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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탐독] 혹등고래가 알려준 자유자재 유체 사용법

 

저는 한동안 고래를 좋아했습니다. ‘유유히 떠있다’는 표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인 까닭입니다. 새도 물고기도 있지만 이들은 ‘파닥파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조금은 분주한 모습입니다. 고래는 어떤가요? 거대한 몸집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면서도 넓은 공간을 한껏 누리는 여유로움이 퍽 웅장해 보이죠.

 

바다 속 자유롭고 웅장한 존재, 혹등고래

 

고래 중에도 유독 눈에 띄는 고래가 바로 독특한 외형으로 유명한 혹등고래(Humpback whale)입니다. 길이 15m, 몸무게 40t(톤)에 달하는 유선형의 몸통에 몸집에 비해 다소 얇지만 꽤 긴 지느러미가 달려있죠. 그리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혹처럼 보이는 여러 개의 돌기가 나 있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이 돌기들은 얇고 긴 지느러미와 주둥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혹등고래의 재미난 특징은 또 있습니다. 육중한 덩치가 무색하게도 상당히 민첩하다는 것이죠. 물속에서 수중 제비를 돌거나 수면 위로 솟구쳤다가 뛰어드는 등 여러 재주에 능합니다. 수면 위로 치솟는 도약력도 대단해 그 모습이 장관이라고 해요.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떠오릅니다. 어떻게 혹등고래는 덩치가 비슷한 다른 고래들보다 민첩할까요? 아무리 물속에 있어도 40t의 덩치가 자유자재로 몸을 뒤집고 수중 제비를 하려면 큰 힘이 필요할 텐데 말입니다. 이번에 소개한 논문에 따르면, 이 유별난 민첩성의 비결은 바로 혹등고래의 ‘혹’이라고 합니다. 유선형의 방해 요소일 듯한 혹이 어떻게 수중 유영을 도울까요?

 

날개가 날지 못하는 원인은 ‘실속 현상’

 

고래는 지느러미로 움직입니다. 꼬리 지느러미로 물을 밀어내 앞으로 나아가고, 가슴 지느러미로 방향을 결정하죠. 이번에 주목할 부분은 고래의 가슴 지느러미와 그곳에 난 혹의 관계입니다.

 

지느러미는 주변 유체의 흐름을 바꾸며 힘을 만듭니다. 고래 지느러미 주변의 유체는 바로 물입니다. 지느러미가 유체와 이루는 각도가 받음각(Angle of Attack)입니다. 이 받음각이 커질수록, 그리고 물의 흐름 속도가 빠를수록, 지느러미가 만드는 힘 즉 양력이 강해지죠.

 

달리는 자동차 창밖으로 손을 내밀면 어떤가요. 창밖으로 뻗은 손의 각도를 바꿨을 때 손이 들리거나 가라앉는 힘을 느낀 경험을 떠올리면 받음각과 양력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받음각과 양력의 관계에는 특이한 점도 있습니다. 받음각이 일정 각도보다 커지면 양력이 급격히 감소한다는 거죠. 창밖으로 뻗은 손이 바람을 받아치는 각도가 너무 크면, 손이 뜨는 느낌을 오히려 못 받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실속(Stall) 현상입니다.

 

실속이 얕은 각도에서부터 일찍 발생하면 최대 양력도 제한됩니다. 반대로 실속을 최대한 억제한다면 지느러미가 더 큰 양력을 만들 수 있겠죠. 실속을 늦춰 지느러미가 더 큰 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까지 알아봤습니다. 그러면 이 실속은 언제 발생할까요?

 

유체를 붙드는 두 가지 방법

 

지느러미나 날개처럼 유체를 가르며 힘을 만드는 존재들은, 그 주변 유체의 상태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양력이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지는 조건은 ‘주변 유체의 흐름이 부드러울 때’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엄밀한 표현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받음각이 작을 땐 유체가 지느러미에 잘 붙어서 흐르지만, 받음각이 커지면서 지느러미 윗면 유체의 흐름이 불안정해집니다. 받음각이 커지니 윗면의 경사가 급해지고, 그러면 유체가 스스로의 관성을 이기지 못해 지느러미 윗면에 붙어있기도 어려워집니다.  받음각이 계속 커지면 유체는 더 이상 지느러미 표면에서 흐르지 못하고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이 분리된 흐름이 어지러운 유체 흐름, 즉 난류가 되고 난류는 양력을 만들지 못합니다. 흐름이 분리되는 이러한 유동 박리(Flow separation) 현상이 실속의 원인입니다.

