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거미,탱크로 자유자재 변신하는 전천후 로봇이 나와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이를 개발한 과학자는 다름 아닌 한국인.실리콘밸리에 있는 그의 연구소로 찾아가 변신 로봇의 불가사의한 묘기를 취재했다.
탱크에서 뱀으로 다시 네다리를 가진 거미로 둔갑하는 기상천외의 변신 로봇이 재미교포 2세 과학자에 의해 개발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제록스 팔로 알토 연구센터의 마크 임(36, Mark Yim) 박사다. 그는 스스로 변신하는 로봇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미국의 주요 방송과 신문은 지난해부터 그가 개발한 변신 로봇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잡지 ‘테크놀로지 리뷰’는 지난해 11월 그를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21세기의 신기술을 이끌고 나갈 1백명의 젊은 이노베이터 가운데 한명으로 꼽기도 했다.
1백명 차세대 젊은 과학자 중 유일한 한국인
지난 7월 말 임박사를 실리콘밸리에 있는 팔로 알토 연구센터로 찾아가 만났다. 그의 꿈은 자신의 변신로봇인 폴리봇(PolyBot)을 화재나 건물 붕괴 등 재난 구조나, 위험한 원자력 발전소 안의 작업, 실제 전쟁 상황 등에서 쓰는 것이다.
폴리봇은 평지에서는 탱크처럼 굴러가다가, 뱀으로 변신해 계단을 기어올라가고, 돌이 많은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는 거미로 변하는 등 수백 개의 모양으로 변신할 수 있다.
폴리봇(PolyBot)의 ‘폴리’는 여러 개라는 뜻이고, ‘봇’은 로봇의 줄임말이다. 다시 말해 여러 개의 작은 로봇이 모여서 하나의 로봇이 된다는 뜻이다. 이 작은 로봇 하나하나를 모듈(Module)이라고 한다.
모듈 하나는 가로 세로 높이 각각 5㎝짜리 육면체이다. 여기에는 모터, PC 성능의 컴퓨터, 센서, 카메라가 달려 있다. 임박사가 만든 폴리봇은 24개의 모듈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모듈들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신을 한다. 이 로봇을 조정하는 사람은 폴리봇을 파이프 속에 집어넣고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를 보면서 내부를 조사할 수도 있다.
24개 모듈이 스스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
놀라운 사실은 사람이 조립해야 하는 레고와 달리, 폴리봇은 다양한 형태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가 사람이 명령을 주면 모듈을 붙였다가 떼어냈다 하면서 스스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각각의 모듈들은 모두 같은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모듈들은 이 프로그램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한 일부 프로그램만 가동시킨다. 이는 마치 우리 몸을 이루는 수많은 세포들이 같은 DNA를 갖고 있지만, 각 세포들은 DNA에서 필요한 정보만 뽑아 쓰는 것과 같다.
임박사는 “여러 개의 모듈을 붙여서 만든 로봇의 장점은 주위 환경에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쉽게 변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 로봇은 평지에서는 둥그런 탱크 바퀴 모양이 돼 마치 굴렁쇠 굴러가듯 빠른 속도로 굴러간다. 그러다가 앞에 계단이 나타나면 뱀으로 변한다. 바퀴는 계단에서는 맥을 못추기 때문이다. 또 돌이 많은 울퉁불퉁한 지형이 나타나면 폴리봇은 네개의 다리를 가진 거미로 변신해 엉금엉금 기어서 간다.
“현재 자동차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은 주어진 특별한 일만 하도록 설계했으므로, 새로운 일을 시키려면 새 로봇을 만들었어야 했다. 변신 로봇은 일단 만들어놓으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임박사는 이번에 개발한 로봇을 2세대 폴리봇이라고 부른다. 2세대 폴리봇은 명령만 주면 스스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1세대 폴리봇보다는 진일보한 것이지만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높다. 우선 지능 수준이 아직 낮고, 전기를 케이블을 통해 공급받기 때문에 멀리까지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임박사는 내년부터 레이저로 주위 환경을 감지하고 환경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스스로 변신하며 길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3세대 폴리봇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 로봇은 자체 배터리를 내장해 전기청소기처럼 길다란 전선을 끌고 다닐 필요도 없게 된다.
