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자동차가 점점 현실 속으로 바퀴를 들여놓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5일(현지 시각) 자율주행 로보택시를 오는 8월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로보택시는 운전자 없이 운행되는 완전자율주행차로, 머스크의 강한 의지에 따라 운전대와 페달 등 사람이 운전하는 데 필요한 장치 없이 설계될 것으로 예측된다. 서울에선 2023년 12월부터 심야에 합정역부터 동대문역 사이 구간을 오가는 자율주행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화려한 미래 앞에서, 유비무환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자동차가 점점 똑똑해진다는 건, 여기서 얻을 증거가 많아진다는 뜻. 컴퓨터, 핸드폰에 이어 자동차 포렌식을 준비하는 이들을 만나러 4월 8일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디지털수사과를 찾았다.
IVI, 자동차의 ‘두뇌’를 열다
피의자가 차를 뒤져보라고 하니, 옳다구나 하고 그러겠다 답했다. 그런데 용왕 씨는 차를 뒤져봐도 된다고 했지, 차를 망가뜨려도 된다고는 안 했다. 수사하다가 차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수리비 물어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거다. 어디를 어떻게 뜯어야 증거가 나올까. 애초에 이 차에서 어떤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내 고민을 듣고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디지털수사과에서 근무 중인 입사 동기가 “그거, 우리 과에서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 같은데?”라고 답했다.
디지털 포렌식이란, 디지털 증거물에서 자료를 수집분석하는 활동을 말한다. 잘 알려진 컴퓨터 포렌식이나 핸드폰 포렌식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조연호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디지털수사과 수사관은 “자동차 포렌식은 자동차가 관련된 사건에서 디지털 또는 기계적으로 얻은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에는 운전 데이터, 차량 내부 기록, 위치정보 등 다양한 정보가 기록된다. “차종마다 기록하는 범위가 다르지만, 요새는 차 문을 여닫는 시간도 자동차에 다 남습니다. 안전벨트를 언제 맸는지도 나오고요. 블루투스로 핸드폰을 연결한 시간, GPS로 기록된 동선, 언제 기어를 몇 단으로 바꿨는지 등도 기록됩니다.”
이런 기록은 모두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嘌n Vehicle Infotainment) 기기에 남는다. 자동차의 두뇌인 IVI 기기는 대부분 운전석 앞, 내비게이션 자리를 뜯어보면 그 속에 들어있다. 따라서 자동차 포렌식을 위해선 차량 내부를 뜯어 IVI 기기를 꺼내고, 여기에 있는 정보를 읽으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말처럼 마냥 쉽지만은 않다.
이승훈 수원고등검찰청 수사관(전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디지털수사과 수사관)은 “우선 차량에 손상이 가지 않게 차를 뜯어서 IVI 기기를 얻는 과정부터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차량으로부터 IVI 기기를 잘 분리한 뒤엔 엔지니어링 모드에 진입해 운영체제에 접근해야 한다. 운영체제에선 IVI 기기의 스크립트 파일을 열람해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빼낼 수 있다. 이 수사관은 “자동차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건 없다”면서 “결국은 컴퓨터라, 컴퓨터에 운영체제가 있고 여기에 따라 파일을 관리하는 구조가 있는 것처럼 IVI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방식이 차종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차종을 만날 때마다 다양한 방식을 적용하며 엔지니어링 모드에 진입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인수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디지털수사과 디지털 포렌식 연구소장은 “특히나 국산 차량의 경우 자동차 포렌식을 연구하는 해외 연구기관에서도 구조 파악이 다 되지 않았다 보니 자동차 포렌식 기법의 연구개발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을 하거나, 대학이나 전문 연구원 등 외부 연구기관과 협력하며 자동차 포렌식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종별로 IVI 기기의 인터페이스가 다르므로 여기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폐차장을 많이 기웃거려요. 연구용으로 사용할 IVI 기기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거든요. 기자님 뒤에 있는 IVI 기기들도 그렇게 구한 것들이에요.” 과연, 이 소장의 설명을 듣고 보니 테이블에 작은 컴퓨터 모양의 전자장비가 여럿 늘어서 있었다.
똑똑한 자동차를 수사할 똑똑한 기술을 준비하며
“이거 차종이 별주부구나? 그렇지 않아도 이전 사건 수사하면서 이 차종 포렌식 기법 정리해 둔 게 있는데!”
동기의 목소리가 밝다. 무척 뿌듯한 모양. ‘별주부’는 레벨 3 자율주행 자동차다. 자율주행 정보를 기록하는 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하니 이 차의 IVI를 꺼내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다. 예를 들어 신토끼 씨가 정말로 이 차에 타서 용궁에 끌려갔는지 증명할 GPS 데이터 같은 것 말이다.
자동차 포렌식은 이제 막 시작된 과학수사 분야다. 한국에선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율주행 시 얻을 수 있는 데이터에 대한 포렌식 기법 등을 고도화하기 시작했다.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고도 자동차가 자율주행하는 단계인 레벨3 자율주행차의 경우, 유럽연합(EU) 경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자율주행정보 기록장치(DSSAD)를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한다. DSSAD는 자율주행 차량이 사고를 겪거나 법적 문제에 휘말릴 경우,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주행과 관련된 데이터를 기록하는 장치다. 운전자 및 조수석 탑승자의 얼굴, 자율주행 자동차에 내린 명령 등을 수집한다. 자율주행 차량이 상용화되면 자동차 포렌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데이터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이 수사관은 “예를 들어, 인물 A와 B가 차량으로 이동해 몰래 접선했을 때, 자동차 포렌식을 이용하면 이 접선 사실을 입증할 수도 있다”면서 “자동차는 주기적으로 GPS 로그 데이터를 기록하니 이 데이터를 분석해서 자동차의 이동 동선과 이동 시기를 알아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A와 B의 차가 레벨 3의 자율주행 차량이라면 차에는 이 시간 운전대를 잡은 이들의 얼굴 데이터도 고스란히 남는다.
이 연구소장은 “새로운 기기가 나올 때마다 포렌식이 가능한 기기도 늘어난다”면서 “흔히 공무원은 철밥통이라고들 하지만, 디지털 포렌식은 빠르게 발전하는 ICT 기술을 뒤쫓기 위해 항상 공부해야 하는 분야”라고 말했다.
“과거에 누가 자동차 포렌식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겠어요? 저희에겐 진실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으니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계속 연구하는 겁니다. 아직 자율주행 기술과 이에 따른 자동차 포렌식 기술은 초기 단계이지만, 언젠가 범죄가 일어났는데 수사 기술이 준비돼 있지 않다면, 증거를 앞에 두고도 모르고 넘어가는 일도 생길 테니까요.”
자율주행 자동차 별주부는 토끼 씨가 용궁에 간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별주부의 IVI 기기를 분리해 분석한 결과, 조수석에 탑승한 토끼 씨의 얼굴과 해당 시기 별주부의 이동 경로, 그리고 용궁 체류 시간 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증언대로 토끼 씨는 용왕에 의해 별주부를 타고 용궁까지 납치됐던 것이다.
수년 전, 자동차 포렌식 수사 기술 연구를 시작해 두지 않았다면, 오늘 이 범죄를 잡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김용왕 씨, 당신을 토끼 씨 납치 사건의 가해자로 체포합니다.” 미래를 내다본 연구가 또 하나의 사건을 해결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