 

따라서 실속을 막으려면 주변 유체의 흐름이 지느러미에 최대한 붙어 있어야 합니다. 도망가는 흐름을 붙잡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지느러미 위쪽의 경사를 완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느러미를 앞뒤로 더 길고 통통하게 만들면, 받음각이 같아도 경사가 더 완만해져서 유체를 잘 붙잡을 수 있죠.

 

보다 확실한 방법도 있습니다. 유동 박리의 이유 중 하나는 유체가 지느러미 표면을 따라 흐르다가 스스로의 점성 때문에 지느러미 끝단까지 갈 추진력을 잃는 것입니다. 따라서 힘이 넘치는 주변의 유체를 뒤섞어서 지느러미 끝까지 밀고 들어갈 힘을 보충하면 실속을 지연시킬 수 있죠. 주변의 유체를 어떻게 섞을까요? 바로 지느러미 표면에 인위적인 소용돌이를 일으키면 됩니다.

 

정리하면, 지느러미가 힘을 내기 위해서는 더 높은 받음각에서도 실속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실속을 지연시키려면 유동 박리를 억제해야합니다. 이제 혹등고래의 혹으로 돌아가보죠.

마음껏 양력을 만드는 혹등고래의 비결

 

혹등고래는 상당히 높은 받음각에서도 지느러미에 실속이 발생하지 않아, 작은 지느러미로도 큰 양력을 만들어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칩니다. 이 논문의 문제의식은 혹등고래 지느러미가 ‘왜’ 이런 장점을 지니는지에 대한 이론적 모델이 없다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연구의 의의는 실험적으로 관찰된 현상을 기존의 유체역학 이론을 적용해 이론적으로 규명한 것입니다.

 

혹등고래 지느러미는 움푹 들어간 골(trough)과 튀어나온 혹(bump)이 반복되는 물결형입니다. 단면 길이는 혹이 골보다 길죠(혹이 나온 만큼 길어집니다). 지느러미의 두께가 일정하면 골 부분 단면은 길이가 짧아서 혹 부분보다 경사가 급합니다.  따라서 골에서 실속이 먼저 일어나고, 각도가 더 커지면 혹에서 실속이 일어납니다.  혹등고래 지느러미의 혹 덕분에 지느러미의 각 부분이 순차적으로 실속하므로, 받음각이 커져도 전반적인 양력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받음각이 커져 일부 단면은 실속해도, 실속하지 않은 다른 부분이 더 큰 양력을 만들어 손실을 보충하니까요.

 

또한 혹등고래 지느러미의 물결 형태는 지느러미 주변에 여러 가닥의 소용돌이를 만듭니다. 이 소용돌이가 지느러미 주변의 물 흐름을 지속적으로 섞어주면서 물이 지느러미 끝까지 잘 붙어서 흐르도록 도와줍니다. 즉 전체적으로 혹등고래의 지느러미는 더 큰 받음각에서도 실속하지 않고 양력을 계속 생성합니다.

 

이번 논문에선 이 두 가지 특징을 유체역학 공식으로 유도해냈습니다. 물결 형태 지느러미가 발생시킨 소용돌이와 지느러미가 점진적으로 실속을 일으키는 특성 덕분에, 혹등고래는 작은 받음각부터 더 큰 받음각까지 폭넓게 꾸준히 양력을 만듭니다. 논문은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공식과 실제 실험 결과를 비교해, 논문에서 제안한 모델이 정확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혹등고래의 지느러미는 더 큰 받음각에서도 양력계수의 변동이 크지 않습니다. 최대 양력의 크기는 돌기 없는 지느러미보다 다소 적었지만, 돌기 없는 지느러미가 양력을 일으키기 어려운 크기까지 포함한 훨씬 넓은 영역의 받음각에서 혹등고래의 지느러미는 양력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혹등고래가 자유롭게 지느러미를 사용하는 비결이 이 돌기라고 예상할 수 있죠.

 

이 연구는 이론적인만큼 여러 가정이 들어갔다는 점(지느러미 길이 방향의 유체 흐름은 없다고 가정)에서 일정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이론적 방법론으로 혹등고래 지느러미의 특성을 근본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습니다.

 

보통 난기류는 달갑지 않은 존재로 느껴지죠. 하지만 혹등고래의 지느러미는 울퉁불퉁한 혹이 만든 거친 난류도, 유체의 흐름을 더 현명하게 사용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줬습니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은 없다니까요!

 

 

❋필자소개

임재한. 항공우주 엔지니어. KAIST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드론의 자동 비행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dlawogks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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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임재한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박사과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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