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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중요한 일은 표면에서 일어난다 '금속 표면처리'

서로 다른 물질이 만나는 경계이자, 만나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최전선. 바로 표면이다. 산업계에서는 물질의 가장 중요한 부위라고 할 수 있는 표면을 보호하거나 활용하기 위해 표면에 금속을 씌운다. ‘도금’이라고도 부르는 금속 표면처리 공정이다. 2023년 11월 21일, 표면처리의 세계를 더 깊이 알아보기 위해 경기 화성에 위치한 표면처리 솔루션 전문 기업 MKS 아토텍을 찾았다.

 

2023년 11월 21일 오전 11시, 경기 화성에 위치한 MKS 아토텍 공장 1층. 푸른색 액체가 찰랑이는 거대한 수조 속에 널따란 플라스틱 판이 들어있다. 기계의 버튼을 올리자 푸른색 액체에선 물이 끓는 것처럼 기포가 인다. “여기가 전해 도금을 하는 파일럿 라인입니다. 액체 속에서 구리 도금 과정이 일어나죠.” MKS 아토텍 전자사업부 CS 매니저 박국록 책임이 말했다. 기계를 멈추고 플라스틱 판을 들어올리니 그 표면에 금속성 광택이 빛났다.

 

MKS 아토텍은 표면처리 솔루션 전문 기업으로 도금과 표면처리에 쓰이는 약품과 장비, 기술 전반을 개발판매하는 기업이다. “용액을 사용해 전해 도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자 제품에 쓰이는 인쇄회로기판(PCB)의 도금 처리를 할 때 쓰는 기술이죠.” 박 책임의 설명에 궁금증이 일었다. PCB라면 반도체와 결합해 다양한 전자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기판 아닌가. PCB에 어떤 도금 기술이 적용된 걸까.

 

도금 - 산업 전반을 받치는 인프라 기술

 

“이 사진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홍유식 MKS 아토텍 전자사업부 본부장은 기자에게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초록색과 노란색, 검은색 층이 마치 지층처럼 순서대로 쌓여있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PCB의 단면입니다.” 그제야 초록색 플라스틱 기판과 그 위에 연결된 검은색 반도체 칩, 이를 연결하는 노란색 구리 회로가 눈에 들어왔다. 스마트폰 내부에는 이런 기판이 10~12층씩 쌓여 있다.

 

대개 도금이라 불리는 금속 표면처리는 각종 소재에 금속을 얇게 입히는 기술을 뜻한다. 부식을 방지하고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용도로 외관에 널리 쓰이며, 현재는 전자 제품 내부의 부품에도 필수적으로 쓰인다. 전자 제품에 쓰이는 도금의 대표적인 예가 PCB의 구리 도금이다.

 

기판의 주재료는 절연체인 플라스틱이다. 그 위 전류가 흐르는 전선 부분에 도체인 구리를 도금한다. 구리는 전기가 통하는 성질인 전도성이 좋고 다루기 쉬워 전선 등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거의 모든 재료에 쓰인다. 기판 위 필요한 곳에만 구리 도금을 해서 부품들이 전기 신호를 주고 받게 만드는 것이다. 구멍을 뚫고 내부를 구리 도금하면 기판 위 아래에 있는 부품도 연결할 수 있다. 구리 도금을 포함해 몇 가지 도금 공정을 거친 후 PCB 위에 필요한 부품을 조립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컴퓨터 등의 전자 제품이 탄생한다. 홍 본부장이 “구리 도금은 전자 제품계의 인프라 스트럭쳐(기반 시설)”라고 표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때, PCB 제조의 첫 단계로써 필요한 부분에만 구리를 정확하게 도금하는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도금이 덜되면 전류가 제대로 흐르지 않고, 도금이 과하면 전류가 원하지 않는 부품으로 흘러 오류를 일으킨다. 요즘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PCB의 도금 정밀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홍 본부장은 “PCB에 들어가는 도금의 정밀도는 기본적으로 나노미터(nnm는 10억분의 1m) 단위”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PCB에 수 만개의 구멍(홀)이 뚫려 있고, 그 홀 내부에 오차 없이 정밀하게 구리를 도금해야 한다. 심지어 이런 PCB에서 발열이 발생해도, 폰을 떨어뜨리거나 던져도 도금이 벗겨지지 않고 유지돼야 한다. 그래야 스마트폰이 작동할 때 오류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리 - 부족한 전자를 공급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크고 작은 부품에 얇은 금속층을 빈틈없이 씌울 수 있는 것일까. 도금에서 주로 쓰는 방법은 전해질에 녹아있는 금속 이온을 고체 금속으로 석출하는 방법이다.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구리가 녹은 전해질 용액을 생각해보자. 금속은 대개 최외각 전자를 몇 개 잃은 양이온 상태로 용액에 녹아있다. 이 금속 양이온을 다시 금속으로 만들려면 양이온에게 부족한 전자를 줘야 한다. 부족한 전자를 어떻게 공급할까.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수용액에 양극과 음극을 담그고 전원을 연결해 전류를 흘리는 것이다. 전류는 전자의 흐름이므로, 음극에 모인 전자가 전해질 용액 내의 구리 양이온과 결합하면 음극 표면에 구리가 금속 상태로 석출된다. 이를 전기를 사용한다는 뜻에서 ‘전해 공정’이라 부른다. 앞서 MKS 아토텍 기술연구소 파일럿 도금 라인에서 본 전해질 용액을 이용한 도금 공정도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산화환원 반응을 이용해 전자를 줄 수 있는 화학물질을 넣어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무전해 공정’이라 부른다. 즉 도금의 핵심은 전자가 부족한 금속 양이온에 어떻게든 전자를 공급해 금속을 석출시키고, 이것을 원하는 소재의 표면에 얇게 도포하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도금 연구는 19세기 초반, 영국 화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유럽 화학계에서는 전기를 이용한 화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특히 수용액에 전기를 흘리면 물질이 만들어지거나 분해되는 ‘전기 분해’ 반응이 화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반응을 이용한 실험으로 많은 새 원소와 화합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패러데이는 전기 분해로 새 원소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기 분해의 원리를 탐구했다. 그 결과, 분해 과정에서 생성되거나 사라지는 물질의 양이 수용액에 흘려주는 전하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홍 본부장은 “패러데이가 발견한 법칙이야말로 도금 기술의 근본”이라 설명했다.

