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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도망치는 중이었다.

 진은 아이사를, 아이사는 진을 바라봤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뒤로는 전투선이 쫓아왔고 앞은 블랙홀이었다. 진은 끝을 쉽게 예견할 수 있었다. 이대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죽거나, 전투선에 사로잡혀 죽을 것이다. 아이사는 포로였고 진은 그녀를 탈출시키는 중이었다. 포로를 탈출시키는 일은 중죄였으므로, 잡히면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알립니다. 전방에 블랙홀입니다. 경로를 변경하십시오. 전방에 블랙홀입니다.”

 우주선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왼쪽으로 기울었다. 의자가 심하게 덜컹댔다. 진은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꺾었다. 우주선이 비틀거리며 블랙홀 영향권으로 진입했다. 전투선이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무전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대위는 복귀하라. 코드명 5167 발생. 대위는 당장 복귀하라.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말로 선택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전투선에 사로잡힐 것인가, 블랙홀에 뛰어들 것인가. 진은 아이사를 생각했다. 아이사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그녀와 함께 별을 봤던 일과 그녀의 집에서 함께 살았던 2년을 돌이켜 봤다. 진의 기억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진의 아버지는 전쟁 영웅이었다. 적어도 사람들은 진의 아버지를 그렇게 불렀다. 신문에 실린 아버지의 사진을 찾아보면 제복을 입은 채 근엄한 표정으로 선 그를 볼 수 있었다. 강인한 턱과 단호한 눈, 고집스러운 입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처럼 생긴 남자였다. 그러나 진이 알던 아버지는 달랐다. 어린 진에게 손수 우주복을 입혀주던 아버지. 손을 잡고 정거장을 구경시켜 주던 아버지. 소형 우주선에 진을 태우고 운전법을 알려주던 아버지.

 진은 아버지의 말을 기억했다.

“잠금 장치를 풀고 시동을 걸으렴. 기어를 당기고 페달을 밟아. 그러면 출발이란다.”

 아버지는 진을 우주선 옆자리에 태우고 직접 시범을 보여줬다. 엑셀러레이터를 다루는 법과 속도 제한 장치를 해제하는 법도 알려줬다. 모니터를 읽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도 아버지였다. 비행의 끝에서 아버지는 항상 블랙홀을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블랙홀에 휘말리면 반드시 죽게 되므로.

 그 시절에 진은 아버지와의 비행을 즐기지 못했다. 사춘기 소년에게 우주는 지루한 공간이었다. 매체들은 우주 비행을 낭만적인 일로 포장하지만 실제 비행에서는 검은 우주를 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진은 끝없는 어둠을 마주하면 두려워질 뿐이었다. 그런 말을 하면 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진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었다.

“너도 언젠가 이 일을 사랑하게 될 거다. 하루라도 정거장을 뛰쳐나가지 않으면 온몸이 근질근질해서 못 견디게 될 테지. 그때까지 내가 비행을 가르쳐주마.”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비행 훈련을 위해 진을 떠났다.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우주에서 죽었다.

 아버지의 예언은 옳았다. 진에겐 우주를 방황하는 습관이 생겼다. 밤이든 낮이든 시시때때로 집을 뛰쳐나가 우주선에 올라탔다. 소형 우주선에 몸을 내맡기고 하염없이 우주를 헤맸다. 우주를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견딜 수 없어서였다. 진은 밥을 먹다가도, 수업을 듣다가도 뛰쳐나갔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어머니의 눈물을 본 날이면 나가야했다. 우주선에 올라타 엑셀러레이터를 밟아야했다.

 사고가 난 날에도 여느 때처럼 우주를 방황하고 있었다. 우주선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고 멀리서 운석이 날아왔다. 운석이 부딪히던 순간, 진은 아버지와 같은 최후를 맞이하리라 생각했다. 이 차가운 우주에서 죽을 거라고.

 죽지 않고 살아, 아이사를 만났다.

 

 진은 나흘 만에 눈을 떴다. 구사일생이었다. 때마침 정찰선이 지나가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거라고 했다. 말을 전해준 남자는 회색빛 피부에 넓은 이마, 뾰족한 턱과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진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는 헤타이트족이었다. 인류의 오랜 적. 잔인하고 포악한 외계인. 아버지의 원수.

