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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중력파를 관측하는 레이저 간섭계를 우주로 올려보내자는 최초의 콘셉트가 제시됐다. 과학자들은 1993년 유럽우주국(ESA)에 레이저 간섭계 우주 안테나(LISA・리사) 미션을 최초로 제안했다. 2015년에는 리사에 필요한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해 리사 패스파인더가 발사됐다. 그리고 2024년, ESA는 리사 프로젝트 사업을 승인했다.
오랜 준비를 끝으로 발사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0년이다.
우주망원경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허블 우주망원경이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1990년 4월 발사됐다. 1946년 지구 대기에 방해를 받지 않는 우주에 망원경을 설치하자는 최초의 제안이 나온 지 무려 44년 만의 실행이었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수만 장의 경이로운 심우주 사진을 촬영했고, 블랙홀을 최초로 관측했으며,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2024년 1월 유럽우주국(ESA)의 사업 승인을 받은 레이저 간섭계 우주 안테나(LISA・리사)는 이런 허블 우주망원경을 연상시킨다. 리사는 1993년 최초로 ESA에 제안된 후 31년 만에 사업 승인을 받았다. 개념 연구를 수행하고 제작 기술을 높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리사의 관측 목표는 지상 레이저 간섭계에서 관측할 수 없는 저주파 대역의 중력파다.
우주선으로 만든 거대한 간섭계
중력파는 흔히 시공간의 잔물결에 비유된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질량을 가진 물체는 주변의 시공간을 일그러뜨린다. 질량이 매우 큰 천체가 서로 공전하는 경우, 이들이 만들어내는 공전 궤도는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줄어든다. 강력한 중력에 의해 서로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궤도가 점차 줄어들다 보면 언젠가 두 천체는 서로 충돌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시공간의 중력장이 뒤틀리고, 이런 요동이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바로 중력파다. 2015년 9월 14일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라이고) 연구팀은 사상 최초로 중력파를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 아인슈타인이 중력파를 예측한 지 꼬박 100년 만의 일이었다.
라이고는 마이컬슨 간섭계(Michelson interferometer)의 원리로 중력파를 관측했다. 1881년 미국 물리학자 알버트 마이컬슨은 빛의 시간적 결맞음성을 측정하는 광학 장치를 개발했다. 하나의 광원에서 나온 빛을 두 갈래로 나누고, 각각의 빛을 직각으로 진행시킨 다음 다시 만나게 해 간섭무늬를 만드는 장치였다. 이것엔 마이컬슨 간섭계란 이름이 붙었다. 마이컬슨은 이 장치로 ‘에테르’의 존재를 실증하고자 했다. 에테르는 당시 빛의 매질 후보로 거론되던 가상의 물질이다. 중첩된 빛이 보강간섭이나 상쇄간섭을 일으킨다는 점을 활용해, 빛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라이고 연구팀은 4km 길이의 진공 파이프 끝에 거울을 설치하고 레이저 빛을 왕복시키다가, 중력파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간섭 현상을 기록해 중력파를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 리사 역시 세 대의 우주선으로 구성된 거대한 마이컬슨 간섭계다. 우주선 사이의 거리는 약 250만 km. 하나의 우주선에서 쏘아 보낸 두 개의 레이저는 250만 km 떨어진 다른 두 개의 우주선에 도달한다. 빛의 속도로도 가는 데 8초나 걸리는 긴 거리다. 레이저 광선은 각각의 우주선 안에 들어있는 ‘테스트 매스(Test-mass)’ 간의 거리 변화를 측정한다.
핵심 부품 테스트 매스 제어가 관건
각각의 우주선에는 순금과 백금으로 만들어진, 한 변의 길이가 길이가 4.6cm, 무게가 1.96kg인 합금 큐브가 두 개 들어있다. 핵심 부품인 테스트 매스다. 테스트 매스 사이의 거리는 일정하게 유지되다가 중력파에 의해 피코미터피코미터는 10-12m) 수준으로 변한다. 우주선은 내부에 둥둥 떠 있는 테스트 매스의 위치 변화를 감지해 따라가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즉 테스트 매스의 거리가 변하면 우주선 간의 거리도 변한다. 이에 따라 서로 주고받던 레이저의 길이도 함께 변해 우리는 중력파가 통과했음을 알 수 있다.
테스트 매스가 궤도를 비행하는 데에 영향을 주는 건 오직 태양 중력뿐이다. 우주선은 이런 테스트 매스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끔 테스트 매스를 잘 쫓아가야 한다. 한국인 과학자 중 유일하게 리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이용호 독일 막스플랑크 중력물리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은 “우주선의 위치 및 자세를 제어하는 기준이 테스트 매스 두 개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선 두 개의 테스트 매스가 서로 멀어질 때, 기준이 아닌 나머지 테스트 매스가 우주선에 부딪힐 위험이 발생한다. 이 연구원은 “이를 막고자 테스트 매스를 전기적 신호를 받아들이는 소형 진공 챔버 안에 넣었다”고 말했다. 테스트 매스에 전기장을 걸어 테스트 매스의 위치를 정렬하기 위함이다.
