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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속의 초능력

소년 마술사에 속은 과학자들

최근 국내 모방송사에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초능력 시범을 보여주어 커다란 반항을 불러일으켰다.특히 어떤 초능력 시범은 제작진이 속임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인 것처럼 방영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마술사의 속임수와 초능력(초정상)현상은 일반인들이 구별해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심지어 과학자들까지 속아넘어가기도 한다.사이비 속임수 과학에 속지 않기 위해 TV에 비춰지는 초능력 현상들을 보는 눈을 좀더 예리하게 할 필요가 있다.

키는 작지만 엄청난 힘을 지닌 듯한 눈매가 날카로운 기공사가 한강 고수부지에 서 있다. 이미 3-4m 앞 젊은 남녀를 쓰러뜨린 후 그는 이제 손바닥에 힘을 모아 강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기를 보낸다. 하나 둘 맥없이 쓰러진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도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텨보려고 하지만 결국 굴복하고 만다. 기(氣) 또는 염력(PK)의 존재를 보여주는 어느 TV 장면이다.

기공의 힘은 암시효과?

기공사의 손에서 사람을 쓰러뜨리는 힘이 나온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적 힘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공사 앞에 선 대상이 그 힘이 가해지는지 눈으로 볼 필요는 없다. 대상의 눈을 가려 언제 기공사가 기를 방사하는지 모르게 한 상태에서 실험해 보자. 그래도 방사할 때에만 쓰러질 것인가? 기공사가 보이지 않을 강 건너편 사람은 어떻게 쓰러졌을까? 기가 온다고 옆에서 소리치는 개그맨 진행자의 입을 막아보자. 그래도 기를 방사할 때에만 쓰러질 것인가?

이런 TV 프로그램은 재미있는 오락물로는 탓할 것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실제 손에서 힘(기)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런 능력과 힘이 존재하고, 심지어 그 힘에 의해서 시험관 안에 든 면역세포가 증가하고, 온갖 병을 치료한다고 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같은 일이 18세기 프랑스에서도 일어났다.

파리에 진료실을 차린 오스트리아 의사 프란츠 메스머가 사람 몸에 들어 있는 동물자기력으로 신통하게 병을 고친다고 소문이 났다. 그가 손가락을 향하기만 해도 환자는 몸을 떨기 시작해 얼굴을 찌푸리고 고통으로 신음했다. 그러다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에 병은 말끔히 나아있는 듯 보였다. 메스머의 인기가 높아 가자, 프랑스 의사들의 거센 항의가 따랐다(일부는 시기심도 있었을 것이다). 사기치료라는 것이다.

이에 프랑스 국왕은 앙투아네 라부아지에와 벤자민 프랭클린을 포함한 유명 과학자 위원회를 구성해 이를 조사하도록 했다. 조사가 시작되자 동물자기 옹호자는 병 치료효과에 초점을 맞출 것을 주장했으나 위원회는 “동물자기 응용의 문제는 동물자기의 존재가 긍정적으로 나온 후에야 다룰 문제다”라고 거절했다.

위원회의 실험은 간단했다. 예를 들어 동물자기에 아주 예민한 한 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눈을 가리도록 한 후에 동물자기를 가하는 절차를 취했으나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다음에 동물자기를 가하지 않으면서 주입하는 중이며 자기화 되고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몸을 떨기 시작하며 경련을 일으켰다. 위원회는 “자기가 없는 상상은 경련을 일으키나 상상이 없는 자기는 아무 효과도 가져오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동물자기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순한 암시효과, 즉 환자의 측면에서 상상효과라는 것이다.

정상 의식이 아니라 변한 의식

동물자기 요법의 메스머는 최면술의 창안자로 이름이 올라 있다. 그는 환자의 눈을 응시한 채 손을 저으며 암시의 말을 던져 최면에 빠지게 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반복된 단조로운 색깔이나 음 또는 암시의 말만으로도 최면이 유도된다. 최면 감수성은 사람에 따라 달라 전혀 최면에 걸리지 않는 사람도 있는 반면, 최면감수성이 높아 깊은 최면상태에 빠지는 사람들은 작은 암시에도 잘 반응한다.

