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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가 좌우하는 노년의 운명

치매 일으키는 주범은 단백질

우리나라는 국제연합(UN)이 정의하는 고령화 사회로 2001년에 이미 진입했다. 현재 40대 중반인 사람이 65세 이상의 노인으로 분류되는 약 20년 후인 2020년경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5%가 노인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주변에 치매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꺼려했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게 되면서 치매에 걸린 환자의 수가 심각할 정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50가구당 1가구 꼴로 치매 환자가 있지만, 2020년에는 15가구당 1가구 꼴로 치매 환자가 생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미리 치매의 정체를 파악해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갖기보다는 적극적인 진단과 예방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적으면 은인, 많으면 천적

치매는 크게 가역성 치매와 비가역성 치매로 나눌 수 있다. 가역성 치매는 알코올 중독, 비타민 부족, 영양결핍, 탈수현상, 간 질환, 폐렴과 같은 감염 등의 원인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지만 그 원인이 없어지면 정상적인 뇌 기능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반면 비가역성 치매란 한번 증상이 나타나면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으며 뇌의 기능이 계속 저하되는 것을 말한다. 비가역성 치매의 대표적인 것이 알츠하이머병이다. 동양에서는 뇌 속의 혈관이 손상돼 나타나는 뇌혈관성 치매도 비가역성 치매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발병 원인에 따라 유전성과 산발성으로 나눌 수 있다. 아밀로이드전구단백질이나 프리시닐린과 같은 특정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1백% 알츠하이머병으로 발전한다. 이 경우가 전체 알츠하이머병의 5% 내외를 차지하고 있는 유전성 알츠하이머병으로, 20대에 발병하기도 한다. 유전자 검사로 유전성 알츠하이머병의 유무를 식별할 수 있다.

전체 알츠하이머병의 90% 이상은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주로 나타나는 산발성이다. 이는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이 알려지지 않아 예방과 치료가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산발성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인자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아포지단백질 E와 알파 2 마크로글로불린이 그 예다. 이들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나이가 들었을 때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증가한다. 그러나 아직 위험인자의 유전자 검사만으로 산발성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유전성과 산발성 알츠하이머병의 공통 원인으로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물질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베타아밀로이드는 정상인의 경우에도 인체 곳곳에서 소량 만들어진다. 베타아밀로이드가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보고가 있긴 하지만 아직 정확한 기능은 밝혀지지 않았다. 정상인의 경우 베타아밀로이드는 만들어진 후 빠르게 분해돼 인체 내에 쌓이지 않는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조직을 살펴보면 베타아밀로이드가 쌓여 뭉쳐 있는 형태가 보인다. 이를 ‘노인반’이라고 한다. 베타아밀로이드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생성돼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나 대뇌피질 같은 곳에 과다하게 쌓인 것이다. 축적된 베타아밀로이드는 주변의 세포들에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신경세포가 손상되고 점점 뇌의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신경회로망마저 훼손되기에 이른다. 게다가 축적된 베타아밀로이드는 신경세포를 죽이는 신호 체계를 가동시키는 활성산소를 많이 만들어낸다.

이런 현상들 때문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 기억과 학습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베타아밀로이드가 소량 존재할 때는 인체에 해롭지 않지만 과하면 해가 되는 셈이다.

정상 효소 방해하는 훼방꾼
 

베타아밀로이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정상인의 경우 알파시크리타제가 아밀로이드전구단백질의 중간을, 감마시크리타제가 오른쪽을 잘라 P3라는 단백질 조각이 만들어진다. 알파시크리타제 대신 베타시크리타제가 아밀로이드전구단백질의 왼쪽을 자르면 치매를 일으키는 주범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생긴다.


그렇다면 베타아밀로이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베타아밀로이드는 아밀로이드전구단백질의 일부분이다. 정상인의 경우 아밀로이드전구단백질의 중간 부분을 알파시크리타제라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오른쪽 부분을 감마시크리타제가 각각 자른다. 그러면 P3라는 작은 단백질 조각이 만들어진다. P3는 현재까지 정확한 기능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독성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알파시크리타제 대신 베타시크리타제가 먼저 작용해 아밀로이드전구단백질의 중간이 아닌 왼쪽 부분을 잘라내면 베타아밀로이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베타시크리타제가 베타아밀로이드 생성의 주범인 셈이다.

