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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카이스트에서 의전원을? 의사공학자 탄생할까

2023년 9월, KAIST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과학기술 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확대할 의지를 보이자 곧바로 움직인 것이다. 수년 전부터 연구중심의대 설립을 주장하던 POSTECH도 의과학 전공 과정을 신설하며 팔을 걷어붙였다.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들이 움직인 이유를 살펴봤다.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mRNA(메신저 RNA) 백신이 개발될 수 있는 핵심 연구를 한 두 명에게 돌아갔다. 커리코 커털린 독일 바이오엔테크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다. 커리코 부사장은 1989년부터 펜실베이니아대에서 mRNA 연구를 시작했지만, 1990년대는 mRNA 연구의 암흑기였다. mRNA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것이 와이스먼 교수였다. 1997년부터 함께 연구를 시작한 두 사람은 2005년 변형된 뉴클레오사이드로 선천면역반응을 억제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생화학 전공의 과학자와 면역학을 전공한 의사과학자의 ‘팀플레이’였다.

 

의사과학자의 역할과 성과가 대두된 것은 비단 2023년 만의 일이 아니다. 1988년부터 2023년까지 지난 35년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중 약 35%가 의사이면서 과학자로서 훈련받은 의사과학자다. 반면 20년 넘게 최고 수준의 인재가 의대에 진학하고, 의료기술과 서비스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는 한국의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미미했던 한국 의사과학자 양성 역사

 

한국 의사과학자의 대다수는 현재 의과대학(의대)에 있다. 의대를 졸업한 뒤 생화학, 생리학, 병리학 등 기초의학 연구를 해 교수로 임용된 경우다. 정진호 서울대 의대 교수팀에 따르면 국내 의대 기초의학 연구자 중 40%가 의사다. doi: 10.1016/j.xjidi.2021.100073 하지만 그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편은 아니다. 의대 졸업생이 1년에 약 3300명이라면, 그중 기초의학으로 진로를 택하는 이들은 30명 수준이다. 전체의 1% 미만이다.

 

2004년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하며 의사과학자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KAIST의 사례를 고려해도 한국의 의사과학자 수는 매우 적다. KAIST 의과학대학원은 설립 이후 20여 년간 약 26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그중 10%만 의사과학자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에서 의사과학자 양성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미국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1964년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MSTP嘜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을 시작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 중이었던 미국은 의대 졸업생이 MSTP로 2년 동안 연구에 전념하는 경우 병역 면제 혜택을 부여했다. 당시 해당 프로그램을 이수한 의사과학자 중 15명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지금도 미국 전체 의대 졸업생 중 4%가 MSTP에 지원할 뿐만 아니라, MSTP 졸업생 70%가 연구 분야에 잔류한다. 미국에선 의대 재학생들이 1년 이상의 ‘갭이어’로 전일제 연구를 수행하며 본인의 연구 적성을 찾는 문화도 정착돼 있다. 미국은 매년 1700여 명의 의사 과학자를 양성해 낸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가 ‘대우’에 있다고 말한다. 김종일 서울대 의대 교수는 2020년 헬스케어 미래포럼 발표에서 미국은 MSTP 학생들에게 임상 실습 프로그램 등의 우선 선택권을 주는 등 혜택이 확실하다했다.  또 무엇보다 미국은 병원 레지던트나 의대 교수 임용 시 의사과학자를 우대해, 학생들이 진로를 고민할 때 ‘메리트 있는’ 선택지가 된다. 반면 한국은 의사과학자의 진로가 불투명해, 연구에 열정이 있는 소수의 의대 학생들이 하는 ‘도전’으로 남고 있다.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 의전원을 꿈꾸는 이유

 

한국의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은 2019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함께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을 시작하면서 KAIST 의과학대학원을 비롯해 서울대 의대, 연세대 의대 등 개별 의대에서 운영하던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에 지원 체계가 정립됐다. 정부가 의사과학자 양성을 본격화한 것이다.

 

KAIST와 POSTECH 등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2023년 9월 과학기술 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KAIST 의과학대학원은 연구 학위 과정만 있지만, 과기의전원이 설립되면 KAIST에서 의학사(M.D)와 박사학위(PhD) 동시 취득이 가능해진다. 과기의전원은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 3항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의료인 수급을 확대하고 교육부가 이를 반영해 의전원 신설을 허가하면 설립할 수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건 ‘공학’과 ‘다양성’이다.

 

“의과학대학원을 운영해 보니 의사 출신 전일제 공학 연구자를 양성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2023년 11월 13일 만난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지금 운영되고 있는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 사업으로 과학 분야의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수는 있지만, 공학 분야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생명과학 지식은 의사들이 의대에서 받은 교육과 일정 부분 공통점이 있어 연구에 적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동안 한국 의사과학자들은 주로 생명과학 분야에서 성과를 냈다.

 

그런데 인공지능(AI)과 데이터공학, 전자공학 등을 의학과 의료기기 개발에 이어줄 의사과학자, 즉 의사공학자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공학은 의학과 완전히 다른 분야다. 이 때문에 의사과학자들이 별도의 공학 교육 없이 연구에 투입되면 큰 어려움을 겪는다.

 

KAIST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과기의전원에 의학과 공학을 처음부터 같이 배우는 교육 과정을 만들어, 이후 공학 박사과정에서 전일제 연구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하버드대-MIT의 HST(Health Sciences and Technology) 프로그램이 KAIST 과기의전원의 모델이다. 하버드대는 의대를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1970년에 MIT와 함께 새로운 HST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의과학-공학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POSTECH도 과학을 하는 의사와 더불어, 의학을 이해하는 공학자를 양성하는 연구중심의대를 구상하고 있다. 의과학전문대학원 형태로 의학 교육 2년, 공학 연구 4년, 다시 의학 교육 2년 총 8년을 다니는 복합 학위과정이다. 미국의 칼 일리노이 의대(CICM)가 POSTECH 연구중심의대의 모델이다. 칼 일리노이 의대는 일리노이 주립대가 2018년 신설한 공학 기반의 의대다. DGIST도 2023년 11월, 과기의전원을 설립해 대구경북 지역 의과대학과 함께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사과학자 롤모델 나와야”

 

“의사과학자의 성공 모델이 나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023년 11월 13일 연세대에서 만난 이민구 연세대 의대 교수 겸 연세대 의사과학자 양성사업단장은 “롤모델이 있어야 그를 뒤따르는 더 많은 의사과학자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와 지원 등 양성사업을 아무리 잘 갖춰도, 그 길을 택하는 이가 없다면 무의미하다. 즉 의사과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만 한국의 의사과학자 양성이 본래의 목표와 계획대로 이뤄질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고 허갑범 연세대 의대 교수는 1998년 “의사과학자를 배출하기 위한 의대 개혁 및 학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생명과학 분야에서 21세기 과학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로부터 약 2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아직 경쟁력을 다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1월,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수를 확정할 예정이다(기사 작성일 12월 13일 기준). 국내 의사과학자 양성에도 그에 따른 변화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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