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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새책] 과학동아 에디터와 함께 읽는 이달의 책

    ▲아작, Shutterstock, GIB, 이형룡

     

    아빠는 “먼 미래”에 “꼭 가야 되는 데가” 있다며 떠났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가 청혼하던 “그때 가져온 게 귤”이라며 이 세상은 “그때까진 귤이 없었단다.”라고 딸에게 말한다. 김인경 작가의 이 단편 소설집과 표제작의 제목은 저 문장에서 나왔다.

     

    ‘그때는 귤이 없었단다’ 속 시간은 아빠가 떠난 먼 미래를 향해 흐른다. 엄마와 언니, 나는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아빠를 기다리지만 어떤 미래에도 그는 없다. 이 작품을 SF로 읽는 단서는 결국 귤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건과 슬픔에, 이 가족이 남들보다 좀 더 자주 빠질 때마다 이들의 곁엔 귤이 있다. 노란 껍질을 벗기면 하얀 귤락(아마 많은 사람이 에스파의 카리나 덕분에 알게 됐을)이 붙은 달고 신 알맹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미래의 아빠는 만날 수 없지만, 그가 엄마를 위해 세상에 처음 가져왔다는 귤은 언제나 곁에 있다. SF의 사전적 정의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벗어난 과학적 사건을 담은 소설’이기에, ‘그때는 귤이 없었단다’는 귤의 시공간을 태연하게 벗어나 SF의 경계로 들어선다. 그래서 ‘그때는 귤이 없었단다’의 화자와 가족이 괴로울 때마다 “여기 있는” 귤을 맛보며 결국 힘을 얻는 모습은 서정적이면서 과학적이다.

     

    ‘왼손의 백룡’은 인류가 지구 밖에서 사는 미래를 배경으로 또래의 낯선 사촌 태이를 향한 난서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미래에 우리의 삶을 이루는 많은 요소가 엄청나게 바뀌더라도, 우리가 타인에게 지닐 수밖에 없는 동경, 질투, 호기심을 10대의 난서가 보여준다. 

     

    난서가 자신의 로봇과 드론이 태이의 낡은 보모 로봇 시엘라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나다고 계속 말하는 건, 태이가 그 격차에 관심이 없어서다. 그래서 난서는 우월한 자신에 무관심한 태이에게 더 집착한다. 난서가 미래의 방식으로 태이의 비밀을 헤집어놓고서도, 역시 시시하다며 결과와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은 현재와 같다.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모두 벗어난 SF의 감정을 ‘왼손의 백룡’에서 엿볼 수 있다.

     

    ‘그때는 귤이 없었단다’는 지난 단편집 이후 12년 만에 나온 김인정 작가의 단편집이다. “끝을 맞이해도 파국을 반복해도 마음은 멈추지 않아서.”란 ‘취업경위서’의 문장처럼 이 책에 모인 작품들은 시작도 끝도 없는 기다림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다양한 풍경을 보여준다. 끝과 파국조차 뛰어넘는 마음이란 일상의 시공간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만큼, 과학적 사건으로 펼쳐질 가능성도 크다는 점을 ‘그때는 귤이 없었단다’의 단편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열린책들, GIB

     

    “무언가 알아내는 즐거움, 그것이 바로 보상이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다룬 자서전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의 앞을 장식하는 제사로 뽑은 이 말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했다. 게이츠의 삶을 극적으로 압축한 한 문장을 파인먼이 남겼다니. 게이츠는 이 문장부터 제사로 정해놓고 자서전을 쓴 것 같다. 그 정도로 이 책에 담긴 게이츠의 젊은 시절과 어울린다.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은 빌 게이츠가 1960~70년대의 10대 시절에 소프트웨어라는 미개척 분야의 잠재력을 직감하고 운명의 단짝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하기까지의 나날을 담았다. 여기서 게이츠는 자신의 생애 전체의 모든 토대를 이룬 관계, 교훈, 경험을 차분하게 되짚는다. 반항적인 10대 때 부모와 겪은 갈등, 친밀한 사람을 갑자기 상실했을 때의 좌절, 대학에서 쫓겨날 뻔한 경험 등도 진솔하게 전해준다. 이 덕분에 게이츠의 안정적이고 유복한 가정 환경, 그를 믿고 지원해준 사람들과의 교류, 개인용 컴퓨터의 도래라는 역사적 격변 같은 행운의 역할도 보다 균형 잡힌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게이츠로 향하는 결정적 순간은 사립 중고교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진학해 앨런을 만나며 시작된다. 이어서 이들은 컴퓨터 회사인 DEC의 컴퓨터에 무료 접속해 시스템 이상을 찾아 보고하는 테스터로 활동한다.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다루면서, 게이츠는 사무실 프로그래머들의 어깨너머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엔지니어들이 버린 컴퓨터 용지를 뒤져서 소스 코드들을 찾아낼 정도로 몰입한다.