ESA는 테스트 매스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이미 증명해 냈다. 2015년 12월에 발사해 약 16개월간 운용한 ‘리사 패스파인더(LISA Pathfinder)’의 성과다. 리사 패스파인더는 리사 미션에 필요한 기술을 입증하기 위해 테스트 매스, 미세 추진기, 레이저 간섭계를 탑재하고 우주로 날아갔다. 리사 패스파인더는 피코미터 수준의 민감도로 저주파 대역 중력파 변화를 감지해 냈다. 그뿐만 아니라, 싣고 간 두 개의 테스트 매스와 우주선의 자세 제어까지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를 통해 우주 공간에서 간섭계로 안정적인 중력파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다.
“물론, 리사 패스파인더의 성공이 리사의 성공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이 연구원은 리사 패스파인더가 우주로 간 것은 2015년의 일이었지만, 리사 임무의 예정일은 2035년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20년 동안 과학자들이 해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리사와 리사 패스파인더의 가장 큰 차이는 ‘망원경’의 유무다. 리사 패스파인더는 길이가 38cm인 매우 짧은 레이저 간섭계의 성능을 확인했다. 하지만 리사는 간섭계의 길이가 250만 km다. 아무리 레이저라도 250만 km를 날아가는 동안 넓게 퍼져 세기가 약해진다. 따라서 레이저의 세기와 파장을 제어하기 위한 시스템과, 레이저를 효율적으로 수신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리사 우주선에는 직경이 30cm인 광학 망원경이 2개씩 탑재될 예정이다.
리사가 반드시 우주로 나가려는 이유
리사는 우주에서 중력파를 관측하려는 최초의 시도다. 척박한 환경에 우주선 수리도 어려운 우주로 굳이 나가는 이유는 하나다. 어떤 스펙트럼의 중력파는 우주에서만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력파는 아토헤르츠(10-18Hz)에서 킬로헤르츠(103Hz)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분포해 있다. 라이고와 같이 지구에 설치된 레이저 간섭계는 이 중 10~3000Hz 사이의 고주파수 중력파만 탐지할 수 있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지상의 레이저 간섭계가 1Hz 이하의 저주파수 중력파를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지진 잡음 때문이다. 지구는 살아 움직인다. 지각 활동으로 판이 움직이고, 지진이 발생하고, 화산이 폭발하며, 맨틀은 흔들거린다. 또 사람들과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움직임도 고스란히 땅으로 전해진다. 이 모든 땅의 움직임이 1Hz 이하의 중력파 주파수와 겹친다. 두 번째는 ‘뉴턴 잡음’ 때문이다. “지각 활동이 이뤄지면 땅의 밀도가 바뀌게 되는데 이 밀도의 변화가 미세한 중력의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이때 만들어지는 중력의 변화가 저주파 대역의 중력파를 지상에서 관측하기 어렵게 만들어요.” 이 교수는 설명했다.
우주에 나간 리사는 약 10-4Hz부터 0.1Hz까지의 저주파 대역의 중력파를 탐지할 수 있다. 강력한 중력파원이 많이 분포하는 대역이다. 항성질량 블랙홀이 병합해 생성되는 중력파부터 초대질량 블랙홀에 작은 천체가 빨려 들어가며 만들어지는 중력파, 우리은하 내 백색왜성 쌍성이 병합하며 만들어지는 중력파, 초대질량 블랙홀끼리 병합하며 만들어지는 중력파까지 모두 관측할 수 있다.