 인류가 지구를 벗어난 지 수백 년이 지났다. 우주 개척은 나날이 큰 진척을 이뤘다. 은하 곳곳에 거점이 생기고 우주 정거장이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외계 생명체와 충돌했는데, 그게 바로 헤타이트족이었다. 헤타이트족은 은하 건너편에 사는 종족으로, 회색빛 피부와 큰 키, 늙지 않는 육체를 가졌다. 탄생 이후 10년 안에 모든 육체적 성장이 끝났다. 그 뒤론 늙지 않고 100년가량 살다가 죽었다. 헤타이트족은 순간이 영원하다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미래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헤타이트족은 순간을 위해서 살았다.

진은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난 헤타이트족은 진이 상상해왔던 잔인하고 포악한 외계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진을 죽이지도 않았고 심문하지도 않았다. 집으로 돌려보내 주진 않았지만 체류를 허락해줬다. 

 진은 헤타이트족 장로의 자비로 그의 집에서 살게 됐다. 첫날 자신을 담당했던 의사의 안내에 따라 장로의 집을 찾아갔다. 그곳에 아이사가 있었다. 그녀는 장로의 딸이었다.

아이사를 처음 본 순간 진은 그녀에게 사로잡혔다.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를 단정히 늘어뜨린 아이사에겐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진은 자신이 헤타이트족 여자에게 이끌렸음을 수치스럽게 여기면서도 아이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이 마주쳤고 그녀가 서투른 공용어로 진에게 인사했다.

“안녕.”

그게 아이사와의 첫 만남이었다.

 

 진의 예상과 달리 일상은 단조로웠다. 장로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진은 거의 아이사와 단둘이 있었다. 아이사는 진에게 친절했다. 그녀는 진을 포로가 아닌 손님처럼 대우했다. 아이사가 호의를 베풀 때마다 진은 괴로웠다.

 자주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버지가 생각났고, 자연스레 헤타이트족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군 장교였던 아버지는 헤타이트족을 여럿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헤타이트족이 아버지를 죽였다. 그런 결론에 도달할 때면 진은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멋대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사는 진의 모든 행동을 받아줬다. 그럴수록 진은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결국 진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방 안의 유리 장식품을 깨부수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사가 아무 말 없이 깨진 유리 조각을 주워 담았을 때, 진은 모든 전의를 상실했다.

“왜 나에게 잘해주는 거야?”

 진은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으며 물었다.

“잘해주다니?”

 아이사가 의아한 얼굴로 답했다. 진은 아이사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지만 아이사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인간이고너는 헤타이트족이잖아.”

 그러니까 우린 싸우는 게 맞는 거잖아. 이렇게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게 아니라. 진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사는 생뚱맞은 소리나 해대는 것이었다.

“인간들한텐 그런 게 중요하니?”

 진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답답해졌다.

“그럼 도대체 뭐가 중요한데?”

 진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이사는 늘 이런 식으로 논점을 흐렸다. 진은 이번에야말로 답을 듣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뒤에 이어진 말에 자신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네가 마음에 들어.”

 아이사는 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투명한 눈이 진을 관통하듯 응시했다. 아이사에겐 어떤 악의도 없었다. 투명한 눈에 담긴 것은 ‘진’이라는 개체에 대한 호감뿐이었다. 그 말이 왜 그리 낯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이후에도 아이사의 그 말을 떠올렸다. 어쩌면 모든 것이 그날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

 또 하나의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함께 별을 보러 간 날의 장면이었다.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진은 헤타이트족의 사회에 점차 적응해갔다. 아이사와의 관계도 회복됐다. 진은 아이사에게 화를 냈던 일을 사과했다. 아이사는 흔쾌히 사과를 받아줬다. 그날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사고 이후로 진은 우주선 근처에 잘 가지 않았다. 우주선을 볼 때마다 운석과 충돌했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은 우주와 관련된 모든 일을 피했다. 아이사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우주선에 타지도 않았을 것이다.

 별을 보러 가자는 아이사의 제안으로 우주선에 탑승했을 때 진은 일이 잘못됐음을 느꼈다. 그간 우주를 바라볼 때면 숨이 차고 심장께가 먹먹해지는 증상이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순식간에 호흡이 가빠졌다.

 “아이사. 못하겠어정거장으로 돌아가자.”

 진은 간신히 입을 열어 더듬더듬 말했다. 우주선은 어느덧 궤도에 올랐다. 창밖은 시커먼 우주였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이사가 진의 손을 잡아줬다.

“우주가 두렵니?”

