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최신 이슈] 70년간 독도경비대원 괴롭힌 흡혈곤충의 정체, 모기점등에모기

‘위이잉~’ 흡혈 곤충의 공격은 시간과 장소에 예외를 두지 않는다. 먼 동쪽 바다에 우뚝 서있는 섬, 독도에서 무려 70년 동안 경비대원들을 괴롭혀온 존재를 보면 말이다. 그동안 ‘깔따구’로 알려져 있던 이 흡혈 곤충이 실은 신종 독도점등에모기(Culicoides dokdoensis)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그 작고도 어려운 존재를 생태학적으로 파헤쳐봤다.

 

“물리면 가려우면서 동시에 굉장히 따가웠어요. 일반 모기는 물리고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졌는데, 그것(독도점등에모기) 에 물리면 1~2주 동안 계속 고통스러웠죠.”

 

2020년 1월부터 2021년 7월까지 독도에서 군 생활을 한 마지막 의경이자 독도경비대원이었던 이형석 씨는 10월 27 일 과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낯선 흡혈 곤충과의 짜릿한 만남을 이 같이 회상했다.

 

이 씨는 물리지 않기 위한 독도경비대원들만의 노하우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여름에는 수가 특히 많아서 잘 때 긴팔, 긴바지에 양말까지 챙겨 신고 잤어요. 두꺼운 등산 양말을 신 고 자는 사람도 있었고요.” 육지에서 독도로 들어갈 때 약을 챙기는 대원은 항상 모기약을 넉넉하게 챙겼다고도 전했다.

개와 고양이만큼 다른

독도점등에모기 vs. 일반 모기

 

독도점등에모기는 이런 방식으로 무려 70년 동안 독도를 지키 는 경비대원들을 괴롭혀 왔다. 1950년대 독도의용수비대로 활동했던 고(故) 김영복 선생은 생전 인터뷰에서 ‘독도에서 가 장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여름에 양말을 두세 켤 레 신어도 깔따구가 뚫어서 무는데, 한 번 물리면 오래간다”고 답했다.

 

최근 국립생물자원관과 고려대 공동 연구팀은 독도의 악명 높은 이 흡혈 곤충이 알려진 것처럼 깔따구가 아니라, 실은 점 등에 모기속에 속하는 신종임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이것을 독도점등에모기로 명명하고, 형태와 생태 정보를 담은 논문을 곤충학 국제학술지인 ‘엔토몰로지컬 리서치’에 11월 10일 발 표했다. doi.org/10.1111/1748-5967.12678

 

독도점등에모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집모기와 어떻게 다를까.지난 11월 5일 만난 논문의 제1저자 이원규 연구원은 “개와 고양이 정도로 둘은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설명했 다.

 

전 세계에 모기는 3500종, 우리나라에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모기는 56종에 달한다. 여기에 추가로 독도점등에 모기가 발견됐으니, 이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모기는 57종 으로 늘어난 것일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독도점등에모기는 ‘모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만 ‘모기’일 뿐, 흔히 보는 모기와는 전혀 다르다.

 

이해하기 쉽도록 한국에 널리 퍼진 빨간집모기와 비교해 보자.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은 보통 ‘계문강목과속종’ 체계에 따라 분류된다. 빨간집모기는 ‘모기과(科) 집모기속(屬)’ 곤충이다. 반면 독도점등에모기는 모기과가 아닌, ‘등에모기과 점등에모기속’으로 분류된다.

 

이 연구원은 “서로 다른 ‘과’는 완전히 별개의 분류군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등에모기과에 속하는 곤충은 전세계에 약 6000종이 있고, 그중 약 1300종이 점등에모기속으로 분류된다. 이런 점등에모기속 곤충들은 대부분 흡혈 특성을 가진다”고 덧붙였다.

방충망 통과하는 작은 몸,

짧은 주둥이로 흘러나오는 피 빨아

 

모기과와 등에모기과는 크기와 외형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등에모기과는 크기가 커봐야 1mm 수준으로 매우 작다. 이 연구원은 “지금까지 본 등에모기과곤충 중 가장 큰 것이 1.3mm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일반 모기의 크기는 보통 4~6mm 정도니, 등에모기과는 모기과의 약 3분의 1 크기인 셈이다. 방충망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작은 곤충을 눈으로 쫓긴 어렵다. 이 연구원은 “워낙 작으니 물리고 있어도 모른다” 며 “물린 후에 자연스럽게 옷깃에 쓸리다 보니 긁은 것처럼 염증이 생기고 더 부어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흡혈 방식도 다르다. 우리가 아는 일반 모기들은 주사기와 비슷한 원리로 피를 빨아먹는다. 톱날 같은 이빨이 달린 작은 턱으로 피부 조직을 썰고 큰 턱으로 벌려놓은 채, 빨대처럼 생긴 하인두를 몸속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며 혈관을 찾아 꼽은 뒤 흡혈한다. 반면 점등에모기속 흡혈 곤충들은 작은 크기만큼이나 주둥이도 짧다. 대신 톱날 같은 이빨이 작은 턱뿐만 아니라 큰 턱 등에도 존재한다. 그 이빨로 피부와 모세혈관을 썰어낸 뒤 흘러나온 피를 곧고 굵은 하인두로 빨아먹는다. 독도점등에모기가 진정 독도에만 서식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한국의 등에모기 도감에 따르면, 등에모기과는 바람 을 타고 수백km 거리도 이동할 수 있다. 실제로 지상에서부 터 170~200m 상공에서 등에모기가 채집된 기록이 있어, 장 거리를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이 연구원은 “발견지는 독도지만 울릉도에도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나의 샘플이 신종이 되기까지의 여정

