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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아인슈타인도 몰랐던 블랙홀의 진실

지구로 돌진하는 괴물, 우리은하 중심에서도 발견돼

초등학생도 그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한 블랙홀. 외부물질과 빛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먹어치우는 이상한 천체다. 블랙홀은 1783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존 미첼이 빛조차 탈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중력장을 가진 별을 상상하면서 탄생했다. 하지만 1915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이 나와서야 이론적인 설명이 가능해졌다. 중력을 구부러진 시공간으로 간주한 일반상대론은 아주 강력한 중력을 가진 블랙홀의 이론적인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론을 아름다운 수식으로 표현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수식의 해는 구하지 않았다. 1916년 독일의 천문학자 슈바르츠실트가 그 해를 구했다. 놀랍게도 이 해는 자전하지 않는 블랙홀의 크기, 즉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을 뜻했다. 블랙홀의 가능성이 처음 수학적으로 제시되는 순간이었다. 사건 지평선은 블랙홀과 바깥세계의 경계로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계다. 이후 관측기술이 발달하면서 아인슈타인도 잘 몰랐던 블랙홀은 베일에 가렸던 정체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새롭게 밝혀진 블랙홀의 진면목을 들춰보자.


은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블랙홀의 상상도. 주변물질 을 빨아들이고 양극방향으로 일 부물질을 제트 형태로 뿜어 낸다.
 

어떻게 총알처럼 움직일까

블랙홀이 우리 지구를 향해 돌진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이 지구를 삼켜버리지 않을까. 2002년 11월 18일 미국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는 허블우주망원경이 이같은 위험을 가진 블랙홀을 관측했다고 발표했다. GRO J1655-40이라는 이름의 블랙홀이 시속 40만km의 엄청난 속도로 지구를 향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다행히 지구로부터 6천-9천광년만큼 떨어진 안전한 거리를 두고 지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보통 블랙홀은 우주 어딘가에 숨어서 주위 물질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줄 알았는데, 블랙홀이 총알처럼 빠르게 돌아다닌다니 놀랍다. GRO J1655-40의 경우 돌진 속도가 블랙홀 주변에 있는 다른 별들의 평균 속도보다 4배나 빠르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GRO J1655-40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블랙홀의 빠른 움직임은 블랙홀이 초신성 폭발에서 기원했다는 단서라고 한다. 무거운 별은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 때 핵이 폭발적으로 붕괴된다. 이같은 붕괴는 바깥쪽으로 충격파를 발생시키며 이 충격파는 별의 바깥부분을 뿔뿔이 날려버린다. 이것이 초신성 폭발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핵은 태양 질량의 3.5배 이상일 경우 끝없이 붕괴를 일으켜 무한히 작고 조밀한 블랙홀이 된다. 결국 블랙홀은 초신성 폭발 때 한쪽 방향으로 발생한 추진력 덕분에 움직인다는 말이다.

GRO J1655-40이 빠른 움직임을 드러낸 최초의 블랙홀은 아니다. 이전에도 우리은하 안을 떠도는 블랙홀이 발견된 적이 있다. VLBA라는 전파망원경 배열과 로시 X선 우주망원경으로 움직임이 포착됐던 XTE J1118+480이라는 이름의 블랙홀이다. 무려 시속 48만km로 태양 근처의 은하평면을 통과해 지나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지구에서 6천광년 떨어진 이 블랙홀에 대한 연구결과는 2001년 9월 13일자 ‘네이처’에 발표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XTE J1118+480이 수십억년 된 구상성단(보통 은하 외곽에 위치하는 구형의 별무리)에서 뛰쳐나온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XTE J1118+480이 우리은하의 역사 초기에 거대 원시별에서 탄생했던 블랙홀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빨려들며 던지는 마지막 절규 X선


블랙홀과 중성자성으로 빨려드 는 물질에서 나오는 X선의 양상.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에 서는 X선이 갑자기 사라지는 반면, 중성자성 표면에서는 X선이 밝아진다.
 

블랙홀은 빛조차 빨아들이기 때문에 이름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블랙홀의 관측에 대해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지하 석탄창고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당연히 직접 관측하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관측할 수밖에 없다. 블랙홀을 관측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블랙홀이 다른 별과 짝을 이루는 예를 정밀하게 찾는 것이다. 블랙홀은 자신의 강한 중력으로 짝별에서부터 물질을 빨아들여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때 스스로 정체를 폭로한다. 또한 보통은 양극 방향으로 일부 물질을 광속에 가까운 제트(jet) 형태로 뿜어낸다.