 아이사가 진과 이마를 맞댔다. 진은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사가 진의 손을 끌어당겼다. 진은 눈을 감은 채로 아이사를 따라갔다. 그녀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섰다.

“한 번만 눈을 떠봐. 괜찮아. 딱 한 번이면 돼.”

 아이사가 달래듯 진의 손을 매만졌다. 진은 간신히 눈을 떴다. 창밖은 온통 어둠이었다. 진이 공포에 질리려는 순간, 아득히 먼 곳에서 별이 폭발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거쳐 응축된 에너지 집합체가 빛을 내뿜었다. 검은 우주가 잠시 거대한 빛으로 물들었다. 환한 빛이 우주선의 창 너머로 쏟아져 내렸다.

 아버지를 앗아간 우주. 어머니가 증오하는 우주. 그 우주가 믿을 수 없을 만큼아름다웠다.

 진은 두려움도 잊은 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여기엔 어떤 의미도 없어.”

 아이사가 팔을 벌려 우주를 가리켰다.

“너는 너야. 나는 나야.”

 아이사가 시트 위로 몸을 눕혔다. 숱이 많은 머리칼이 목선을 따라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검은 머리가 시트 위에 황홀하게 펼쳐졌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아이사가 주문을 외우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가 진에게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이사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그들 사이에 장막처럼 드리웠다. 진은 넋을 놓은 채 아이사의 검은 머리, 검은 눈과 회색빛 피부를 눈에 담았다. 그녀의 눈이 물결치는 것 같았다. 아이사가 더 가까이 왔고 코가 맞닿았다. 천천히 숨결이 뒤섞이고, 아주 차가운 것이 입술을 느리게 파고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진은 다시 포로 생활을 했다. 포로라기보다는 식객에 가까웠다. 헤타이트족의 거주지에 머물며 간간이 잡일을 도왔다. 늘 아이사와 함께였다. 둘 사이에 낯간지러운 고백이나 사랑의 말은 없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됐다.

 아이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진을 소형 우주선에 태우고 정거장 근처를 비행했다. 멀리 가진 않았다. 그녀는 우주선을 세우고 창에 바짝 붙어 우주를 감상했다. 그때 진은 아이사의 검은 머리칼을 홀린 듯 바라봤다.

 헤타이트족의 거주지에 머무는 동안 진은 10센티미터가 자랐다. 열여섯 살에서 열여덟 살이 됐고, 성인 티가 나는 남자애가 됐다. 그동안 아이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 변한 건 진뿐이었다. 간극을 느낄 때면 진은 조급해졌다. 더욱더 아이사와 가까이 있었다. 차가운 몸을 끌어안고 숨을 죽였다. 그러고 있으면 정말로 순간이 영원 같았다. 

 거주지 내에 이상한 기류가 돌았다. 매일 소란스러웠다. 귀환하지 못하는 자들이 계속 늘었다. 그들은 죽었거나 포로로 잡혔을 것이다. 진은 이따금 어머니 생각을 했다. 고모 생각도 났다. 아버지보다 다섯 살이 많은 그 사람. 정거장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았지. 고모의 우아한 옷차림이나 어머니의 마른 몸 따위가 계속 생각났다.

 진은 폭력이 어떻게 헤타이트족을 바꾸는지 보았다. 온화했던 성품이 난폭해지고 분노가 깨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상황은 점점 진에게 나쁘게 돌아갔다. 진은 전란의 기운을 느꼈다. 머지않아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열여덟의 마지막 날에 아이사는 진을 군용 창고로 데려갔다. 아이사는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우주선을 가리키더니 진에게 단 한 마디를 던졌다.

“원해?”

 

*

 일인용 우주선에는 일주일 치 건조식량과 물이 있었다. 아이사의 최선이었다.

 진도 알았다. 더이상 헤타이트족의 거주지에 머물 수 없었다. 더 머물렀다간 정말로 ‘포로’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더 나쁜 경우엔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아이사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헤타이트족의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우주선을 마련해줬다. 진은 떠나야했다. 아이사를 위해서라도.

 아이사는 진을 우주선에 태우며 드물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

“이제부터 일주일간 앞만 보고 달려. 절대로 멈추지 마.”

 그녀는 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우주선의 문을 닫았다. 우주선의 두꺼운 창 너머로 아이사가 보였다. 아이사의 얼굴이 희뿌옇게 일그러진 다음에야 진은 자신이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 버거웠다. 진은 입을 떼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내뱉는 대신 페달을 밟았다. 전속력으로 아이사에게서 달아났다.