 

이 연구원이 속한 고려대 생물다양성생태학연구실은 주로 신종 및 미기록종을 발굴해 오고 있다. 신종이란 과학사 차원에 서 완전히 처음 알려진 종을, 미기록종은 세계에 이미 존재함 이 알려져 있으나 국내에선 발견하지 못하다가 국내에 서식함을 밝혀낸 종을 의미한다. 이 연구원은 신종과 미기록종을 발굴하는 과정을 “인류 지식의 끝에서 지식을 한걸음 한걸음 확장해 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독도점등에모기가 신종임을 밝혀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작은 생물다양성생태학연구실의 지도교수인 배연재 교수의 ‘직감’이었다. 배 교수가 독도에서 채집해 온 점등에 모기 샘플이 있었는데, 독도가 워낙 고립돼 있으니 신종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이 연구원에게 해당 샘플연구를 추천한 것이다. 이후 이 연구원은 신종 및 미기록종을 발굴하는 단계 를 차근히 밟았다. 먼저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만드는 국가생 물종목록에서 곤충 카탈로그를 확인했다. 이곳에 해당 종이 없으면 신종이나 미기록종일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통해 점등에모기속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낸 뒤에는 전 세계에 있는 점등에모기속의 형태 정보를 수집했다. 이때 확인하는 것은 ‘검색표’다. 검색표란 두 개의 대응하는 형질을 차례대로 늘어놓은 문서다. 검색표를 통해 생물이 속한 분류군을 찾을 수 있다. 만약 검색표가 없다면 원기재문을 확인한다. 원기재문이란 ‘형태가 이러하고 생김새는 저러해 신종으로 판별한다’는 기재문의 원본을 뜻한다.

 

독도점등에모기가 신종임을 밝히는 과정에서 이 연구원이 확인한 기재문은 50여 개였다. 이 연구원은 “50개 정도면 운이 좋게 금방 판별된 것”이라며 “‘종’ 수가 많은 ‘속’에 해당하는 종들은 확인해야 하는 기재문수가 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웃어 보였다.

 

독도에서 채집한 점등에모기 샘플이 신종이라는 확신을 갖기까지는 관문이 하나 있었다. 샘플의 외형이 얼핏 봤을때 국내에 서식하는 둥근점등에모기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점등에 모기는 보통 날개 무늬로 종을 구분하는데, 독도에서 채집한 점등에모기 샘플과 둥근점등에모기의 날개 무늬가 흡사했다.

 

이 연구원은 샘플과 둥근점등에모기를 해부 현미경으로 비교했다. 그 결과 작은턱수염 세 번째 마디의 감각오목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점등에모기속의 감각오목 은 사람으로 따지면 ‘코’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감각오목으 로먹이를찾고냄새를맡는다.관찰결과,독도에서채집한점 등에모기 샘플은 둥근점등에모기에 비해 작은턱수염 세 번째 마디가 가늘었고, 감각오목도 훨씬 얕았다. 이 연구원은 또한, “결정적으로 곤충의 종 판별에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COI 유 전자 염기서열 분석 결과도 9% 차이를 보여 독도점등에모기 가 신종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종을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찾아낸 기분은 어떨까. 이 연구원은 “흡혈 분류군은 이미 많이 발굴돼 있는데, 그럼에 도 신종이 발견됐다는 게 신기했다”며 “이번 기회에 모기과와 는 전혀 다른 등에모기과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말 했다. 또한, “학명에 ‘독도’가 붙은 최초의 곤충이라는 점도 뜻 깊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분류학적으로 등에모기과 곤충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등에모기과 중 점등에모기속 곤충들은 흡혈을 하면서 축산질병을 옮기기 때문에 눈여겨볼 필요가 크다. 다행히 국내에선 아직까지 인수공통감염 사례가 없고, 한국의 겨울은 워낙 추워서 감염 사이클이 이어지기 전에 병원체를 가진 점등에모기가 모두 죽는다. 이 연구원은 “(하지만) 한국도 아열대화 되면 점등에모기가 축산질병들을 옮기고, 새로운 질병을 매개할 수 있다”며 “점등에모기는 지속적인 모니터링 과 경계가 필요한 분류군”이라고 강조했다. 

202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수린 기자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