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산 사람은 누구일까. 스위스 특허사무실의 무명 직원에서 상대성이론을 발표해 일약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에 오른 아인슈타인일까.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고 컴퓨터의 기초를 다졌지만 동성애로 비난받다 자살한 앨런 튜링도 떠오른다.
이들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과학자는 아니지만 이들 이상으로 극적인 삶을 산 과학자가 있다. 1987년 일산화탄소가 생체신호전달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힌 영국 런던대 울프슨생의학연구소 소장인 살바도르 몬카다 박사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1101/논문1.jpg)
독재에 저항하다 고문까지 당해
1944년 중미 온두라스에서 태어난 몬카다 박사는 이웃나라 엘살바도르에서 유학해 의과대학을 나왔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의학자로서의 평탄한 길이 놓여 있지 않았다. 엘살바도르 극우정부의 독재가 심해지자 그는 좌파조직에 가입해반독재 투쟁에 나섰고 결국 붙잡혀 고문까지 받은 뒤 온두라스로 추방됐다. 이때 첫 아내와 헤어진다.
연구 인프라가 없는 온두라스에서 할 일이 없었던 그는 미국행을 시도했지만 좌파 경력이 문제가 돼 좌절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1971년 영국 왕립외과대 존 베인 교수팀에 합류한다. 이곳에서 그는 아스피린이 약효를 내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일조했다. 이 업적으로 베인 교수는 198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영국에서 뛰어난 연구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조국을 위해뭔가를 해야겠다는 의무감에 몬카다 박사는 1974년 온두라스로 돌아갔지만 열악한 현실에 환상이 환멸로 바뀌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웰컴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그는 프로스타사이클린이라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액응고를 억제하는 물질을 발견해 약물로 개발하는 연구를 이끌었다. 프로스타사이클린은 고혈압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1985년 어느 날, 그는 연구소를 방문한 미국 뉴욕주립대 로버트 푸고트 교수의 발표를 듣는다.
왕녀 얻고 노벨상 놓치다
당시 푸고트 교수는 수십 년 째 미스터리한 물질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매진하고 있었다. 그가 직접 명명한 ‘상피유래방출인자(EDRF)’가 그 물질로 혈관의 상피세포에서 분비돼 주변 근육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혈관이 확장돼 혈압이 떨어진다. 따라서 EDRF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심혈관계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푸고트 교수는 수많은 실험으로 이런 물질이 있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정작 그 실체는 밝히지 못한 상태였다. 흥미를 느낀 몬카다 박사는 곧바로 EDRF의 실체를 밝히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듬해 한 학회에서 푸고트 박사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일산화질소(NO)가 이 물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언급을 한다.
몬카다 박사는 이 가설을 확인하는 실험을 설계했고 마침내 1987년 EDRF가 일산화질소임을 입증하는 결과를 얻었다. 1987년 6월 11일자 ‘네이처’에 실린 몬카다 박사팀의 논문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그해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이 됐다. 일산화질소처럼 독성이 강한 기체가 생명체에서 신호전달물질로 쓰인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1101/논문2(1).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1101/논문3.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1101/논문4.jpg)
이들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과학자는 아니지만 이들 이상으로 극적인 삶을 산 과학자가 있다. 1987년 일산화탄소가 생체신호전달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힌 영국 런던대 울프슨생의학연구소 소장인 살바도르 몬카다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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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저항하다 고문까지 당해
1944년 중미 온두라스에서 태어난 몬카다 박사는 이웃나라 엘살바도르에서 유학해 의과대학을 나왔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의학자로서의 평탄한 길이 놓여 있지 않았다. 엘살바도르 극우정부의 독재가 심해지자 그는 좌파조직에 가입해반독재 투쟁에 나섰고 결국 붙잡혀 고문까지 받은 뒤 온두라스로 추방됐다. 이때 첫 아내와 헤어진다.
연구 인프라가 없는 온두라스에서 할 일이 없었던 그는 미국행을 시도했지만 좌파 경력이 문제가 돼 좌절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1971년 영국 왕립외과대 존 베인 교수팀에 합류한다. 이곳에서 그는 아스피린이 약효를 내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일조했다. 이 업적으로 베인 교수는 198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영국에서 뛰어난 연구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조국을 위해뭔가를 해야겠다는 의무감에 몬카다 박사는 1974년 온두라스로 돌아갔지만 열악한 현실에 환상이 환멸로 바뀌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웰컴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그는 프로스타사이클린이라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액응고를 억제하는 물질을 발견해 약물로 개발하는 연구를 이끌었다. 프로스타사이클린은 고혈압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1985년 어느 날, 그는 연구소를 방문한 미국 뉴욕주립대 로버트 푸고트 교수의 발표를 듣는다.
