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은 어마어마한 중력으로 주위의 모든 걸 빨아들인다고 알려져 있다. 빛조차도 빨아들이기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측할 수 없고, 주변 현상을 통해 추측할 뿐이었다.
최근 블랙홀과 유사한 시공간 곡면을 실험실에서 재현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패트릭 슈반차라 영국 노팅엄대 수리과학부 연구원팀은 초유체 상태의 헬륨을 사용해 양자역학적 특성을 보이는 거대 양자 소용돌이를 만들고, 이것을 블랙홀 시뮬레이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3월 2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586-024-07176-8
연구팀은 1.95K(약 영하 271℃)의 극저온 초유체 헬륨을 이용했다. 헬륨은 0K(약 영하 273℃)에 가까워지면 액체 상태를 지나 점성이 전혀 없는 초유체 상태가 된다. 컵에 물을 담고 돌리면 컵과 물 사이의 마찰, 즉 저항이 있기 때문에 소용돌이가 생긴다. 초유체도 회전속도가 특정 임계점을 넘어가면 소용돌이가 생기기 시작한다. 초유체에서 발생한 소용돌이의 에너지는 컵이 회전하는 에너지가 증가함에 따라 불연속적으로 증가하며, 소용돌이는 전체 초유체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양자역학적 특성을 보인다.
연구팀은 부분적으로 생성된 소용돌이를 블랙홀과 유사한 시공간 곡면, 즉 중심이 하나인 거대한 소용돌이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고안했다. 초유체 헬륨을 담은 용기를 회전시켜서 소용돌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용기 아래에 구멍을 뚫고 모터를 달아 초유체 헬륨이 용기 아래로 빠지며 소용돌이를 만들고 빠져나간 다음, 위로 다시 들어오게끔 설계했다.
이렇게 ‘순환하는’ 소용돌이 시스템에선 회전 중심으로부터의 거리에 관계없이 흐르는 헬륨의 양이 같다. 그래서 회전반지름이 큰 소용돌이 바깥에서 회전반지름이 작은 소용돌이 내부로 갈수록 회전속도가 빨라진다. 이에 따라 임계점이 되는 반지름 이내의 소용돌이 중심부분에선 초유체 헬륨의 회전속도가 음파의 진행 속도보다 빨라진다. 음파가 빠져나올 수 없는 음향 블랙홀이 생길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소용돌이 중심에 음향 블랙홀이 생긴다면, 그 바깥쪽에서 관측이 기대되는 패턴의 정상파가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발생한 음파의 스펙트럼을 관찰한 결과, 이 정상파를 실제로 관측할 수 있었다. 블랙홀과 유사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음파가 탈출하지 못하는 블랙홀의 작용권을 직접 관측한 것은 아니라는 한계가 남는다. 연구팀은 작용권을 직접 관측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더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극저온의 양자유체를 연구하는 최형순 KAIST 물리학과 교수는 “극저온의 기체를 이용해 유사한 연구가 진행된 적은 있으나,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규모로 개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블랙홀을 탐사하는 여러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