이 중 우리은하 내에 있는 백색왜성 쌍성은 리사가 가장 먼저 탐지할 중력파원으로 꼽힌다. 리사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테스트 천체’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김정리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는 “우리은하 안에 궤도의 크기와 질량, 그리고 거리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있는 백색왜성 쌍성이 11개가 있어서, 해당 천체들이 만들어낼 중력파 주파수에 대한 값을 계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색왜성은 광학 관측으로는 탐지가 어렵다. 만약 리사가 무사히 작동해 우리은하 내 11개의 백색왜성 쌍성의 중력파를 검출해 내면 어떤 성과로 이어질까. 김 교수는 “그동안 추정만 해왔던 백색왜성의 성질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사는 지구에서는 관측하지 못한 ‘무거운 블랙홀’도 볼 수 있다. 케플러의 방정식에 따르면 천체의 질량과 궤도의 크기는 서로 비례한다. 무거운 블랙홀의 궤도는 가벼운 블랙홀의 궤도보다 훨씬 크다. 공전 주파수는 공전주기의 역수이므로, 무거운 블랙홀의 공전 주파수는 가벼운 블랙홀의 공전 주파수보다 작다. 이 때문에 라이고는 공전 주파수가 큰 비교적 가벼운 블랙홀만 탐지할 수 있다. 2015년 최초로 중력파의 존재를 탐지해냈을 때의 중력파원은 별질량 블랙홀의 병합이었다. 반면 리사는 공전 주파수가 작은, 다양한 중력파원을 감지할 수 있다. 리사는 별질량 블랙홀뿐만 아니라 초대질량 블랙홀의 병합도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질량비가 큰 천체의 병합을 리사가 관측하는지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김 교수는 리사가 비슷한 크기의 질량을 가진 쌍성이 만들어내는 중력파뿐만 아니라 큰 천체와 작은 천체가 함께 만들어내는 중력파를 관측할 수 있다는 데에 주목했다. 블랙홀과 같은 무거운 천체에 항성과 같은 가벼운 천체가 끌려가는 경우, 질량의 차이에 따른 가속의 차이가 발생한다. 블랙홀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지만, 항성만 점점 더 빠르게 끌려가는 것이다. 이 가속의 차이는 중력파 신호 모양에 반영된다. 김 교수는 “이런 중력파를 검출하게 되면 상대성 이론을 검증하는 데 매우 유용할 뿐만 아니라, 무거운 블랙홀이 자라나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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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준비 과정이 만든 성과
리사는 1993년 ESA에 최초로 제안됐다. 당시엔 비록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우주에 중력파 탐지기를 쏘아 보낸다는 프로젝트에 매력을 느낀 과학자들이 모여서 연구와 심포지엄을 이어갔다. 그렇게 ‘언젠가’를 꿈꾸며 이어진 연구가 30년 만에 시동이 걸렸다. 30년의 세월은 리사 패스파인더와 같은 분명한 성과를 만들어냈고, 한국의 중력파 연구에도 싹을 틔웠다.
2000년, 블랙홀 쌍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던 이 교수는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제2회 리사 심포지엄에 초청받았다. “중력파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관측하려고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 교수는 심포지엄에서 돌아온 뒤 한국에서도 중력파 관측에 관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서울대에 중력파연구회를 결성했다. 중력파연구회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지원을 받아 연구와 교육활동을 이어갔다.
중력파연구회는 2005년부터 매년 여름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수치상대론 및 중력파 여름학교’를 개최했다. 한국에 중력파 연구자가 부족했다 보니 초창기엔 해외 연구자들을 초청해 강의를 해야만 했다. 2008년 초청한 강사가 가브리엘라 곤잘레스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물리학과 교수다. 당시 곤잘레스 교수는 라이고에 참여하고 있던 실무 연구자였다. 곤잘레스 교수는 한국 중력파 연구자들의 연구 열의를 확인하곤, 한국 연구자들이 라이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약 1년간의 준비 끝에, 2009년 여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된 라이고 총회에서 정식으로 가입 신청을 했고, 2010년부터 라이고 연구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2015년 라이고의 중력파 최초 관측은 리사에게 다시 추진력을 제공했다. 리사는 원래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ESA의 공동 프로젝트였으나, NASA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사태를 겪은 후 예산 문제로 2011년에 리사 미션에서 빠졌었다. 그런데 2015년, 라이고가 중력파를 관측한 뒤 상황은 다시 달라졌다. NASA는 리사 프로젝트 재합류를 선언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리사 프로젝트가 우주로 향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0년이다. 2025년 1월까지 우주선과 장비를 제작할 업체가 선정되면, 10년간의 제작 기간을 거쳐 드디어 우주로 간다. 리사가 우주에서 인류에게 전해줄 새로운 우주 정보는 무엇일까. 함께 기다려보자. 곧, 쏟아진다.
리사 프로젝트: 수석 과학자에게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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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부터는 ESA의 리사 프로젝트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SA의 리사 프로젝트 팀에는 약 30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일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전 세계 약 2000명의 과학자와 함께 일합니다. 리사는 ESA가 승인하고 주도하는 사업이지만, 전 세계에 공인 파트너 그룹이 있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그중 하나죠. 리사 프로젝트로 모인 과학자들은 천체물리학, 우주론, 기초 물리학, 파형 및 데이터 등 여러 가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ESA에서 진행되는 모든 프로젝트는 총 4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 번째는 제안서를 제출 및 검토하는 단계고, 두 번째는 연구 단계입니다. 제안서를 바탕으로 실제로 연구할 수 있을지,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알아보는 단계죠. 세 번째 단계에선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ESA의 의사 결정기관이 프로젝트를 정식으로 실행할지 여부를 결정합니다. 리사는 2024년 1월 ‘3단계’를 통과했고, 이제 우주선 제작 단계가 남았습니다. 현재 두 개의 회사가 우주선 제작 입찰 제안서를 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사 프로젝트의 연구자로서 청소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일찍이 구분 짓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에요. 독일에서도 여성들이 물리학자로 성장하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계속해 추구해 나가라고 조언드리고 싶어요. 리사와 저는 그렇게 성장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