GRO J1655-40과 XTE J1118+480의 경우에도 블랙홀 주변을 도는 짝별을 통해 빠른 속도의 움직임이 관측됐다. 이들 블랙홀은 짝별을 도시락처럼 데리고 다니며 짝별의 물질을 빼앗아 먹어왔다. 블랙홀로부터 오랫동안 물질을 빼앗겼던 XTE J1118+480의 짝별은 현재 내부가 드러난 상태다. 질량도 태양 질량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2001년 1월 11일에는 블랙홀이 주변물질을 꿀꺽 삼키는 현장이 X선과 자외선으로 포착된 결과가 각각 발표되기도 했다. 블랙홀은 사건 지평선을 기준으로 안팎이 천양지차다. 일단 사건의 지평선 안쪽으로 들어간 물질이나 빛은 일방통행만 가능하며 절대 되돌아나올 수 없다. 블랙홀에서 포착된 장면은 다름아닌 물질이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을 꼴깍 넘어서며 외쳤던 마지막 절규였던 셈이다.

블랙홀로 유입되는 물질은 수챗구멍으로 물이 빨려들듯이 블랙홀 주위를 맴돈다. 이때 유입 물질은 워낙 빠른 속도로 빨려들기 때문에 엄청나게 뜨거워져 X선, 자외선 등 고에너지를 지닌 짧은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

먼저 1999년 7월 우주로 발사된 찬드라 X선 망원경의 활약상을 보자.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연구팀은 찬드라 망원경으로 블랙홀이 짝별로부터 물질을 빨아들이면서 강한 X선을 내는 경우를 여럿 찾아냈다. 이들 블랙홀 주위에서는 강한 X선이 관측된 반면,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근처에서는 갑자기 사라졌다. 즉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을 지나면서 X선조차 빨려든 것이다. 일방통행 지역인 사건 지평선이 블랙홀 주변에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셈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블랙홀 중심 근처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야 진짜 블랙홀이라는 것이다.

한편 미항공우주국(NASA)의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연구팀은 허블우주망원경으로 블랙홀의 지평선을 넘어가는 물질의 모습을 포착했다. 구체적으로 ‘시그너스 XR―1’이라는 블랙홀 주위를 감싸며 빨려드는 고온의 가스 덩어리에서 나오는 자외선을 살폈다. 자외선 자료에서는 사건 지평선에 다가감에 따라 점차 약해지다가 결국 사라지는 장면이 두번 발견됐다.

3백억개 태양만큼 밝으려면?

1970년대까지는 블랙홀이라면 별의 시체로서 생긴 블랙홀을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블랙홀이 널리 알려져 있다. 거의 대부분의 은하 중심에 존재하는 거대블랙홀이 바로 그것이다.

1974년 영국의 천문학자 마틴 리스가 일부 은하의 중심에 태양 질량의 수백만-수천억배에 해당하는 거대블랙홀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제안했다. 보통 은하보다 굉장히 밝은 활동은하를 염두에 둔 제안이었다. 전파에서 감마선까지 모든 파장의 빛을 방출하고 양극방향으로 대전입자를 제트 형태로 강력하게 뿜어내며 3백억개의 태양에 해당하는 밝기를 쏟아낼 만한 원천이 바로 거대블랙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후에는 활동은하뿐만 아니라 보통 은하도 중심에 거대블랙홀을 가진다는 인식이 보편화됐다.

우리은하도 예외는 아니다. 공교롭게 1974년 처음으로 거대블랙홀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라는 커다란 전파원 안에서 밀집된 전파원이 하나 발견됐던 것. 활동은하가 멀리 있다면 보일 만한 모습을 한 이 천체는 ‘궁수자리 A*’로 명명됐다. 이후 20여년 동안 궁수자리 A*를 전파, 가시광선, 그리고 근적외선으로 애써서 관측했다. 관측 결과 은하 중심을 빙빙 도는 가스와 별들의 속도가 초속 1천4백km까지 나타나 은하 중심에 태양 질량의 2백60만배나 되는 어떤 천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천체가 과연 블랙홀일까.

궁수자리 A*에 대한 X선 관측이 필요했다. X선은 블랙홀로 물질이 빨려들어갈 때 내놓는 마지막 절규일 뿐 아니라 은하 중심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가스와 먼지를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찬드라 X선 망원경이 2000년 1월 궁수자리 A*에서 X선을 포착했다. 궁수자리 A*가 우리은하 중심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던 거대블랙홀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2001년에는 불침번을 서고 있던 찬드라 망원경 앞에서 궁수자리 A*가 갑자기 밝아졌다. 수분 내에 평소 밝기의 45배나 밝아졌고 3시간 정도 후에 평소 밝기로 돌아갔다. 소행성 질량 정도의 물질이 갑자기 블랙홀에 잡아먹힐 때 발생하는 에너지로 추정됐다. 아울러 궁수자리 A*의 크기는 1천5백만km로 계산됐다. 태양 둘레를 도는 수성 궤도의 1/4도 안되는 크기다.

