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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인 몸에서 세포공장 찾는다

뼈 줄기세포가 근육과 간장 세포로 변신

최근 영국에서 인간배아복제를 치료목적을 위해 허용하기로 결정하면서 화상, 퇴행성 질환이나 난치병 치료에 혁명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배아도 잠재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연구자료로 쓰여서는 안된다고 하는 종교단체, 시민 단체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면서 윤리적 논란을 전세계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궁극적으로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촉진하고,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한시적 또는 전면적으로 금지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생명윤리시행법안을 제시해 공청회를 치렀다. 현재까지 학계에서도 이견이 있고, 학계와 시민단체, 종교단체가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 뜨거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윤리적, 종교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성체줄기세포에 대해 알아보자.

40년 넘는 오랜 역사

우리 몸속의 어떤 세포를 성체줄기세포라 부르는 것일까. 성체줄기세포는 자신과 똑같은 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체 재생능력과 모든 계통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포다. 따라서 어떤 조직에서 성체줄기세포를 분리하려면, 세포를 분리해 시험관 내에서 자체 재생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다른 세포로 분화할 능력이 있는지를 증명하면 된다. 그러나 시험관 내에서 이런 세포의 성질을 밝히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진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이제 시작단계인데 비해,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40년 이상 되는 비교적 긴 역사를 갖고 있다. 1961년 틸(Till)과 맥클로흐(Mculloch)는 골수를 만드는 줄기세포인 조혈모세포에 대해 연구했다. 치사량의 방사선에 노출된 쥐는 골수결핍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이 쥐에 정상 골수세포를 주사하면 이런 결핍증이 회복되는 것이다. 성체줄기세포의 중요성을 알리며 출발점이 된 연구다.

이 연구는 현재 골수이식이라는 방법으로 발전해 전세계적으로 백혈병 치료 등에 사용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려 골수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성체줄기세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예라 할 수 있다.

인체의 모든 세포나 기관으로 분화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성체줄기세포는 어느 정도 분화되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 흔히 이 사실을 단점으로 지적하지만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즉 타원형의 럭비공을 땅에 튀기면 그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가 곤란하다. 마찬가지로 배아줄기세포의 경우에는 어느 방향으로 분화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 분화조절 연구가 복잡하다. 그러나 성체줄기세포의 경우는 분화의 방향으로 최소한 ‘그 장기조직’이란 방향을 설정하고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림) 성인 몸에서 줄기세포 얻는 방법


다양한 분화 능력 입증돼

최근 필자가 인간 유방 줄기세포의 존재를 확인한 것을 비롯해 전세계 과학자들은 정상 성인의 몸에서 골수 이외의 장기에도 장기나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의 세포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즉 사람의 유방, 간장, 피부, 위장관, 정소, 눈, 췌장 등 자체적인 재생능력이 있는 장기조직에는 전부 이런 줄기세포군이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이런 조직이나 장기는 상처를 입었을 때 정상적으로 재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목욕탕에 가서 때를 민다. 때는 죽은 세포이다. 그런데 피부세포가 죽어도 우리의 피부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것은 바로 우리의 피부에 피부를 재생하는 세포공장인 줄기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가장 분화가 많이 진행돼 더이상 재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됐던 성인의 뇌를 포함해 거의 모든 신체 장기에 이런 줄기세포군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더욱 고무적인 연구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1998년 페라리는 뼈속 줄기세포가 근육세포로 변환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2000년 라가세는 뼈속 줄기세포가 간장세포로 분화한다는 사실을 ‘네이처 매디슨’지에 발표했다. 단순히 골수이식에만 활용되던 뼈속 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처럼 다양한 분화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기 시작했다. 즉 성체줄기세포는 단순히 그 장기조직으로 분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다. 성체줄기세포의 유용성이 배아줄기세포에 뒤떨어지지 않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식거부반응 없는 방법

성체줄기세포는 조직이식거부반응이 없는 장기생산에 이용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간경화나 신부전증과 같은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많다. 이런 환자들 중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장기이식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장기를 제공하는 사람이 적어 장기밀매 내지는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장기를 기다리다 죽는 사람도 무수히 많다고 알려져 있다.

