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가세는 따로 없고요. 택배비는 30만 원 이상 구매하시면 저희가 무료로” 박사과정 1년 차인 형은 전화를 받으면서 동시에 키트에 라벨지를 붙이는 데 열심이었다. 라벨지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실험용 원숭이는 뉴스에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소식이 들리자마자 주문 자체를 취소했고, 본래 신입 대학원생들의 실험용 쥐와 기니피그는 신입생들 입학이 취소되며 외부에 떨이로 팔렸다. 실험용 쥐는 비근교계 2만 원, 근교계 5만 원, 기니피그는 7만 원, 이런 식으로 말이다. 형이 라벨을 붙이던 손으로 핸드폰을 바로 쥐었다.
“거기도요?” 타 연구소의 연구 중단 소식을 전해들은 형의 말투는 놀란 말투였으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이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몰래 현미경에 키트를 올려 넣고는 눈을 들이밀었다. 희미하지만 투명한 몸체에 꾸물거리는 작은 선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S자를 그리며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생물체의 이름은 ‘예쁜꼬마선충’으로 학명은 ‘C. elegans’다. 과거 현미경으로 선충을 관찰했을 당시 S자를 그리며 나아가는 움직임이 문자 그대로 ‘우아(Elegant)’해서 비슷한 발음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학계에서 예쁜꼬마선충의 발견은 축복 그 자체였다. 몸체가 투명해서 변화를 관찰하기 쉬운 데다, 세대 수가 짧아 유전적 형질을 연구하기 쉽고, 배양하기 쉬운 대장균이 주식인 점 외에도 여러 장점 덕에 선충은 생명체를 다루는 연구실이라면 배양실 한 칸을 꼭 차지하고 있었다.
갓 학부를 졸업한 나와도 인연이 있는 녀석들이었다. 학부생 때부터 선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뉴스는 물론이고 전공서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과학자들 중 상당수가 선충을 연구해 노벨상을 여럿 받은 상황이었다. 그들은 선충의 유전자 수를 정확히 밝혀내거나 신경계 지도를 모두 그려낸 다음, 기계에 지도를 이식해서 기계가 선충처럼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아직 선충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값도 싼 데다, 키우기도 쉽기에 선충은 자연스럽게 내 첫 연구 대상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연구 중단을 너머 연구실 자체의 존폐도 가늠할 수가 없는 상태였지만.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도 마요. 전부 취소예요. 취소. 입학하겠다는 애들이 없어서 저희 쪽도 교수님이 직접 학부생 MT까지 찾아가고 계세요.”
‘이러다 잘리는 거 아니야?’ 같은 폭풍 전야는 없었다. 폭풍을 멀리서 보고 두려워하기도 전에 이미 폭풍은 우리 연구실을 휩쓸고 지나갔으니까. 형과 나는 폭풍우가 쓸고 지나간 뒤 잔해를 처리하고 있었다. 현미경의 배율을 조절하는 사이, 형은 계속 통화를 이어 갔다. “금속류면 창고에라도 박아두면 되는데, 생물체는 키워야 하니까 비용이 장난 아니에요. 위쪽에서는 단기적인 성과를 원하는데, 연구로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오늘 아인슈타인한테 우리나라에서 1년이나 3년 만에 성과를 보여 달라고 했으면 상대성 이론은 무슨, 취업률이나 신경 쓰다가 끝났을 걸요? 장학금도 상반기 지급 예정이었다가 무기한 연기로 통보받았다니까요.”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가 식어 갔다. 화를 내던 형은 이내 체념한 듯 한숨을 섞어 가며 말을 이었다. “어쩌겠어요. 일단 보이는 대로 예산 절감이라도 해야죠. 그러니까 파는 거예요. 전부.” 나는 눈에 힘을 풀고서 키트를 조금씩 움직이며 선충들을 관찰했다. 그러나 막상 S자를 그리며 움직이는 선충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몸을 미라처럼 빳빳하게 세우고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그만해.”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현미경에서 눈을 떼자, 키트를 손에 든 형이 보였다. 전화를 끊고 바로 선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포장이나 해.” 형은 키트 뚜껑을 닫고는 그 위에다 ‘폐기물’이라 적힌 라벨지를 붙였다. 어쩔 수 없었다. 값이 싸고 키우기가 쉬운 만큼 다른 연구소에서도 이미 넘쳐날 만큼 가지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나 같이 학부를 갓 졸업한 대학원생이 손을 댄 표본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오염’되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말없이 형에게 키트를 넘겨 받고는 그 위에 ‘C. elegans’라 적었다. 내 손 글씨를 보더니 형이 말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충을 봤다면 학명을 그렇게 붙이진 않았을 거야.” “어떤 면을 보고요?”
