없을수록 높은 등급을 받지요. 물론 쌀 등급 기준이 맛을 좌우하는 척도라 보긴 힘듭니다. 일반적으로 밥맛은 쌀의 품종, 산지, 수확 후 관리 등 다양한 조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단백질 함량이 낮을수록 질감이 부드러워 밥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죠.
게임에서도 어떤 비료를 썼느냐, 논에 얼마나 물을 채웠냐, 수확 후 벼를 얼마나 말리느냐 등에 따라 쌀의 향미가 변합니다. 그러니 봄부터 겨울까지 농부의 마음으로 논을 유심히 관찰해야 좋은 쌀을 수확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에게 어떻게 하면 벼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물어봤습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운영하는 ‘농사로’ 홈페이지에서 영농 기술에 관해 찾을 수 있지만, 게임 도중 힌트만 유심히 읽고 따라해도 다음 해에는 풍작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