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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vs PET병 어느 것이 환경친화적인가

강변이나 선창가에 가면 플라스틱 병들이 물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잘 썩지도 않고 재활용도 힘든 플라스틱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말한다. 반면 "철캔이나 알루미늄 캔은 재활용이 가능하므로 환경보호에 이롭다" 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까? 혹시 캔이 물 속에 가라앉아 썩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더 무서운 수질오염의 주범은 아닐까?
 

유리병과 PET병 중 어느것이 환경친화적인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최근 우리는 '환경 친화성' 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선진국에서는 환경적으로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제품에 환경마크나 이와 유사한 라벨링(labelling)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라벨링 제도가 그러하듯 한두가지 기준을 적용해 그 기준에 적합한 경우, 라벨의 부착을 허용하고 사용을 장려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예를 들면 재생지를 사용한 종이제품이나 석면을 사용하지 않은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 등이다.

그런데 한두가지의 기준만으로 환경 친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타 환경적으로 유해한 요소는 없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마치 콜레스테롤 치가 낮은 식품에 'Good Food'라고 표시하는 것과 같다. 콜레스테롤이 낮게 함유돼 있다 하더라도 소금의 함량이 너무 높거나, 우리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면 '건강식품' 으로 분류돼서는 안되는 것이다.

환경 개선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리가 성립된다.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양의 폐수가 발생한다고 하자. 폐수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돼(자체적으로 판단하거나 정부의 규제에 의해), 폐수유출을 10%정도 줄였다. 이런 행위가 환경 개선을 이룩한 것일까. 폐수를 줄이기 위해 고형 폐기물이나 대기 오염 배출이 증가되지는 않았나 다시 점검해야 한다.

이런 의문을 감각적이거나 단편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총체적으로 접근해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것을 '전과정 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쉽사리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감춰져 있거나 찾아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까지도 환경 친화성이나 환경개선의 요소로 포함시켜 이를 정량적으로 산출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기법이다.

전과정 평가에서의 환경은 사용자원, 에너지, 환경배출의 세가지 대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제품이나 공정 또는 서비스에 있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원료→제품생산→소송 및 유통→사용/재사용→유지/보수→재활용→폐기물 처리)의 모든 라이프 사이클 동안에 투입되고 산출되는 자원과 에너지. 환경 배출을 정량화해 우리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것이 바로 전과정 평가다.

이 기법은 '환경시대'에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에 적용되고 있고, WTO 체제하에서 국제 표준화기구의 표준화 (ISO 14000)를 통해 무역 장벽의 일환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 전문가가 많지 않고, 인식도 부족한데다 경험 또한 풍부하지 않아, 무역장벽이 현실로 나타날 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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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병을 재생해 만든 스웨터.


전과정 평가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라용기로 사용되던 물질의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기 위해 사용한 것이 전과정 평가의 효시로 여겨지고 있다.

그 후 PET병 대 유리병, 종이기저귀 대 천기저귀, 스티로폴 컵 대 종이 컵, 유리용기 대 종이팩 등 실로 다양한 경쟁 제품의 환경 친화성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과정 평가가 이용됐다.

과거에는 이렇게 경쟁제품에 대한 환경적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됐으나 현재에는 환경독성화학회(SETAC : Society of Environmental Toxicology and Chemistry)의 주도로 환경 친화성의 비교가 아닌 각 제품의 독립적인 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되고 있다.

다시 말해 PET병 대 유리병의 경우, PET병은 회수율을 높여 재활용을 촉진시키면서 재활용 방법을 개발해야 하고, 유리병의 경우는 재사용 횟수를 최대로 늘리면서 세척시 물 사용과 이에 따른 수질오염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 전과정 평가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제품의 규제를 위해 사용할 것이 아니라, 각 제품의 환경적 취약점을 찾고 이를 보완해 각각의 진정한 환경 개선의 방법으로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모든 면에서 환경적으로 우월한 제품은 있을 수 없고 성능이 나쁜 경우 (예: 수명이 짧은 경우 또는 불량률이 높은 경우) 결국은 더 많은 폐기물을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넓게 크게 보자
 

쓰레기도 중요한 자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시 쓰레기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쓰레기들.


어떤 두사람이 주인공인 사진 한 장을 보자. 한사람은 환하게 웃고 있고 다른 사람은 그 옆에서 찡그리고 있다. 환하게 웃고 있다고 해 그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듯이 찡그리고 있다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어쩌면 그 두사람의 행복은 평생 동안의 행복지수를 모두 합한 후에야 비로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평가가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설사 그러한 비교 평가가 가능하다고 해도 죽는 순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정한 삶의 의미란 각자에게 주어진 여건하에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환경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순간의 환경적 우월성 때문에 그 제품이 경쟁제품보다 총체적으로 환경친화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환경적 우월성의 합이 더 크다고 해서 환경적으로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간의 활동은 그 범위나 크기에 상관없이 환경보존에 저해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덜 위해(危害)하다 해서, 또는 환경 마크를 받았다고 해서 환경보존 노력을 '열중 쉬어' 해서는 안된다.

환경마크가 단순한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닌, 전과정 평가에 근거한 과학적인 제도로 정착할 때까지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환경 개선은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고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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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인중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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