형은 가격표가 붙은 키트를 상자 안에 넣고는 플라스틱 물통에 물을 채워 넣었다. 실험용 쥐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한쪽으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앞다투어 서로를 밀쳐내며 물을 조금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형은 입을 비쭉 내밀었다. “한 군데에 못 버티고 떠나려고 하니까.”
*
“떠나야겠군.” 연구실 용도 변경 공고문을 보자마자 책임 연구원이 내뱉은 말이다. 그의 말은 탄식보다는 일종의 상태 기술이었다. 대학원생 입장에서 말하자면 논문의 서론보다는 결론이었다. 연구실 용도 변경 공고문도 마찬가지였다. 말이 용도 변경 공고지, 변경된 연구실이 어떻게 사용될지 우리는 몰랐다. 우리에겐 폐쇄 통보와 같았다. 이미 책임 연구원을 비롯한 대부분 연구자들은 공고문이 나붙기도 전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변화를 눈치챈 해외에선 이미 국내 연구진을 향해 러브콜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들은 슬리퍼나 이불, 베개, 칫솔, 치약을 비롯한 생활용품부터 제본해 놓은 논문들까지 퇴근할 때 백팩이나 쇼핑백에 욱여넣고는 슬금슬금 연구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연구실 인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CL32라는 정부의 R&D 지원책을 듣고 대학원에 입학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관련 예산이 감축된다는 소문이 돈 것과 동시에 탕비실에 콜라가 들어오지 않은 첫날, 이들은 뭔가를 감지한 듯 당당히 학업 중단을 선언했다. 지진을 미리 감지하는 동물 같았다. 그들 중 일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에 성공했다며 연락이 왔다.
결국, 책임 연구원의 말을 물리적으로 들은 사람은 가족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국에 남아야 할 이들이나, 나처럼 막 실험을 진행하고 있어 연구실을 떠나기도, 연구실에 남아 있기도 애매한 석사 과정 저연차 대학원생들이었다.
전자는 사기업에서 제의가 오고 있었지만, 후자는 아니었다. 나이는 기업 평균 신입 사원 연령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선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스펙이라 불릴 만한 것은 실현되지 않은 공상에 가까운 연구 노트 파일 하나가 전부였다.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예산 감소가 우리 연구실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까. 석사 과정 3개월 차에 연구실을 뛰쳐나와 대기업에 취직한 내 동기처럼 연구 대신 자격증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연구실을 떠나기 직전, 그가 원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던 내게 말했다. “그거, 너, 이기적인 거야.”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대학원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들도 하지 못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과학은 계속해서 발전한다는데, 정작 우리는 뒤쳐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인턴은 연구를 정식으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후회와 패배감이 함께했다.
*
형의 말을 듣고서 선충들의 생태에 관한 소논문을 떠올렸다. 선충들은 자원이 부족해지면 일종의 미라 상태인 ‘다우어’가 되어 몸체를 이리저리 흔든다. 이를 ‘닉테이션’이라 한다. 닉테이션을 하는 다우어들은 마치 끈끈이처럼 초파리나 딱정벌레 등 동물의 몸에 붙어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한다. 형에게 물었다. “떠나는 게 왜요? 안 그러면 죽는데요?” 형이 연구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사람은 없고, 누런 박스들만 곳곳에 가득한 것이 을씨년스러웠다.
“사람들은 그런 건 상관 안 해.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하니까.” 그 말을 하고는 형은 상자에다 책상 위에 있던 모든 것을 쓸어 담았다. 떠난 이들이, 정확히는 떠나게 된 이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었다. 주인을 찾아 주기에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쓰다 만 뚜껑이 없는 펜, 몸체가 반을 잘린 지우개 등이 어지럽게 상자 속으로 쏟아졌다. 형이 나를 보더니 박스를 내밀었다. “네 마음은 알겠는데, 이제 그거 그냥 벌레야 벌레.”
