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카페. 일반인들에겐 조금 생소하고 의아한 행사. 누군가 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크고 작은 카페와 연계한 이 행사는 K-pop과 함께 널리 퍼진 K-생일 축하 문화다.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는 보통 덕질의 대상이다. 대부분 아이돌 가수, 종종 트로트 가수, 국내외 배우,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이 그 주인공 이 된다. 생일뿐만 아니라 이들의 컴백이나 데뷔를 축하하기 위해서도 행사 카페가 개최되기도 한다. 카페 내부는 사진과 소품으로 꾸며진다. 음료나 쿠키를 구매하면 굿즈를 받을 수 있다. 자체 제작한 포토카드나, 키링, 손거울, 스티커 등이다. 생일 카페는 팬들이 모여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면서, 좋아하는 마음과 축하하는 마음을 발산하는 공간인 것이다.
2023년 12월, 이전까지 본 적 없던 생일 카페를 개최하려는 이가 있다. 생일 카페의 주인공은 아이작 뉴턴이다. 소셜 미디어 X(구 트위터)에서 ‘2023 아이작 뉴턴 생일 카페’가 열린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동명의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아이작 뉴턴이라니 뭐하는 친구 지?’란 궁금증을 갖고 축하 계정을 클릭했을 때 당황스러웠다. 거기에 있는 이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로 ‘그’ 아이작 뉴턴 이었다. 1642년에 태어나 1727년 사망한 그 뉴턴. 생일 카페에서 꼭 살아있는 이를 축하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서도 궁금했다. 도대체 누가 뉴턴 생일을 K-방식으로 축하하려 한단 말인가. 9월 23일, 줌(Zoom)으로 아이작 뉴턴 생일 카페 주최자 ‘헤오바(닉네임)’를 만났다.
경험이 없어도 덕후는 참지 않아!
“헤오바님은 뭐 하는 분이신가요?” 조심스러운, 그러나 포장하지 않은 질문에 헤오바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는 독일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에요. 제게 물리학이란 학문을 알려준 ‘아이작 뉴턴’의 덕후고요.” 그의 소개에는 별로 놀랄 것이 없었다. 물리학과 뉴턴을 좋아하는 이가 아니고서야 누가 아이작 뉴턴 생일 카페란 걸 기획하겠는가! 헤오바란 닉네임도 뉴턴이 17세기, 연금술 연구를 위해 썼던 가명에서 따왔다. 아이작 뉴턴의 이름을 라틴어로 표기한 뒤, 애너그램으로 재배열하면 ‘헤오바 상투스 우누스(Jeova sanctus unus)’가 된다. “13살로 기억해요.” 여러 물리학자 중에서도 그가 특별히 뉴턴을 덕질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 봤던 프린키피아 만화책 때문이다. 뉴턴은 프린키피아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물체는 물론 행성의 움직임까지 모든 것의 운동을 설명했다. 그는 “복잡한 것을 명료하게 정리해 낸 뉴턴을 보며 인간지성에 대한 경외감도 느꼈다”고 말했다.
헤오바는 “뉴턴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그동안은 혼자서 기념하고 있었다 고 덧붙였다. 뉴턴의 생일은 율리우스력으로는 1642년 12월 25일, 그레고리력으로는 1643년 1월 4일이다. 율리우스력은 기원전 46년 고대 로마에서 제정한 양력 역법체계고, 그레고리력은 1582년 당시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시행한 개정 역법 체계다. 뉴턴이 태어났던 날은 각각의 역법에 따라 연도와 날짜가 바뀐다. 영국은 그레고리력이 반포된 이후에도 한동안 율리우스력을 쓰다가 1752년에야 이를 받아들였다. 뉴턴이 알고 있던 본인의 생일은 12월 25일이었기에 헤오바는 “율리우스력에 따라 12월 25일은 좀 더 크게 기념했고, 그레고리력엔 소소하게 챙겼다”며 덕후의 면모를 뽐냈다. 그는 그동안 맞춤 케이크를 제작해 초를 불기도 했고, 뉴턴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도 했다. 또 영국에 가서 그가 학위를 따고 교수로 재직했던 케임브리지대와 뉴턴의 무덤을 둘러보기도 했다. 뉴턴의 무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왕실 대관식이 열리는 장소이며 왕족을 비롯해 영국을 빛낸 위인들이 안치돼 있다. 케임브리지대는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할 당시 석사 과정생으로 재학했다. 그는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해 케임브리지대에 휴교령이 내려져 고향에 내려가 있었을 때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끼리 서로 끌어 당긴다는 걸 알아냈다.
