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사상 최악의 사고라 불리는 소련 체르노빌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지 4년이 지났다. 86년 4월26일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서는 원전의 치명적사고라 할 수 있는 멜트다운(노심 용융)현상이 일어나 방사성동위원소를 마구 대기속에 뿜어냈다. 이 사고로 지금까지 2백50여명이 숨졌고 수백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발생 직후 소련 당국은 발전소 근처에 있던 3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방사능오염 후유증으로 점전 사망자수가 늘고 있고 장애자수도 해가 갈수록 증가될 전망이다. 방사능 피폭자의 백혈병 발생은 5년 이후, 각종 종양발생은 20년 후에 절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인명피해는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생태계에 엄청난 피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사고로 발생한 방사성물질의 태반이 내려앉은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공화국에서는 상처의 폭이 매우 넓다.
원전 폭발이 발생한 후 원전주변 30km지점 이내는 접근금지 구역으로 선포돼 5만여명이 프리피아트 주민을 포함 1백79개마을 15만여명이 소개(疎開)됐다. 그러나 최근 반경 60km지점에서 방사능이 허용치의 9배나 검출됐으며 이 지역내에 살고 있는 약4백여만명의 주민들과 일부 가축, 농작물 등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음이 밝혀졌다.
체르노빌로부터 60km 떨어진 우크라이나 나로디치 지방에서는 발이 여덟개 달린 망아지가 태어나기도 했으며 눈이 없는 돼지, 입과 코가 비뚤어진 소, 눈만 특별히 발달한 돼지가 태어나기도 했다. 사고 이후 지금까지 이 지방의 어떤 농장에서는 1백97마리의 송아지가 이상이 있었고 어떤 농장에서는 2백마리 이상의 돼지가 제대로 모습을 갖추지 못한채 태어났다.
동물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방사능의 낙진이 심했던 지역의 소나무잎은 기형적으로 자라나 무게가 수배 이상 늘어났고 참나무잎은 무한정 자라나고 있다. 아카시아의 잎도 어린이 손바닥 크기로 기형화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반경 6~7km 이내에 위치한 상록수는 앞으로 모두 고사될 것이라고 타스통신은 전한다.
「체르노빌 에이즈」환자 급증
4년이 지난 현재 소련에선 방사능 노출로 인해 갑상선이상 빈혈 백혈병 등과 '체르노빌 에이즈'(AIDS)라 불리는 면역결핍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어린이 16만명을 포함 약 1백50만명이 방사능과 관련된 병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앞으로 30~40년간 각종 암환자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나로디치 중앙병원 원장은 "최근 1년6개월 동안 갑상선의 이상과 빈혈, 그리고 암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련의 원자력평의회 슈첼바크 부의장은 "암발생은 사고전에 비해 5~10배에 이르고 있다. 더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비관적으로 말했다.
방사능 피해는 한세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체르노빌 북부에 위치한 백러시아의 보브스크 아동센터에 있는 한 어린이는 코마저 일그러진 심한 언청이로 태어났으며(88년), 한 어린이는 한쪽 눈이 아예 동공이 없는 상태로 자라고 있다"고 프랑스의 주간지 '파리마치'지는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많은 기형아들이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목숨을 잃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체르노빌 주변의 임산부들 사이에는 낙태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센터의 의사는 "원전 사고 이전에는 기형아 출산이 1년에 고작 한두번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체르노빌 사고는 인간과 동식물에 직접적인 피해와 더불어 환경오염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성 낙진에 의해 더럽혀진 토양을 원상태로 복구하기 위해 일부 과학자들은 칼슘화합물 인 붕소 등을 땅에 뿌리자고 제의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원소들은 흙으로 스며들어 나무뿌리 밑의 방사성원소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
물의 오염은 더욱 중대한 고민거리다. 체르노빌에서 약 1백30km 떨어진 인구 2백50만의 키에프시는 상수용 물의 반 이상을 드네프르강에서 공급받고 있다. 이 때문에 체르노빌 근처 하천의 오염된 물이 이 강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하도록 콘크리트 차폐물을 설치하고 있다. 키에프의 식품공장에서는 새로 땅속 깊이 지하수를 파 물을 공급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간혹 방사능 오염이 걸러지지 않은 채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소련 '이즈베스티야'지는 89년 10월 방사능으로 오염된 고기를 신선한 고기와 섞어 소시지를 만든 식품공장을 폭로하기도 했다.
소련에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수난을 당한 것이 북구(北歐)의 순록. 사고 직후 5개월 동안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방사능 오염으로 도살된 사슴은 수만마리에 이르렀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사슴1천마리를 조사한 결과 97%가 방사능 오염 허용기준치를 초과, 식용으로 부적합한 것으로 판정되기도 했다. 이들 사슴의 화려한 뿔도 방사능 오염물질이라는 평가를 받아 한때는 '녹용 기피증'이 유행하기도 했다.
'원자력 발전 불가피론'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돼야 한다는 것이 환경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 사건이 갖는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하지도 않은채 '인류에의 교훈'을 무시한다면 제2, 제3의 재앙이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체르노빌 원전은 95년까지 완전 폐쇄해야 하며 주변 지역을 완벽하게 차단, 생태계에 대한 방사능의 영향을 연구하기 위한 특별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는 소련 환경단체들(녹색운동 체르노빌 등)의 주장은 타당성을 갖는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