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연구의 매력은 그 무한한 가능성에 있습니다. 소재 연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원자와 분자 수준에서 재료의 특성과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새로운 특성을 보이는 신소재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시 세계에서 원자 및 분자의 구성과 미세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첨단 소재의 개수는 무한하며, 이로 인한 우리 미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를 바라보며, 화학 소재를 연구하는 과학자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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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은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게 보여 작은 일에도 즐거울 수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과학을 깊이 알지는 못했지만, 일상에서 과학의 원리에 대한 원초적인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땐 불을 얼리면 빨간색 불 모양의 얼음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촛불을 냉동실에 넣었습니다. 촛불의 모양과 색을 지니는 예쁜 얼음을 기대했지만 물론 실험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엔 불을 물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전기 모터로 구동되는 미니 자동차를 너무 좋아해서 각종 부품을 사서 조립하는 것을 즐겨 했었습니다. 의사셨던 아버지는 제가 궁금해하고 좋아했던 여러 가지 엉뚱한 과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과학동아도 자주 사주시곤 했습니다. 어릴 때는 화학보다는 오히려 우주, 자연, 기계, 생물 등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영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화학과 소재로 연결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화학 소재를 연구하면 우주, 자동차, 로봇, 전자기기, 의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어린 시절의 관심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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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꿈을 찾기 위해 겪어온 긴 성장통
성장의 과정엔 늘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여의고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 동기부여가 돼 있지 않은 채로 대학에 진학했고 또 3학기를 보냈죠.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됐던 건 군 복무 기간 동안이었습니다. 논산 육군훈련소의 조교로 선발돼 군 복무를 했는데 그동안 책임감, 리더십, 체력, 정신력 등 많은 면에서 성장했고 꿈도 갖게 됐습니다.
첫 번째 꿈은 ‘일단 공부 한번 똑바로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에 복학한 뒤 조교 시절 다져진 체력과 정신력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입대 전 엉망이었던 학점이 복학 이후엔 4.0을 넘기게 됐죠. 또 너무나 감사하게도 조부의 무한한 지지와, 돌아가신 아버지 친구분들께서 십시일반으로 모아 매 학기 보내주신 등록금 덕분에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꿈은 미국에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심상은 인하대 화학공학과 교수의 조언이 두 번째 꿈을 갖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4학년 진학을 앞두고는, 미국에 계신 작은아버지의 초청으로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듀크대 등 여러 명문대를 여행하며 유학의 꿈을 키웠죠. 하지만 귀국해서는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박사학위를 하려면, ‘내가 어떤 분야를 좋아하고 연구하고 싶은지’가 명확해야 했으나, 당시 그걸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졸업 후엔 SK케미칼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3년 3개월간 근무했습니다. 그럼에도 좀 더 공부하고 싶다는 꿈은 계속 커져갔죠. 회사에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지지로 퇴사를 결정했고 이후 석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석사과정은 제 연구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심봉섭 인하대 화학공학과 교수의 지도하에 나노복합소재에 대해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첨단 화학소재 분야를 연구하겠다고 결심했죠. 그리고 이후 미국 텍사스대 박사과정에 전액 장학금을 지원받고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본격적으로 공부와 연구를 하기까지 많은 성장통을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막연했던 꿈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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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무진한 첨단 소재 연구의 즐거움
2015년 여름, 미국 댈러스 공항에 도착해 느꼈던 열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거대한 열풍기 앞에 선 것과 같았던, 생전 처음 느껴본 열기였죠. 7년의 박사학위 과정과 박사후연구원 생활도 그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동안 테일러 웨어 당시 텍사스대 교수의 지도 아래 스마트 소재 분야를 연구했습니다. 스마트 소재는 외부 자극에 감응해 모양, 구조, 기능이 변하는 첨단 신소재를 뜻합니다. 다양한 스마트 소재 중에서도 ‘액정 엘라스토머’라는 특별한 고분자 소재를 연구했는데, 이 소재는 분자 수준에서 배향(고분자 사슬이 일정 방향으로 배열되는 것)을 설계할 수 있다는 특별한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치 액정 디스플레이처럼 고분자 소재의 분자 배향을 미세한 영역에서 자유자재로 설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액정 엘라스토머 소재는 외부 자극을 주면 설계된 대로 복잡한 형상 변화가 가능합니다. 덕분에 인공 근육, 소프트 로봇, 형상이 변하는 첨단 전자기기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저는 웨어 교수 연구실의 첫 번째 지도 학생이었습니다. 교수님과 때로는 친구처럼 긴밀하게 소통하고 연구하며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고, 4년 만에 공학 박사학위를 받게 됐습니다. 학위 이후에는 미국육군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소프트 로봇을 위한 인공 근육을 연구했습니다.
박사학위를 시작하기 전에는, 박사는 ‘무엇이든 다 아는 사람’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박사학위의 의미를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기에 앞으로도 해야 할 공부가 많다는 것, 그래서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것이 무척 좋습니다.
과학을 통한 시공간의 초월을 꿈꾸며
현재 저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화학연구원(화학연)의 화학소재연구본부 고기능고분자연구센터에서 첨단 스마트 고분자 소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소재 연구는 소재에 그치지 않고 무한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입니다. 지금 저는 제가 만드는 소재를 로봇, 인공 근육, 자동차, 에너지, 첨단 전자소자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는 ‘설득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가 왜 필요한지, 어디에 쓰일 수 있는지 설득을 통해 논문을 출판하고, 학회에서 발표하며, 연구과제를 책임지는 역할을 계속하는 과정입니다. 논문을 쓰는 것은 전 세계에 본인의 이름을 건 연구를 발표하는 멋진 일이며, 이는 인류가 지속하는 한 영원히 남게 됩니다. 우리가 300여 년 전 출판된 아이작 뉴턴의 논문을 지금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연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도 화학연은 물론 전 세계의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과학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멋진 삶을, 이 글을 보는 학생들도 꿈꾸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