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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베일 벗은 여신의 누드 금성

달보다 젊고 지구보다 늙은 속살

금성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1980년 이후 새로운 탐사방법이 사용됐다. 미국과 옛소련에서 레이더 관측과 풍선 탐사 방법을 동원해 금성의 베일을 벗겼다. 이들의 성공 뒤에는 좌절과 실패를 넘어선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탐사선 베가가 금성에 착륙선과 풍선 탐사장비를 투 하하는 상상도. 이후 베가는 핼리혜성으로 떠났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옛소련이 개발한 베네라 탐사선의 잇따른 착륙성공으로 두꺼운 장벽을 넘어 금성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좁은 범위에 불과했다. 이런 착륙방식으로는 비너스의 누드를 전체적으로 감상(?)할 수 없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두꺼운 베일처럼 가려진 금성의 구름층.

대안은 지구궤도에서 나왔다. 미국과 옛소련은 지구궤도에서 구름이 낀 상태에서도 지상을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 첩보위성을 운영중이었다. 이 투과기술은 금성의 구름을 뚫는데도 유효할 것으로 보였다. 단점은 상당한 전력이 요구되는 점이었다. 옛소련의 경우 핵 전지를 사용했다. 1978년 레이더 첩보위성 코스모스 954호가 캐나다 북부에 추락했는데, 탑재된 우라늄 발전장치로 인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레이더 장비를 옛소련은 탐사선에 실을 수 있을 만큼 경량화했다. 이래서 기존 탐사선의 착륙캡슐이 들어가는 부분에 레이더 장비를 탑재한 베네라 15호와 16호가 완성됐다. 베네라 15·16호는 1983년 10월부터 금성의 극궤도를 돌며 8개월 동안 극지방을 중심으로 전체 표면의 22%에 달하는 지도를 작성했다. 베네라의 관측을 통해 추정된 금성 표면의 나이는 달의 바다보다 젊고 지구의 깊은 바다보다는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북극 근방에서는 호주 크기 만한 대륙에 에베레스트산보다 높게 솟은 맥스웰산(높이 1천5백25m)이 발견됐다.
 

99%에 달하는 표면 지도를 완성한 마젤란은 4년 동안 금성을 돌며 탐사했다.



표면에 펼쳐진 여인천하의 지형

성공적인 베네라 탐사 이후 옛소련은 프랑스와 손잡고 풍선을 이용한 금성 대기 탐사를 준비했다. 18세기 몽골피에 형제에 의해 세계최초의 열기구 비행을 이뤄낸 프랑스는 1966년 이미 미국과 옛소련에 이 계획을 제안한 바 있었다. 이에 미국은 시큰둥했고 옛소련은 1979년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10여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된 이 계획은 아이러니컬하게 계획 제안자에 의해 취소될 뻔한 운명을 맞기도 했다.

1980년 제안자인 프랑스우주기구의 발몽트 박사는 옛소련 과학자와의 칵테일자리에서 1984년에 위치한 금성의 중력을 이용한다면 1986년에 방문할 핼리혜성으로 탐사선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이를 깨달은 옛소련 과학자들은 이런 황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금성탐사와 혜성탐사를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부피가 큰 풍선은 새로운 장비를 싣는데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제안자의 실언(?)으로 폐기될 운명에 놓였던 풍선은 결국 원래 계획보다 축소 제작됐다.

탐사선의 이름은 금성과 혜성의 러시아식 합성어인 베가(VEGA)로 정해졌다. 베가1·2호는 1985년 금성에 도착해 착륙선과 풍선을 투하하고 혜성을 향해 떠나갔다. 풍선은 낙하산을 이용해 낙하하다가 헬륨 가스에 의해 팽창돼 54km 상공을 비행했다. 지름 3m인 풍선은 곤돌라(바스켓)에 과학장비를 실었는데, 금성대기의 흐름에 몸을 맡긴채 떠돌며 관측했다. 풍선의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 옛소련을 비롯해 유럽, 브라질, 오스트리아 등의 전파망원경이 그물같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풍선은 진입지점으로부터 1만km나 바람에 의해 움직이며 10시간 동안 관측한 후 전원부족으로 신호가 끊기고 말았다. 하지만 기존의 수직방향 탐사에서 벗어나 수평방향으로 펼쳐진 새로운 우주탐사방식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한편 미국 과학자들은 이전보다 1천배나 높은 고해상도의 레이더 장비가 실린 탐사선을 보내고 싶었다. 파이어니어 비너스호와 베네라 15·16호에 실렸던 레이더 장비의 흐릿한 시력으로는 금성을 완벽하게 살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심찬 계획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첫번째가 예산이었다. 주어진 예산으로는 도저히 새로운 탐사선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결국 ‘탐사선 부품의 재활용’이라는 전대미문의 방법을 시도했다. 다른 탐사선에 쓰다 남은 부품을 이용하자는 것. 컴퓨터와 전력장치는 갈릴레오 탐사선에서, 안테나는 보이저호에서 남은 것이 사용됐다. 그 외에 10년이나 지난 바이킹 탐사선의 부품들도 갖다 썼다. 임무도 레이더 관측 외에는 모두 취소됐다.

두번째는 발사체의 문제였다. 1986년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로 우주왕복선을 이용한 발사조건은 엄격해졌고, 금성까지 탐사선을 안내할 강력한 액체로켓이 문제로 대두됐다. 결국 안전 때문에 성능이 나쁜 고체로켓으로 대체됐고 비행시간은 1.5배로 늘어났다. 이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준비과정에서 탐사선에 불이 나기도 했다.


마침내 1989년 5월 발사된 금성 레이더 탐사선 마젤란은 1990년 8월 금성에 도착해 4년 간 임무를 수행했다. 임무 도중 예산부족으로 인원이 절반 이하로 줄고 우주탐사계획 중 처음으로 계획 임무 완료 전에 중단될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금성 표면의 99%에 달하는 고해상도의 지도제작에 성공했다. 두꺼운 베일을 벗겨내자 눈부신 비너스의 누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계획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중력지도를 작성하기 위해 금성에 근접한 후 대기와의 마찰로 궤도를 바꾸는 ‘에어로브레이킹’기술을 최초로 시도했다. 성공적으로 모든 임무를 마친 마젤란은 1994년 10월 12일 마치 지구를 일주하고 죽은 탐험가 마젤란의 운명처럼 비너스의 품으로 몸을 날려 최후를 맞았다.

새롭게 발견된 금성의 지형에는 전파와 관련된 남성 과학자를 예외로 한 채 여성의 이름을 붙이도록 국제천 문연맹은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인류 최초의 여성인 이브 외에도 클레오파트라, 이사도라 덩컨 등이 명명됐는데, 우리나라의 황진이와 신사임당도 포함됐다고 한다. 지옥 같은 환경의 두꺼운 구름을 벗겨내면‘여인천하’의 지형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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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정홍철 아마추어 로켓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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