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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눈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새롭게 조명되는 잠재의식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두뇌에 손상을 입은 한 여자는 더이상 물체를 인식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그 여자는 아직도 물건들을 집고 사용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자신도 모르면서.

뇌일혈로 장님이 된 어떤 남자는 실험을 해 본 결과 눈앞에 지나기는 빛을 인식할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한편 다른 뇌질환 환자의 경우 지능이나 언어능력에 아무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윤리적인 판단을 전혀 하지 못하는 일이 빚어졌다.

최근 과학잡지의 화제거리로 등장한 이런 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잠재의식(covert awareness)지각 기억 판단 등에 관한 연구를 도와주고 있다. 인간의 두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의식에 대한 것에만 관심을 두었고 그것이 궁극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의식적인 면이 정신활동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작다. 상당히 많은 부분의 정신활동이 의식적인 상태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제 명백하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정신생물학자 존 알만교수의 말이다.

캘리포니아대학의 두뇌연구가인 커클랜드 박사는 "잠재의식은 우리에게 두뇌가 어떻게 기능하는가 또 의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의 본질에 접근하는 길을 제공해준다. 우리는 '의식'을 하기 위해 두뇌 자체가 어떤 구조를 갖춰야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의식에 대해 '영혼'이나 '혼'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개념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고 있다.
 

잠재의식은 뇌의 앞부분이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부분은 아직 그 기능이 해명되지 않은 뇌영역 중의 하나다.


뇌 구조 해명의 열쇠

잠재의식에 대한 개념은 19세기말 한 스위스 심리학자에 의해 최초로 제기됐다. 그 심리학자는 바로 전에 겪은 일조차 전혀 기억 못하는 어떤 환자에게 짓궂은 실험을 했다. 악수를 하면서 환자의 손가락을 핀으로 찔러봤더니 다음에 만날 때 그 심리학자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데도 악수를 하려들지 않았다.

이런 예에서 나타나는 잠재의식은 기억과 행동간의 풀기 어려운 모순을 해결해 줄 지도 모른다. '전혀 알지 못하는 데 익숙하다'는 느낌같은 것이 그 예. 최면상태에서 반복해서 배운 것은, 의식상태에서 보면 전혀 배운 기억이 없는데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Nature)는 최근호에서 한 캐나다 여성에게서 나타난 잠재의식의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그 여자는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로 물체나 그 형상을 인식하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러나 그녀는 뇌기능 조사실험에서 자신의 앞에 높인 연필이 누워있는지 서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손을 뻗어 정상적인 형태로 연필을 잡았다.

뇌일혈 환자들에게서 잘 나타나는 '장님 아닌 장님'(blind sight)도 잠재 의식에 속한다. 이미 뇌일혈로 시력을 상실한 환자들의 눈앞에 빛줄기를 쏘면, 그들은 분명히 그 빚을 느낄 수 있고 심지어 그 빛줄기가 어느 방향으로 들어오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 '장님 아닌 장님' 환자들의 경우 의식상태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퇴화된 시각기능이 되살아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잠재의식은 두뇌체계에서 여러가지로 기능한다. 아이오와 의과대학의 다마지오박사 부부와 트라넬 박사는 지난 10년간 1천5백명의 뇌일혈 환자를 조사해 잠재의식의 여러가지 예를 찾아냈다.

한 예로 형상을 인식할 수 없도록 뇌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자신의 배우자나 아이들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환자들이 알고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면 심장박동이 증가하는 등 무의식상태나 잠재의식 상태에서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증상들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윤리적 판단에도 장애

한편 과학자들은 의식적인 인식은 완전하지만 잠재의식이 손상된 환자의 증상도 찾아냈다. 아이오와대학의 연구팀은 최근 뇌관계의 학술전문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종양제거시에 뇌손상을 입은 한 중년남성의 예를 들고 있다.

그는 뇌종양수술 전만해도 35세의 성공한 사업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 평범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술 후 몇달이 지나지 않아 사업을 이상하게 운영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또 그때까지의 아내와 이혼한 후 매춘부와 결혼했지만 그 여자와도 여섯달 후에 이혼하고 말았다.

이 환자는 계속해서 자신을 비참한 상태로 몰아갔고 윤리적인 갈등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의 지능은 수술전과 마찬가지로 손상되지 않았고 모든 표준신경심리학 테스트도 좋은 성적으로 통과했다.

다마지오 박사팀은 이와 유사한 변화를 겪은 4명의 환자를 조사했다. 그들은 모두 특별히 머리 앞부분의 뇌조직에 손상을 입었는데 그 부분의 뇌기능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다섯명의 환자들과 비교하기 위해 다른 부위에 뇌손상을 입었거나 뇌손상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율신경에 의해 조절되는 심장박동수나 혈당 혈압 등을 측정했다. 자율신경에 의해 조절되는 심장박동수나 혈당 혈압은 의식적으로 조절되는 것이 아니며 감성적인 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험장치와 연결된 사람에게는 40장의 슬라이드가 보여졌다. 10장의 슬라이드에는 절단된 인체나 벌거벗은 장면 등 참혹한 광경이 담겨있었고 나머지는 평범한 내용이었다. 이 슬라이드는 두 번 상영됐다. 첫번째는 그들이 본 것에 대해 서로 얘기하도록 했고 두번째는 조용히 지켜보게 했다.

정상적인 실험집단의 사람들은 두번의 슬라이드 상영시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극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환자와 4명의 유사한 환자들 역시 토론을 할 때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 다섯 환자가 아무 말없이 슬라이드를 볼 때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 어린아이가 산 채로 불에 타거나 사람이 여러 조각으로 잘려있는 장면에도 그들은 무심한 눈초리를 던질 뿐이었다.

다마지오박사에 따르면 이 다섯환자는 내부의 잠재의식에 이르는 길을 잃었기 때문에, 슬픔이나 고통을 무의식상태에서 감지해 두뇌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한다. 토론을 할 때는 말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인 신호를 두뇌의 판단통로로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이 심리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도 실생활에 실패하는 이유는 잠재의식의 기능을 잃어 버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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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산드라 블라케슬리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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