왕녀 얻고 노벨상 놓치다
당시 푸고트 교수는 수십 년 째 미스터리한 물질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매진하고 있었다. 그가 직접 명명한 ‘상피유래방출인자(EDRF)’가 그 물질로 혈관의 상피세포에서 분비돼 주변 근육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혈관이 확장돼 혈압이 떨어진다. 따라서 EDRF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심혈관계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푸고트 교수는 수많은 실험으로 이런 물질이 있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정작 그 실체는 밝히지 못한 상태였다. 흥미를 느낀 몬카다 박사는 곧바로 EDRF의 실체를 밝히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듬해 한 학회에서 푸고트 박사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일산화질소(NO)가 이 물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언급을 한다.
몬카다 박사는 이 가설을 확인하는 실험을 설계했고 마침내 1987년 EDRF가 일산화질소임을 입증하는 결과를 얻었다. 1987년 6월 11일자 ‘네이처’에 실린 몬카다 박사팀의 논문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그해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이 됐다. 일산화질소처럼 독성이 강한 기체가 생명체에서 신호전달물질로 쓰인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1101/논문2(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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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원자 하나와 산소원자 하나가 결합된 일산화질소는 불안정한 라디칼로 산성비나 호흡기질환의 원인이 되는 물질이다. 일산화질소가 EDRF와 비슷한 작용을 한다는 정황 증거가 여러 차례 포착 됐음에도 과학자들이 좀처럼 ‘EDRF=NO’라는 가설을 떠올리지 못한 이유다.
EDRF의 실체를 밝히는 데 애를 먹은 또 다른 이유는 EDRF가 생성된 지 수초 만에 사라질 정도로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몬타나 박사팀은 이런 불안정성 역시 EDRF가 일산화질소임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불안정한 라디칼인 일산화질소는 좀 더 안정한 물질인 아질산염(NO-2)이나 질산염(NO-3)으로 쉽게 바뀌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자동차업계에서 쓰는 화학발광 측정 장치를 이용하기로 했다. 화학발광이란 분자
가 화학반응을 할 때 빛을 내는 현상이다.
당시 배양한 상피세포에 브래디키닌이라는 물질을 넣어주면 EDRF가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연구자들은 화학발광 측정을 통해 넣어준 브래디키닌의 양에 비례해 일산화질소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EDRF의 신호와 일산화질소의 신호가 일치한다는 데이터를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상피세포는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일산화탄소를 만들까. 몬타나 박사팀은 꼭 1년 만에 이 비밀까지 밝히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1988년6월 16일자 ‘네이처’). 아미노산의 하나인 아르기닌이 분해되면서 일산화질소가 만들어진다는 것. 이번에도 아르기닌이 결핍된 상피세포는 EDRF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기존 다른 팀의 연구 결과에서 실험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아르기닌으로부터 일산화질소를 만드는 효소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으나 이번에는 다른 팀에 발견의 영예를 넘겨줘야 했다. 1991년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솔로몬 스나이더 교수팀은 일산화질소합성효소(NOS)의 실체를 밝혀냈고 이 효소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도 알아냈다.
아무튼 일산화질소에 관한 논문들 덕분에 몬타나 박사는 1990년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인용된 과학자에 올랐고 영국은 물론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1998년 4월 2일 그는 12살 연하인 벨기에의 마리-에스메랄다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또 다시 주목받았다. 중미 출신의 과학자가 유럽 왕족과 결혼한다는 건 센세이션이었다.
그러나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해 10월 노벨위원회는 일산화질소가 생체신호전달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힌 연구자들에게 생리의학상을 줬는데 몬타나 박사는 제외됐던 것. EDRF의 존재를 처음 주장한 푸고트 박사와 니트로글리세린이 혈관확장 효과가 있다는 걸 발견한 미국 LA 캘리포니아대 루이스 이그나로 교수(그는 몬타나 박사보다 6개월 늦게 일산화질소가 EDRF라는 걸 밝혔다), 니트로글리세린이 몸속에서 일산화질소로 분해된다는 사실을 밝힌 미국 스탠퍼드대 퍼리드 무라드 교수가 수상자였다.