덕후 한 명의 소소하고도 개인적인 기념행사가 갑자기 모 두의 관심을 받는 생일 카페로 바뀐 것은 갑작스레 예정된 한국행 때문이다. “원래는 올해도 뉴턴의 발자취를 좇아 영국에 가려고 했는데 사정상 한국에 들어와야 한단 걸 알게 됐어요.” 그는 “기왕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면, 올해는 어떤 방식으로 뉴턴의 생일을 축하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머리에 스쳤던 것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몇 번 본 적 있던 생일 카페였다.
어떻게 생일 카페를 기획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럼, 이전에는 다른 이의 생일 카페를 가 본 적도 없고, 주최해 본 적도 없으셨던 건가요?” 기자의 질문 에 헤오바는 “맞다”며 웃었다. 무경험이 실행력 좋은 덕후를 막을 순 없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생일 카페 계 정을 살펴보며, 생일 카페가 어떤 식으로 열리는지 또 생일 카페를 주최하기 위해 주최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공부했다. 본인이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2023 아이작 뉴턴 생일 카페’는 그렇게 시작을 알렸다.
뉴턴을 사랑하는 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생일 카페 준비에 문제가 없냐는 질문에 헤오바는 “예상치 못한 대중들의 호응에 놀랐다”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하루 정도 카페를 운영할 계획이었어요. 뉴턴이 아이돌 가수만큼 인기가 있진 않으니 20~30명 정도가 올 거라고 예상했고요.” 현재 ‘2023 아이작 뉴턴 생일 카페’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은 3113명(기사 작성일 10월 16일 기준). 9월 초, 카페 방문 의사가 있는 이들의 대략적인 숫자를 가늠하기 위해 실시한 1차 수요조사에 응답한 이는 400여 명이었다. 헤오바는 행사 규모를 키웠다. 서울 종로구 소재의 과학책방 ‘갈다’에서 12월 21일부터 23일까지 총 3일간 생일 카페를 진행하기로 했다. “갈다는 생일 카페를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행사 장소였어요.”
2018년 5월에 문을 연 과 학책방 갈다는 한국천문연구원과 연세대에서 전파천문학을 연구하던 이명현 대표가 어릴 적 살던 집을 개조해 만든 곳이 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 총 3층 건물은 강연 공간과 책방, 카 페,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헤오바는 “일반 카페가 아닌 책방 에서 행사가 개최되는 만큼 갈다의 정체성을 살린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문자들이 커피를 구매해 굿즈를 받 고, 잠깐만 머물렀다 가는 기존 생일 카페에서 한 발짝 더 나 아갔다. 갈다와 함께 뉴턴에 관한 책을 큐레이팅해 추천하기 도 하고, 강연자를 초청해 짧은 강연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 이다. “이번 행사를 위해 총 13명이 뉴턴 관련 ‘협력 글’을 써 주고 계신데요, 이 분들 글을 브로셔로 나눠주는 것뿐만 아 니라 액자로 만들어 갈다 내에 걸어 둘 예정이에요.” 카페 방 문객들이 긴 호흡으로 머물렀다 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행사 준비 과정과 계획을 얘기하는 헤오바의 목소리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앞서 말한 협력 글에는 뉴턴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 그동안 숨어있던(?) 뉴턴 덕후들이 ‘영화로 보는 근현대 물리학과 뉴턴 역학’ ‘위조 조폐를 잡아내는 방법에 대한 과학적 고찰’ ‘뉴턴주의가 당대 여성 및 여성 학자 들에게 미쳤던 영향’ ‘유럽 흑사병 팬데믹이 뉴턴에게 미친 영향과 현대 의학적 해석’ 등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모든 글은 다가오는 12월 아이작 뉴턴 생일 카페에서 만날 수 있다.
갑작스레 소환된 아이작 뉴턴은 얼떨떨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와 그의 과학을 사랑하는 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만큼 기다리고 있는, 뉴턴 없는 뉴턴 생일 파티가 곧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