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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이슈] 신약 개발에 불어온 새 바람

mRNA백신부터 인공지능까지

“최고의 생일선물을 앞당겨 받았다.”

 

2020년 12월 8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1호가 나왔다. 접종을 받은 91세의 마거릿 키넌은 “(팬데믹 탓에) 내내 홀로 지내다가 마침내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mRNA 백신이 키넌의 바람을 이뤄준 것처럼, 신약 개발에 우리의 바람을 하나 둘 이뤄줄 새 ‘바람’이 불고 있다. mRNA 백신부터 유전자 가위, 인공지능(AI)까지 최근 신약 개발에서 각광받는 신기술을 짚었다.

 

코로나19 백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미국의 시민단체 ‘커먼웰스 재단’이 2022년 1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보고서에는 미국 메릴랜드대 백신 개발 및 글로벌 보건센터와 뉴욕대, 예일대 등 공동연구팀이 질병 전파 모델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2020년 1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입원한 사람과 사망한 사람 수를 분석한 결과가 수록돼 있다. doi: 10.26099/whsf-fp90

 

분석 결과,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미국에서만 1850만 명이 입원하고, 320만 명이 추가로 사망했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질병관리청이 2021년 5월부터 7월까지 확진자를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백신의 중증 예방 효과는 85.4%, 사망 예방 효과는 97.3%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백신은 이처럼 팬데믹의 판도를 바꾸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2020년 과학기술계의 주연으로 떠올랐다.

 

백신 하나를 개발하는 데에는 통상 10여 년의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코로나19 백신은 팬데믹이 시작된 지 불과 1년 만에 출시돼 빠르게 전파되던 코로나19의 감염세를 저지할 수 있었다. 이제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백신, mRNA 백신이기 때문이었다.

 

mRNA 백신, 코로나19로 데뷔해 단숨에 다크호스 등극

 

mRNA 백신에 대한 열기는 코로나19가 누그러진 현재도 뜨겁다.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2023년 주목해야 할 과학이슈 중 하나로 mRNA 백신을 꼽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mRNA 백신의 인기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코로나19 백신으로 2020년 첫 데뷔를 했지만, mRNA 백신의 역사는 그보다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1987년 미국의 생화학자 로버트 말론이 mRNA 백신 개발의 첫 단추를 뀄다. mRNA는 DNA에 기록된 유전정보를 단백질 생성 공장인 리보솜에 전달하는 전령(messenger) 역할을 하는 RNA다. 생명체는 mRNA가 전달하는 정보에 따라 단백질을 만든다. 단백질은 효소, 항체 등의 형태로 생명 활동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론은 mRNA와 지질을 섞어 일종의 ‘분자 스튜(molecular stew)’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인간 세포를 넣었다. 잠시 뒤, 세포가 분자 스튜 속 mRNA를 흡수한 다음, mRNA에 기록된 유전정보대로 단백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말론은 자신의 연구노트에 세포가 전달된 mRNA에 적혀있는 대로 단백질을 생성할 수 있다면 “RNA를 약물로 취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적었다. 질병을 예방하는 단백질이나 치료하는 단백질에 대한 유전정보가 기록된 mRNA를 체내에 투여한다면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뜻이다.  물론 말론의 상상이 즉시 mRNA 백신 개발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mRNA는 체내에서 형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빨리 분해되는 데다가, 비쌌기 때문이다.

 

연구는 천천히 한 발짝씩 나아갔다. 2001년엔 처음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mRNA 백신 임상시험이 진행됐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기업들이 설립된 건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2008년 독일에선 바이오엔텍이 설립돼 mRNA 백신 연구를 시작했다. 화이자와 함께 mRNA 백신을 개발했던 바로 그 기업이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12년 관련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신생 제약기업들이 mRNA 백신 개발에 우르르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 미국의 제약기업 모더나도 있었다.

 

한국에선 남재환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 교수가 2015년부터 mRNA 백신 연구를 시작한 선구자로 꼽힌다. 남 교수는 “mRNA 백신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라면서 “이미 mRNA 발현 플랫폼과 전달체에 대해서 전임상시험과 효능 평가가 완료됐고, 특정 질환에 대해서는 임상 1상도 끝나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임상2~3상 사이의 시간이 단축된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오랜 연구 끝에 개발된 mRNA 백신의 구조는 간단하다. 앞서 mRNA가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에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전령이라고 설명했다. mRNA 백신은 이 전령을 차에 태워 체내 원하는 곳으로 전달하는 식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체내에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mRNA를 지질나노입자(LNPLipid Nano Particle)로 만든 전달체에 넣어 세포까지 전달한다. 그러면 세포는 mRNA에 기록된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토대로 항원을 만든다. 인체는 이 항원을 미리 학습해 나중에 진짜 바이러스가 침입할 때를 대비한다.