이 선정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말이 많았는데, 몬타나 박사가 비록 중간에 끼어들었고 근본적인 아이디어를 낸 건 아니지만 EDRF의 실체는 물론 그 생성 메커니즘까지 밝혔는데 그가 제외됐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푸코트 박사는 “불운한 살바도르가 포함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한편 몬타나 박사는 “노벨상위원회는 자기들이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상을 줄 권리가 있다”면서 “나는 내가 한 일에 만족한다”며 말을 아꼈다.
비아그라가 몰고 온 의학혁명 EDRF의 실체가 일산화질소임이 밝혀진 이후 일산화질소의 생체 내 역할에 대한 연구가 쏟아졌다. 근육이완을 통한 혈관확장에 관여할 뿐 아니라 뉴런의 신호전달에도 개입하면역계의 대식세포가 일산화질소를 고농도로 내보내 침입한 병균을 무찌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1992년 일산화질소를 ‘올해의 분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 뒤 혈관의 상피세포에서 만들어진 일산화질소가 근육의 이완을 유발하는 과정도 상세하게 밝혀졌다. 일산화질소는 근육세포 안에서 구아노신삼인산(GTP)을 고리형구아노신일인산(cGMP)으로 바꾸는 효소를 활성화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cGMP는 단백질인산화효소(PKG)를 활성화하고 그 결과 여러 단백질이 인산화되면서 근육이완이 일어난다.
일산화질소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건은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의 개발이다. 다국적 제약회사 화이자는 1980년대 심장근육을 이완시키는 협심증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었다. 즉 심장 근육에 분포하는, cGMP를 분해하는 효소인 PDE3의 작용을 억제하는 물질을 찾고 있었다. cGMP가 좀 더 오래 존재한다면 근육이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그런데 한 물질이 심장의 근육보다 오히려 음경의 근육을 더 잘 이완시켰던
것. 음경 해면체의 근육이 이완되면 혈관에 피가 몰려 동맥이 팽창되고 정맥이 막히면서 발기가 된다. 알고 보니 이 물질은 심근세포의 PDE3보다 음경근육세포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PDE5의 작용을 더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즉 PDE5에 달라붙어 PDE5가 cGMP를 분해하는 걸 방해한다.
화이자는 이 물질을 비아그라라는 상표명으로 1998년 시장에 내놓았고 ‘고개숙인’ 남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비아그라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03년 10월호 ‘부작용 없는 제2의 비아그라 개발된다’ 참조). 비아그라는 ‘해피 드러그(happy drug)’, 즉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약물의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신약으로 제약사에 기록될 것이다.
최근에는 ‘연탄가스’로 불리는 일산화탄소(CO)나 유독가스의 대명사인 황화수소(H2S)도 인체 내에 미량으로 존재하면서 신호전달물질로 작용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몸에 좋은 물질과 해로운 물질이 이분법처럼 나눠져 있는게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작용을 할 수 있다는 발견은 생명체가 신비한 존재임을 또 다시 증명하는 사례가 아닐까.
EDRF의 실체를 밝히는 데 애를 먹은 또 다른 이유는 EDRF가 생성된 지 수초 만에 사라질 정도로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몬타나 박사팀은 이런 불안정성 역시 EDRF가 일산화질소임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불안정한 라디칼인 일산화질소는 좀 더 안정한 물질인 아질산염(NO-2)이나 질산염(NO-3)으로 쉽게 바뀌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자동차업계에서 쓰는 화학발광 측정 장치를 이용하기로 했다. 화학발광이란 분자
가 화학반응을 할 때 빛을 내는 현상이다.
당시 배양한 상피세포에 브래디키닌이라는 물질을 넣어주면 EDRF가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연구자들은 화학발광 측정을 통해 넣어준 브래디키닌의 양에 비례해 일산화질소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EDRF의 신호와 일산화질소의 신호가 일치한다는 데이터를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상피세포는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일산화탄소를 만들까. 몬타나 박사팀은 꼭 1년 만에 이 비밀까지 밝히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1988년6월 16일자 ‘네이처’). 아미노산의 하나인 아르기닌이 분해되면서 일산화질소가 만들어진다는 것. 이번에도 아르기닌이 결핍된 상피세포는 EDRF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기존 다른 팀의 연구 결과에서 실험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아르기닌으로부터 일산화질소를 만드는 효소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으나 이번에는 다른 팀에 발견의 영예를 넘겨줘야 했다. 1991년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솔로몬 스나이더 교수팀은 일산화질소합성효소(NOS)의 실체를 밝혀냈고 이 효소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도 알아냈다.