2002년 10월 1일 NASA 제트추진연구소는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블랙홀로 소용돌이치며 빨려들어가는 먼지의 세부를 공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하와이에 있는 제2 케크 망원경을 이용해 중(中)적외선으로 찍은 이 모습에는 특히 ‘북쪽 팔’(Northern Arm)이라 불리는 가스와 먼지 흐름이 두드러졌다. 실내 온도 정도인 물체가 방출하는 중적외선은 은하 중심 주변의 별에서 나오는 가시광선을 흡수한 먼지장막이 내놓은 것이다. 은하 중심의 거대블랙홀은 매우 강력한 중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별들뿐만 아니라 먼지와 가스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거대블랙홀은 새로운 물질을 계속 빨아들여 몸집을 불려온 것으로 보인다.

2002년 10월 17일자 ‘네이처’에는 우리은하 중심부에서 가장 가까운 별의 움직임을 관측해 거대블랙홀의 질량을 연구한 결과가 발표됐다. 독일 막스플랑크 우주물리연구소가 이끈 국제연구팀이 전세계에서 가장 큰 광학망원경인 VLT로 10년 동안 S2라는 별을 관측한 결과, 이 별이 은하 중심을 15.2년마다 한바퀴씩 돌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놀랍게도 은하 중심의 거대블랙홀로부터 떨어진 거리는 단지 태양과 명왕성 사이 거리의 3배였다. 태양보다 몇배 큰 S2별은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언저리에서 초속 5천km의 굉장한 속도로 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S2별의 운동으로부터 추정된 거대블랙홀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약 3백70만배였다.

성장의 씨앗은 별무리 중심에


중간 크기의 블랙홀이 발견된 구상성 단 M15(왼쪽)와 G1(오른쪽). 이들 블랙홀은 별 질량의 블랙홀보다 크고 은하 중심의 거대블랙홀보다 작다. M15는 지구에서 3만2천광년 떨어져 있고, G1은 2백20만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에 속해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은하 중심에 존재하는 거대블랙홀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전문가들은 세가지 정도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원래 은하들이 형성될 때 같이 만들어지거나, 별 질량의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끌어들여 결국 거대블랙홀로 성장하거나, 아니면 좀더 작은 블랙홀의 무리가 병합해 거대블랙홀로 커진 것으로 말이다. 물론 전혀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찬드라 X선 망원경은 별 질량의 블랙홀과 거대블랙홀을 이어주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불규칙은하 M82에서 태양 질량의 5백배에 해당하는 블랙홀을 발견한 것. 이 블랙홀이 M82의 중심에 위치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기도 하다. 점차 몸집을 키워가며 중심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아닐까.

2002년 9월 17일 미국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는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블랙홀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다름아닌 구상성단 중심부에서, 게다가 별 질량의 블랙홀과 거대블랙홀의 중간 크기에 해당하는 블랙홀이 관측됐던 것이다. 지구로부터 3만2천광년 떨어진 구상성단 M15에서는 태양 질량의 4천배인 블랙홀이, 2백20만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의 구상성단 G1에서는 태양 질량의 2만배인 블랙홀이 각각 포착됐다.

구상성단에서 발견된 중간 크기의 블랙홀은 별 질량의 블랙홀과 거대블랙홀을 이어주는 고리로 보인다.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된 거대블랙홀들의 경우 질량이 큰 은하일수록 더 무거운 블랙홀을 가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심의 거대블랙홀은 은하 질량의 약 5%에 해당한다. 이런 경향은 이번에 발견된 중간 크기의 블랙홀에도 이어졌다.

구상성단의 블랙홀은 거대블랙홀로 성장할 씨앗의 훌륭한 후보다. 구상성단은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별들을 포함하고 있다. 구상성단의 블랙홀은 성단이 형성되던 수십억년 전에 함께 태어났을 것이다. 이 중간 크기의 블랙홀이 씨앗 역할을 해 시간에 따라 점점 성장함으로써 거대블랙홀이 탄생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블랙홀은 그 이름만큼이나 벗겨도 벗겨도 신비스런 존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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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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