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편집자주. 3월 29일 청주 도심에서 구조된 여우는 북미산 여우(north american red fox)인 것으로 4월 26일 최종 확인됐습니다. 북미산 여우는 캐나다, 미국 등 북미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붉은 여우의 아종 중 하나로, 개체 수가 많은 편에 속해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국립공원생물종보전원 중부센터는 구조된 여우의 유전자를 분석해 그간 멸종위기 여우의 복원을 위해 야생에 방사한 여우의 유전자와 비교했지만, 유전적으로 공통점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북미산 여우는 지금까지 우리 생태계에는 서식하지 않는 종으로 파악된 만큼 유입 경로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원혁재 센터장은 "북미산 여우를 방생하거나 훈련 중인 여우와 합사하면 유전적으로 교란이 생길 수 있다" 며 "타 기관으로 인계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보통난이도

3월 29일, 충북 청주시의 한 농구장에 여우가 나타났다. 불그스름한 털에 복슬복슬한 꼬리, 긴 주둥이가 언뜻 떠돌이 개처럼 보였지만, 녀석은 여우였다. 그것도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한 붉은여우(red fox·Vulpes vulpes peculiosa·국내명칭 여우, 국가생물종목록 기준). 국가가 나서 종 복원사업까지 추진할 정도로 희귀한 여우가 어떻게 도심에 출몰하게 됐을까. 붉은여우를 만나러 4월 3일 경북 영주에 위치한 국립공원생물종보전원 중부센터를 찾았다.

 

“이번에 발견된 여우와 같은 종입니다. 저기 그늘에서 쉬고 있네요. 여우는 보통 야행성이라 낮에는 주로 휴식을 취합니다.”


국립공원생물종보전원 중부센터 여우생태관찰관 앞. 원혁재 센터장은 여우의 휴식을 방해하기라도 할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관찰관은 4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각 구역에는 여우 2~4마리가 여유롭게 지내고 있었다. 하품을 하거나 졸고 있는 녀석들 중 몇몇은 기자가 나타나자 흥미로운 듯 관심을 보였다. 


이번에 청주 도심에서 구조된 여우는 관찰관에서 조금 떨어진 야생적응훈련 사육장 내 별도의 사육장에 분리돼 지내고 있었다. 건강상태와 성격 등을 사전에 파악하고 다른 여우들과 불필요하게 영역 다툼을 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서다. 


녀석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거의 200km를 달려왔건만 사육장 내부는 입장불가였다. 원 센터장은 “여우의 성격이나 습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사육사도 필요한 경우에만 출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혈액 채취해 유전자 분석 중 


“도심에서 여우가 발견된 건 사실 처음이 아닙니다. 해외에선 종종 있는 일이죠. 중요한 건 이번에 발견된 여우가 대체 어디에서 왔느냐는 겁니다.”


원 센터장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점쳤다. 하나는 종 복원사업으로 방사한 여우 개체이거나 그들의 자손일 가능성,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야생 개체일 가능성이다. 


이를 밝히기 위해 중부센터에서는 구조된 여우의 혈액을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하고 있었다. 유전자 분석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타기관과 공동으로 진행됐다. 공동 연구팀은 유전자분석법 중에서도 각 개체의 유전체 내 연속적이고 짧은 반복 구간의 반복횟수, 다형성 등을 비교하는 ‘마이크로새틀라이트(microsatellite)’ 분석법을 사용했다. 


마이크로새틀라이트 분석법은 개체별로 다양성이 커 분석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어, 멸종위기종 유전자 분석에 주로 사용된다. 범죄 수사나 친자 확인 등에도 다양하게 쓰인다. 유전자 분석에는 2~3주가 걸린다. 


