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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암, 노화, 유전질환 인류의 난제 유전체로 풀다

알파세대를 위한 다시 쓰는 과학교과서 ④

 

DNA 운반체를 이용해 치료에 필요한 유전자를 환자 몸 안에 넣어 결함 유전자를 대체하거나, 그 부위에 치료용 단백질을 생산하게 하는 것을 유전자 치료라고 한다. 유전자 치료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실제 치료에 적용된다면 암,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 유전병 등 많은 난치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_고등학교 생명과학2 교과서(미래엔, 2018) 중

 

편집자 주
교과서는 엄격한 검증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지식이죠. 하지만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고, 특히 과학은 새로운 관측이나 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수정되며 발전합니다. 우주와 생명의 진리에 다가서기 위해 오늘도 한 걸음을 내딛는 기초과학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2023년 겨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한 최초의 치료제가 약물로 나왔다. ‘겸상 적혈구병’ 치료제의 이름은 ‘카스게비’. 겸상 적혈구병은 본래 둥근 모양인 적혈구가 낫 모양(겸상)으로 바뀌고, 서로 엉겨 붙어 피의 흐름을 막는 희귀질환이다. 적혈구 세포 내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베타글로빈 유전자의 염기서열 하나가 바뀌며 비정상적인 헤모글로빈이 만들어진다. 

 

겸상 적혈구병 환자들은 주기적으로 수혈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혈관 폐쇄가 심각해 기존의 치료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중증 환자들이 있었다. 카스게비는 그런 환자들에게 치료의 길을 제시하며 유전자 치료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카스게비는 정상 헤모글로빈이 생성되는 것을 막는 유전자를 제거한 뒤 교정된 베타글로빈 유전자를 재이식한다.

 

유전체 연구와 새로운 도구는 이제 유전질환을 넘어 암, 노화 같이 인류가 풀고자 하는 숙제를 마주하고 있다. 언젠가는 과학교과서에 암과 노화가 오랫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힌 난제였다고 적힐까. 암과 노화 정복의 실마리를 좇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구본경 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장
“사람이 생쥐보다 오래 살 수 있는 건 우리 몸이 돌연변이 세포를 잘 제어하고 유전체를 깨끗이 유지관리하기 때문입니다. 이 메커니즘을 연구하면, 돌연변이 세포로 만들어지는 암과 노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언젠간
‘왜 암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었지?’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올 거예요.”

 

“유전자 가위 치료제, 일상이 될 것”

 

 

“앞으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치료제는 정말 흔해질 거예요. 빠르면 5년, 늦으면 10년 안에 그런 시대가 올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6월 3일 대전 IBS 본원에서 만난 구본경 유전체 교정 연구단장은 카스게비가 연 새로운 시대가 머지않아 일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퍼-캐스9의 정확성과 효율성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올라온 까닭이다. 

 

문제는 박테리아 효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3세대 유전자 가위를 인체에 반복해 주입하면 면역 반응이 유도된다는 점이다. 구 단장은 “빠르면 두 번, 늦어도 세 번째부터는 면역 반응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암세포 돌연변이를 직접 제거하기 어렵다. 암세포 돌연변이를 직접 제거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가위가 높은 효율과 정확도를 유지하면서도 면역 반응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이를 위해 오늘날 과학자들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전달체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두 사람, 커리코 커털린 독일 바이오앤테크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가 2005년 발표한 mRNA의 ‘스텔스 기술’이다. RNA가 외부에서 들어오면 우리 몸은 선천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두 명의 과학자는 변형된 뉴클레오사이드를 사용하면 면역 반응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기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만들어졌다.

 

어쩌면 1세대 유전자 가위가 다음 세대 유전자 가위로 다시 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전자 가위는 1세대 징크 핑거(ZFN), 2세대 탈렌(TALENs)을 거쳐 3세대 크리스퍼-캐스9까지 발전해 왔다. 그런데 지금 구 세대의 유전자 편집 기술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 단장은 “ZFN가 포유동물에서 온 단백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ZFN은 정확도와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인체의 면역 반응을 피하는 스텔스 기능은 우수하다. 즉 ZFN의 정확도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구 단장은 “현재 인공지능(AI)을 활용해 ZFN의 정확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남윤중
 

 

6월 3일, 류범한 기초과학연구원(IBS) 리서치솔루션센터 인프라운영팀 선임기술원이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 앞에 앉았다. Cryo-EM은 생물학적 분자 구조를 고해상도로 시각화하는 장비다. 복잡한 구조의 단백질을 액체 에탄을 사용해 빠르게 냉각시켜 결정화되지 않은 샘플로 관찰할 수도 있다. Cryo-EM는 오늘날 생물학, 생화학, 의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발견을 이끌고 있는 도구다. 2020년엔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구조를 밝힌 바 있다.

 

DNA 복구 메커니즘으로 암・노화 치료

 

 

6월 3일 울산 UNIST에서 만난 명경재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장은 암, 노화 같은 인류의 난제를 유전체가 스스로 치료하는 복구 메커니즘을 통해 풀고자 했다.

