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리는 게 무서울까, 백신 주사가 무서울까. 누군가에겐 어려운 질문일 수 있다.
코로나19가 일상 유행병으로 자리 잡으면서 코로나19 백신도 독감 백신처럼 매년 맞아야 한다는 권고가 나온다. 하지만 ‘바늘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에겐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들을 도울 방법은 없을까. 자연모사공학자들은 자연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마이크로 주사기 독사 어금니에서 영감을 얻다
약물을 인체에 주입하는 주사기의 역사는 약 1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세기경 중동 사람들은 속이 빈 새의 뼈, 상아, 은으로 주사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로부터 약 1000년 뒤인 1844년, 아일랜드의 의사 프란시스 린드는 속이 빈 금속 바늘을 발명했다. 이전에는 약물을 넣으려면 피부를 절개해야 했기 때문에 린드의 발명으로 환자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었다. 이후 10여 년이 지난 1853년, 오늘날의 피하 주사기가 탄생한다. 프랑스 외과의사 샤를 가브리엘과 스코틀랜드 의사 알렉산더 우드가 만든 이 피하 주사기는 오늘날처럼 압력을 줘서 약물을 밀어 넣는 피스톤과 원통형의 몸체를 결합한 형태였다.
이렇게 발명된 주사기는 현재 근육주사, 피하주사, 정맥주사, 피내주사 등 크게 4가지 주사 방식에 쓰인다. 이중 피내주사는 피부 표피층과 진피층 부분에 아주 소량의 약물을 주입하는 주사 방식이다. 이 피부층의 두께는 1~2mm 수준으로 아주 얇다. 이렇게 얕은 깊이에 우리 눈에 보일 정도로 큰 금속 주삿바늘을 정확히 꽂아 넣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백신의 경우, 각종 면역세포가 표피와 진피층에 주로 존재해서 피내주사 방식이 더욱 중요하다. 백신을 일반 주사기로 투여하려면 장인 수준의 손기술이 필요한 셈이다. 일반 주사기는 바늘이 길어서 혈관을 찌를 위험성도 크다.
이런 이유로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피내주사를 위한 새로운 주사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주사기의 형태는 180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두께가 1~2mm밖에 안 되는 얇은 피부층에 약물을 넣는 것은 공학적으로 어려운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바늘 내부 관의 직경이 작아질수록 파스칼의 원리에 의해 약물을 밀어주는 압력은 높아져야 한다.
자연모사공학자들은 이 오래된 문제의 해결책을 자연의 생명체에서 찾았다. 뒷어금니독사(유혈목이)가 그 주인공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독사는 오늘날의 피하 주사기에 영감을 준 앞어금니독사다. 앞어금니독사는 수 센티미터의 크고 속이 빈 이빨과 독이 든 침샘을 가지고 있다. 침샘은 근육으로 감싸져 있어 앞어금니독사는 근육의 힘으로 독을 이빨 구멍 속에 밀어 넣는다. 그다음 이 독을 먹이의 피부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이와 달리 뒷어금니독사의 이빨은 수 밀리미터 크기로 아주 작고 속이 비어 있지 않다. 침샘 주변에 침샘을 짜주는 근육도 없다. 대신, 이빨 바깥에 길쭉한 홈이 파여 있다. 자연모사공학자들은 뒷어금니독사가 모세관 현상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어금니 바깥쪽 홈이 먹이의 피부 틈을 벌리고, 이때 침샘에 들어있던 독이 어금니를 타고 흘러 먹이의 젖은 피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원리다. 이는 단순한 구조만으로 유체를 이동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다.
필자가 속한 국내 연구팀은 뒷어금니독사의 어금니 모양을 본뜬 구조물을 제작했다. 이를 이용해 백신과 같은 약물을 동물의 피부 안쪽, 구체적으로는 표피와 진피층에 정확히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translmed.aaw3329
우리 연구팀은 올해 4월, 뒷어금니독사의 어금니 구조물을 본뜬 새로운 주사기를 대량생산하는 데도 성공했다. 새로운 주사기와 기존 주사기의 가장 큰 차이는 약물을 넣어주는 구조물의 형태와 두께, 그리고 개수다. 기존 주사기에는 속이 비어 있는 20~50μl(마이크로리터μl는 100만 분의 1L) 용량의 큰 바늘 한 개가 있다. 반면 우리가 만든 주사기에는 용량이 0.2μl인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세 바늘 20개가 있다.
각각의 바늘은 뒷어금니독사의 이빨과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속이 막혔고, 바깥쪽에 홈이 있다. 원통형의 몸체에는 약물이 담겼고, 약물이 나올 수 있는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구멍이 있다. 기존 주사기와 달리 피스톤은 없다. 그래서 도장을 찍듯 20개의 바늘을 피부에 닿게 하면 바늘이 피부 틈을 미세하게 벌리고, 몸체에서 약물이 나와 바늘 겉을 타고 흐르며 피내에 약물을 넣어준다.
