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면 전 세계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한다.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산림과학자들은 산불 발생 가능성이 큰 지역을 선별해 숲을 미리 정비한다. 해충이 발생해 고사목이 늘어난 숲은 늘 정비대상 상위다. 그런데 최근, 해충이 발생한 숲이 오히려 산불이 덜 발생하고 피해도 적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어떻게 된 걸까.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됐다.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칠레에서 산불이 발생해 서울 면적의 두 배가 사라졌다.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역사상 최악의 산불을 겪고 있다”며 피해 지역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3월에는 미국 중서부를 비롯한 5개 주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서울 면적의 7배가 탔고, 최소 7명이 숨졌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 산불의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예컨대 산림이 불에 타면서 나오는 유독물질과 미세먼지로 전 세계에서 매년 33만9000명이 조기 사망한다. 전 세계 산림과학자들은 “예방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산불을 예방하고 조기에 탐지하며 더 빨리 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왔다.
해충 돌면 고사목 늘어 산불 위험 증가?
산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 임업연구관은 “강수량이나 온·습도, 풍속 같은 기후 요인뿐만 아니라, 산의 경사도, 산에 서식하는 식물의 종류, 마른 낙엽의 양, 나무들의 가지가 뻗은 높이, 나무 사이의 거리 등에 따라 산불의 양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산불이 발생할 위험이 큰 지역을 선별한다. 산림관리자들은 그 지역의 나뭇가지를 미리 치거나 땅 위의 마른 낙엽을 긁어낸다. 불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저지선(오른쪽 사진, 초목 제거)을 만들기도 한다. 장기적으로는 불에 덜 타거나, 타더라도 유독한 물질을 덜 뿜어내는 나무 종을 선별해 심는 ‘숲 가꾸기’를 한다.
과학자들이 산불 위험도를 예측할 때 고려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나무를 파괴하는 해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나무 재선충을 매개하는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가 대표적이다. 해충이 돌면 나무들이 말라 죽는데, 불에 잘 타는 ‘연료’가 숲에 풍부해지는 셈이다. 실제로 2014년 미국 농업법에는 이런 가정을 기반으로 해충과 질병이 휩쓴 미국 국립산림지역 180km2 면적의 고사한 마른 나무를 제거하는 데 연간 2억 달러(약 22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규정됐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해충이 발생한 해에 산불의 횟수가 느는 경향이 있어서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을 거라고 추정해 왔는데, 실제 연구를 통해 분석해 보니 관계가 별로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2008년 미국 메릴랜드대 생물학과 헤더 린치 박사와 하버드대 생물및 진화생물학과 폴 무어크로프트 교수팀은 1970~1995년 사이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해충에 감염된 숲의 산불 발생 빈도를 추적한 결과, 해충 발생 이후 7년간 산불 위험이 오히려 현저히 감소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doi:10.1139/X08-143). 연구팀은 “연구 결과 해충이 산불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흔한 가정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솎아베기 효과로 산불 발생 빈도, 피해 규모 낮춘다
최근에는 해충이 산불의 피해 규모까지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버몬트대 군드생태경제연구소 윌리엄 케톤 교수팀은 북미에서 가장 파괴적인 해충으로 꼽히는 소나무좀(Dendroctonus ponderosae )과 잎말이나방과 곤충(Choristoneura freemani )이 발생했던 미국 오리건 주와 워싱턴 시에 있는 숲을 대상으로 25년간 일어난 81건의 화재를 분석했다(doi:10.1088/1748-9326/11/4/045008). 화재 전후에 찍은 숲의 위성 사진을 사용해 화재로 식생이 손실된 정도를 측정한 결과,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해충 피해가 큰 지역일수록 산불의 규모와 피해 정도가 작았다.
연구팀은 해충이 본의 아니게 숲을 ‘솎아베기’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해충이 많이 생길수록 산불에 취약한 살아있는 식물, 즉 화재의 연료로 쓰이게 될 식물을 줄이게 된다”며 “특히 해충이 나뭇가지의 수평, 수직 분포를 바꾸므로 산불이 크게 번질 위험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케톤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밝혀진 해충의 자연적인 솎아베기 효과를 산불 예방 노력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혹시 한국에서도 이런 상관관계가 성립할까. 아직까지 산불과 해충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미국 연구진이 미국 숲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긴 어렵다. 이병두 연구관은 “한국은 재선충에 감염된 고사목을 바로 베어서 반출하기 때문에 산불과 해충 사이에 관련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