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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서울에 사상 첫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됐습니다. 서울시가 7월 9일 양천구에 말라리아 경보를 내린 데 이어 22일에는 강서구에 두 번째 말라리아 경보를 발령한 겁니다.
말라리아 확산세가 심각한 건 서울만의 일이 아닙니다. 질병관리청의 주요 감염병 통계에 따르면 한국 말라리아 환자 수는 최근 2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8월 7일엔 말라리아 경보가 전국적으로 확대됐고요. 이렇게 말라리아 환자 수가 급증한 이유로는 기후변화, 코로나19, 남북관계까지 다양한 원인이 꼽힙니다. 이 키워드들과 말라리아는 대체 무슨 상관인 걸까요? 과학동아가 풀어봤습니다.
말라리아는 전 세계에서 매년 2억 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급성 열성 감염병입니다. 단세포 생물인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모기가 인간의 피를 빠는 과정에서 퍼지죠. 2024년 7월 서울에 사상 최초로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되면서, 한국이 더 이상 말라리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말라리아 경보는 전국에 말라리아 주의보가 발령된 이후, 군집사례가 발생하거나,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도시 곳곳에 설치된 트랩 중 하나에서 2주 연속 매일 5마리 이상 잡힌 경우 발령됩니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을 비롯해 북한, 멕시코, 코스타리카, 태국 등 25개국을 말라리아 퇴치 우선국가로 지정했습니다. WHO는 이들 퇴치 우선국가들에게 2030년까지 말라리아를 퇴치할 것을 권고했죠. WHO가 지정한 말라리아 퇴치 우선국가 중 OECD 회원국은 한국과 멕시코, 코스타리카 세 곳입니다.
원래 한국에서는 매년 5~10월 휴전선 인근 지역인 경기, 인천, 강원, 서울 등에서 300~400명가량의 환자가 발생해왔습니다. 그런데 말라리아 환자 수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습니다. 한국 말라리아 환자 수가 2021년 294명에서 2023년 747명으로 훌쩍 뛴 겁니다.
연도별 한국 말라리아 환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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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말라리아 매개 모기 서식지 확장
한국에서 말라리아 환자 수가 급증한 이유로는 다양한 원인이 거론됩니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건 역시 기후변화죠. 기후변화에 따라 전 지구적으로 말라리아 매개 모기의 서식 범위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콜린 칼슨 미국 조지타운대 생물학과 교수팀이 2023년 국제학술지 ‘영국 왕립학회 생물학 회보’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얼룩날개모기속(Anopheles) 모기의 서식 범위가 매년 4.7km씩 더 고위도로 넓어졌습니다. 기후변화 탓에 고위도의 날씨가 온화해져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doi: 10.1098/rsbl.2022.0365
기후변화와 말라리아 사이의 연관관계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모기 유충은 얕은 담수 웅덩이에 서식하죠. 그래서 비가 많이 올수록 모기가 번성합니다. 기후변화가 발생하면서 세계적으로 강우량 패턴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재우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런 강우량 패턴 변화가 말라리아 확산세와 연관돼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2022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습니다. doi: 10.1038/s41598-022-18782-9
연구팀은 1901년부터 2015년 사이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확산 데이터와 온도 데이터, 그리고 강우량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이들 데이터를 모아 기후변화가 아프리카의 말라리아 확산 양상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살폈죠. 그 결과 기후변화에 따라 온도와 강우량이 상승하면서 말라리아 또한 큰 폭으로 확산됐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다만 ‘강우량 상승=말라리아 확산’이라는 공식을 섣불리 만들어선 안 됩니다. 1981년부터 2015년까지 강우량이 증가할 때 말라리아 확산세가 감소하는 상관관계를 보이기도 했거든요.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강우량이 많아지면 말라리아 매개 모기가 번식할 공간이 늘어나면서 말라리아 확산세가 강해진다”면서도 “비가 한계치 이상 내릴 경우엔 이 연관관계가 뒤바뀐다”고 설명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릴 경우엔 오히려 모기 유충이 휩쓸려 죽는 등 모기의 생존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기후가 변화하며 과거엔 말라리아 문제를 겪지 않던 지역이 말라리아의 위험에 새로이 노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중 한 예시가 바로 한국이 될 수 있죠. 질병관리청은 2016년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기후가 점차 아열대성으로 변해가면서 열대지역에서 살던 모기가 유입돼 적응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지구온난화와 생태환경 변화가 모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앞으로 모기로 인한 질병 피해는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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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에서 말라리아 매개 모기를 분류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남북관계・코로나19, 남북 방역 활동에 영향