 

mRNA 백신의 장점은 이 ‘조립식 구조’에서 온다. mRNA에 기록된 유전정보만 달리하면 전혀 새로운 종류의 약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 질병의 확산세를 긴급히 약화시켜야 하는 팬데믹 시기에 최적화된 장점이다. mRNA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항원을 만드는 유전정보가 담겨 있다면 코로나19 백신을 만들 수 있다. 그 자리에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항원을 만드는 유전정보를 끼워 넣으면 원숭이두창 백신이 된다. 남 교수는 “현재 mRNA 백신 개발 속도를 테스트하기 위해 송대섭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와 최근 유행하는 고양이 독감 mR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실험실에서 간단히 개발하는 것이지만, 지난주에 만들기 시작해서 다음주에 개발이 끝날 예정이니 백신 개발에 3주밖에 걸리지 않는 셈”이라고 했다.

 

팬데믹 그 뒤를 준비하다

 

팬데믹이 종료된 ‘평화로운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mRNA 백신의 인기는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모더나가 “빠르면 5년 안에 모든 종류의 질병 분야에 대한 mRNA 백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암과 심혈관 질환, 자가면역 질환 등에 대한 백신이 2030년까지 준비될 것을 확신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코로나19 백신처럼 질병 발생을 예방하는 백신 외에, 암과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 백신도 포함된다.

 

모더나와 미국의 제약기업 머크는 7월 26일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을 ‘치료’하기 위한 mRNA 암백신 ‘mRNA-4157(V940)’의 임상 3상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mRNA 암백신에는 흑색종에서 발현되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정보가 들어있다. 암백신을 투여받은 인체는 이 정보를 토대로 비정상 단백질을 합성한다. 면역체계는 비정상 단백질의 농도가 높아짐을 인식하고, 비정상 단백질을 파괴하는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이 영향으로 암세포가 사멸해 암을 치료하는 원리다. 인체에서 단백질의 작용은 무궁무진하다. 원하는 단백질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mRNA 백신의 적용 분야 또한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남 교수는 “앞으로 mRNA 백신은 예방용 백신과 치료용 백신 두 방향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환자의 암 발병 양상에 따라 발생하는 암 특이적 돌연변이(신생항원)를 타겟으로 암백신을 개발하면 되니 개인 맞춤형 암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백신을 전 세계 수억 명이 접종한 임상 데이터도 무시할 수 없다. 풍부한 임상 데이터는 새로운 mRNA 백신을 개발할 때 좋은 참고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남 교수는 “팬데믹 이후로 이 분야 연구자가 많이 생기면서 연구가 활발해졌다”면서 “한국도 곧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위기는 mRNA 백신 기술의 발전을 앞당겼다. 그렇게 성장한 기술이 다시 사회가 품고 있던 걱정을 해결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전망이다.

 

유전자 가위, 노벨상 수상 3년만에 신약으로 찾아오다

“두 사람은 유전자 교정 기술의 가장 날카로운 도구 중 하나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발굴했다. 이들 덕분에 과학자들이 동식물과 미생물의 DNA를 매우 정교하게 바꿀 수 있게 됐다. 생명과학에 혁명적 영향을 미쳤고, 새로운 암 치료법에 기여하고 있으며, 유전질환 치료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가 크리스퍼-캐스9 (CRISPR-Cas9) 유전자 가위를 개발한 공로로 2020년 노벨화학상을 거머쥔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와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에게 한 말이다. 노벨상위원회가 말한 ‘유전질환 치료의 꿈을 실현’하는 미래가 이르면 올 연말 찾아온다. 다우드나 교수가 설립한 제약기업 크리스퍼 테라퓨틱스가 미국의 제약기업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와 유전자 가위 치료제 ‘엑사셀(exa-cel)’을 개발했다. 올 12월 미국에서 시판이 승인되면 이 약은 세계 최초의 유전자 가위 치료제가 된다. 네이처는 mRNA 백신에 이어 엑사셀 개발을 2023년 주목할 과학 이슈로 꼽았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 즉 DNA를 잘랐다 붙일 수 있는 편집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유전자에 오류가 생겨 발병하는 유전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그중 엑사셀은 겸상적혈구빈혈증을 치료하는 약이다. 겸상적혈구빈혈증은 ‘낫 모양 적혈구 빈혈증’이라고도 불린다. 겸상적혈구빈혈증 환자의 적혈구는 선천적인 유전자 이상으로 낫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이 때문에 적혈구가 담당하는 몸 속 산소의 운반이 원활하지 않아 환자들은 심한 빈혈을 겪는다.

