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 제대로 먹은 거 맞아요? 그렇게 꾸물대면 사냥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대원들에게 인기가 없어 잔뜩 남은 케일과 브로콜리를 먹어 치우고 있던 내게 지질학자가 재촉했다. 정조 과학기지의 지질학자 C는 스스로를 ‘사냥개’라 칭하는 불 같은 사람이다. 그가 주로 사냥하는 것은 암석들이다. 지질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암석은 물론이고 그저 보기 좋게 생긴 돌들도 닥치는 대로 모아 숙소에 쌓아 두는 사람인지라, 다른 대원들과 싸움이 잦다.
화성연구소 규정에 암석이나 토양은 최소한의 분량만 기지 내부에 들이도록 써있다. 대원들의 호흡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C는 야금야금 숙소로 돌을 가지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돌들을 자르거나 조각내 단면을 살피곤 했다. 환기를 시킬 수 없는 기지 내부에서 먼지는 골치 아픈 문제다. 공기 정화용 필터를 교체하는 업무를 맡은 엔지니어 B는 C와 다툼이 특히 많았다.
C는 심지어 정조 과학기지의 모든 사람들이 같이 사냥에 나서기를 원하는 인물이었다. 화성에 도착한 지 83일째 되던 날은 내가 사냥 파트너를 맡을 차례였다. 바로 직전 사냥에 동행했던 의사 A가 아침밥을 먹고 나서는 내게 측은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나는 익숙하지 않은 실외용 우주복을 입느라 한참을 꾸물거렸다. 장기간의 실외 임무를 위해 우주복에 추가된 ‘어떤 장치’가 매우 거슬렸다. 하지만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 착용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농업 전문가가 기지 밖 붉은 흙에 발을 디딘 까닭은
“화성의 돌은 화석(火石)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한자가 조금 다른, 우리가 알고 있던 화석(化石)은 지층에 생물의 사체나 생물의 흔적이 남은 걸 말하잖아요? 그런데 화성에서는 생물이 발견된 적 없으니 화석이 나올 수가 없겠죠? 만약에 우리가 그런 걸 찾으면 화성의 지질에 대한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을 텐데요.”
C가 늘어놓는 장광설을 들으며 화성의 들판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진귀한 돌을 찾아주면 섭섭치 않게 금전적 사례를 할 것이라 약속했다. 대원들 사이에서 지질학자가 억만장자의 딸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조금 다른 곳에 있었다. 돈은 지구에서나 귀중하다. 지폐를 가지고 샐러드를 해 먹을 수 있다면 모를까, 화성에선 더 빨리, 더 다양한 식물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그리고 이 즈음 나는 상추, 케일, 브로콜리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다. 열매, 더 구체적으로는 가지구이가 먹고 싶었다. 기름에 노릇노릇 구워 소스를 뿌린 가지구이. 지질학자인 C가 화성의 모든 걸 귀한 돌과 그렇지 않은 돌로 나누듯, 식물학자인 나는 화성에서 보이는 모든 물건을 식물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으로 나눈다. 이날 내 목표는 암석이 풍화돼 잘게 쪼개진 화성의 토양에 대해 살피는 것이었다. 물론 식물을 키우기 위해서다.
화성의 표면을 덮고 있는 작은 입자들을 토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지구의 토양은 유기물을 함유하고 있지만 화성에선 생물이 살았던 적이 없기 때문에 입자 사이에 유기물이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식물을 기를 수 있고, 식물에게 무기물을 제공한다는 의미로는 화성 표면의 입자들도 충분히 토양이라 부를 수 있다. 나는 진귀한 돌을 찾는 척하며 화성의 토양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달에선 유성우가, 화성에선 바람과 물이 돌을 깎았다
지구 밖 천체에 있는 토양으로 식물을 기르려는 시도는 꽤 오래 전 시작됐다. 인류가 가장 먼저 발을 디뎠던 달의 토양을 이용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달의 토양은 지구의 토양과 유사한 점도 있지만 많은 면에서 다르다.