최면뿐만 아니라 수면과 명상 상태, 즉 깨어 있는 정상적인 의식과는 다른, 의식이 변한 상태에서 초능력이 나타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꿈속에 미래에 닥칠 일이 나타나거나 가까운 사람의 텔레파시가 전해진다고 믿는다. 또한 오랜 명상 수련자는 방안에 앉아서도 찾아올 손님을 마중 내보낸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 TV에도 변한 의식상태에서 예지, 텔레파시, 투시와 같은 초감각적 지각(ESP)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백, 수천km 떨어진 환자에게 마음을 전달해 최면에 빠지게 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TV는 한 최면술사가 세계 최초로 텔레파시 최면을 성공시켰다고 방영한 적이 있다. 텔레파시 최면은 19세기초 러시아에서 기록되기 시작해서 20세기 상반기까지 연구가 이어진 것이다. 물론 성공했다는 주장이지만 최면 대상이 최면을 거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최면에 걸리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답을 내지 못했다. 최면을 건다는 암시에 의한 효과인지 실제 최면에 걸린 것이지를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TV의 실험은 옆방도 아닌 환자 가까이 앉아 최면에 빠지게 한 것을 세계 최초라고 했으니 할말이 없다.

또한 최면술사는 어제도, 오늘도 TV에 나와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이나 감추어 놓은 물체를 최면상태에서 알아맞히는 시범을 보인다. 투시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미리 내용을 아는 사람이 마음으로 전달해준 것을 읽었다면 텔레파시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실험 장면에는 최면술사, 최면대상 그리고 방송사 요원만이 등장한다. 물론 방송사 PD는 아무도 모르게 인형을 포장했을 것이다. 더욱이 최면술사나 최면 대상에게 미리 말해주었을 리도 없다.

그러나 과학실험에서는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정직하더라도, 그리고 모두가 비밀이 새 나가지 않도록 나름대로 주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실험결과는 인정하지 않는다. 반드시 이런 실험에 오랜 경험을 가진, 그래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통제된 실험을 설계할 수 있는 과학자가 최면술사와 최면대상, 방송사 요원을 초월한 객관적인 실험자가 돼야 그 결과를 인정한다는 말이다.

여하튼, 실험에서는 믿기 힘들게도 정확히 인형을 알아맞힌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다음에 소개할 연구 사례에서와 같이 과학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재작년인가 TV는 교수들이 서성거리는 모 대학의 첨단 과학실험실을 비춰주었다. 이들은 방안에 누워 잠자는 대상이 정말로 잠들었는지, 꿈을 꾸고 있는지 첨단 기기로 측정하고 있다. 다른 방에서는 한 사람이 한 장의 사진을 열심히 보고 있다. 옆방 사람에게 그 마음이 전해져 꿈속에 나타나는지 보는 실험이었다.

다음, 카메라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이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는 장면을 잡는다. 예를 들어 그 사진은 야구경기장의 관람석 일부이다. 그런데 그는 꿈속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여자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 사진 속 많은 사람 중에는 분명 그런 여자도 있었다. 그러자 텔레파시의 존재가 증명되었다는 교수의 해설이 따른다.

이 장면은 다름 아닌 1960년대 뉴욕 브루클린 마이모니데스 의학센터 꿈연구실의 울먼-크리프너 실험을 모방한 것이다. 꿈 연구에서는 예를 들어 잠을 자고 난 사람은 특정 엽서 한 개가 포함된 8개의 그림 중에서 꿈속에서 본 것과 유사한 정도가 큰 것부터 순서대로 나열한다. 만일 특정 엽서가 4위 안에 들어 있다면 꿈을 통해서 텔레파시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실험을 반복해서 하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는지를 볼 수 있다.

몬태규 울먼과 스탠리 크리프너는 1970년 텔레파시가 존재한다는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 한번뿐이었다. 그 후 이들을 포함한 많은 초심리학자들이 실험결과를 재현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꿈 연구는 과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텔레파시의 존재 근거가 되지 못하고 말았다.

유리 겔러의 속임수


숟가락 구부리기 시범을 보이는 유리 겔러.


