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제발 먹지 마세요.” “예~! 히히히.”
실험 재료인 우유를 마셔버리면 안 된다는 이원재 교사의 재치 있는 주의사항에 25명의 학생이 웃으며 대답했다. 7월 12일 오후 1시 30분. 방학을 앞둔 강동고 과학실에선 학생들이 생분해 플라스틱의 원료인 카제인 단백질을 우유에서 추출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희석한 염산을 넣은 우유를 젓는 방식 등에 따라 카제인 추출량이 달라지는 결과를 비교하며 실험에 열중했다.
Q. 안녕하세요, 선생님. 뵙게 돼 반갑습니다. 인터뷰 전에 우유에서 카제인을 추출하는 실험 수업을 봤는데요. 오늘 참여한 학생들은 몇 학년인가요?
2학년 학생들입니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앞둔 수업량 유연화 주간이어서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이 각자 융합교육(STEAM・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인문예술(Arts), 수학(Mathematics)의 머리글자를 딴 교육 프로그램)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강동고는 STEAM 교육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성화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유에서 카제인을 추출하는 오늘 수업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합니다.
오늘 수업은 사회 교과의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에서 시작해, 화학 교과의 생분해 친환경 플라스틱 원료(카제인 단백질)를 추출하는 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내일은 이렇게 추출한 카제인으로 컵과 같은 용기들을 만들어보는 수업까지 진행할 계획입니다. STEAM 교육에서는 이처럼 실제 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는 기술, 공학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용기들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교과 과정이 어떻게 실생활로 이어지는지를 학생들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STEAM 교육의 중요한 의의입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교과 간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 총 400분, 8번의 수업을 블록 형태로 묶어서 연속으로 진행합니다. 오늘 다룬 내용은 그중 절반입니다.
Q.오늘 수업은 무엇보다 우유라는 익숙한 재료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 우유가 환경 오염의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융합교육다운 메시지였고요. 선생님께선 언제부터 이런 수업 프로그램들을 개발, 교육해 오셨나요?
2012년 교직에 들어와서 올해로 11년째입니다. 그 전엔 대학원에서 고분자 연구를 하기도 했죠. 그때 다양한 논문과 학술지를 읽었습니다. 그 논문들에 실린 실험들을 어떻게 재현할지, 또는 어떻게 방향을 바꿔서 다른 실험을 할 수 있을지 등을 고민했죠. 이런 경험들이 쌓여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과 다양하고 흥미로운 실험들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Q.강동고는 2018년부터 한국과학창의재단-한양대와 연계해 STEAM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도입했습니다. STEAM이라는 용어가 낯선 학생들도 있는데요. 과학중점학교 등 다른 일반고와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STEAM 교육은 과학기술 기반의 융합적 사고력과 실생활에서의 문제 해결력을 기르기 위해 과학, 기술, 공학은 물론 인문예술과 수학까지 아울러 학습하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강동고에서 진행하는 STEAM 프로그램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학생들의 호기심 유발과 학습 동기 향상입니다. 실제로 STEAM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수업은 학생들의 집중도가 확실히 높습니다. 실생활에서 학생들이 경험하는 문제들에서 수업의 동기를 찾기 때문에 스스로 호기심을 느끼기가 쉽죠.
과학중점학교의 경우엔 수학과 과학 교과들을 중심으로 그 자체의 내용을 보다 심화시키는 수업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STEAM은 학생들의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는 최근의 이슈들을 주제로 삼아 조사하고, 과학, 수학을 포함해 사회, 미술 등 여러 과목에서 해결할 방안을 탐구하죠. 또한 기술, 공학에 바탕한 구체적인 해결책까지 포괄합니다. 과학중점학교가 교과 중심적이라면 STEAM은 이슈, 응용 중심적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강동고에선 여러 교과의 선생님들이 참여해 실질적인 융합교육 과정을 개발하는 교원학습공동체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창의재단이나 대학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요.
Q.학생들이 STEAM 프로그램을 통해 특별히 더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STEAM 프로그램에 특별히 만족도가 높았던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이었나요?