 

 우주는 위험하다. 운석이 날고 별이 폭발한다. 은하를 횡단하는 동안 진은 아이사와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그녀를 생각하면 살고 싶어졌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살아야 했다. 진은 쉬지 않고 일주일을 달렸다. 

진은 완전히 녹초가 된 채로 지구인의 우주 정거장에 도착했다. 신원 확인을 마치고 병원으로 이송됐을 때 진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산발로 병원에 달려왔다. 2년 만이었다.

 

*

 수색대를 수십 번 보냈다고 한다. 정거장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고, 너마저 우주에서 죽은 줄 알았다고 했다. 말하며 어머니는 간간이 숨을 헐떡였고 그럴 때마다 의사는 “진정하세요, 부인”이라 말하며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줬다.

 진은 어머니에게 그간의 생활을 말했다. 우주선이 운석에 충돌했던 일과 헤타이트족에게 구해진 일, 그들의 거주지에서 보낸 2년을 털어놓았지만 아이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헤타이트족이 얼마나 악독한지, 얼마나 잔인한지 이야기하다 아버지를 죽인 건 바로 그들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의 품은 따뜻했고, 동시에 현실감이 없었다. 진은 오랫동안 그 상태로 있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머리에 돋아난 새치라던가, 살이 내린 얼굴 따위를 바라봤다. 문득 저 여자가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어머니를 더 이상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서글퍼졌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진은 이제 한밤중에 정거장을 뛰쳐나가지 않았다. 우주선을 타고 정처 없이 우주를 방황하지도 않았다. 대신 어머니가 원하는 공부를 했다. 어머니는 진이 안정적인 삶을 살길 바랐다. 우주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정거장에서 안전하게 살길 바랐다. 그러나 진은 우주 비행 하나만큼은 놓을 수 없었다.

 진은 결국 우주 비행사의 길을 택했다. 고등교육기관에서 항공우주학을 전공했다. 전투선과 대형 우주선을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은하 정거장들을 오가며 비행법을 훈련했다. 비행사로 군에 입대했지만 전투엔 나가지 않았다.

 고모는 진의 모든 활동을 지원해주셨다. 진을 위해 비행선을 샀고 어머니의 반대를 물리쳐주셨다. 진은 어머니와 고모의 넓은 저택에 머물렀다. 진은 저택의 유리 돔 아래에 누워 먼 우주를 바라봤다. 사랑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사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었지만 마음은 점점 간절해졌다. 그녀를 딱 한 번만 더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그녀를 만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우주 정거장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동기가 관리자로 있는 포로 수용소에 물자를 운송하기 위해 근처의 정거장에 들렀다. 진은 수용소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날도 최대한 빨리 물자를 운송하고 떠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수용소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의 얼굴을 봤다. 분명 아이사였다. 그녀가 포로로 잡힌 것이다.

진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하나는 알았다. 아이사 곁으로 가야 했다.

 

진은 동기의 도움을 받아 아이사를 다시 만났다. 수용소의 문을 열고 아이사가 앉아 있는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진은 마치 열여덟 살로 돌아간 것 같았다. 진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서 있는데 아이사가 담담히 말했다.

“오랜만이네.”

 여전히 서투른 발음이었다. 진은 그녀의 낯을 찬찬히 살폈다. 아이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열여덟 살의 진이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회색빛 피부와 깊고 검은 눈을 마주하자 문득 심장께가 뜨거워졌다.

“오랜만이야.”

 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때 진은 자신의 미래를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

 진이 아이사와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이 주였다. 그 이 주 동안 진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배웠다. 아이사 앞에서 진은 열여덟 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 철없고 무모했던 시절로.

 그래서였다.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일을 실행하기 전, 진은 고모의 저택에 들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고 싶었다. 나오는 길에 고모와 마주쳤다.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구나.”

 고모가 진의 곁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고모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강인한 턱과 단호한 눈, 고집스러운 입술. 진은 여자의 우아한 얼굴을 깊이 응시했다.

“고모.”

 진은 충동적으로 입술을 뗐다.

“저도 아버지처럼 죽게 될까요?”

“죽음이 두려우냐?”

“두려워요, 고모. 정말로요.”

 진은 숨을 헐떡였다. 고모는 잠시 말이 없었다.

“네 아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

 고모가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여자의 투명한 눈이 과거를 더듬었다.

“다른 이들은 전쟁 때문이라고 말하지만나는 안다. 그 애가 우주에서 죽을 줄 알았어.”