나도 모르게 키트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노벨상을 받겠다는 둥 큰 꿈을 꾸지는 않았다. 선충 연구 역시, 취업을 위해 거치는 교두보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예산이 없어 연구 지원을 보류한다는 말이 들리자, 나도 모르게 눈길이 키트에 쏠렸다. “선충은 세상에 많으니까. 너무 마음 두지 마.” 형이 내민 박스에 키트를 넣었다. 박스를 잡아 들고는 밖으로 나섰다. 한쪽 구석에 밀어 두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선충들이 바글거리면서 닉테이션을 하는 것 같았다.
2. 장갑을 끼고서 쥐들이 바글거리는 플라스틱 통에서 두 마리를 잡아 다른 플라스틱 통에 넣었다. 쥐들은 살려 달라 버둥댔다. 통을 종이 박스에 포장하고는 그 위에 주소를 썼다. 주소는 다른 대학 연구실도 기업 연구실도 아니라 동물원으로, 아마도 뱀이나 이구아나의 먹이로 주려는 것 같았다.
연구실에는 혼자뿐이었다. 형은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고는 자리를 비웠다. 다른 연구소와의 전화가 끊기자마자 형의 핸드폰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유 교수의 전화였다. 유 교수가 외국 대학에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인지 그저께부터 그는 하나, 둘 능력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전화해서 회식 날짜를 잡고 있었다. 어디서 유출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외국 대학으로 떠난다는 유 교수의 말에 인터넷에는 욕들이 한 바가지였다. 매국노, 민족 배신자 등 교수님과 연구진들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호출을 받은 형이 솔직히 부러웠다. 그곳에 가면 연봉이 수천만 원에다, 장비들도 모두 신형이라는 것도 물론 부러웠지만, 무엇보다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 부러움을 넘어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형이 떠난 후 나는 묵묵히 실험용 생쥐들이 든 플라스틱 통을 박스에 넣고 포장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연구소 혹은 대기업 사무보조로 스카웃 제의가 올지도 몰랐다. 존 윅처럼 볼펜으로 대충 숨구멍을 뚫고는 박스를 문밖에 내놓았다. 생쥐들은 위험을 감지했는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플라스틱 벽을 긁어댔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솥을 보는 것 같았다.
“나오세요.” 멀리서 경비원이 다가와 내게 밖을 향해 손짓했다.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았으니 시간을 더 달라고 말하려 했으나, 경비원은 강경했다. 용역인지, 아니면 새로 변경된 연구실의 관계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융통성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그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건물 밖으로 나를 인도했다. 금방이라도 경찰을 부를 것 같은 모습에, 나는 문 밖으로 나섰다.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유리문을 잠갔다.
“내일부터 출입증 받아서 다니세요.” 건조하면서도 딱딱한 말투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는 나를 경계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막상 그가 사라지고도 한동안 연구실을 떠나지 못했다. 유리문 앞에 쪼그려 앉아 박스들을 바라보았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딱-. 그때 소리가 귀를 잡아끌었다. 소리는 연구실 한쪽 구석에서 나고 있었다. 그곳에서 빛이 보였다. 푸르스름한 빛은 떠난 이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이 들어 있는 박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박스 입구를 자세히 바라보자 선충이 든 키트가 보였다. 고개를 빼고서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
“언제 죽을지 모른다니까요.” 사무처로 가서 열변을 토했다. 이미 알에서 깨어난 지 2주가 지났으며, 온도유지장치가 없어 더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그러면 이 희대의 발견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고. 문제는 돌아오는 답이 같았다는 것이다. “지금 시설 사용하시려면 학과장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수님도, 형도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이었다. 교수님은 MT에서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시고는 방에 들어가 주무시는 중일 것이다. 계속된 연락에 형은 ‘ㅎㅚㅇㅡㅣ’라며 오타로 점철된 문자를 보냈다. 늦은 저녁이라 그런지 사무처에는 직원이 하나뿐이었다. 그에게 말했다. “이거 엄청난 발견입니다. 정말. 학계를 뒤흔들 수도 있어요.”