과학자들은 이 효소를 분리해내려고 시도했다. 대부분의 단백질 분해효소가 세포 안쪽의 세포질에 둥둥 떠다닌다는 점에 착안해 과학자들은 세포질에 있는 단백질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번번이 베타시크리타제를 찾는데 실패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여긴 몇몇 과학자들은 세포질에 떠있지 않고 세포막을 관통하고 있는 단백질들에 주목했다. 그 결과 드디어 베타시크리타제를 찾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세계적인 제약회사들이 나서서 베타시크리타제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해 베타아밀로이드가 생성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감마시크리타제는 아직까지 정확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서로 다른 4개의 분자가 합쳐져야만 아밀로이드전구단백질의 오른쪽 부분을 자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마시크리타제는 아밀로이드전구단백질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단백질을 잘라 인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감마시크리타제가 베타아밀로이드를 만드는 기능을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할 때는 다른 단백질에 작용하는 기능까지 막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베타아밀로이드는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의 수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 실제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경우 40개 또는 42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베타아밀로이드의 비율이 급격히 많아진다. 따라서 알츠하이머병을 생화학적 방법으로 검사할 때는 환자의 뇌척수 액에서 이런 형태의 베타아밀로이드 농도를 측정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반드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실타래가 엉켜 있는 것 같은 모양의 신경섬유 덩어리다. 이는 신경전달물질의 세포 간 이동통로인 신경세포 돌기를 구성하고 있는 미소섬유관이 엉켜 생긴 것이다. 신경세포 안에 있는 타우라는 단백질은 미소섬유관이 엉키지 않게 배열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경우에는 타우에 비정상적으로 인산이 많이 결합해 타우가 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미소섬유관이 제멋대로 엉켜 신경세포 돌기가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해 신경전달물질이 원활히 이동하지 못한다. 급기야는 세포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베타아밀로이드가 타우에 인산이 빨리 결합하도록 돕는다는 보고도 나온 바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가장 정확히 진단하는 방법으로는 직접 환자의 뇌 조직에 노인반이나 신경섬유 덩어리가 얼마나 있는지, 신경세포가 얼마나 손상됐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의 뇌 조직을 얻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좀더 간단한 방법으로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는 획기적 방법이 시급히 개발돼야 하는 실정이다.

대인관계와 호기심이 치매 예방

아직 치매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다. 지금까지의 임상실험 결과에 따르면 비타민 C와 E가 예방 또는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기능이 있어 치매뿐만 아니라 노화를 방지하는데도 상당한 효과를 보인다고 보고됐기 때문이다. 또한 이부프로펜이나 아스피린 같은 항염증제가 치매의 예방이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증거들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치매 발병의 위험인자들을 억제하는 생활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치매 예방의 길이다. 예를 들면 뇌혈관성 치매의 위험인자인 고혈압, 동맥경화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염분이나 동물성 지방 섭취를 줄이는 것도 효과적인 예방법이 될 수 있다. 혈관 수축을 유도하는 니코틴을 다량 흡입하는 흡연은 뇌혈관성 치매의 가장 치명적인 습관이다.

소극적인 생활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떨어뜨리고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데, 이런 것도 치매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적당한 운동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치매 예방을 위해 중요하다. 머리 손상이 치매의 발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따라서 머리를 다쳤을 경우 방치하지 말고 바로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

치매의 근본적인 원인은 뇌의 신경세포가 사멸돼 뇌 신경세포간의 네트워크가 손상되는 것이다. 신경세포 네트워크는 뇌를 많이 사용할수록 잘 형성되고 유지된다. 따라서 책을 많이 읽거나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고안해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뇌과학이 의학에 적용되면 우리 세대는 물론이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피폐한 노년 대신 활기차고 밝은 노년을 선물할 것으로 기대한다.

2004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묵인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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