미국의 유인 달 탐사선 아폴로 16호가 1972년 착륙한 달의 고지대는 사장석 광물이 풍부해 지구의 사장암질 토양과 유사했다. 그런가 하면 1969년 아폴로 11호, 12호가 착륙한 달의 바다에는 휘석과 감람석 광물이 풍부해 지구의 현무암질 토양과 유사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달의 토양은 지구에 비해 규소 함량이 적고, 철과 마그네슘, 티타늄 등 중금속 함량이 높게 나타나는 등 화학적인 차이를 보인다. 달 토양 속 중금속이 식물, 나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달의 토양으로 식물을 키우려는 시도는 안전상의 문제로 연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 화성의 표면에는 아주 적은 양이지만 대기가 있다. 그 덕에 바람에 의한 풍화 작용이 미약하게 일어나고 있다. 아주 먼 과거에 존재했던 물에 의한 풍화도 겪었다. 물리화학적으로 식물을 재배하기엔 달의 토양보다 화성의 토양이 더 적합하다. 2014년 네덜란드 연구진은 달과 화성의 토양을 모방해 만든 토양으로 식물을 재배한 결과, 화성 토양에 포함된 미량의 질산암모늄이 비료로 쓰이면서 화성 토양에서 식물이 더 잘 자랐다고 보고했다. doi: 10.1371/journal.pone.0103138
그러나 화성의 토양에는 과염소산염이 많이 함유돼 있다는 단점도 있다. 과염소산염은 식물의 엽록소를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과염소산염이 많이 함유된 토양에서 자란 식물은 광합성을 하기 어려워 잘 자라지 못한다. 게다가 과염소산염은 잎에 농축되는 특징이 있다. 사람이 과염소산염을 과량 섭취하면 갑상샘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과염소산염이 많은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 식물로는 부레옥잠, 가지 등이 있다. 하지만 부레옥잠은 사람이 먹는 용도로 적합하지 않은데다 수경재배용 식물이기 때문에 화성에 올 때 종자를 챙기지 않았다. 대신 잎 보다는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채소를 기르기 위해 가지 종자를 가져왔다. 과연 가지가 화성 토양에서도 잘 자랄 수 있을까. 논문으로만 보던 화성 흙으로 식물 키우기를 직접 해 보려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화성에서 유기물을 구할 방법이뭐가 또 있겠어요
챙겨온 주머니에 화성의 토양을 잔뜩 퍼 담고 빠른 걸음으로 기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C는 돌을 찾지 않고 도망치려는 나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내 아랫배는 아침부터 브로콜리와 케일 등 과도한 식이섬유를 받아들여 장 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격심한 운동이 더해지자 결국 본능을 참을 수 없었다. 배설물을 감지한 우주복의 처리 장치가 곧 꿀렁이는 소리를 내며 저장 팩으로 대변을 옮겼다. 아침에 혹시 몰라 착용한 ‘어떤 장치’의 정체는 바로 이번에 새로 개발한 우주복의 배설물 처리 장치였다. 그 덕에 화성 한복판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지 않아 다행이었다. 달리다 말고 갑자기 우두커니 선 나를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된 C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예전부터 우주비행사들은 장기간의 임무를 나가기 전에 화장실을 반드시 들러 용변을 보려고 애썼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굴욕적인 상황을 겪은 나는 기지로 돌아와 혹시 모를 불쾌한 일을 대비했지만, 용변 처리 장치는 깔끔하게 작동해 모든 대변을 팩으로 옮겨 놓았다. 그제서야 화성에서 최초의 배설물 화석을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기지 안으로 대량의 화성 토양을 반입한 나는 지구의 화성연구소에 연락해 토양과 암석 반입 규정을 완화해줄 것을 요구했다. 화성 흙으로 식물을 키우는 연구를 하려면 우선 기지 안으로 화성 흙을 들여와야 하니까. 화성연구소에서는 연구 목적이며, 안전 수칙을 지킬 경우 토양과 암석을 용량에 상관없이 반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선했다. 소식을 들은 C는 감사의 인사를 하러 와서는 입에 지퍼를 닫는 손짓을 하며 웃었다. 규정에서 자유로워진 그가 암석을 얼마나 많이 들여올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내가 반입한 화성의 토양에서는 가지가 자라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가지를 수확한 날 저녁, 대원들은 가지구이를 먹으며 유기물이 없는 토양에서 어떻게 가지가 달릴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어떤 유기물을 화성 토양에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가지를 높은 온도에서 익혔으니 뭐, 위생적으로 괜찮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대변을 양분삼아 가지를 키운다는 사실을 대원들에게 계속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화성 흙은 토양의 질이 나빠서 가지가 시들시들하다는 점도 걸렸다. 토양에 안전한 유기물을 투입하기 위해 다른 작물을 이용해야겠다. 비료용 작물을 키운 다음 흙을 그대로 갈아엎고 그 위에 식용 작물을 키우는 전략이다. 이런 목적으로는 식용으로 쓰이지 않는 꽃을 이용하는 편이 적절해 보였다.
*필자소개
정대호. 연암대 스마트원예계열 교수로 서울대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식물 광합성 모델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jdhenv@yo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