세계적으로는 기후변화가 말라리아 확산의 주요 요인이라면, 한국의 경우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북한에서 유입되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입니다. 한국에서 말라리아는 원래 ‘학질’이라는 이름의 흔한 질병이었다가 1979년 WHO가 ‘완전 퇴치’를 선포할 정도로 그 세력이 줄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1993년 북한 접경 지역인 경기 파주의 군부대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며 재확산됐죠. 이에 경기도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간 총 21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말라리아 남북공동방역사업을 추진한 적 있습니다. 당시 남한 환자의 80% 이상이 북한에서 온 말라리아 매개 모기에 의해 감염됐다는 게 그 배경이었죠. 사업 결과, 접경지역인 경기도와 인천, 강원도의 말라리아 감염 환자 수가 2007년 1616명에서 2013년 339명까지 약 80%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2012년부터는 남북관계가 나빠지며 공동방역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의 말라리아 환자 수 급증은 남북관계 탓이라는 추측이 나옵니다. 추측이 사실일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김종헌 성균관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8월 5일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국내 말라리아 발생 추이에 대한 북한의 기여 수준을 바라보는 시선은 연구자마다 다르다”며 운을 띄웠습니다.
“저는 50:50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입니다. 남북한의 말라리아 발생률 비교연구는 북한에서 접경지역의 환자 발생 자료를 공개하고, 병원체의 유전체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면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말라리아 발생률 변화는 국내 말라리아 발생률 변화에 있어서 작은 변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기후변화로 인한 확산세 증가는 보다 크고 장기적인 변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근거 중 하나는 2024년 다시금 예년 수준으로 감소하고 있는 국내 말라리아 확산세입니다. 김 교수는 “말라리아 환자의 증가는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해 남북한 모두 방역 활동에 소홀했던 탓이 크다”고 짚었습니다. 실제로 북한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국경을 폐쇄하면서 국제기구에서 제공받던 말라리아 진단키트 및 치료제 공급망이 끊기고, 재고마저 동나 어려움을 겪었죠. 그러나 2024년 초부터 다시 국경을 통해 국제기구의 방제 지원 물품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향후에는 북한의 영향으로 인한 국내 말라리아 환자 수 증가세는 다시 완만하게 감소할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예상”이라며 “실제로 현재 국내 환자 수는 2023년 동시기와 비교해 줄어든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필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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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도 없는’ 삼일열 말라리아, 대응책은?
말라리아 확산세가 다시 예년 수준으로 돌아갈 전망이지만 안심은 금물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말라리아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또한 점차 아열대성 기후로 접어드는 상황이라 말라리아 확산에 취약하죠. 게다가 말라리아는 단세포 생물에 의해 감염되는 질병이라 독감, 코로나19와 달리 백신 개발이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WHO의 승인을 받고 상용화된 백신은 2021년 승인된 ‘RTS,S(모스퀴릭스)’와 2023년 승인된 ‘R21’ 두 개입니다. 모두 열대열 말라리아에 대한 백신이라, 한국에서 발생하는 ‘삼일열 말라리아’를 예방하진 못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말라리아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질병관리청은 2024년 4월 25일 ‘제2차 말라리아 재퇴치 실행계획(2024~2028)’을 발표했습니다. 무증상 말라리아 환자를 더욱 촘촘히 찾아내고, 환자가 발생한 감염추정지역 및 거주지역에서 공동 노출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대한 검사를 시행해 말라리아를 조기 발견, 치료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그 일환으로 말라리아 역학조사 기준이 더 까다로워져 서울에 첫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죠.
그러나 김 교수는 “아직 국내에 말라리아 방역 및 진단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아 말라리아 퇴치로 가는 길은 여전히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발열 환자 중에서 말라리아 환자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 치료하고, 무증상 말라리아 환자를 찾아내 전파 고리를 끊는 것이 말라리아 퇴치의 핵심입니다.”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선 시민들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