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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선 태양을 향한 인간의 호기심을 오만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태양에 닿으려던 이카로스는 날개가 녹아 지상으로 추락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오늘날 이카로스 신화를 다시 쓴다면 결말은 다를 것이다. 이제 태양을 향한 호기심은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여겨진다. 태양이 자아내는 다양한 현상으로부터 인류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선 우선 태양이 어떤 별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 가까이, 더 자세히, 더 빨리. 태양을 살피기 위해 우주로 나가는 21세기 이카로스들의 태양 관측 미션 세 가지를 짚었다.
“태양을 만지다(Touch the Sun)” 파커 태양탐사선
인간이 만든 가장 빠른 물체, 그러면서도 가장 태양에 가까이 간 물체.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2018년 8월 쏘아 올린 파커 태양탐사선에 붙는 수식어다. NASA는 홈페이지를 통해 “코로나의 미스터리를 풀 뿐만 아니라, 우주날씨로부터 인류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파커 태양탐사선을 태양으로 보낸다”면서 “파커 태양탐사선은 태양을 ‘만지는 데(Touch the Sun)’ 성공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코로나는 태양의 가장 바깥 대기층이다. 코로나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은 그대로 지구로 전해져 우주날씨를 좌지우지한다. 오로라나 전리층 교란 등이 그 예다. 특히나 태양의 코로나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폭발, 코로나 질량 방출(CME)이 발생할 경우엔 지구상의 전자장비나 통신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선 코로나와 태양풍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NASA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실과 함께 파커 태양탐사선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파커 태양탐사선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태양풍의 에너지 흐름을 추적하는 것. 태양풍이 생성되는 지점에서 플라스마(이온화된 기체)나 자기장이 어떤 구조로 어떻게 활동하는지 밝히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이 고에너지 입자를 가속하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파커 태양탐사선은 2018년부터 2025년까지 태양 주변을 24번 돌 계획이다. 2024년 한 해만 보더라도 궤도를 세 바퀴 돈다. 그리고 2024년 12월 24일이면 22번째 궤도를 돌며 태양 표면에서 약 616만 km 거리까지 접근할 계획이다. 파커 프로젝트를 담당한 누르 라우와피 연구원은 2023년 12월 BBC와의 인터뷰에서 “(22번째 궤도에서) 파커 탐사선은 거의 별 위에 착륙한다고 말해도 무관할 정도로 태양과 인접할 것”이라면서 “그렇게 되면 1969년 달에 착륙했던 것처럼 전 인류에게 기념비적 성취를 가져다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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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태양탐사선의 구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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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날씨 예측할 자산, 8년의 관측결과
파커 탐사선이 그동안 보내온 태양 관측 자료들은 현재 한창 분석 중이다. 첫 연구 결과는 발사 이듬해인 2019년 12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네 편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적도 지역의 코로나 구멍에서 태양풍이 발생하는 과정을 밝힌 논문부터, 태양풍의 속도와 회전 특성을 밝힌 논문, 코로나 인근의 고에너지 이온과 전자의 이동경로를 연구한 논문, 코로나의 형태적 특성을 연구한 논문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네이처는 “파커 태양탐사선은 태양계의 미답지를 탐사하면 대단한 발견들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면서 “앞으로 파커 태양탐사선의 자료를 통합해 태양의 물리적 특성과 태양풍의 비밀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평했다.
파커 태양탐사선은 2025년 6월 19일 태양에 마지막으로 인접한 다음 퇴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파커 태양탐사선의 관측 자료로 태양풍을 연구하는 서정준 한국천문연구원 태양우주환경그룹 선임연구원은 8월 7일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파커 태양탐사선의 임무가 연장될 가능성을 귀띔했다. 그는 “최근 업데이트된 상황으론 원래 계획됐던 24번의 궤도 비행에 더해 궤도의 각도를 살짝 바꿔 두 번의 궤도 비행을 더 시행할 계획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파커 태양탐사선 이후는 어떨까. 서 선임연구원은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현재 천문학계에서는 파커 태양탐사선 외에도 2020년 NASA와 유럽우주국(ESA)이 함께 개발해 발사한 솔라 오비터(Solar Orbiter) 등 탐사선에서 나오는 방대한 관측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풀리지 않는 태양의 의문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2020년대는 태양 탐사가 가장 활발한 시기가 될 것이며, 이 분야에 많은 도약이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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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날씨 예측한다” CODEX
한편, 10월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케네디 우주센터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공동개발한 태양 코로나그래프, CODEX(Coronal Diagnostic Experiment)가 지구를 떠나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향한다. 코로나그래프는 코로나를 관측하는 망원경이다. 특히 CODEX에 설치된 협대역 필터와 픽셀 분리형 편광 카메라는 코로나의 온도와 속도, 밀도 값을 한번에 2차원 영상으로 구현해준다. 그 덕에 CODEX는 코로나의 온도와 속도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코로나그래프가 됐다.
8월 1일 대전 한국천문연구원에서 한국 측 연구책임자인 김연한 우주과학본부 태양우주환경그룹 책임연구원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청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2013년, NASA에서 먼저 코로나그래프를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며 입을 열었다. 한미 양국이 가진 장점이 명확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다. 그래서 한국이 코로나그래프 비행 및 지상 운영 소프트웨어 전체와 편광카메라, 구동제어기 등을 맡았다.