 

과정- 손톱보다 얇게 다섯 층의 금속을 쌓다

 

원리는 고등학교 과학 교과 수준으로 간단하게 여겨진다 해도, 이를 이용해 고품질의 도금을 구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김성일 MKS 아토텍 일반표면처리사업부 본부장은 자동차 전면에 쓰이는 그릴 부품 도금을 예로 들었다. “자동차 외관에는 크로뮴(크롬・Cr) 도금이 많이 쓰입니다. 금속 표면이 녹슬지 않게 해주고, 나아가 아름답게 꾸며주거든요.”

 

그렇다고 자동차 부품에 바로 크롬을 입히는 건 아니다. 본격적인 크롬 도금 작업 전에는 몇 가지 과정이 추가로 필요하다. 자동차 그릴은 대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플라스틱은 전도성이 없으므로, 플라스틱에 금속 원소가 달라붙게 하려면 먼저 플라스틱에 전도성을 부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플라스틱 표면을 거칠게 간 다음(에칭 공정) 여기에 촉매 작용을 하는 백금족 원소인 팔라듐(Pd)을 입힌다. 팔라듐 가루가 골고루 묻으면 그제야 도금 작업을 할 ‘준비’가 된 셈이다.

 

전해 도금으로는 우선 구리가 먼저 입혀진다. 구리는 연성과 전성이 좋아 플라스틱 표면에 평탄하게 도금된다. 구리 도금층이 가진 장력은 다른 금속과 플라스틱 사이를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구리가 없다면 도금층이 쉽게 벗겨지거나 떨어지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다음으로 구리 위에 니켈(Ni) 도금이 삼중으로 올라간다. 니켈의 역할은 부식을 막는 것이다. 니켈은 산화하면 내부의 산화를 막는 피막을 형성하는 내식성을 가진다. 그러나 니켈은 광택이나 내구성은 떨어진다. 니켈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지막에 더해주는 원소가 크롬이다. 크롬은 니켈보다 내구성이 높으며, 결정적으로 색과 광택이 좋아 표면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마치 샌드위치처럼 여러가지 금속을 겹겹이 쌓았지만, 도금 층의 전체 두께는 구리 25μm(μmμm는 100만분의 1m), 3중 니켈 15μm, 크롬 0.3μm. 총 40.3μm에 불과하다. 이 얇은 층 안에서 세 종류의 금속이 서로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한다. “아무리 소재가 발달해도 하나의 소재만으로는 원하는 기능을 온전히 구현하기 힘듭니다. 한 소재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강화해서 사용자가 원하는 물성으로 만드는 것이 표면처리의 목적이죠.”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도금 작업이 끝난 후 결과물이 제대로 나왔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MKS 아토텍은 공정과 결과분석을 위해 약품분석실과 재료과학분석실을 운영하고 있다. 약품 분석실에서는 약품 첨가제 농도, 금속 불순물 농도 등을 분석할 수 있다. 재료과학 분석실에서는 도금의 두께나 밀착력 등 물리적 특성을 분석하고 내식성, 신뢰성을 측정한다. 이런 기술 전문성을 토대로 고객에게 기술지원을 제공한다.

 

전자현미경을 구동하는 재료과학 실험실 이힘찬 수석은 기자에게 분석 중이던 PCB 기판의 전자현미경 사진을 보여줬다. 빛도 겨우 통과할 만한 크기의 미세한 홀이 테니스공도 지나갈 만한 크기로 확대돼 있었다. 이 수석이 설명했다.