     

    대학에 진학한 게이츠와 앨런은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의 비즈니스 모델을 본격적으로 모색한다. 인텔이 개발한, 당대 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마이크로칩을 구입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더 나아가 바로 그 MS의 막이 오를 때, 이 책은 끝난다. 게이츠는 MS와 정보통신(IT) 산업의 주도권을 차지할 자신의 야심과 앞으로 겪을 갈등의 전조도 조심스레 드러낸다. 모두가 아는 빌 게이츠가 되기 전, 그는 과연 뭘 알아내며 어떤 보상을 누렸는지 ‘소스 코드: 더 비기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항아리

     

    빙하의 침묵에 담긴 지구의 호소를 듣다

    원시 지구 이후 빙상이 형성되던 시점부터 농업 발달과 산업화 등 인류 활동이 본격화되던 시기를 지나 핵실험이 만연했던 1945년 그리고 오늘날까지, 인류가 전 지구적으로 영향력을 떨쳤던 시간을 가로지르며 빙하의 언어를 번역하는 책이다. 특히 현재 인류처럼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급격하게 배출한 존재는 지금까지 없었음을 남극 빙하에 담긴 지난 80만 년의 기후를 근거로 지적하면서, 지구의 수십억 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빙하 곁에 머물기 신진화 지음 〡 글항아리 〡 276쪽 〡 1만 8000원

     

    ▲엠아이디미디어

     

    생명과학의 지평을 넓힌 60년의 기록

    구조생물학과 유전체학 분야를 개척해 세계 과학계의 새로운 장을 연 김성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화학과 교수의 독창적 연구와 헌신적인 삶을 기록한 책이다. 한국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과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은 그는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유학하며 전달 RNA(tRNA) 구조를 최초로 규명하는 데 성공해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된 업적을 남겼다. 인류와 생명의 신비를 풀겠다는 한 과학자의 열정이 이뤄낸 기록을 만날 수 있다.

     

      현대 생명과학의 탐험가, 김성호    강석기 지음 〡 MID 〡 288쪽 〡 2만 원  

     

    ▲띠움

     

    가장 낮은 지점에서 찾은 과학의 온기

    과학적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이 얼마나 따뜻하고 깊은지 보여주는 에세이집이다. 산소와 질소, 정크 DNA, 우주 행성, 시야각, 파동, 미생물 등의 과학 현상을 렌즈로 삼아서 바라본 우리의 일상과 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이 담겨 있다. 절대온도는 가장 낮은 온도인 ‘절대영도’가 시작점인 온도 측정단위다. 그러므로 절대온도의 틀에는 영하가 없다. 이 책은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대신, 서로의 기준을 맞췄을 때 드러나는 과학적 공감의 가치를 전해준다.

     

      절대온도의 시선    서현 지음 〡 띠움 〡 215쪽 〡 1만 6700원  

     

    ▲사이언스북스

     

    더 나은 한국 사회를 위한 숫자 읽기

    미세 먼지 지수, 노조 조직률, 합계 출산율 등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20개의 데이터를 단서로 숫자 이면의 의미를 추적한 데이터 사이언스 에세이다. 대학 병원 약사 출신으로 통계학을 전공한 저자는 우리가 보는 숫자들을 누가, 어떤 의도로 생산한 것인지 고민해야 하며, 그 의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더 나은 세상과 맞지 않을 때는 이를 반박할 새로운 데이터를 도출할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숫자 한국    박한슬 지음 〡 사이언스북스 〡 268쪽 〡 1만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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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3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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