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그릇 180개가 수면에 둥둥 떠 있다. 물의 흐름에 따라 그릇들이 이리저리 부딪치며 청아한 소리를 낸다. 관람객들은 그 주위에 모여 앉아 만남이 자아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설치된 프랑스의 예술가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의 작품 ‘클리나멘 v.9(Clinamen v.9)’의 전경이다.
클리나멘은 고대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원자의 운동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말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원자가 직선 궤도를 따라 이동하다가 자유의지에 의해 돌연 궤도를 이탈하곤 한다고 믿었다. 클리나멘이다. 루크레티우스는 궤도를 이탈한 원자들이 서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우주가 탄생했다고 역설했다.
무작위한 만남이 우주를 빚었다. 루크레티우스의 클리나멘은 불교의 ‘인연’과도 많이 닮았다. 클리나멘은 도종환의 시 ‘인연’도 떠올린다.
너와 내가 떠도는 마음이었을 때
풀씨 하나로 만나
뿌린 듯 꽃들을 이 들에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