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878초냐, 888초냐 중성자 수명 10초 미스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된다. 원자 내부에는 양자역학적인 확률 분포에 따라 전자가 구름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쌍둥이처럼 닮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핵을 이루고 있다.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양성자와 중성자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수명이다. 양성자는 매우 안정적인 입자여서 수명이 무한대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성자의 수명은 수수께끼다. 올해 4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미국물리학회에서도 중성자 수명 측정법을 놓고 연구자들의 의견이 갈렸다. 1932년 중성자가 발견된 이후 90년 가까이 지났지만 중성자의 수명은 여전히 모른다. 왜 그럴까.  


양성자와 중성자는 질량이 0.1%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고, 입자에 미치는 핵력의 크기는 완전히 똑같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하나의 쌍을 이루는 동일 입자로 취급됐다. 


그런데 핵 안에서는 쌍둥이 입자 같지만, 두 입자를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다른 점이 드러난다. 양의 전기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기적인 차이가 첫 번째다. 여기에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두 입자의 평균수명이다. 


무한한 수명을 가진 양성자와는 딴 판으로, 양성자와 떨어져 독립된 중성자는 유한한 삶을 산다. 일반적으로 중성자의 평균수명은 880초 정도로 알려졌다. 대개 찰나의 순간에 붕괴하면서 사라지고 마는 입자의 세계에서는 수명이 꽤 긴 편이다. 가령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의 평균수명은 1.56×10-22초, 힉스의 흔적을 알려주는 뮤온 입자는 평균수명이 2.1969811μs(마이크로초·1μs는 100만분의 1초)다. 


문제는 880초라는 숫자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팀은 중성자의 수명이 878초라고 주장하고, 다른 팀은 888초라고 주장하고 있다. 겨우 10초 차이인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측정 오차가 2~3초임을 고려하면 이 두 값은 절대 양립할 수 없다. 둘 중 한 쪽이 틀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어느 쪽에 문제가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중성자 수명 측정법, 병 vs. 빔


중성자를 포함해 방사성 붕괴를 하는 입자의 평균수명은 반감기를 측정해 잰다. 반감기란 방사성 붕괴하는 입자의 개수가 처음 존재하던 양에서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반감기는 시간에 따라 남아 있는 입자의 개수를 세는 방식으로, 매우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물리량이다. 또 반감기와 평균수명은 수학적으로 비례 관계에 있다. 평균수명에 0.693을 곱한 값이 곧 반감기다. 반감기를 측정하면 역으로 평균수명을 계산할 수 있다.  

 


중성자의 반감기를 측정하는 방법에는 병(bottle) 방법과 빔(beam) 방법 등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병 방법은 특수한 병을 만들어 그 안에 중성자를 가둬 놓고 시간에 따라 남아 있는 중성자의 개수를 세는 법이다. 빔 방법은 전자기장에 중성자빔을 쏜 뒤, 중성자가 붕괴할 때 만들어지는 양성자의 개수를 세는 방법이다. 남아 있는 중성자를 세는지(병 방법) 붕괴된 중성자를 세는지(빔 방법) 접근 방식만 다를 뿐, 둘 다 반감기를 측정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따라서 두 방법의 결과가 원론적으로는 같아야한다. 그런데 현재 10초가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병 방법을 택한 팀은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와 프랑스 라우에-랑제방 연구소다. 이들은 아주 차갑게 냉각된 중성자를 병 속에 가둬 놓는 방식으로 중성자의 평균수명을 측정했다. 


중성자는 운동에너지에 따라 고속중성자, 열중성자, 냉중성자, 초냉중성자(Ultracold Neutron)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중성자의 에너지가 아주 낮아져 초냉중성자가 되면, 중성자가 갖는 물질파의 파장이 매우 커진다. 


초냉중성자는 물질을 투과하지 못하고 전반사 되는 성질을 갖는다. 따라서 초냉중성자가 투과하지 못하는 물질로 병을 만들어 놓으면, 그 안에 초냉중성자를 가둘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붕괴되지 않고 남아있는 중성자의 개수를 셀 수 있다. 


사실 더 완벽한 방법으로, 진짜 병이 아닌 자기장과 중력장을 이용해 중성자를 가둬 놓는 방법도 있다. 미국과 프랑스 연구팀이 이런 첨단 방식을 도입해 2018년에 발표한 중성자의 평균수명은 877.7±0.7+0.4/-0.2초였다. doi: 10.1126/science.aan8895


이들이 얻은 결과는 880초로 알려진 중성자의 평균수명보다도 짧았다. 877.7초 뒤에 따라오는 0.7초는 통계적인 오차를 말하고, +0.4초와 -0.2초는 실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오차 범위를 말한다. 