 

엑사셀이 겸상적혈구빈혈증을 치료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적혈구의 기형을 교정하기 위해 적혈구를 생산하는 줄기세포의 일종인 조혈모세포를 꺼낸다. 그리고 크리스퍼-캐스9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겸상적혈구빈혈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교정한다. 유전자가 교정된 조혈모세포를 다시 환자에게 이식하면 환자의 조혈모세포에서 정상 적혈구가 생산돼, 겸상적혈구빈혈증을 치료할 수 있다.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게 된 건 크리스퍼-캐스9 유전자 가위가 불러온 혁신이었다. 이전의 유전자 가위는 DNA를 인식하기 위해서 단백질과 DNA 간의 결합을 이용했다. 새로운 DNA 서열을 표적하는 유전자 가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단백질이 필요해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크리스퍼-캐스9 유전자 가위의 경우 DNA를 표적하는 부분인 gRNA(가이드 RNA)를 교체하면 새로운 DNA 서열을 편집할 수 있다. 정유진 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이전 유전자 가위에 비해 금액, 시간, 인력 면에서 비용이 압도적으로 적게 드는 방식”이라며 “크리스퍼-캐스9는 어느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하며 대량의, 신속한 연구에 적용하기 용이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자 가위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차세대 유전자 가위를 개발하고 있는 배상수 서울대 의대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 이중나선을 절단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이중나선 절단은 그 자체로 DNA 손실, 세포 사멸, 노화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면서 “따라서, DNA를 절단하지 않으면서도 유전자를 교정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지금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기반으로 염기교정, 프라임교정, RNA 교정기술 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했다.

인공지능(AI), 시장 규모 작은 한국 제약업계에 기회

 

신약 개발에서 각광받는 신기술을 논하는데 인공지능(AI)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다. 최근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전환을 이끌어내고 있는 AI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도 활약할 전망이다. 홍콩의 제약기업 인실리코 메디슨이 개발한 특발성 폐 섬유화증 치료제 ‘INS018_055’가 7월부터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시작했다. 이 약이 특별한 이유는 생성형 AI ‘GENTRL’을 이용해 46일 만에 후보물질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후보물질을 찾았다는 결과를 보고한 뒤 18개월 만에 임상에 들어간 초고속 개발 과정 덕에 과학기술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doi: 10.1038/s41587-019-0224-x

 

생성형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 사례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향후 10년에 걸쳐 AI를 이용한 신약 50여 가지가 개발돼 500억 달러(약 66조 5822억 원) 상당의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우연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지원 센터장은 “신약 개발에 활용되는 AI 기술은 대부분 개발 초기 단계”라면서 “기술 수준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장점은 확실하다. 기존 신약 개발 과정을 살펴보면 보통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기 위해 대략 5000~9000가지의 후보물질을 합성하고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약물로서 잘 기능할 가능성이 높은 화학물질을 미리 추려낼 수 있다. 인실리코 메디슨의 초고속 개발도 AI가 합성해야 할 후보물질의 수를 대폭 줄여준 덕이었다.

 

김 센터장은 “그 외에 임상시험에 적합한 환자를 선별하는 일이나, 환자의 임상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일 등 AI의 적용 분야는 넓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실리코 메디슨이 좋은 사례를 만들었지만, 이들이 만든 새 약물이 기존 약물과 비슷하다는 비판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것을 학습해 유사한 형태의 새 것을 만드는 AI의 특성이 제약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술개발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김 센터장은 “신약 시장의 규모가 작아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데 자원을 투자하기 까다로운 한국 제약기업에게는 AI를 이용하면 돈과 시간을 적게 들이고도 신약을 개발할 수 있으니 큰 이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202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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