원 센터장은 “결과가 나온 후에 보호 중인 여우를 자연으로 방사할지, 기존 여우들과 합사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부터 소백산에서 여우 75마리 방사

 


유전자 분석 결과는 지금까지 방사된 여우들과의 유전적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국내 생태계에 서식하는 모든 여우들의 유전정보가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부센터는 국내에서 멸종된 여우를 복원하기 위해 2012년부터 종 복원사업을 진행해왔다. 한국에 서식하던 여우와 계통이 거의 같은 중국 여우를 반입해 야생적응훈련을 거친 뒤 소백산 인근에 방사해 자연에서 스스로 개체 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왔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생태학, 수의학 등 다양한 전공의 연구원들이 모여 야생적응훈련과 방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야생적응훈련은 방사된 여우가 자연에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다. 여우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설치류를 사냥하게 하거나 보금자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원 센터장은 “중요한 것은 여우가 사람을 경계하고 야생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한국에선 여우가 이미 멸종된 터라 연구원들이 직접 유럽이나 중국 등에서 훈련 과정을 견학해 우리 생태계에 적합하도록 개선했다”고 말했다. 


방사는 중부센터가 위치한 소백산국립공원에서 이뤄진다. 여우의 먹이인 소형 포유류와 조류가 풍부하고, 산맥이 넓게 뻗어있어 여우가 서식처를 넓혀가기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까지 방사된 여우는 총 75마리다. 


복원사업의 1차 목표는 최소존속개체군을 고려해 2020년까지 50마리의 여우를 야생에서 살아남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방사된 여우가 다치거나 죽지 않고 야생에서 출산까지 성공해야 한다. 현재까지 야생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는 여우는 11마리다. 


원 센터장은 “지금까지의 복원사업을 통해 야생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여우는 50여 마리”라며 “올해 연말 실태조사를 통해 정확한 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우 복원사업에 큰 도움 될 발견


전문가들은 이번에 구조된 여우가 방사된 개체의 자손이라면 서식지를 넓히기 위해 이동하던 중 우연히 도시에 진입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우는 새로운 서식처에 정착하기 전, 해당 지역을 수차례 방문해 먹이나 은신처 등을 확인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부센터는 현재까지 방사된 여우의 서식처를 계속해서 추적하고 있다. 여우를 방사할 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고주파(VHF) 장치가 삽입된 목걸이를 채우는데, 이를 통해 개체별 위치 확인이 가능하다. 


GPS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연구원들이 VHF 신호를 수신하는 안테나를 직접 들고 나가 여우의 위치를 추적한다. 야생에서 태어난 여우는 목걸이를 채울 수 없어 서식처 인근에 설치된 무인 센서 카메라와 헤어트랩 등 보조장비를 사용해 관찰한다. 이렇게 확인한 여우의 서식처는 현재 방사 지점 주변 약 30km까지 퍼져있다.


방사 지점인 소백산과 청주의 거리는 약 100km다. 이번에 붉은여우가 구조된 위치는 지금까지 방사한 여우들의 서식처를 크게 벗어난다. 원 센터장은 “여우는 서식처를 선택하기 위해 100km 이상 이동할 수 있다”며 “유전자 검사 결과 구조된 여우가 방사된 개체의 자손으로 밝혀진다면, 앞으로 국내 여우 서식처가 소백산을 벗어나 다변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구조된 여우가 방사된 개체의 자손이 아닌,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야생 개체일 경우에도 연구 자원으로 의미가 크다. 국내에서 여우는 1991년 멸종 판정을 받았고, 2004년 강원도 양구에서 사체로 발견된 것이 마지막이다. 그런 만큼 야생 개체가 발견된다면 국내 여우 생태 연구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또 구조된 여우가 야생 개체라면 이를 연구해 야생적응훈련 방식을 개선하고 중국에서 도입한 여우와 교배해 여우 유전자를 다양화할 수 있다.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원 센터장은 “여우는 생태계 중간포식자로 동식물의 개체 수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해 복원가치가 매우 큰 만큼 여우 복원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며 “여우가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중부센터 여우생태관찰관으로 오면 된다”고 말했다. 

 

*용어정리 

헤어트랩 (hair trap) : 주변을 지나는 동물의 털을 수집하는 장치. 털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해 개체의 서식지와 이동 동선을 확인한다.

 

최소존속개체군 (minimum viable population) : 자연계에서 한 생물집단이 인위적인 개입 없이 멸종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개체 수.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이병철 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 수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