 

DNA는 유전체의 구성요소이자 유전정보를 결정하는 물질이다. DNA에 손상이 생기면 세포는 유전정보를 보존하기 위해 세포주기를 멈추고 DNA 복구 과정을 작동시킨다. 그런데 이런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돌연변이 세포가 만들어지거나 세포사멸로 이어진다. DNA 손상복구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 성과는 한차례 큰바람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 주요 DNA 복구 메커니즘을 규명한 3명의 생화학자가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DNA 손상복구 메커니즘은 항암제 개발로 이어졌다. 특히 DNA 이중나선 절단을 복구하는 BRCA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유방암, 난소암 등 여성암의 발병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과학자들은 BRCA 변이가 있는 암세포에서 DNA 손상복구에 핵심 역할을 하는 PARP를 억제해 세포사멸을 유도하는 합성치사 항암제를 개발했다. 정상세포가 주류일 땐 DNA 손상복구 기작을 통해 돌연변이를 처리하지만, 암이 된 이후엔 DNA 손상복구가 암 세포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명 단장은 “양날의 칼을 이용한 것”이라 설명했다.

 

DNA 손상과 복구 기작은 노화와도 관련이 깊다. 노화된 세포는 DNA 손상이 축적돼 있고, 특히 이중나선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손상된 DNA의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노화가 가중된다. 명 단장은 “우리 몸의 단백질 하나하나가 몸의 균형과 손상 복구 기작에 관여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DNA 손상복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곧 생명체를 제대로 아는 길이 되는 셈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DNA 손상복구 메커니즘이 더 많이 밝혀지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연구가 쌓일수록 암은 물론 노화를 막는 방법으로 이어질 겁니다.”

 

명경재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장
“거시적인 관점에서 DNA 구조 변화는 생명체가 달라지는 환경에서 살아남은 비결입니다. 아직까지는 학설 중 하나지만, 세포가 면역 작용을 위해 DNA를 살짝 손상시키는 게 관찰되고 있죠. 이런 손상이 염색체의 구조적 변화를 만들고 아래 세대까지 이어진다면 진화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김성기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장
“뇌과학은 결국 인간을 연구하는 일입니다. 심리학적 관점이 배제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문이과가 공동 연구를 하는 것이 쉽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인간 뇌를 연구한다는 커다란 목표가 같기에 이과는 문과에 방법론을 제시하고, 문과는 이과에 연구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새로운 뇌과학 연구 성과를 내는 법, ‘융합’ 

 

 

유전자 가위라는 놀라운 도구가 유전체 연구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은 뇌과학 연구를 혁신적으로 발달시켰다. 뇌혈관의 변화를 촬영한 정교한 뇌 이미지를 잘 해석함으로써 뇌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과거엔 탐침과 같은 침습적인 방법과 인터뷰와 같은 비침습적인 연구 방식 말고는 뇌를 연구할 방법이 없었죠.” 5월 31일 수원 성균관대에서 만난 김성기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장은 “fMRI가 개발되기 전 비침습적인 뇌과학 연구는 한계가 분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1990년, 당시 미국 AT&T 벨연구소 소속의 오가와 세이지 박사가 BOLD(혈액산소수준의존성) 이미징 방법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혈액의 산소포화도가 달라지면서 물의 자기공명 특성이 달라지는 것을 이용해 뇌의 작동 부위를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김 단장은 미국 미네소타대 핵자기공명(NMR)연구센터 소속이었던 1992년, fMRI를 사람에게도 쓸 수 있음을 최초로 증명했다. 사람의 대뇌 뒤쪽, 후두엽에 있는 시각피질의 신경세포가 조명의 밝기에 따라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fMRI 촬영으로 밝혀냈다. 그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말을 하고,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고, 의사결정을 할 때 뇌의 어떤 부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fMRI 촬영을 통해 연구할 수 있었다. 

 

이런 뚜렷한 성과에도 김 단장은 “뇌연구가 간접적인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재의 fMRI 이미지로는 뇌의 혈류 움직임과 농도 외에 다른 정보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세포 단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fMRI의 측정값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은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융합’을 제시한다. 이과는 문과에 방법론을 제시하고, 문과는 이과에 연구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공동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소속 총 14명의 교수 중 2명이 심리학과 교수다. 생물 물리학과 심리학이 함께 파고들 뇌 과학이 알파세대의 과학 교과서에 쓰일 날이 머지 않았다. 

 

DNA를 바꾸는 두 가지 방법 

 

 

DNA가 손상되는 원인은 수없이 많다. 자외선과 발암물질 등에 의해 염기서열이 바뀌기도 하고, 정상적인 대사활동 과정에서도 DNA 변형이 일어난다. 인체는 이런 손상을 스스로 복구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DNA 복구 시스템은 인류가 유전물질을 보존하고 또 전달해 온 비결이다. DNA의 주요 손상복구 메커니즘과, 이를 활용해 DNA 교정을 꾀하는 유전자 가위의 원리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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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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