석사 과정 6개월째인 내가 봐도 선충들은 이상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선충과 관련된 수많은 논문을 살펴 보았지만 그렇게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무엇 때문일까? 내가 먹이로 주었던 대장균에 이상이 있는 걸까? 아니면 상자에 우연히 들어간 지우개 가루 때문일까? 여러 물음이 떠올랐으나 어디까지나 표본을 확보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직원은 피곤하다는 듯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서류 작업에 열심이었다. 책상을 두들기며 답을 요구하자, 그가 대뜸 물었다. “말해요?” “네?”
“말이라도 하냐고요. 벌레가.” 대답할 수 없었다. 몸집이 육안으로 보기에 커지지도, 강렬한 빛을 뿜지도 않았다. 그는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두고서 말했다. “저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그는 전혀 애석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만히 생각을 이어 나갔으나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숙이고서 그에게 부탁했다. “그럼 집에라도 가져가게 해주세요.”
아무도 없는 연구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경비원의 태도로 보아 쓰레기장에 바로 던져버릴지도 몰랐다. 차라리 집에서 보관하고 있는 편이 나아 보였다. 잠시 집에 보관만 했다가 교수님이나 형과 연락이 닿는 즉시 연구를 시작하려 했다. 직원이 마른 세수를 했다. “벌레 이름이 뭐죠?” 내가 ‘예쁜꼬마선충’이라 말하자, 직원은 무덤덤하게 타자를 두들기더니 모니터를 돌려 보여 주었다. ‘예쁜꼬마선충 한 키트: 3만 5000원’이라 적혀 있었다. 그가 말했다. “4만 원 내세요.” “4만 원이요?” “여기 보니 키트 한 접시에 3만 5000원이네요.”
그의 눈길에 악의는 없었다. 외투 안쪽에 비상금으로 숨겨둔 3만 원과 형에게 받은 만 원을 합쳐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프린터로 출력한 무언가를 내밀었다. ‘실험용 생명체 구매 동의서’였다. 그 아래에 서명을 하라 했다. 급한 마음에 바로 서명하자, 그는 동의서에 만 원짜리를 겹쳐 클립으로 고정하고는 서랍에 넣었다. 그가 도장을 찍은 허가증을 내밀며 말했다. “오늘 일은 학과장님께 통보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무기력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3. 금덩이라도 훔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키트를 품에 안고서 교내를 가로질렀다. 키트에서는 다행히 희미한 빛이 나고 있었다.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의 시선으로 뒤통수가 얼얼했다. “선충이 죽어가고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사무처 직원도 헛소리라 생각하는 마당에 미친 사람 취급당할 것이 뻔했다.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야 했다. 고개를 넘고 넘어 학교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자취방에 도착했다. 머리는 땀에 젖어 있었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그에 반해 자취방은 고요했다. 사람 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침대와 바닥은 물론 싱크대에도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키트를 보관할 장소부터 찾았다. 자연스럽게 냉장고로 눈길이 갔다. 온도 조절 장치만 제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최적의 보관 장소였다.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냉장고는 그 흔한 김치통 하나 없이 텅 빈 데다, 심지어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식탁에 키트를 올려두고는 보일러 버튼 앞에 섰다. 문득 우편함에 쌓여 있던 전기 및 난방비 고지서 더미가 떠올랐으나 선충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버튼을 누르자 마치 탱크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몰래 챙겨온 대장균을 조심스럽게 키트에 투여하고서 보일러 온도계에 시선을 고정했다. 20~24도를 유지하려 했다. 온도가 더 오르려 하면 곧바로 베란다 문을 열었다. 습도도 중요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시차를 두고서 물이 나왔다. 시간이 지나자 방은 어느 정도 온도와 습기가 유지됐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동영상을 찍으며 혼잣말로 기록을 이어 나갔다. “온도, 습도와 키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밝기는 일정합니다. 아직은”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학생! 안에 있어?” 집주인이었다. 줄어든 연구 지원비로는 밀린 월세를 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가 외쳤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보일러 소리가 얼마나 큰데.” 필사적으로 불을 끄고는 몸을 움츠렸다. 마치 다우어처럼. 오랫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는데, 긴장감 때문인지 허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대로 며칠은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는 끈질기게 내 신상명세를 외쳐댔다. 나이, 학교, 학과 그리고 고향까지. 나라는 사람을 해부하는 것만 같았다. 다급한 나머지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도움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려 했으나, 갓 학부를 졸업한 저연차 대학원생이 전화 걸 수 있는 곳은 마땅히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너 어디야?”