빔 방법을 쓰는 팀은 미국표준기술연구소(NIST)와 일본양성자가속기연구소(J-PARC)다. 이 중 NIST가 878초보다 평균수명이 10초 더 길다고 발표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들이 2013년 공식적으로 발표한 중성자의 평균수명은 887.7±1.2±1.9초다.  


뒤에 따라오는 1.2초는 통계적인 오차이며, 1.9초는 실험의 불확실성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의미한다. 이 두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병을 사용해 얻은 값과는 완전히 다른 값이다. 게다가 2013년에는 양측의 평균수명 차이가 8~9초였는데, 2018년에는 10초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이 두 실험 모두 상당히 정교하게 이뤄져 어느 쪽이 실수를 했는지 알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중성자를 가둬 놓는 병을 사용한 방법은 2018년 자기장과 중력장을 도입하면서 정밀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이제는 빔을 사용한 방법이 정밀도를 높여야 할 차례다. NIST와 J-PARC가 뛰어 들었으니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빔을 사용한 결과가 정밀도를 높인 이후에도 현재의 값(888초)을 유지한다면 물리학계의 혼란은 더 커질 것이다.

 

 

중성자 수명 따라 초기 우주 모형 달라져


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양자 요동에 의해 탄생했다. 우주는 태어나자마자 급팽창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쿼크와 같은 기본입자들이 생겨났다. 빅뱅이 일어나고 1초 만에 강입자들이 뭉쳐 양성자와 중성자가 만들어졌고, 이후 3분이 경과한 시점까지 헬륨과 같은 가벼운 핵들이 만들어졌다. 


이때 우주는 핵들로 가득 차있게 되고, 전자와 함께 뜨거운 플라스마 상태가 됐다. 이후 수십만 년에 걸쳐 플라스마가 식으면서 핵과 전자들이 서로 끌어당겨 수소와 헬륨 같은 원자들이 생겨났고, 이들 원자들이 중력에 의해 뭉쳐 별이 되고, 은하가 됐다. 


우주 탄생의 이런 복잡한 과정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표준모형으로 대변되는 현대 입자물리학, 그리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등 여러 관측 사실을 근간으로 만들어졌고, 이를 우리는 현대우주론 또는 표준우주모형이라고 부른다. 중성자의 수명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초기 우주 모형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빅뱅 후 생겨난 양성자와 중성자는 이후 중양성자와 헬륨의 핵 등을 만들게 되는데, 이때 중성자의 수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성자가 얼마나 빨리 붕괴하는지에 따라 중성자와 양성자의 개수 비가 달라진다. 이 비율은 곧 초기에 생성된 중양성자와 헬륨 핵의 개수에 영향을 준다. 중성자 수명이 불확실한 지금, 우리는 초기 우주에서 헬륨이 얼마나 있었는지 그 양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또 양성자나 중성자와 같은 중입자의 개수와 광자의 개수 비도 우주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현대우주론에 따르면 중성자의 수명이 1%만 바뀌어도 중입자와 광자의 개수 비는 17%나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성자의 수명이 우주의 진화와 정밀도를 계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셈이다. 

 

 

중성자가 암흑물질로 붕괴한다면?


878초와 888초. 이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실험 결과가 모두 옳은 값일 가능성도 있을까? 물리학자는 이런 불가능한 상태를 가정해 해법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그중 한 가지 가능성은 암흑물질을 이용한 설명이다. 


만약 중성자가 알려진 것처럼 양성자로 붕괴하지 않고 암흑물질로도 붕괴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즉 대부분의 경우 중성자는 양성자로 붕괴하지만, 가끔가다 한두 번씩 검출기에 잡히지 않는 암흑물질로 붕괴한다면, 양성자로 붕괴하는 횟수가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중성자는 더 긴 수명을 갖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병을 사용한 방법은 중성자의 개수를 세는 것이어서 제대로 중성자의 수명을 잴 수 있지만, 양성자를 세는 빔 방식은 오류를 갖게 된다. 


중성자가 암흑물질로 붕괴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정이 정밀한 수명 측정 과정에서 실제로 관측된다면 어떻게 될까. 중성자가 암흑물질과 반응한다면 이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빅뱅 우주론에 커다란 충격을 줄 것이다. 더 정밀한 중성자의 평균수명 측정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박인규 
프랑스 파리-수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입자와 전산물리에 대한 주제를 연구 중이며, 최근에는 한국물리학회 제28대 홍보잡지 편집위원으로 물리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데도 힘쓰고 있다. icpa00@gmail.com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인규
  • 에디터

    김진호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물리학
  • 천문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