 고모가 진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진의 얼굴을 눈에 새길 듯 바라봤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온단다. 저항할 수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순간들이. 막을 새도 없이 휘말리게 되는 순간들이. 남들은 그걸 어리석음이라 부르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인생이란다.”

 그녀가 우아한 손짓으로 치렁한 머리를 넘겼다.

“네 어머니는 내가 잘 돌보마. 너는 어서 떠나렴.”

 진은 그 길로 저택을 빠져나왔다. 전속력으로 가야 했다. 시간에 맞추려면.

 

 아이사의 처형일 하루 전에 진은 수용소에 도착했다. 아이사는 포로용 감옥에 수감돼있었다. 처형일 전에 포로와 접촉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었다. 그러나 진은 대위의 지위를 이용해 아이사를 만날 수 있었다.

“헤타이트족에게 연락을 넣었어.”

 진은 아이사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그녀는 구속복을 입고 손에는 수갑을 찬 상태였다.

“너를 그들에게 돌려줄 거야.”

 아이사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녀가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나중엔 그럴지도 모르지.”

 진은 아이사를 구속한 장치를 풀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제 그들은 도망치는 중이었다.

 아이사를 우주선에 태울 때까지는 순조로웠다. 정거장에서 벗어나자마자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궤도에 올랐을 때 미처 확인하지 못한 보안장치가 작동했다. 그때부터 진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뒤로 관리국이 보낸 전투선이 쫓아왔다. 압도적인 성능의 전투선이었다. 진은 반나절도 안 돼 따라잡혔다. 전투선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설상가상으로 앞은 블랙홀이었다. 연료마저 바닥났다. 진은 끝을 쉽게 예견할 수 있었다. 

“전방에 블랙홀입니다. 블랙홀 영향권에서 신속히 빠져나오십시오.”

-복귀하라. 대위는 복귀하라.

 진은 통신을 껐다. 블랙홀 앞에서 그들은 잠시 멈춰 섰다. 앞은 블랙홀이고 뒤는 전투선이다. 이젠 정말 결정을 내려야했다. 이대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로잡힐 것인가. 블랙홀에 뛰어들 것인가, 전투선에 투항할 것인가. 진은 그 둘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결말은 같았다.

“왜 헤타이트족의 거주지를 나온 거야?”

 진은 조종대에 시선을 고정하며 물었다.

“그게 임무였으니까.”

 아이사가 여전히 진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답했다. 진이 알기로 아이사는 장로의 딸이었고 장로의 딸들은 장거리 임무에 나가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려다 진은 깨달았다.

“나 때문이구나. 그때 나를 보내줬기 때문에 그런 임무를 받은 거야.”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헤타이트족에도 규칙은 있었다. 아이사는 그날 진에게 우주선을 주며 그들의 규칙을 어겼다. 그 대가가 위험한 임무에 나가는 것이었으리라.

 아이사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침묵했다. 요란하게 울리던 알림도 그 순간만큼은 조용했다.

 최후의 선택을 내리기 전에, 진은 아버지를 생각했다. 당신도 이런 순간을 겪었을까. 당신도 휩쓸리고 말았을까. 여전히 그의 죽음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상관없었다. 진은 아이사의 눈을 바라봤다. 아이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때 열망했던 깊고 검은 눈. 그 눈이 지금 진을 보고 있었다. 천천히, 진은 레버에 손을 올렸다.

“원해?”

 진이 물었다. 중력의 영향으로 우주선의 속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알립니다. 블랙홀 영향권 안에 들어왔습니다. 신속히 빠져나오십시오.’

 덜커덩 소리가 났다. 강한 압력이 진의 몸을 눌렀다.

“이제 인간을 알 것 같아.”

 아이사가 말했다. 우지직. 우주선 어딘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우주선의 속력이 점점 더 빨라졌다. 뒤쪽에서 따라오던 전투선들이 속도를 늦췄다. 코앞이 블랙홀이었다.

“마지막 기회야.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

 아이사가 진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물었다.

“다시 알립니다. 블랙홀 영향권 안에 들어왔습니다. 당장 대피하십시오.”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위험, 위험, 위험, 위험

 진은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

“전속력으로 가자.”

 우주선이 블랙홀을 향해 최대 속력으로 돌진했다. 

 

 

  이무강

고등학생, 소설가 지망생. 문학은 쉽지 않은 길임을 압니다. 다만 끝까지 걸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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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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