아무튼 일산화질소에 관한 논문들 덕분에 몬타나 박사는 1990년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인용된 과학자에 올랐고 영국은 물론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1998년 4월 2일 그는 12살 연하인 벨기에의 마리-에스메랄다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또 다시 주목받았다. 중미 출신의 과학자가 유럽 왕족과 결혼한다는 건 센세이션이었다.
그러나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해 10월 노벨위원회는 일산화질소가 생체신호전달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힌 연구자들에게 생리의학상을 줬는데 몬타나 박사는 제외됐던 것. EDRF의 존재를 처음 주장한 푸고트 박사와 니트로글리세린이 혈관확장 효과가 있다는 걸 발견한 미국 LA 캘리포니아대 루이스 이그나로 교수(그는 몬타나 박사보다 6개월 늦게 일산화질소가 EDRF라는 걸 밝혔다), 니트로글리세린이 몸속에서 일산화질소로 분해된다는 사실을 밝힌 미국 스탠퍼드대 퍼리드 무라드 교수가 수상자였다.
이 선정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말이 많았는데, 몬타나 박사가 비록 중간에 끼어들었고 근본적인 아이디어를 낸 건 아니지만 EDRF의 실체는 물론 그 생성 메커니즘까지 밝혔는데 그가 제외됐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푸코트 박사는 “불운한 살바도르가 포함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한편 몬타나 박사는 “노벨상위원회는 자기들이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상을 줄 권리가 있다”면서 “나는 내가 한 일에 만족한다”며 말을 아꼈다.
비아그라가 몰고 온 의학혁명 EDRF의 실체가 일산화질소임이 밝혀진 이후 일산화질소의 생체 내 역할에 대한 연구가 쏟아졌다. 근육이완을 통한 혈관확장에 관여할 뿐 아니라 뉴런의 신호전달에도 개입하면역계의 대식세포가 일산화질소를 고농도로 내보내 침입한 병균을 무찌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1992년 일산화질소를 ‘올해의 분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 뒤 혈관의 상피세포에서 만들어진 일산화질소가 근육의 이완을 유발하는 과정도 상세하게 밝혀졌다. 일산화질소는 근육세포 안에서 구아노신삼인산(GTP)을 고리형구아노신일인산(cGMP)으로 바꾸는 효소를 활성화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cGMP는 단백질인산화효소(PKG)를 활성화하고 그 결과 여러 단백질이 인산화되면서 근육이완이 일어난다.
일산화질소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건은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의 개발이다. 다국적 제약회사 화이자는 1980년대 심장근육을 이완시키는 협심증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었다. 즉 심장 근육에 분포하는, cGMP를 분해하는 효소인 PDE3의 작용을 억제하는 물질을 찾고 있었다. cGMP가 좀 더 오래 존재한다면 근육이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그런데 한 물질이 심장의 근육보다 오히려 음경의 근육을 더 잘 이완시켰던
것. 음경 해면체의 근육이 이완되면 혈관에 피가 몰려 동맥이 팽창되고 정맥이 막히면서 발기가 된다. 알고 보니 이 물질은 심근세포의 PDE3보다 음경근육세포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PDE5의 작용을 더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즉 PDE5에 달라붙어 PDE5가 cGMP를 분해하는 걸 방해한다.
화이자는 이 물질을 비아그라라는 상표명으로 1998년 시장에 내놓았고 ‘고개숙인’ 남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비아그라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과학동아 2003년 10월호 ‘부작용 없는 제2의 비아그라 개발된다’ 참조). 비아그라는 ‘해피 드러그(happy drug)’, 즉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약물의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신약으로 제약사에 기록될 것이다.
최근에는 ‘연탄가스’로 불리는 일산화탄소(CO)나 유독가스의 대명사인 황화수소(H2S)도 인체 내에 미량으로 존재하면서 신호전달물질로 작용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몸에 좋은 물질과 해로운 물질이 이분법처럼 나눠져 있는게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작용을 할 수 있다는 발견은 생명체가 신비한 존재임을 또 다시 증명하는 사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