 

“홀을 덮고 있는 작고 동그란 알갱이들이 보이시나요? 이것들이 구리 입자입니다. 제대로 도금이 됐다면 이 알갱이들이 구멍과 그 주변을 고르게 덮고 있죠.”

그가 불량 기판을 비추자, 구리 입자로 덮이지 않은 말끔한 플라스틱 표면이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이런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해 거치는 단계가 도금 전처리와 후처리 공정이다.

 

MKS 아토텍 -  전처리와 후처리로 완벽한 도금에 도전

 

실제 도금 공정은 훨씬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도금 공정 중에 여러 가지의 첨가제가 들어간다. 공정 중에 금속이 원하는 물체의 표면에 균일한 두께로 쌓이도록, 혹은 굴곡진 표면을 평탄하게 하도록 도금의 속도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다양한 첨가제가 사용된다.

 

도금 결과물은 전처리와 후처리 공정까지 거쳐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다가간다. “전처리는 표면을 깨끗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스킨을 바르기 전에 세수를 하죠. 스킨 바르는 것을 도금 공정에 비유한다면, 비누를 사용하는 세안 단계가 바로 전처리 공정입니다.” 서상희 MKS 아토텍 기술연구소장은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전처리는 도금 품질의 7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공정이다. 도금 공정을 시작하기 전 소재 표면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계면활성제로 씻어내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금이 끝난 다음에는 결과물을 안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후처리 과정을 밟는다.

 

MKS 아토텍에서는 더 완벽한 도금을 위해 전처리, 도금 공정, 후처리에 필요한 약품과 장비를 만들고 판매한다. 또한 약품이 적용된 결과물을 분석해 더 나은 공정을 만드는 연구도 이어가고 있다. 김 본부장은 “우리나라 유수의 자동차 대기업은 물론, 스마트폰을 만드는 다국적 기업까지 수많은 업체에서 아토텍의 제품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용자에게 최대한 편안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

 

미래 - 도금 공장에 부는 친환경 바람

 

“표면처리 기술은, 자동차 손잡이의 경우 내구성과 마모성, 광택은 물론 잡았을 때의 질감까지도 도금을 통해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설명했다. 그렇다면 표면처리 기술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까. MKS 아토텍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환경 친화적인 도금 기술”이라 답했다. “표면처리 과정 중 전처리부터 도금, 후처리까지 많은 약품을 사용합니다. 최근에는 환경과 건강에 유해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도금 공정을 개발하는 것이 이 분야의 주 연구 방향 중 하나죠.” 김 본부장은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크롬 도금에 사용되는 ‘6가 크롬(Cr VI)’이다. 크롬 원자는 자연 환경에서 전하량이 -4에서 +6 사이인 이온 및 금속 상태로 존재한다. 도금 과정에는 이중 6개의 최외각전자를 잃어 전하량이 +6인 6가 크롬이 쓰인다. 문제는 6가 크롬과 그 화합물이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Group 1)’이라는 점이다. 6가 크롬은 주로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들어가 폐암과 부비동암을 일으킨다.

 

크롬 도금이 사실상 산업의 거의 전 영역에서 활용되는 이상, 6가 크롬 도금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대안의 대표적인 예가 3가 크롬 도금 공정이다. 6가 크롬 대신 독성이 없는 3가 크롬을 이용해 도금을 진행하는 것이다.

 

6가 크롬은 에칭과 도금 공정에 쓰인다. MKS 아토텍은 에칭 공정의 경우, 6가 크롬 대체 물질과 새로운 공정을 포함하는기술로 유해성 문제를 해결했다. 도금 공정에서는 3가 크롬으로 6가 크롬의 물성과 색상 구현을 가능케하는 도금 공정을 개발했다.

 

PCB 기판 도금 기술에서도 친환경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PCB 기판 도금에 널리 쓰이는 환원제는 포름알데하이드다. 가장 강력하고 저렴한 환원제지만, 역시나 IARC의 1군 발암물질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MKS 아토텍은 2010년 포르말린을 쓰지 않는 도금 약품 연구를 시작해 2019년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현재 국내외 주요 전자기기 제조 기업에 공급 중이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는 세계 여러 국가와 기업에서 친환경 정책을 시행하기 때문이다. 홍 본부장은 “EU에서는 오래전부터 6가 크롬 사용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6가 크롬 도금 규제가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도금 약품은 물론 6가 크롬으로 도금된 수많은 공산품의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는 뜻이다.

 

이미 다국적 기업에서는 이런 규제를 인식하고 일찍이 ESG 경영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외 유명 빅테크 기업에서는 이미 친환경 도금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곳과 함께 일하는 제조기업이라면 친환경 도금 기술을 써야한다. 김 본부장은 “한국도 세계적 변화에 발맞춰야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유럽에 비해 한국의 화학약품 규제는 늦은 편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환경 친화적인 도금 기술이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게 될 거예요.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이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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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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