피부용 접착제 바다 홍합에서 영감을 얻다
우리의 몸은 진화에 진화를 거친 자연의 산물이다. 특히 피부는 가장 넓은 면적의 장기면서도 독특하고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 병균 등으로부터 우리 몸을 물리적화학적으로 보호해줄 뿐 아니라 뛰어난 촉각 센서로서 역할하기도 한다. 피부라는 신비로운 키워드를 중심으로 자연모사공학의 예를 몇 가지 더 알아보자.
이번엔 바다에 사는 홍합의 ‘족사’에서 영감을 얻어 피부용 접착제를 개발한 사례다. 족사는 홍합이 바위 표면에 붙어있을 수 있도록 해주는 실 모양 구조물이다. 피부에 큰 상처가 나면, 주로 바늘과 실을 이용해 상처를 꿰맨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흉터가 생기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아 오랫동안 피부용 접착제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피부는 그 특성이 매우 복합적이다. 각질층은 건조하고, 모공에선 지질 성분이 흘러나오고, 피부 안쪽은 혈액 등으로 젖어 있다. 그래서 물건을 붙이는 단순한 접착제로는 접착력이 떨어진다. 또한, 기존 접착제는 대부분 주성분이 에폭시 수지이기 때문에 면역반응을 일으킨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이해신 KAIST 화학과 교수 등 자연모사공학자들은 접착력이 강하면서도 생체친화적인 접착제를 고민하던 중, 홍합에서 힌트를 찾았다. 홍합은 바닷가의 험한 파도에도 바위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바닷물로 인해 주변의 수소이온농도(pH)가 높아지면 접착력이 더 강해지기도 한다.
비결은 족사다. 끈끈한 하얀색 실 모양 접착제를 만들어 바위에 붙어있는 것이다. 공학자들은 족사의 성분이 ‘도파(DOPA墂ihydroxyphenylalanine)’라는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단백질이란 사실을 알아내고, 도파 단백질을 따로 분리해 생체친화적인 수술용 접착제를 개발했다. doi: 10.1038/nature05968 이렇게 개발된 접착제는 피부 바깥쪽뿐만 아니라 젖은 안쪽, 심지어 장기 표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이보그 인공피부 피부 세포에서 영감을 얻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로봇도 인간과 유사한 피부를 가지게 될 것이다. 로봇과 인간이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로봇의 자극 감지 기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생산 공장에서 사람과 로봇이 나란히 서서 부품을 조립하다가, 한순간 사람과 로봇팔이 부딪치거나 뒤엉킬 수 있다. 이때 로봇이 빠르게 감지하고 멈춰야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로봇의 피부는 얇은 필름 형태로 제작됐다. 필름에 감각 센서를 부착해 세게 누르면 강한 전류가, 살짝 누르면 약한 전류가 흐르게 하는 식으로 로봇이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 피부만큼 정밀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자연모사공학자들은 인간의 피부를 관찰하며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피부 속 신경세포가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 몸의 모든 신경세포는 전기신호의 강약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신호의 발생 빈도(주파수)를 통해서 감각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경세포는 아날로그 신호 체계가 아니라 디지털 신호 체계인 전기 신호로 통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원리를 활용해 필자가 연구원으로 참여한 미국 스탠퍼드대 공동연구팀은 압력에 따라 전기신호를 만들고, 이런 신호의 발생 빈도에 따라 주파수를 발생시키는 필름 형태의 센서를 만들었다. 또한 센서의 신호를 실제 신경세포에 연결해 신경세포와 센서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doi: 10.1126/science.aaa9306 이를 발전시키면 앞으로는 실제 피부와 동일한 원리로 촉감 신호를 느낄 수 있는 사이보그 인공피부를 만들 수 있다. 인공피부를 의수에 적용한다면 실제 사람 팔을 모사한 로봇팔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모사공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거나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적용되는 건 아니다. 대신, 공학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돌파구와 해결책을 수없이 제시해 왔다. 자연모사공학은 인류가 개발한 공학이 한계를 보일 때 시선을 자연으로 돌려 해결책을 찾아 주는 효과적인 방법론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늘 열린 시선으로 호기심 있게 자연을 관찰하길 바란다. 어느 순간, 자연이 여러분에게 공학적 영감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배원규. 서울대 의공학과에서 자연의 미세한 구조물들을 모방하고 이를 반도체 공정을 활용해 의료 기술에 적용하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의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고, 2016년부터 숭실대 전기공학부에서 자연모사구조공학 연구실을 운영하며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wgbae@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