더욱이 장기를 제공할 사람을 찾더라도 그 장기를 받을 사람과 조직적합성이 있어 이식거부반응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식거부반응 때문에 장기이식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상당수 존재한다.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해결법을 찾고 있다.

인간의 장기와 비슷한 동물인 원숭이, 유인원, 돼지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시도되고 있는데, 부분적으로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식거부반응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또 동물을 이용할 때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병원체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와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원숭이에게서 인간으로 옮겨왔다는 AIDS 바이러스나 인수(人獸)공통 전염병의 문제다. 더욱이 동물장기를 이용한다는 사실에 대해 동물보호운동가들이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의 경우 여전히 윤리적인 문제와 더불어 인간배아복제를 제외하고는 조직이식거부반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면에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와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자신의 조직 일부에서 세포를 떼어내 시험관 내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한 후 증식시켜 이용하기 때문에 이식거부 반응이 전혀 없다.

이외에도 성체줄기세포의 활용 범위는 매우 넓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를 위한 췌장 줄기세포를 환자의 췌장 내에 주입함으로써 인슐린의존성 당뇨병을 치료한다든지, 연골세포나 근육에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주입해 치료해줄 수도 있다. 피부가 화상으로 문제가 있을 때는 피부의 줄기세포를 떼어내 시험관 내에서 증식한 후 화상부위에 발라줘 화상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중년 남성의 고민인 대머리를 해결하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쓸 수도 있다. 현재 대머리 치료제 시장의 크기가 천문학적일 만큼 여러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대머리의 경우 모낭에 존재하는 모낭줄기세포를 분리해 시험관내에서 증식한 후에 대머리 환자에 세포를 이식하면 된다.

치료목적이 전부는 아니다. 필자가 분리한 유방 줄기세포는 유방이 작아서 걱정하는 여성이나 좀더 큰 유방을 원하는 여성에게 미용적인 목적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또한 피부가 노화돼 젊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줄기세포로 피부를 대치할 수 있다.

맞춤미용까지 가능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면역거부반응이 없 는 장기조직을 만들어 이식에 사용할 수 있 다. 사진은 간이식 수술 장면이다.


성체줄기세포 연구에서 풀어야 할 문제도 여럿 있다. 우선 성체의 각 장기조직으로부터 줄기세포를 분리해 배양하는 효과적인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성체줄기세포의 분리는 배아줄기세포의 분리보다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각 장기조직으로부터 성체줄기세포를 분리하고, 세포를 배양하는 기술은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바탕 기술이다.

또한 분리된 줄기세포가 분화되지 않은 채로 성장만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도 중요하다. 원래 줄기세포는 몸안에서 암세포처럼 죽지 않는 불멸의 세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줄기세포를 몸밖으로 꺼내면 쉽게 분화되거나 죽어버린다. 분리된 줄기세포를 시험관 내에서 원하는 수만큼 증식시키는데 사용할 기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분화가 억제된 줄기세포를 원하는 시기에 분화를 유도하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즉 시험관 내에서 분화가 억제된 채로 증식된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나 장기조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길을 밝히는 일이다. 전세계적으로 이 방면의 연구는 이제 어린아이가 발을 한발 딛으려고 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대안으로 앞으로 좀더 심도있는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성체줄기세포를 각 장기별로 미리 떼어내 보관해 두었다가 질병이나 미용의 이유로 자신의 성체줄기세포를 원하는 시기에 이용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정자은행처럼 앞으로 줄기세포 은행이 등장해 맞춤의학 내지는 맞춤미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배아줄기세포나 인간복제와 같은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앞으로 줄기세포연구를 포함한 생명공학 분야에 인간 존엄성과 같은 생명윤리 측면과 국가경쟁력 측면을 잘 조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의 접근에서 국민적 합의와 더나아가 국가간의 합의 도출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생명공학윤리기본법안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들이 합의를 통해 잘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0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강경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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