집이라고 속삭이듯 말하자, 형은 자신이 유 교수와 있다고 말했다. 머릿속이 빠르게 돌았다.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유 교수라면 연구를 승인해줄지도 몰랐다. “와서 얼굴 좀 비추고 그래. 어쩌면 너도 데려가 줄 수도 있잖아.” 형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는 않았다. 나는 신경을 온통 보일러 온도계에 쏟고는 아주 섬세하게 버튼을 조절하고 있었다. 샤워할 때 수도꼭지를 돌리듯이 말이다. 동시에 키트를 보았다. 서서히 빛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죽어 가는 사람의 심장 박동 같았다. 술집 주소를 읊던 형에게 말했다. “형, 금방 갈게요.”
전화를 끊고서 다시 키트를 챙겨 들었다. 집주인이 여전히 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서 기회를 노렸다.
4. 어렵지 않게 유 교수의 술자리를 찾아냈으나 다들 만취한 상태였다. 집주인이 문을 막는 바람에 30분이나 늦어 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소음 때문에 이웃 주민과 설전을 벌이지 않았다면 나오지 못했을 게다. 내 손에는 여전히 키트가 들려 있었다. 키트에서는 빛이 거의 나지 않고 있었다. 마음이 다급했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는데.”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유 교수가 그리 말했다. 그날의 술자리 명목은 단합회였다. 즉 줄어든 지원에 대학원생이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설득의 장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설득은 되지 않았다. 그가 외국으로 간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취한 와중에도 눈을 벌겋게 뜨고는 까맣게 타들어 가는 삼겹살이 아니라 허연 거품이 인 유 교수의 입술에 집중했다.
“그때도 그랬지.” 04학번인 그가 생명공학과를 지원할 당시 황우석 박사 신드롬으로 학과 입결이 의대보다도 훨씬 높았다고 한다. 입학 당시의 과학계는 전 국민적인 지원을 받은 그야말로 황금기였다. 유 교수를 비롯한 당시 대학원생들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밤낮 없이 연구에 매달렸다. “멍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은 안 해.” 그는 소주잔을 완전히 털다 말고는 말을 덧붙였다. “적어도 나는.”
나는 기회를 엿보며 유 교수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에게 키트만 보여 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유 교수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려 했다. 다들 저마다 소주잔을 유 교수를 향해 뻗고 흔들었다. “교수님, 한 잔 하시죠.”
그러기 위해서는 길을 막은 그들을 뚫고 나아가야 했다. 술자리는 두 군집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앞서 말한 유 교수를 중심으로 뭉쳐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나 같은 저연차 대학원생과 대학원 진학에 뜻이 있는 학부생이 중심이었다. 비관적인 인생 조언들이 전쟁터 속 총알처럼 오가고 있었다. 박사 과정 선배가 사무 보조 알바를 하던 학부생에게 말했다. “야, 넌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의대 가, 의대.” 학부생이 되물었다. “의대요?” 그러자 다른 선배가 말을 잘랐다. “의대는 무슨. 이 나이 먹고 수능 공부 다시 하게? 그냥 취업해. 여기선 돈도, 인정도 제대로 못 받는데, 뭘. 대학원은 진짜 아니야.”
농담으로 시작했건만 이내 선배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쟁 영화에서 패닉에 빠진 병사들을 보는 듯했다. 나는 빈틈을 노려 낮은 포복으로 전진했다. 가끔 선배들에게 붙잡혀 술잔을 맞부딪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소주를 그들의 잔에 잔뜩 따르고는 연거푸 반복해서 맞부딪혔다. 그러면 그들은 치를 떨며 다른 곳으로 물러났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유 교수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대뜸 선배 하나가 고개를 들이밀고는 물었다. “넌 뭐 할 거냐? 여기 계속 있을 건 아니지?” 유 교수는 다른 곳으로 끌려 갔다. 나는 벗어나기 위해 그에게 키트를 보여 주려 했다. 키트만 보면 놓아줄 것이라 믿었다.