STEAM은 교과서나 개별 교과의 경계를 넘어 학생들 곁의 문제를 수업으로 가져오는 까닭에 학생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학업 능력을 향상시키는 자기 주도적인 태도를 갖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하나의 문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여러 교과의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지 학생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을 익히는 덕분이죠.
강동고 졸업생 중 STEAM 프로그램을 특히 잘 활용했던 학생은 화학공학과 진학을 목표로 준비했습니다. 학생과 자주 대화하며 이 목표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제안했죠. 그중 전도성 고분자를 입혀 종이에 전기가 통하도록 바꾸는 실험을 집중 탐구했고, 이 성과를 자기소개서에도 인상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소량의 재료를 투입해 이 전기가 통하는 종이를 양질로 대량 생산하는 것이 화학공학이나 산업계의 목표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죠. 이 학생은 2021년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Q. 흥미로운데요, 화학 외의 과목에서 진행 중인 STEAM 프로그램도 간단히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수학 과목에서 기하 단원을 3D 프린터를 이용해 수업하시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돔 구조의 공간에 들어갔을 때 소리가 울리는 현상을 기하학적으로 설명하고, 이 울림을 줄여서 소리를 좀 더 또렷이 들을 수 있는 기하학적 구조의 스피커를 3D 프린터로 만들어보는 수업이 대표적입니다. 기하학의 구체적인 의미와 기술적 용도를 학생들에게 이해시킨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큰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물리 과목에선 레일건(자기장이 변하는 곳에 있는 도체에서 전압이 발생하는 전자기 유도를 이용해 물체를 빠르게 발사하는 장치)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학생들이 전자기학의 개념과 원리를 쉽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해당 개념의 공학적, 기술적 활용까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과학의 다른 과목에 비해 화학의 경우엔 실험의 역할을 강조할 여지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수능 대비나 평가와 실험 사이에서 수업의 균형을 잡기 위한 고민도 있으실듯 해요.
화학의 이론 교육을 무시할 순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론을 개념 중심으로 잡는 편이죠. 자체 교재를 핵심 위주로 정리해 수업하면서 모의고사 등에서 발췌한 문제 풀이도 병행합니다. 이런 구성 아래 학생들의 흥미를 지속시키기 위해 STEAM이나 실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죠.
또한 요즘은 과학 영상 콘텐츠의 양과 질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므로 적극 활용합니다. 한 예로 폭파 실험의 영상들처럼 학생들이 듣기만 했던 사례들을 함께 눈으로 보며, 화학이란 과목에 대한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Q. 지금까지 가장 보람을 느끼셨던 수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STEAM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온, 전류가 흐르는 종이를 만드는 전도성 고분자 합성 실험이 단연 기억에 남습니다. 2014년에 논문으로 이 실험을 접하고 학교 현장에 도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자체적으로 과학 교과에서 신소재 단원을 편제해 수업할 수 있다는 점도 도움이 됐습니다. 폴리아닐린(Polyaniline)을 종이에 흡착시키면 유용한 전도성 물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실험에서 전기가 통하는 전도성 고분자 종이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2019년엔 전도성 종이 실험의 연구 결과를 대한화학회 학술대회에서 포스터로 발표하기도 했죠. 이 실험은 꾸준히 보완해 2023년부터 1학년 통합과학 과목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1학년 학생들이 3학년이 될 때까지 심화시키는 신소재 STEAM 프로그램으로 확대할 계획이고요. 화학의 원리에서 시작해 기술, 공학의 상용화 가능성까지 탐구하는 STEAM 프로그램으로 계속 발전시키려 합니다.
Q. 마지막으로 과학동아를 읽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과학, 특히 화학 과목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학은 암기와 이해가 복합되는 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과목들의 성격이 교차하는 경계라고 볼 수도 있죠. 그래서 화학에서는 직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선 직관에 바탕해 가설을 설정, 적용해야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답부터 확인하기보다는 오답이 나와도 계속 자신의 가설을 세워 일단 풀어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학생들은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쉽게 포기하거나 쉬운 길로 가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약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끈기있게 파고들며 자기 힘을 기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결국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것은 자기 지식을 갖고 싶다는 뜻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틀리고 실패해도 계속 그 이유를 생각하며 나아가는 공부를 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