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다음인 10월 10일, 한강 소설가가 한국 작가,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랫동안 읽길 미뤄뒀던 그의 책을 찾으러 얼른 도서관에 달려갔다. 책꽂이에는 종이가 누래진 오래된 책부터 빳빳한 새 책까지 가지런히 꽂혀 있다. 이들이 섞여 특유의 책 냄새를 만든다. 습기 가득한 숲속 같기도 하고, 갓 구운 쿠키 같기도 한 냄새.
많은 사람들이 헌책방, 도서관에서 맡는 책 냄새는 착각이 아니다. 조향사들이 책 냄새를 주제로 한 향수를 만들 정도다. 책 냄새는 종이는 물론, 잉크, 접착제까지 다양한 화학 물질이 합쳐져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물질들이 분해되며 다양한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s톅olatile Organic Compounds)’을 방출한다. 이 물질들이 책 냄새를 만든다.
거의 모든 냄새가 그렇지만, 한 물질이 단독으로 냄새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책 냄새를 만드는 몇 가지 중요한 화학물질만 살펴보자. 종이를 이루는 주요 물질인 셀룰로오스가 분해되면 아몬드 향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푸르푸랄’이 만들어진다.
또 다른 종이 구성 물질인 리그닌은 분해되면 종이를 노랗게 만드는 물질이다. 리그닌은 분해되면서 ‘바닐린’을 방출한다. 이름이 암시하듯, 달콤한 바닐라 향을 낸다.
종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삭아간다. 결국은 분해될 운명이다. 종이에 담긴 내용은 그렇지 않다. 어떤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새로워지고 많은 사람에게 읽힌다. 한국 현대사의 폭력을 정면으로 바라본 한강의 작품이 그렇다. 어쩌면 도서관의 묵은 책에서 나는 냄새는, 좋은 글이 익어가는 향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