“조용히 좀 해요.” 그때 뒤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게다. “죄송합니다.”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선배가 벌떡 일어나 팔을 걷어붙이고는 뒤편에 삿대질을 하더니 이내 한데 엉키기 시작했다. 싸움이 커지자 사람들이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기회였다. 싸움이 벌어지는 틈을 타 유 교수 앞에 도착했다.
“교수님.” 그는 이미 인사불성이었다. 눈이 게슴츠레 풀렸고, 입가에는 개거품이 가득했다. 그에게 키트를 들이밀었다. 그가 물었다. “이게 뭔가?” “선충입니다. 교수님. 오늘 연구실 짐을 싸다가 발견했는데 이상하게 빛이 납니다. 이게.” 유 교수가 키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유 교수의 말 한 마디면 늦은 시간이라도 연구실을 이용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그는 키트를 강하게 내 쪽을 향해 밀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뭐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희미하지만 분명 푸르스름한 빛이 나오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유 교수가 술에 취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키트 뚜껑을 열고 그의 얼굴에다 들이밀며 말했다. “교수님, 다시 한 번”
그때 유 교수가 정색을 하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몇 년 차야? 정신 차리게. 정신.” 유 교수의 표정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사람과 같았다. 목소리도 논문을 심사할 때처럼 딱딱했다. 그는 다른 선배들에게 이끌려 사라졌고, 멍하니 그가 있던 곳만 바라보았다. 누군가 어깨를 두들겼다. 형이었다. “잠깐 나가자.”
*
밖으로 나가서는 형에게 말을 쏟아냈다. 키트에서 이상 반응이 보이고 있으며 얼른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의 팔을 붙잡고 다시 식당 안으로 끌었다. 그러나 형의 반응은 냉랭했다. 형이 내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안 돼. 자리가 없어.” 술에 취한 듯 말꼬리가 휘었다. 그에게 말했다. “형, 이거 빨리 연구해야 한다니까요.”
술집에서 고함에 가까운 소리들이 들려왔다. 뉴스를 보고서 그들은 한국에는 미래가 없다며 불만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영상에서 R&D 예산 삭감 철폐를 외친 한 대학원생이 경호원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가고 있었다. 형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대단한 거든, 지금 여기선 네 걸 못 한다니까.” “왜요?” “세상에는 앞뒤라는 게 있어. 원인과 결과, 앞과 뒤, 전후, 장유유서”
“그게 왜요?” “네 차례가 아니라니까. 지금 지원이 줄어서 제로섬 게임이라고. 나보다도 훨씬 형인 사람들도 자기 연구하려고 아둥바둥거리고 있어. 단기간에 연구 결과를 못 내면 돈 한 푼도 못 받을 판이야.” “그게 중요해요?” 형이 침을 튀겨가며 화를 냈다. “당연히 중요하지. 선배들 중에 일부는 돌봐야 할 가정도 있어.”
침묵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그럼 한국 과학 발전은요?” 그가 코웃음을 쳤다. “발전? 발전이 대체 뭔데? 신약이나 신소재 만들고, 우주로 가는 거 보면서 한국 과학이 진보한다고 말하는 게 발전이야? 막상 거기 참여한 사람들이 과로로 병에 걸리고 죽어 나가는 건 괜찮고? 그게 무슨 발전이야?”
마침 술집에서 유 교수가 형의 이름을 불렀다. 형은 신병처럼 목청을 높여 대답하고는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후배님. 조언 하나 하는데, 벌레보다 후배님 앞가림부터 신경 써. 이건 조롱이 아니라 진심이야.” 형은 술자리로 뛰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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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키트를 들고서 밖에 서 있었다. 네온사인은 밝았고, 거리에 차들은 많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마치 선충처럼 S자로 나아가고 있었다. 술집에서는 사람들이 다들 잔을 들고 있었다. 선충만 생각하다 보니 그들이 닉테이션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그들을 보다가 키트로 시선을 돌렸다. 키트의 푸르스름한 빛은 느낌만 남았을 뿐이었다. 사람들과 키트를 번갈아 보다가 도로가로 가서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았다. 버려진 담배 꽁초를 치우고 키트 뚜껑을 열어서, 화단 모래에 살포시 비볐다. 아주 미세한 빛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