한편 미국은 국제우주정거장을 속속들이 잘 안다. 그래서 CODEX를 국제우주정거장에 설치하고 운영하는 업무와 코로나그래프의 태양 추적 장치 개발 등을 담당했다. 미국측 연구책임자인 NASA의 제프리 뉴마크 박사는 8월 8일 보도자료를 통해 “CODEX는 한국과 NASA의 기술력이 합쳐져 만들어진 합작품”이라고 밝혔다.
10여 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CODEX가 곧 우주로 나간다. 가장 부담감이 클 김 책임연구원은 담담히 동료들을 걱정했다. “저희 연구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한국과 미국이 개발한 부품을 미국 현지에서 합치고, 소프트웨어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해요. 그래서 최성환 책임연구원과 백지혜 책임연구원, 박종엽 선임연구원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거의 매달 2주씩은 미국 현지에서 통합 작업을 진행했으니까요. 그러나 NASA와 동등한 자격으로 인정받고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 이번 프로젝트가 처음 아닐까 생각합니다. 힘들지만 그런 사명감을 갖고 일했어요.”
CODEX는 지난 4월 통합 조립 작업을 완료하고 8월 초 최종 기능 점검까지 마친 상태다. CODEX가 무사히 ISS에 설치되면 한 달간 시험기동 기간을 겪은 뒤 본격적으로 운영된다.
“우선 6개월간 운영해 보고 성과가 좋으면 2년까지 운영 기간을 연장할 계획입니다. 일단 목표는 CODEX가 관측 데이터를 잘 뽑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겁니다. 데이터가 나오면 그걸로 연구해야죠. CODEX의 데이터는 우주날씨를 예측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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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이후를 바라보는 태양 연구” L4 우주환경관측소
태양탐사 분야에서 한국이 노리는 또 다른 ‘세계 최초’가 하나 더 있다. 5월 30일 문을 연 우주항공청은 개청식과 동시에 라그랑주점(L4) 우주환경관측소를 설치해 태양을 탐사할 계획을 밝혔다. 라그랑주점은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상쇄돼 탐사선이 적은 연료로도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지점이다. 우주 탐사의 요충지로 불리는 라그랑주점은 L1부터 L5까지 총 다섯 지점이 있다. 이 중 우주항공청이 목표로 하는 L4 지점에는 아직 그 어떤 국가도 진출하지 않았다.
2년 전부터 L4 우주환경관측소 기획연구에 참여해 온 박성홍 한국천문연구원 태양우주환경그룹 선임연구원은 8월 9일 과학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L4 지점은 태양에서 고에너지 입자가 방출될 때 그 시작 지점을 정면으로 관측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진다”면서 “그래서 L4 지점에 우주환경관측소를 설치해 고에너지 입자 방출 예보 모델의 성능을 향상시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에너지 입자는 극궤도를 지나는 비행기의 승객이나 ISS 우주비행사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고에너지 입자의 방출을 미리 예측해 대비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L4 우주환경관측소, CODEX와 파커 태양탐사선 모두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인공위성이나 정밀한 전자장비 등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 개발된 인류 문명의 산물을 태양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점이다. 21세기, 태양을 바라보는 탐사 미션들은 그래서 더 큰 도전을 위한 초석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선임연구원은 “L4 우주환경관측소는 10년 이후를 바라보고 계획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최근 태양우주환경 분야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엔 지구를 넘어 달, 화성 등 태양계로 진출하려는 현재 분위기도 한몫할 겁니다. 태양은 태양계 전체의 우주환경에 영향을 주니 태양을 잘 이해해야 하죠. 한국도 20여 년 전부터 태양 및 우주환경 연구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국가와 협력을 통해 탐사의 지평을 확장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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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X, 가을 하늘 너머 우주로
한국과 미국이 공동개발한 태양 코로나그래프, CODEX는 10여 년의 개발 끝에 10월 국제우주정거장(ISS)로 향한다. 개발에 참여한 한국천문연구원 천문우주기술센터 최성환 책임연구원(사진 왼쪽 첫번째)과 백지혜 센터장(왼쪽 다섯번째), 그리고 박종엽 선임연구원(오른쪽 첫번째)을 8월 12일 화상으로 만났다. 최 책임연구원은 “한국과 미국이 동등한 위치에 서서 전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CODEX가 처음”이라면서 “국제적인 규모의 우주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은 앞으로 국내에서 또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한 백 센터장은 “지상 소프트웨어 개발은 발사와 ISS 탑재가 잘 이뤄지더라도 이후에 데이터가 잘 나오는지 확인하는 등 절차가 남아 있어 아직 부담스럽다”면서도 “모든 작업이 끝나면 정말 간만에 휴가를 떠날 수 있겠다”며 웃었다. 박 선임연구원은 “CODEX 프로젝트에 처음 합류하던 2017년, 과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 CODEX 이야기를 살짝 꺼냈던 기억이 난다”면서 “처음과 끝에 과학동아 인터뷰가 있는 셈인데, CODEX 개발 과정이 참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후배 연구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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