임박사는 “이 로봇이 개발되면 건물 붕괴 현장의 콘크리트 더미 속을 비집고 들어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발견하고 방패로 변신해 콘크리트가 무너져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화성이나 우주정거장에도 보낼 예정
24개의 모듈로 만든 2세대 폴리봇과 달리, 3세대 폴리봇은 2백개의 모듈을 연결해서 만들 예정이다. 하나가 5cm이므로 뱀처럼 길게 붙이면 무려 10m나 된다.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기획청(DARPA)은 그가 고안해낸 변신 로봇에 큰 관심을 나타내 지난 98년부터 3년 동안 4백2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해왔다. 현재 임박사가 데리고 있는 연구원은 7명. 앞으로 임박사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제안해 화성 탐사나, 우주정거장에서의 작업에 제3세대 폴리봇을 투입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장난감 회사들도 그의 폴리봇을 모방해 프로그램할 수 있는 장난감을 개발하고 있다.
또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초소형전자기계시스템(MEMS) 기술로 모듈 하나를 쌀알처럼 작게 만들고 이를 수백, 수천개 연결한 폴리봇을 만드는 장기적인 구상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스필버그의 영화 ‘이너 스페이스’에서처럼 초소형 로봇이 몸 속에 들어가 수술을 하는 꿈 같은 일도 이루어질지 모른다.
그가 변신하는 모듈 로봇을 고안한 것은 스탠퍼드대에서 기계공학 박사과정을 하면서. 로봇의 이동 기술을 연구하던 그는 모듈을 여러 개 붙여서 변신을 할 수 있게 하면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컴퓨터의 미래가 탄생하는 곳, 팔로 알토 연구센터
그가 일하고 있는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센터는 MIT의 미디어랩과 함께 컴퓨터의 미래가 만들어지는 산실로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제록스는 복사기 제조회사이지만 언젠가는 복사기를 대체할 상품이 필요하다고 보고, 미래의 오피스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연구하기 위해 1970년에 스탠퍼드대학이 있는 팔로 알토에 이 연구센터를 만들었다.
이 센터에서는 컴퓨터·통신의 핵심기술인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와 최초의 상업적 마우스, 이더넷, 네트웍 컴퓨터,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레이저 프린터 등이 개발됐다. 20년 전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가 여기에 와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보고, 이를 모방해서 매킨토시 컴퓨터와 마우스를 개발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빌게이츠가 다시 이를 본떠서 윈도우즈를 만들었다. 아도비, 3COM의 사장도 여기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미래의 오피스를 연구하는 이곳에서 왜 로봇을 개발할까? 이 질문에 대해 임박사는 자신이 개발하는 모듈 로봇이 생김새는 사무기기와는 전혀 다르지만 소프트웨어는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요즘 제록스의 최신 프린터를 보면 무려 1백개나 되는 컴퓨터를 내장하고 있어, 이들을 동시에 가동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큰 숙제다. 수십, 수백 개의 모듈을 가진 폴리봇의 소프트웨어도 한꺼번에 여러 개의 컴퓨터를 작동시켜야 하므로 우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 구조와 전략이 첨단 프린터 개발에 이용된다.”
사람 같은 로봇 나오려면 50년 걸려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로봇은 언제쯤 나올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좀 비관적이다.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10-20년 사이에 사람 같은 로봇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주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인간 같은 로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50년은 걸릴 것이고, 1세기 후에나 그런 로봇이 나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생애에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말을 못하는 그는 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동부의 매릴랜드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응용수학자였고, 어머니는 부동산 중개업을 했다. 아버지는 매릴랜드의 해군함정연구개발센터에서 마찰이 적은 배의 앞부분을 디자인하는 일을 했고, 특수한 고속 프로펠러도 개발했다.
“어렸을 적 부모가 집에서도 영어를 쓰게 했다. 어려서 한국말을 배웠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다. 후회가 된다. 유학생이나 이민 온 한국인들 가운데에서는 집에서 한국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집사람도 중국계 미국여성이어서 한국말을 할 기회가 없다.”
그의 취미는 두 아들과 노는 것. 일곱살짜리 첫 아이가 보이스카웃이어서 아이와 함께 자주 야외 활동을 다닌다. 또한 지난 5년 동안 연구센터 근처의 고등학교 학생들을 도와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에서 열리는 전국로봇경연대회에 매년 출전한다. 함께 출전한 40명의 학생들과 찍은 사진과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준 기념품이 연구실 책상 위에 자랑스럽게 놓여져 있다.
성공의 비결에 대해 그는 "항상 내 철학은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것"이라고 강조한다.흥미가 성공의 열쇠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