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사진을 본다. 고산지대로 보이는 곳에 2인용 텐트하나를 펼쳐두고 간이 의자에 아주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남자. 바람에 날아갈까 봐 텐트에 모래 주머니인지 빨래주머니인지를 주렁주렁 달았고 배경은 황량하다. 풀 또는 그보다 작을 것 같은 작은 식물이 희미한 녹색으로 바닥을 덮고 있다.
이 남자는 ‘지의류는 무엇일까?’의 저자 가시와다니 히로유키 일본 국립과학박물관 명예연구원. 도쿄대 교수를 지낸 생물학자다. 그런데 전공이 특이하다. ‘지의류’. 배경에 보이는 황량한 곳에 있는 작고 낮은 생명체다.
이쯤에서 혼동 하나가 찾아온다. ‘지의류’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것은? 녹색의, 작고 낮은 식물체 모양의 생물로 어둡고 습하며 지저분한 그늘에 많고, 호숫가나 강가 등뭔가 음습한 기운을 내뿜는 물가에 가도 볼 수 있다. 나무에 붙은 얼룩덜룩한 자국도 지의류다…. 그렇다면? 아하! 이끼구나!
하지만 틀렸다. 지의류는 이끼류(선태류)와 전혀 다르다. 둘 다 지표를 덮고 있으며 포자로 번식하고 식물(잎 또는 가지) 모양을 하고 있지만, 분류가 아예 다르다. 지의류는 균류이고 이끼는 녹색식물에 속한다. 지의류는 조류 또는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와 공생을 하며 ‘지의체’라는 견고하고 독특한 기관을 만든다. 이것은 잎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잎이 아니다. 반면 이끼류는 단독 생물이며, 기관으로서의 잎이 있다.
지의류는 의외로 흔하게 볼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오래된 나무 표면을 보자. 세월이 더께처럼 앉아 돌처럼 굳어 있는 부분의 연한 연두색 혹은 회색 얼룩에는 매화나무지의류 등 몇 가지 종류의 지의류가 살고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해변 바위위에도 비슷한 무늬가 있다. 이건 밤색국화잎지의다. 현무암 표면이 붉은색으로 변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붉은녹꽃잎지의류 군락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체 균류 가운데 21%가 공생을 해서 지의체를 만든다. 전체 균의 수가 약 6만 4000종인데, 그 중 1만 3000종 이상이 지의류인 셈이다.
이렇게나 많은데 우리는 그 동안 왜 몰랐던 걸까. 몰랐던 게 아니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음습하고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징그러운 생물 정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저자는 ‘지의류는 아름답다’고까지 말한다. “비가 갠 후 지의류가 충분한 수분을 머금으면 종류에 따라 미묘한 색의 변화가 나타나고 아름다운 모자이크 모양이 된다.” 책에 풍부하게 실린 온갖 지의류의 모습은 약간은 낯설고 징그러울 수 있는데, 평생을 바쳐 연구한 연구자의 눈에는 다른가 보다.
지의류는 아니지만, 가시와다니 교수의 열정에 맞먹는 우리나라 학자도 있다. 이영보 농촌진흥청 박사다. 이 박사가 선택한 ‘아름다운 생물’은 거미. 뿌연 거미줄, 낡은 방, 천천히 꿈틀꿈틀 움직이는 거미의 울긋불긋한 모습이 소름끼친다고만 생각했다면, 올 여름 나온 ‘실 잣는 사냥꾼 거미’의 저자 사진을 보자. 털이 보송보송한 거미를 손등에 얹고 있는 이 박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미소를 짓고 있다. 거미가 마냥 예쁜가 보다.
책은 거미에 대한 기초 지식을 친근한 말로 풀어보는 전반부와, 왕거미과, 깡충거미과, 무당거미과, 꼬마 거미과 등 이름도 친근한 대표적인 거미 20과 57종을 차근차근 소개하는 중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살면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거미는 거의 다 나온 것 같다. 전국을 다니며 직접 찍은 사진도 다채롭고, ‘자동차 전조등을 닮은 눈(검은날개무늬깡충거미)’, ‘거미 세계의 롱다리(먹닷개미)’ 등 에세이 풍으로 풀어낸 특징 소개도 재미나다.
지의류와 거미. 하나같이 징그럽고 음습한 생물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에 휩싸여 있던 생물이다. 그래서 비교적 주위에 흔한 데 비해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이 작은 책 두 권을 펼쳐보자. 직접 이 생물을 만나러 가는 방법도 친절하게 안내해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