TV에는 또한 눈빛만으로 촛불을 끈다는 염력 초능력자도 나온다. 필자는 그 장면을 보고 감기 마스크를 하고 꺼 보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사람이 정말로 그렇게 했다는 말이 아니라, 코나 입 바람으로 그렇게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속임수 방비책을 쓰지 않은 결과는 과학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염력’ 하면 모두가 구부러진 스푼을 손에 든 유리 겔러를 떠올린다. 초능력자 겔러의 이름에 신빙성을 더해 준 것은 스탠퍼드 연구소의 해롤드 푸토프와 러셀 타그가 1974년 학술지(네이처)에 발표한, 상자 안에 넣고 흔든 주사위 숫자 알아맞히기 실험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험절차가 애매 모호하고, 찍어 놓았다는 필름과 실험노트의 공개를 거부해 과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유리 겔러의 스푼 구부리기를 마술사의 속임수라고 폭로하며 공개장소에서 여러 사람 앞에서 똑 같이 스푼을 구부려 보여준 사람이 마술사 제임스 랜디이다. 마술사의 속임수는 일반인이나 TV 제작진이 알아내기가 매우 힘들다. 초능력을 과학적으로 연구한다는 초심리학자들이라고 해서 이를 알아낼 수 있을까?

제임스 랜디는 속임수를 차단한 과학적 실험을 위해서는 반드시 속임수를 잘 아는 마술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런데 초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충고의 뜻으로 1978년 ‘초심리학자 속이기 알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1979년 맥도덜 더글러스가 기부한 심령연구 기금 50만 달러로 세운 워싱턴 대학(세인트 루이스) 맥도널 연구소가 마술사의 도움 받기를 거절하자 이를 첫 번째 대상으로 삼았다.

랜디는 10대 마술사 2명을 그곳으로 보내 스푼 구부리기 등 심령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도록 했다. 초능력자를 찾고 있던 연구소의 초심리학자들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1981년에는 초심리학 학술회의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스푼 구부리기, 테이블 위 시계 움직이기, 종 모양의 유리그릇 안에 든 작은 프로펠러 돌리기 등등 모두가 경탄할 결과였다. 이 사실은 언론에 널리 보도됐고 초심리학자들은 이제 초능력이 입증됐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무려 3년 반 동안 소년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1983년 랜디는 맨해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두 소년이 자신이 보낸 마술사임을 폭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술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스푼 구부리기는 잠깐 사이에 다른 물체의 모서리에 대고 구부린 것이며, 시계는 보이지 않는 실로 움직이게 했고, 종 안의 프로펠러는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틈새를 내어 순간적으로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었다. 결국 1985년 맥도널 연구소는 문을 닫았다.


최면술을 이용 초능력자로 행세했던 오스트리아 의사 프란츠 메스머


초능력 유행은 왜 나쁜가

얼마 전 TV로 방영된 글렌 폴켄슈타인과 프랜시스 윌라드 2인조 초능력으로 지금도 떠들썩하다. 미국에는 이런 초능력 주장을 평가하는 30여 단체뿐 아니라 세계적인 초능력 주장 과학적 조사위원회(CSICOP)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TV에 등장했던 이들은 미국의 과학적 조사위원회의 입에 오르내려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초능력자가 아니라 유명한 축에 드는 마술사일 뿐이다. 속임수를 써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마술사다. 미국에서는 이들의 마술 비디오 테이프도 구할 수 있다.

4명의 노벨상 수상자 등 저명한 학자들이 주축이 된 CSICOP(웹주소: www.csicop.org)는 전 세계 70여 독립적 연계 단체의 중심역할을 맡고 있다(국내에서는 필자가 중심이 된 한국의사과학문제연구소(www.kopsa.or.kr)가 있다). 이들은 학자, 전문가, 그리고 뜻을 가진 젊은 층이 함께 모인 최고 수준의 학술적 비평단체이며 사회계몽단체의 성격을 띠고 과학의 정치적 문제에도 개입한다.

대중적 측면에서 이들은 모든 초능력 현상(초감각 지각(ESP), 염력(PK), 수맥, 전생, 역술, UFO, 피라미드 파워, 식물의 감정 등등)이 과학인지, 거짓 과학인지 가려 그 정보를 신문, 방송을 포함한 전문인과 일반 국민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초능력 현상의 믿음이 과학이 있기 전 마술의 믿음, 다시 말해서 미신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들이 과학과 이성의 가치를 품고 살아가도록 계몽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대중들도 진실과 속임수를 가려내는 예리한 눈을 가져야 할 때다.

200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선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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