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기사를 만들지만, 메이커라고 불리진 않는다. 소설가 역시 이야기를 만들지만, 메이커라고 칭하지 않는다. 최근 핫한 TV 프로그램인 스트릿우먼파이터2의 댄서들도 마찬가지다. 춤을 창작하는 이들을 안무가라 부르지 메이커라 부르진 않는다. 그렇다면 만드는 사람이란 뜻의 ‘메이커’는 어떤 사람에게 붙이는 호칭일까. 김용승, 배상욱 메이커에게서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메이커,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
“메이커는 뭘 하는 사람인가요?” 9월 7일 만난 김용승 메이커는 기자의 질문에 “무언가를 만든다는 점은 수많은 창작자, 예술가와 동일하다”면서 “‘무엇’이 아닌 ‘만든다’에 초점이 맞춰진 이들을 메이커라 부르는 것 같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기사, 소설, 안무 등 생산품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행위가 그 사람을 대변할 때 메이커라 부른다는 것이다.
김 메이커는 한국 메이커계의 간판스타로 통한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2년 그는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를 실제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리그오브레전드란 게임의 코그모였다. 게임을 잘 모르는 기자가 “코그모는 어떤 캐릭터냐”고 묻자, 김 메이커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그려진 이거예요.” 화면 속 게임 캐릭터를 만질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로봇으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좋아하니까.” 그리고 운 좋게, 코그모 로봇을 만들던 중 제1회 메이커 페어 서울(Maker Faire Seoul)이 개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메이커 페어는 메이커들의 축제다.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개최된 이후 독일, 일본, 중국 등 40개국 이상, 200개 이상의 도시에서 개최돼 왔다. 한국에서도 2012년 처음 열린 이후 매년 성황리에 행사가 진행됐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해 2019년을 마지막으로 3년간 중단됐다.
김 메이커는 “제1회 메이커 페어 서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스스로를 메이커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처음 만들어 본 창작 로봇이라 로봇의 상태가 훌륭한 편은 아니었는데, 신기하게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11년 전의 행사장에서 얻은 반응은 김 메이커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창작 로봇을 좀 더 멋있고 훌륭한 로봇으로 보완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메이커,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사람
“일단 저는 직업이 여러 개가 있는데요, 가장 주된 직업은 마술사입니다.” 배상욱 메이커의 자기소개에 기자의 입이 놀라 벌어졌다. Wookie(우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 메이커는 2023년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에서 우승을 차지한 현역 마술사다.
마술사가 메이커가 된 이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없었어요.” 배 메이커는 웃으면서 약 15년 전, 어린 마술사의 호주머니를 열어 보였다. “카드 파운팅이라는 마술 도구가 있어요. 카드를 내뿜는 장치인데, 이게 그때 돈으로 무려 50만 원이나 했어요.” 당시 갓 스무 살이었던 배 메이커는 마술용품 판매점에서 카드 파운팅을 만져보다가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배 메이커는 카드 파운팅 제품을 보며 미니카를 떠올렸다. 카드 파운팅은 모터와 배터리 그리고 바퀴로 구성돼 있었는데, 이 세 가지 요소가 훨씬 저렴한 미니카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50만 원이란 거금을 아끼려고, 200만 원이란 제작비를 쓰게 된 사건의 시작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예술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던 배 메이커에게 전기전자 공학적 지식이 있을 리 없었다. 미니카를 개조한 카드 파운팅을 만드는 데까지 무려 2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그사이 배 메이커는 무언갈 만드는 것이 재밌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됐다. 더 많은 마술 도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마술계에서는 배 메이커를 ‘빌더’라고 불렀다. 마술에 필요한 도구와 용품을 만드는 사람이란 뜻의 마술계 용어였다.
빌더를 메이커로 바꾼 것은 코로나19였다. 마술 도구에 국한됐던 배 메이커의 제작 활동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마술이란 장르에서 한 단계 더 뻗어나갔다. 배 메이커는 2015년경부터 3차원(3D) 프린터를 활용해 마술 도구를 제작해 왔는데, 코로나19로 마술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자 제작과정을 편집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무언가를 만드는 영상이 반응을 얻으며 메이커란 정체성도 갖게됐다. ‘앞으로는 메이커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메이커, 새로운 길을 만드는 사람
배 메이커는 지난 6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마술쇼에서 연락을 받았다. 마술 공연에서 개선하고 싶은 액트가 있으니 와서 조언을 해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마술이 비현실을 현실로 끌어오는 과정에서는 여러 장치 및 도구가 필요하다. 이때 마술사와 엔지니어의 협업이 필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영역의 두 전문가가 소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마술사이자 메이커가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배 메이커가 ‘컨설턴트’ ‘연출가’라는 이름으로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간 이유다.
배 메이커는 이렇게 두 개의 정체성이 만나 열게 된 새로운 길을 메이커 페어 서울 2023에서도 그대로 보여줄 계획이다. “제가 주로 창작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3D 프린터와 함께, 직접 만든 도구로 마술을 보여주는 부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김 메이커도 특별한 부스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코그모 로봇을 시작으로, 자벌레 로봇, 좀비 로봇, 로봇 자판기 등 다양한 창작 로봇을 선보였던 지라 창작 로봇 메이커로 널리 알려진 그였다. 그런데 올해 선보일 창작품은 한국 특허 출원까지 성공한 발명품이다.
오랫동안 재직했던 선박회사에서 퇴사한 김 메이커는 올해 초 폐전기자동차의 부품을 활용해 전기선박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주요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시 회사에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폐전기차의 배터리와 모터, 드라이버를 재활용해 전기선박을 만들 때, 선박 전기 선외기에 연결된 모터냉각용 임펠러 날개를 한쪽으로만 회전케 하는 기술이다.
김 메이커는 현재 연구소를 설립해 해당 기술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직장 혹은 본래의 직업은 따로 있고 메이커는 취미 또는 제2, 제3의 직업이라 생각했던 기자의 선입견이 무너졌다. 김 메이커는 “어린 친구들에게 재밌는 부스는 아니겠지만, 취미가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뿌듯해 했다. 김 메이커는 메이커에게 그어진 영역이나 한계가 없단 걸 증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두 명의 메이커에게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싶은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선배 메이커로서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메이커는 “만들어 보라”고 말했다. 기존에 있던 것을 단순히 재현하는 활동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결과물을 내놓아 보라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메이커들이 각자의 창작 활동을 하지만 이들에게 단 하나의 공통점을 뽑자면 바로 실천력이다”라고 덧붙였다.
배 메이커는 “무엇을 만들든 그 기능과 구현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보건대 마술학과 교수로 강의를 했을 때 학생들과 ‘다이소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적이 있었다. 값비싼 마술 도구의 기능을 저렴하게 구매한 재료로 직접 구현해 보는 프로젝트였다. 그는 “프로젝트로 학생들이 마술과 마술 도구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올해 다시 돌아온 메이커 페어 서울 2023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사람들의 축제가 곧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